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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65화 (26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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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9화

    “저, 저는 치료 주술을 부릴 줄 압니다! 협동이 필요한 이런 상황에서 저만큼 도움 될 조원이…….”

    “저희 가문은 티탄 시대부터 아스가르드 일족의 척후병 양성을 담당했었습니다! 저도 자연스레 많은 기술을 터득했죠. 던전 탈출이라면 제 도움이 필요하실 겁니다!”

    “칼리두 님! 저만 바라보고 사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제가 죽으면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제발…… 제발 이렇게 빌겠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이봐! 어디서 감성을 팔고 있어? 누군 뭐 가족 없는 줄 알아?! 칼리두 님! 저도 자식이 넷이나……!”

    “헛소리! 내가 당신을 몰라? 다 아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쳐?! 자식은커녕 마누라도 없으면서……!”

    “봤어? 나한테 처자식 없는 거 봤냐고! 지 혼자 살아남으려고 멀쩡한 내 가족들을 없는 셈 쳐? 이거 이제 보니 아주 몹쓸 종자로구먼?”

    아비규환.

    조장으로 임명된 120명 남짓을 제외한 모두가 1번 공격대 조장 이안에게 선택받고자 아우성쳤다.

    자신의 장점을 피력하거나, 감정에 호소하거나, 경쟁자를 폄하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역시 인간이나, 슈페리언이나, 궁지에 몰리니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그만.”

    그들에게 이안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모두 이안의 눈에 들고자 혈안이 된 만큼 말은 잘 들었다.

    “저는 여러분을 잘 모릅니다. 누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어떤 성향과 사정을 가졌는지, 가늠도 안 되고 판단도 어렵죠. 따라서 한 가지만을 기준으로 잡을까 합니다.”

    단 한 가지 기준만 두겠다.

    그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대신 이안의 입에 집중했다.

    “여러분 중 나는 억울하다, 수행자의 격을 앞세워 왕 노릇을 한 적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았는데 끌려왔다고 여기시는 분, 계시다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조건은 까다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만큼 전직 수행자 카르텔의 규모는 대단했다.

    수행자 출신이라면 누구든 카르텔의 혜택을 누렸다는 증거일 터.

    “저, 저는 억울하다고 생각…….”

    “당신이 뭐가 억울해? 우리 완장 차고 자릿세 챙긴 거 당신이잖아?”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어디서 오리발이야? 당신이 상업지구에서 챙겨 먹은 자릿세가 총 얼마인지도 아는 사람이야! 내가!”

    “저, 저기, 전 명부에 이름만 올렸지 이렇다 할 활동은 딱히…….”

    “웃기지 마! 당신이 무슨 이름만 올려? 단합대회마다 당신 실실거리는 면상 본 것만 수백 번인데!”

    “내가 무슨 단합대회를 나가? 봤다는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하물며 누군가 나서는 순간 집중포격을 당하기 일쑤였으니, 이거 아무래도 이안의 예상보다 훨씬 더 진입장벽이 높은 조건인가 보다.

    ‘지주보다 무서운 마름이라.’

    심지어 한두 명이 아니다.

    이들의 슈페리언 사회 내에서의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지.

    ‘어째서 시계탑이 이들을 정리하려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어찌 되었든 이들 사이에서 억울한 수행자를 따로 뽑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럼 결국 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뜻인데.

    ‘결국 쓸모 있는 능력을 갖춘 자들 위주로 뽑아야 하는 건가?’

    글쎄, 그게 딱히 의미가 있을까?

    단적인 예로 첫 번째 번외 과업 ‘사냥꾼과 사슴’을 떠올려보자.

    지배자들이, 혹은 그만한 존재가 적으로 나선다면 그깟 수행자 수준의 능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흐음.”

    이안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직까지 실랑이 중인 저들을 보아라. 이안의 눈에는 흡사 ‘우리는 언제든 뒤통수칠 준비가 되어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자들뿐이라면, 굳이 룰 이상의 호의를 베풀고 싶지는 않네.’

    생각하기를 멈춘 이안.

    그가 싸늘하게 읊조렸다.

    “여러분이 그러는 동안 주어졌던 3분, 다 끝나갑니다. 결국 무작위로 뽑힌 분들과 함께 가겠네요.”

    조원 선택의 시간은 단 3분.

    시간 초과 시 무작위 선택이다.

    “자, 잠깐! 칼리두 님! 제발 저라도 데려가세요! 전 진짜 억울……!”

    “모함입니다! 다 모함이에요! 명부에 이름 올린 게 전부인데……!”

    “다들 모쪼록 살아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럼.”

    [1번 공격대 조원 선택 시간 종료, 1번 조장 칼리두 와탕카 님께서 선택하신 조원은 없습니다.]

    [조장 칼리두 와탕카 님을 제외한 4명의 조원이 무작위로 선출되어 지하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지하 던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불문율에 붙여집니다.]

    주어진 3분이 초과되는 순간.

    형식적인 안내 메시지와 더불어 이안을 포함한 4인의 수행자가 무작위로 선출, 자리에서 사라졌다.

    “…….”

    다소 허망하게 끝난 선택 시간.

    잠시 넋을 놓았던 전직 수행자들이 서둘러 한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곳은 바로 2번 공격대 조장, 유다 이스카리옷의 눈앞이었다.

    가장 믿음직해 보였던 1번 말이 떠난 이상, 어떻게든 차선책인 2번 말의 등에 올라타야만 한다.

    * * *

    시계탑의 지하 던전.

    그곳은 정말이지 넓었다.

    마치 거대한 미로와도 같았다.

    또한.

    쿵!

    위험했다.

    정신이 아득할 만큼.

    ‘……이걸 탈출하라고?’

    어떻게 보면 매우 기념비적인 순간이다. 그도 그럴 게, 시계탑 내부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으니까.

    ‘가는 길목마다 기본이 레르니안 히드라급 괴수인데, 이걸 고작 수행자들끼리 돌파해라? 말이 돼?’

    그러나 이안에게는, 뿐만 아니라 지금쯤 던전에 입장하였을 모든 수행자들한테는 그 기념비적인 순간을 음미할 겨를조차 없었다.

    시작부터 아주 무시무시했거든.

    방금 쿵 하는 소리, 그 발걸음 한 번에 조원으로 합류한 네 명 중 둘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지하 던전을 누비는 괴수의 소행이었다.

    ‘나도 이렇게 애를 먹는데, 나머지 수행자들이 이걸 어떻게 견뎌?’

    다시 말하는데, 시계탑의 지하 던전은 비현실적으로 넓고 복잡했다.

    그리고 그 넓고 복잡한 길목마다 슈페리어의 토착 괴수들이 득시글거렸는데, 그중에는 아르테미스와 함께 사냥했던 레르니안 히드라만큼 강력한 괴수도 여럿 보였다.

    ‘난이도가 어쩌고 하더니만, 그냥 여기서 전멸하길 바라는 건가?’

    그만큼 난이도가 극악이다.

    이안 역시 정신 바짝 차리지 않고서는 무자비한 괴수들의 공세에 오래 버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칼리두 님? 어느 쪽으로…….”

    계속 나타나는 갈림길.

    살아남은 조원이 물었다.

    아직 통성명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겨를이 없다.

    “왼쪽으로 가죠.”

    “왼쪽…… 말씀이십니까?”

    “왼쪽으로 가야 당분간 막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요.”

    이안은 몇몇 마법으로 시계탑 지하의 미로와도 같은 길을 파악하고자 했고, 일부분은 먹혀들었다.

    물론 워낙 방대한 까닭에 모든 길을 파악하지는 못할지언정, 어느 정도의 길잡이 노릇까진 가능했다.

    문제는 올바른 길이든, 아니든 토착 괴수로 가득하다는 점이리라.

    “…….”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왼쪽 통로로 한참을 걸어왔건만.

    어째서인지 토착 괴수는커녕 벌레 한 마리조차 보이지를 않았다.

    시계탑 지하에 들어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둘 남은 이안의 조원들이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호…… 혹시 탈출구에 가까워진 거 아닐까요? 그래서 이렇게 조용하고, 괴수도 보이지 않고…….”

    “그러게요. 여기까지 오면서 이렇게 조용했던 적, 없지 않습니까?”

    출입구에 가까워졌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헤맨 시간만 벌써 수 시간이니.

    그러나 이안의 생각은 달랐다.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물론 지금까지도 충분히 험난한 여정이었으나, 왠지 이렇게 끝날 거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분명 뭔가 저 앞에 있다.

    탈출구가 아닌 무언가가.

    본능적인 직감이 그랬다.

    “새삼 아찔합니다. 칼리두 님이랑 같이 오지 않았더라면 이걸 무슨 수로 뚫었을지…… 제 생각에는 우리 말고 전부 다 죽을지도…….”

    “그러게 말이에요. 처음 괴수들을 봤을 때만 해도 아, 여기까지구나 싶었는데,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요. 이게 다 칼리두 님 덕입니다.”

    그러나 조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벌써부터 세 번째 번외 과업을 통과한 것처럼 군다.

    “……아뇨, 아직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제 추측이 맞는다면 절반도 오지 않았으니까요.”

    “에이! 그래도 칼리두 님 실력이면…… 제가 본 게 있는걸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괴수들이 아주 그냥 뼈도 못 추리던걸요? 정말 대단하세요. 제 생각에 칼리두 님께서는 조만간 지배자의 격까지 얻어내실 겁니다. 그렇게 되면 모른 척하시기 없기입니다. 하하!”

    이안 곁에 붙어 살아남은 두 명의 조원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안이, 그들이 알기로는 칼리두 와탕카가 자신들을 살려줄 거라고.

    그냥 그의 뒤만 따라가도 자연스럽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만큼 괴수를 상대하는 칼리두 와탕카의 힘과 실력이 엄청났거든.

    “그런 거 보면 참, 운이라는 게 한 끗 차이예요. 시작부터 죽은 두 명은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우리 나가거든 명복이라도 빌어줍시다.”

    “그럽시다. 우리가 죽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대신 죽어준 거나 마찬가지이니…….”

    이안이 그런 그들의 모습을 힐긋 보며 자그마하게 한숨을 쉬었다.

    당장 몇 초 후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건 변함이 없건만.

    “아무튼 우린 운이 좋았어요. 솔직히 아까 조원 선택하실 때만 해도, 사람들이 워낙 날이 서 있어서 말도 못 꺼냈거든요. 근데 무작위로 당첨이 되어서 이렇게…….”

    “쉿, 조용히.”

    완전히 긴장을 놓아버린 두 조원에게 이안이 말했다. 멀찌감치 보이는 커다란 ‘문’이 그 이유였다.

    “……저거, 출입구 아닙니까?”

    “오, 딱 봐도 그래 보이네요. 우린 살았어요. 어서 나갑시다!”

    “잠깐…….”

    더는 말을 듣지 않는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막 나가기에 충분한 재료였다.

    ‘그렇게 둘 순 없지.’

    도움이 되지 못할지언정 방해가 되면 어쩌라는 거야? 불쾌함을 느낀 이안이 두 사람에게 포박 주문을 걸었다. 함부로 문을 열기 전에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덜컹! 끼이이이이이이……!

    이안의 포박 주문이 성공적으로 조원들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수상스럽기 짝이 없는 커다란 문짝은 제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꿀꺽……!

    이안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였거늘, 어째서 이런 긴장감이 느껴진단 말인가?

    ‘도대체 뭐가 있기에…….’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안이 헤파이스토스에게 선물받은 아티펙트 지팡이 ‘케리케이온’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불안정한 떨림이었다.

    “끄, 끄으으으으으으……!”

    “쿨럭! 크허억……!”

    어디 그뿐일까?

    앞서 달려갔던 두 명의 조원이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거, 예감이 좋지 않다.

    저 너머에 뭔가 있다.

    괴물이든, 무엇이든.

    [어이가 없군.]

    그때, 반쯤 열린 커다란 문 너머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시설 일부를 쓰겠다는 공문이야 진즉 받았는데, 설마 내 서재까지 오는 걸 방치할 줄이야.]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목소리다. 여태껏 이안이 만나본 그 어떤 지배자도 이런 힘이 담긴 목소리를 내지 않았거늘.

    대체 이 존재는 누구란 말인가?

    [해명하도록.]

    해명을 하라고?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설마 이안 자신한테?

    [소, 송구하옵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정체불명의 존재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으며 사죄했다.

    그 누군가의 정체는 놀랍게도 아테나, 번외 과업의 설계자였다.

    [혼돈의 군주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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