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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64화 (26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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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8화

    처음 자신의 아들이자 사념체.

    아니, 사념체였던 이안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 프란 페이지는 몸에서 ‘검은 물’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찰나였으나 선명히 기억난다. 묵은 때가 지워지는 그 상쾌함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절정의 상쾌함에 머리가 어떻게 되었던 건지, 프란은 최후를 맞이하는 그 순간 이안에게 ‘고맙다’는 인사마저 건넸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참 만족스러웠다.

    바로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이안에게 물음표를 던졌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기행이 아니었나 싶다.

    그게 왜 만족스러우냐고?

    달리 이유가 필요한가?

    “재미있잖아?”

    그렇게 긴 삶의 끝을 맞이했다.

    자아를 각성한 사념체에게 역으로 당해버린, 참으로 비참한 죽음.

    오랫동안 준비했던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명백한 증거.

    분명 그런 줄 알았는데,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었다.

    명계에서 다시 눈을 뜨는 순간.

    프란 페이지는 희열을 느꼈다.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건, 자신의 삶이 끝나지 않았단 뜻이니까.

    “하물며 명계 투기장이란 곳에서 우승을 하면 되살려주기까지 한다니, 내가 천국에 온 건가 싶더군.”

    처음에는 그랬다.

    명계 투기장에서 우승하는 것.

    하여 되살아나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프란은 곧 흥미를 잃었다.

    “알고 보니 너무 작고 하찮은 세상이었거든. 내 고향이라는 곳이.”

    명계에는 온갖 세계의 망자들이 다 몰려온다. 뿐인가? 이 명계를 통치하는 하데스란 존재는 가히 신에 가까운 힘을 가졌다.

    하물며 슈페리어 차원이란 세계에는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득시글하단다.

    ‘심지어 그 세계, 슈페리어 차원의 존재들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구사했던 미지의 능력, 언어의 힘을 평범한 언어처럼 쓰더군.’

    광활한 세상.

    항상 의문이었던, 타고난 능력이나 마찬가지였던 언어의 힘을 평범한 언어로 쓰는 강자들의 세계.

    그리고 그런 힘을 타고난, 혹은 날 때부터 타고났다 여기는 자신의 태생적인 비밀에 이르기까지.

    알고 싶은 것들이, 알아야 할 것들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많아졌다.

    “세상이 이렇게나 넓은데, 내가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 있었는데, 고작 그 손톱만 한 세계에 얽매여 인류를 분류하니 마니, 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날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고향에서의 계획도 마찬가지다.

    물론 더 이상 신경 쓸 가치가 없어서 잊어버리기만 했을 뿐,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건 아니다.

    “그저 흥미가 바뀐 것이지.”

    새로운 흥미.

    그 흥미가 낳은 목표.

    프란의 눈과 귀는 그곳을 향했다.

    닿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 하데스에게 능력과 목적의식 등을 인정받았다.

    천 번의 우승 없이 그의 기사로 인정받아 강력한 힘을 허락받았으니, 이후 프란은 하데스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슈페리어 차원과 타르타로스 등 온갖 곳을 탐닉해왔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거대한 세계의 진실과 비밀에 닿았고, 그 과정으로부터 수많은 지식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내 태생적인 비밀 역시 어느 정도는 닿을 수 있었는데, 그 비밀이 무엇이냐 하면…….”

    프란의 말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바로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시계탑 지배자들이 벌인 여흥 놀음에 용병으로 투입되었던 명계의 챔피언, 미첼 그린리버였다.

    “잘 다녀오셨나?”

    그의 복귀에 프란이 서둘러 음성을 저장하던 수정구부터 감췄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미첼 그린리버에게 넌지시 물었다.

    “내 말은 잘 전달해 줬고?”

    “…….”

    “뭐라던? 내 무서운 아들이.”

    “…….”

    “욕을 하던가?”

    “…….”

    프란의 질문에 한동안 침묵을 지켰던 미첼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이안 페이지와 관련된 일이라기에 돕기는 했소만, 난 당신을 믿지 않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영혼들이 당신을 학살자라고 부르더군. 우리 고향 땅에서 명계로 떨어진 고대의 영혼들이 말이오.”

    불신으로 가득한 목소리.

    미첼은 프란을 경계했다.

    “학살자라,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긴 한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경 쓸 필요 없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그들도 죽었고, 나도 죽었지. 지나간 일에 얽매여봐야 아무것도 남지 않아.”

    이미 지나간 일에 불과하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런 프란의 논리에 미첼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곳 명계에서 프란을 참 오래 봤지만, 여전히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이 존재는 절대로 자신의 행위에 관하여 일말의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굳이 정당화시키지도 않는다.

    단언컨대 미첼이 살아생전, 그리고 명계에서 만나본 악인 중 가장 괴상한 존재가 아닐 수 없으리라.

    “……지나간 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거참 단순하군. 지성을 갖춘 존재는 한 가지의 성향만 갖고 있지 않아. 그들은 그저 내 단면을 봤을 뿐이고. 고작 단면 하나로 날 판단하는 거, 솔직히 좀 서운한데?”

    심지어 능글맞다.

    속내를 읽기 어렵다.

    경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프란도 그 사실을 알 터인데, 잘도 서운하단 소리를 늘어놓는다.

    참으로 의뭉스러운 자다.

    “뭐, 아무튼, 내 이야기 잘 전해줬으면 됐어. 돌아온 시간 보니까 이안이 압도적으로 이겼나 본데, 걔가 내 아들이야. 알아두라고.”

    “…….”

    뜬금없는 아들 자랑.

    애당초 아들이 맞긴 하는가?

    부자 관계로 보기에는 시대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은데?

    “……한 가지만 묻지.”

    이런저런 의구심을 치워둔 채.

    미첼이 나지막이 물었다.

    “오, 얼마든지.”

    프란 역시 환영했다.

    그는 어째서인지 미첼과 가까이 지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정말 아들이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알기로, 당신은 명계 밖을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걸로 아는데.”

    미첼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프란은 지금껏 하데스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며 약간의 자유를 얻었으니, 현재 이안이 활동 중인 슈페리어 차원 역시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었다.

    가서 아들을 찾으면 될 걸, 어째서 이런 식으로 간만 보는 걸까?

    “흐음, 그야…….”

    미첼의 질문에 프란이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턱을 매만지며 고민 한 번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게 더 재미있잖아?”

    “……재미?”

    “우리가 부자 관계이긴 한데, 평범한 부자 관계와는 여러모로 많이 다르거든. 그래서 직접적인 소통은 좀 어려워. 불신만 쌓이지.”

    “…….”

    “근데 이런 식으로 물음표를 살짝살짝 던져주면, 이게 머릿속에 남아서 맴도는 법이거든. 이런 숙성을 충분히 거친 뒤에 만나면 불신이 조금은 가라앉아. 그때부터는 대화하기가 한결 수월해지지.”

    “…….”

    “그래서 그런 거야. 그 누구보다 의심이 많고 엄격한 내 아들과 소통하는…… 노하우라고나 할까?”

    의뭉스러운 남자, 프란 페이지.

    그는 이번에도 이안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던졌다. 그 물음표가 어떻게 작용할지 고대하는 마음으로.

    * * *

    ‘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들아.’

    미첼이 이안에게 전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말에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예컨대 누가 한 말인지,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기타 등등 말이다.

    ‘여기까지 와서도 이딴 식으로 접근하네. 하여튼 정 안 가는 양반.’

    이안의 내면에 남아 있는 한 조각 파편도 그렇지만, 정이 안 간다.

    있는 정 없는 정 다 붙여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하긴, 그자가 고향 땅에서 한 일들을 돌이켜보자면…… 정이 붙는 게 더 이상하다.

    ‘다만 여기서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더는 프란 페이지 따위한테 놀아나지 않는다는 점이지.’

    노는 물이 달라졌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 버렸다.

    고작 그런 존재한테, 기껏해야 하데스의 부하 노릇이나 하는 작자한테 휘둘릴 위치가 아니란 거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만큼 초월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굴러먹은 시간이 얼만데, 겨우 당신 따위한테 놀아날까 봐?’

    우습다. 참으로 우스워.

    고개를 휘휘 저은 이안이 머릿속에서 프란 페이지가 남긴 전언을 지웠다. 설령 그가 정말 이안이 원하는 걸 알고 있다 한들 상관없다.

    ‘겨우 그 작자도 알아낸 정보를 내가 알아내지 못할 리 없잖아?’

    지금 이안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여덟 번째 과업이다.

    여타 전직 수행자들에게는 번외 과업으로 소개된 이번 과업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한다.

    아테나가 직접 나서 난이도 조절을 운운했으니, 더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겠지. 까닥하면 죽는 거다.

    어쩌면 크로노스를 되돌릴 틈도 없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후우우우……!”

    이안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아가 혼자서 독식했던 1위부터 10위까지 기여도 보상을 살폈다.

    대부분 첫 번째 번외 과업의 보상으로 받았던 제우스의 번개와 비슷한 것들이었다. 예컨대 토르의 망치라든지, 오딘의 폭풍이라든지.

    실전에서 쓸 일회성 권능이 많아지니 제법 든든한 기분도 들었다.

    [수행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약간의 변동사항이 있어 대기 시간이 길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바로 그때.

    난이도를 조절했다는 세 번째 번외 과업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총 네 차례로 예정된 번외 과업 중 세 번째 과업의 명칭은 ‘지하 던전 탈출’입니다.]

    [무시무시한 토착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시계탑 지하 던전의 탈출구를 찾아 빠져나오십시오!]

    시계탑의 지하 던전.

    프로메테우스의 기억대로면, 분명 그런 곳이 시계탑 아래 존재하기는 한다. 물론 정말 던전은 아니고, 실험용으로 붙잡아놓은 토착 괴수들의 거대한 우리라고 볼 수 있지만, 그걸 어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용도는 무궁무진할 터.

    [물론 여러분을 혈혈단신으로 괴수들에게 내몰지는 않습니다.]

    [총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지하 던전을 탈출하게 될 텐데요.]

    [본디 조원은 조장이 뽑는 형태로, 직전의 기여도에 따라 조장을 정하고 순번을 정할 계획이었습니다만, 특별한 상황이니만큼 첫 번째 번외 과업의 기여도를 기준으로 조장이 선별될 예정입니다.]

    [다른 조장을 조원으로 선택할 수 없으며, 굳이 다섯 명 정원을 채울 필요는 없으나, 혼자서 던전을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혼자서는 탈출 불가라.

    어째 새로 추가된 조항 같다.

    이안을 타깃으로 한 조항이겠지.

    [또한 던전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태는 ‘불문율’에 붙여질 예정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불문율.

    어째 의미심장한 규칙이다.

    이 번외 과업을 통해서 지배자들이 보고 싶은 장면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 가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럼 지금부터 각 조별 조장들의 조원 선택을 시작하겠습니다.]

    [1번 공격대 조장, 칼리두 와탕카, 지금부터 3분간 함께 던전 탈출에 나설 조원을 선택하십시오.]

    [3분이 초과될 경우 조원이 무작위로 선별되어 던전 내부로 이동된다는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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