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61화 (261/342)

261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5화

“오리온 님께서 여기 계시다는 건, 지금 저기 계신 사냥꾼은…….”

[네, 아르테미스 님이십니다.]

“미리 도망치길 잘했네요. 그분이면 저도 답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지금은 답이 좀 나오십니까?]

안도하는 이안에 오리온이 물었다. 그 안도가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조금은 노기 섞인 목소리였다.

“어려운 건 마찬가지죠. 그런데.”

[그런데?]

“해볼 만하다고는 생각합니다.”

[…….]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이안이 느끼기에 오리온의 힘은 헤라의 딸 헤베보다 몇 수 아래.

그 계산이 맞는다면 해볼 만하겠지만, 오리온 역시 레르니안 히드라 사냥 당시보다 강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아르테미스가 가장 아끼는 직속부하 아니던가?

[……재미있네요. 아무리 그래도 수행자한테 이렇게까지 얕보여도 되나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칼리두 님께서 평범한 수행자는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오리온 역시 지배자다.

등급으로 치면 하급에 속한다.

그런 자신을 상대로 해볼 만하다니, 수행자가 내뱉은 말치고는 굉장히 오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그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해 드리고 싶은데…….]

잠시 말꼬리를 흐린 오리온이 피식 웃으며 빳빳하게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풀었다. 그뿐만 아니라 활대까지 내리며 이안에게 읊조렸다.

[그건 일단 나중에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스팀팔로스 호수에서 사냥할 때 있었던 일, 그 일에 대한 인사라 생각해 주십시오.]

과거, 아르테미스의 사냥 과업을 수행할 때, 이안은 오리온에게 몇 가지 괴수 부속물을 양보해 줬다.

아마 그때 일을 말하는 것 같다.

그때는 그냥 별생각 없이 줬는데, 생각보다 많이 필요했나 보다.

근데 그때 뭘 줬더라? 스팀팔로스의 새가 떨어뜨린 깃털이었나?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지켜보는 눈들이 꽤 많을 텐데요.”

[그 정도 재량은 됩니다.]

그 정도 재량은 된다.

오리온의 말에 이안이 끄덕였다.

최상급 지배자까지 참전한 이상 이거저거 가릴 처지가 아니거든.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주시겠다는데 거절할 필요 없겠죠. 상황이 제법 급박하기도 하고요.”

[아, 그 상황이요. 아마 조금 기다려보시면 더 급박해질 겁니다.]

“……예? 그게 무슨.”

[아마 곧 나올 텐데…… 지금 생존자 수가 몇이죠? 천명 넘나요?]

[남은 인원 : 1,003 / 1,687]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숫자를 확인한 이안이 대답했다.

“이제 곧 떨어질 겁니다.”

[천 명 아래로 말씀이십니까?]

“네, 천 명 아래.”

[아, 슬슬 시작되겠네요. 사실 이것 때문에 겸사겸사 양보해 드린 부분도 있습니다. 어차피 시간 내로 승부를 내긴 글러 보여서요.]

“……?”

무슨 소리일까?

도대체 뭐가 시작된다는 거야?

궁금증을 느낀 이안이 다시 한번 무슨 소리냐 되물으려는 그때.

[남은 인원 : 998 / 1,687]

[벌써 수백 명이 넘는 수행자 여러분께서 명계의 망자로 전락했습니다. 훌륭한 사냥 성과에 사냥꾼들이 만족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사냥꾼들이 휴식을 취한다.

잠시 사냥을 멈춘다는 뜻.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나 수행자 여러분은 여전히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다음 번외 과업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휴식 중인 사냥꾼을 모두 꺾거나, 절반만 생존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절대로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없으며, 사냥꾼들 역시 오랫동안 쉬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냥꾼이 사냥을 멈췄을지언정.

첫 번째 번외 과업은 계속된다.

인원이 반으로 줄거나, 사냥꾼 모두가 역으로 사냥당하기 전까지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사냥꾼의 활동 재개가 30분 남았습니다. 지금부터 수행자 여러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계속 도망치든, 맞서 싸우든, 다른 방법을 실행하든, 전부 자유입니다.]

30분간의 여유가 주어졌다.

도망치든, 싸우든, 다른 방법을 실행하든, 그 무얼 하든 자유란다.

하나 이안은 그 안내말 속에서 뼈를 느꼈다. 정확히는 맨 마지막.

다른 방법을 실행하라는 부분에서 느낌이 확 왔다. 이거, 서로 죽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인원수를 낮춰도 문제없다는 뜻이리라.

[또한 첫 번째 번외 과업의 완수 기여도가 높은 수행자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이 보상은 여러분께서 나머지 번외 과업을 완수하고 살아남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될 보상이오니, 모쪼록 참고하여 활동하시기 바랍니다.]

쐐기가 박혔다.

완수 기여도가 높은 수행자들한테는 어떤 보상까지 주어진단다.

여기서 말하는 완수 기여도란 너무나도 빤하다. 사냥꾼을 쓰러뜨리는데 공로를 세웠거나, 혹은…….

‘……인원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쉽게 말해서 동족을 많이 죽인 수행자가 되겠지.’

이안이 안내말 속에 숨겨져 있는 ‘뼈’를 모조리 파악하는 그 순간.

[남은 인원 : 997 / 1,687]

생존자 수가 새롭게 갱신되었다.

더도 말고 1명이 줄어든 997명.

사냥꾼은 분명 휴식 중일 터.

오리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챙겨온 물과 육포를 먹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눈치 빠른 누군가가 동족을.

같은 전직 수행자를 죽였다는 뜻.

[남은 인원 : 985 / 1,687]

그것은 곧 신호탄이 되었다.

더는 사냥꾼과 사슴이 아닌, 사슴과 사슴의 싸움이 되는 신호탄이.

[남은 인원 : 974 / 1,687]

[남은 인원 : 969 / 1,687]

[남은 인원 : 953 / 1,687]

[남은 인원 : 931 / 1,687]

[남은 인원 : 910 / 1,687]

빠르게 줄어드는 생존자들.

기여도가 높은 수행자한테 보상을 준다는 말에, 그리고 그 보상이 앞으로 남은 번외 과업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말에 그들은 카르텔이고 뭐고, 동족이고 뭐고, 다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

광란의 숲.

생존을 위한 사슴들의 동족상잔.

이 번외 과업을 아테나가 구상했다던가? 역시, 최상급 지배자 중에는 정상이 없다. 전부 나사 하나씩 빠져있는 미치광이가 틀림없을 터.

“……오리온 님.”

[말씀하세요.]

“오리온 님도 이 상황이 그저 여흥 거리로밖에 보이지 않으십니까?”

비꼬는 것이 아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다.

지배자란 족속들은 이런 일을 벌일 때마다 여흥이니 어쩌니 하는데, 정말 여기서 재미가 느껴지나?

[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사냥꾼 노릇도 시키니까 하지, 솔직히 좀 귀찮거든요.]

뜻밖의 대답이다.

재미도 없고, 귀찮단다.

그리 말한 오리온이 입에 문 육포를 질겅거리며 계속 읊조렸다.

[칼리두 님도 아시겠지만, 우리 지배자들도 다 다릅니다. 저나 칼리두 님처럼 과업을 수행하고 올라온 지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냥 태어나고 보니 자연스레 그만한 격을 타고난 지배자들도 있죠.]

12과업을 통해서 꾸역꾸역 올라오는 지배자들이 있고, 헤베처럼 좋은 혈통 덕에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의 격을 갖춘 이들도 있다.

거기까지는 알겠다만, 오리온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우리 같은 밑바닥 출신들이 이런 여흥을 즐길 시간이나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계속 지배자의 격을 유지하기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궁리하기도 바쁜데.]

“…….”

[하지만 처음부터 고결하게 태어나신 분들, 예를 들어서 우리 올림포스 전당에는 최상급 지배자가 열두 분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모두 강력한 격을 갖고 태어나신, 우리하고는 격이 다른 분들이시죠.]

“…….”

[그런 분들한테 이 세상은…… 너무 쉽습니다. 쉬우면 따분하고, 재미가 없어지는 법이죠. 그러니 그런 여흥 거리를 찾아 헤매는 겁니다. 심심해 죽을 것 같으니까요.]

“…….”

[말이 조금 길어졌는데, 결론은 별로 재미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걸 즐기시는 분들은 저희하고 상황이 제법 다르다,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대충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오리온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전히 공감할 순 없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다.

‘미치광이들인 것은 변함없다만.’

그래도 오리온의 진심 어린 답변 덕분에 더더욱 확신이 생겼다.

역시 시계탑의 지배자란 놈들, 그중에서도 꼭대기에 앉아 있는 놈들은 위험하다. 언젠가 반드시 쓸어버려야 할, 가능하다면 몰살시키는 것만이 고향을 지킬 방법이리라.

‘강해져야 한다. 그 전부를 몰살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해.’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멈추지 않고 과업을 완수해야만 할 터.

확신을 품은 이안이 물었다.

“그럼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곤란하면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씀해 보세요. 어차피 쉬는 시간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들어보죠.]

“제가 수행자들을 죽여서 기여도를 올리면, 해서 그 보상이라는 것을 받으면, 얼마나 유리해집니까?”

[오, 진짜 곤란한 질문이네요?]

오리온이 턱을 매만졌다.

설마 이런 걸 물어볼 줄이야.

그러나 가만히 곱씹어보니 그렇게 곤란하지도 않았다. 보상을 아는 것과 보상을 받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오히려 이걸 알려줘서 의욕을 불태운다면 이를 지켜보는 지배자들도 만족하지 않을까?

[뭐, 그래도 답을 조금 해드리자면…… 자세히 알려 드릴 순 없습니다. 근데, 도움은 확실히 될 거예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렇군요.”

도움은 확실히 된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더 쉬고 계십시오.”

[벌써 가십니까?]

“가야죠. 도움이 된다는데.”

[조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전직 수행자 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배자의 문턱에서 고꾸라진 강자들도 상당히 많으니까요.]

“조언 고맙습니다. 그럼.”

* * *

[남은 인원 : 687 / 1,687]

[첫 번째 번외 과업 종료.]

[목표 인원이 초과 달성되었습니다. 기여도 정산을 시작합니다.]

고작 한 시간.

첫 번째 번외 과업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만에 모든 것이 끝났다.

인원은 절반보다 한참 아래까지 떨어졌으며, 그럼에도 시계탑의 지배자들은 과업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절반이 아닌 1/3가량이 죽어 나뒹굴고 나서야 과업 종료가 선언되었으니, 남은 인원은 이제 고작 687명, 죽은 이들의 머릿수는 정확히 1,000명에 달하였다.

[기여도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기여도 순위는 상위 10인만 공개되며, 보상 역시 상위 10인에게만 차등 지급될 예정입니다.]

[순위 공개를 시작합니다.]

10위까지 보상을 준다.

그 말에 수행자 대다수는 아쉬움을 느꼈으나, 1위면 몰라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은 이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그들은 이 잔혹한 생존 게임에 익숙해졌다. 동족을 죽였다는 죄책감 따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동족의 피로 흥건한 몸뚱이와 의복, 그리고 무기들이 그 증거였다.

[10위 : 카날레우스]

[9위 : 오르비스 칼튼]

[8위 : 율리우스 포세]

10위부터 순위가 발표되는 가운데 7위, 6위, 5위, 4위에도 이안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행자 중 누구보다 피로 흥건한 이가 바로 ‘현역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였으니까.

[3위 : 유다 이스카리옷]

[2위 : 올리비우드]

[1위 : 칼리두 와탕카]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수행자 여러분의 활약에 찬사를 보냅니다!]

[약속대로 상위 10인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질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두 번째 번외 과업은 지금부터 정확히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오니, 준비들 하시기 바랍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