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4화
자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번외 과업이라니, 심지어 이런 생존 게임의 형태일 줄이야.
하지만 그 당혹감도 잠시일 뿐.
무려 여섯 개의 과업을 완수한 상태로 슈페리언 사회에 나온 ‘유다’한테 이런 상황은 곧 기회였다.
포화 상태에 이른 전직 수행자 카르텔의 인원을 정리할 수 있는.
그리하여 자신한테 돌아올 권력과 제물의 비율을 높이는 건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정적들까지 제거할 찬스 말이다.
‘분명 그런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잘못되었다.
그도 그럴 게, 설마 시작부터 최상급 지배자가 나설 줄은 몰랐다.
물론 일이 잘못될 경우 혼자 도망치는 것까지가 계획의 일부였으니, 유다로서 실패는 아니다.
‘원래 천한 것들하고는 겸상도 하지 않는 족속들이 어째서…… 아!’
그렇다.
이건 겸상이 아니다.
사냥, 아니, 박멸에 가깝다.
건수 하나 제대로 잡아서 눈엣가시 같았던 천것들을 박멸할 기회!
이러니 직접 나서는 것이다.
남을 발로 짓밟는 것만큼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이 또 없을 테니까.
‘……비록 약간의 판단 미스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상황이 나쁜 건 아니야. 왜냐? 내가 살아남았으니까. 죽지만 않으면 기회는 있다.’
유다는 과거 여섯 번의 과업을 완수했던 우수한 수행자 출신이다.
제아무리 상대가 최상급 지배자라고 할지언정, 다른 사냥감이 차고 넘치는 이상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버티는 건 일도 아니리라.
‘문제는 바로 다음부터인데, 인원수가 너무 줄어들면 나를 대신해서 죽어줄 놈도 줄어들 테니…….’
그래서였다.
다 함께 싸우자고 선동했던 까닭.
너무 많이 죽으면, 그만큼 소모품처럼 내던질 희생양도 줄어들거든.
‘아쉽긴 하지만, 별수 없지. 아르테미스가 직접 나선 이상 절반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유다가 계속 달렸다.
더는 아르테미스의 화살이 내뿜는 폭발 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후욱! 후욱! 후욱……!”
이만 하면 꽤 멀어졌다.
슬슬 상황을 살피는 편이 좋다.
철저히 혼자서, 수행자들이 몰리지 않는 곳을 위주로 다녀야 한다.
사냥꾼은 언제나 사냥감이 몰려 있는 곳 근처에 숨어있는 법이니.
‘그렇다면 역시 아르테미스가 나타났던 방향 쪽으로 우회해서…….’
유다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안전한 이동 경로를 가늠하는 그때였다.
“유다 님!”
“……?”
누군가 유다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도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 폴트 님이셨군요.”
전직 수행자 카르텔 내에서 딱히 눈에 띄지 않는 남자다. 기껏해야 과업 한두 개 완수하고 온 수준.
가만, 그런데 무슨 수로 여기에 있는 거지? 자신은 분명 누구보다 먼저 전속력으로 도망쳤을 텐데?
“갑자기 아르테미스라니요? 진짜 큰일 치르는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제 능력 아니었으면 거기서 꼼짝없이 명계로 떨어질 뻔했고요.”
아, 이제야 생각난다.
이 폴트라는 전직 수행자.
다른 건 몰라도 달리기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켄타우로스 일족의 피를 절반 물려받은 덕택이었다.
“……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계속 남아서 끝까지 책임졌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최상급 지배자의 힘이 너무 강하더군요.”
“암요, 이해합니다.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같은 최상급 지배자가 아닌 이상 힘들 일이죠. 하하.”
폴트가 제 시퍼런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듣기 좋은 말만 내뱉었다.
아무래도 이 남자, 유다 자신과 함께 움직이고 싶은 모양이다.
총 여섯 번의 과업을 통과한 유다라면 전직 수행자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였으니, 당분간 함께 다녀서 나쁠 거 없겠거니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물론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대신 죽어줄 희생양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달리기가 빨라 상황을 살필 척후병으로 써먹기 용이하다.
문제는 ‘격’이 너무 낮다는 거다.
1회 과업 통과자의 낮은 격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된다.
대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간단하다. 너무 잘 보인다.
‘최상급 지배자의 감지능력에.’
최상급 지배자가 사냥꾼이 되어 모두를 쫓고 있는 이상, 그야말로 모든 장점을 상쇄하는 약점일 터.
그러니 함께 다닐 수 없다.
오히려 멀어져야 한다.
가능하면 지금 당장.
“저기, 유다 님.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저랑 함께…….”
“폴트 님.”
“……아, 네. 말씀하세요.”
“혹시 가족들 있으십니까?”
“에이, 그럴 리가요. 가족 같은 거 만들어 봐야 귀찮기만 하고…….”
“부모님은?”
“모릅니다. 태어났을 때 버려졌거든요. 만약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지 못했다면 버려지자마자 죽었을 텐데, 다행히 물려받아가지고…….”
“그렇군요.”
폴트의 대답에 유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얼굴도 잊지 않았다.
문제는 그의 손이었다. 단검을 쥔 왼쪽 손아귀가 웃고 있는 얼굴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줬으니…….
“잘 알겠습니다. 그럼.”
푸욱!
단숨에 폴트의 옆 목을 찌른 유다가 웃음기 빠진 얼굴로 말했다.
“커, 커허……!”
“어차피 죽을 거 방해하지 말고 가십시오. 나가서 따로 챙겨줄 가족은 없다고 하시니, 나중에 기회 되면 기도라도 한번 해드리겠습니다.”
“이…… 이 미친 새……!”
철퍼덕!
함께 있으면 방해만 된다.
위치가 노출될 확률도 올라간다.
살려두면 계속 따라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냥 죽여 없애야지.
유다의 사상 안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처사였고, 흐름이었다.
‘곧 피 냄새가 진동하겠군. 바로 움직이자. 여기 있다간 들켜.’
폴트의 옷자락으로 단검에 묻은 피를 슥 닦아낸 유다가 부지런히 일대로부터 벗어나려는 순간.
“……당신?”
또다시 수행자와 마주쳤다.
한데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르다.
덩치는 아까 그 일찌감치 도망쳤던 현역 수행자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컸는데, 놈과 달리 거적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누구일까?
“이봐요. 얼굴은 보여주셔야 아군인지 적인지 파악할 거 아닙니까?”
“…….”
유다의 말에 정체불명의 수행자가 의외로 순순히 거적을 내렸다.
문제는 여전히 초면이라는 점.
참고로 유다가 얼굴을 외우지 못한 전직 수행자는 거의 없다.
‘내가 모른다는 건 별거 아닌 삼류 쓰레기거나, 아니면 아까 그놈처럼 현역 수행자라는 뜻인데.’
전자면 폴트처럼 죽이면 그만이나, 후자면 파악부터 해봐야 한다.
과업 완수 횟수라든지, 갖고 있는 능력이라든지, 어쩌면 요긴하게 써먹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거든.
“흐음, 아무래도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혹 그쪽도 현역이신가요?”
“…….”
“상황이 상황 아닙니까? 서로 도울 거 있으면 돕고, 그런 거 없으면 쿨하게 서로 갈 길 갑시다.”
바로 옆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음에도, 심지어 자신이 죽였고, 그 모습을 상대가 다 보았음에도, 유다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적이든, 아군이든, 제3의 무엇이든, 일단 마주하면 웃어라, 그래야 그 상대방한테 혼란을 줄 수 있다.
유다가 지난 수백 년간 지침처럼 품고 다니는 누군가의 격언이었다.
* * *
[오, 벌써 시작했나?]
한편.
시계탑 대회의장에 설치된 초대형 수정구로 번외 과업을 지켜보는 관객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각각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두 거대 전당의 고위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최상급 지배자 무리였다.
[하데스 님. 늦으셨네요.]
[오랜만에 보는군. 로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항상 똑같지. 매일매일 죽어서 명계로 내려오는 망자들 관리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거든. 가만있자,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흐음, 글쎄요. 하도 오랜만에 뵈어서 기억이 잘…… 못해도 오백 년은 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한동안 못 본 게 오백 년.
기본이 백 년 단위를 넘는다.
사실상 영생을 사는 이들의 대화 속 시간개념이란 이런 느낌이리라.
[오백 년이면 꽤 되었는데, 어째 자네는 볼 때마다 친숙하군. 바로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말이야.]
[신기하네요. 저도 하데스 님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어딘가 친숙하고, 자주 보는 사이 같고, 이쯤 되면 뭔가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요? 강력한 유대감, 같은 지배자로서 동질감, 뭐 그런 거요.]
[글쎄, 뭐 그건 그런 걸로 치도록 하고, 요즘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런 거 구경할 시간은 있나 보군.]
[음? 제가 말입니까?]
[아닌가?]
[아니죠. 바쁠 리가요. 이 시계탑에 저 같은 한량이 또 어디 있다고요? 하하, 굳이 따지면 이래저래 놀러 다니느라 바쁘긴 했네요.]
두 지배자는 변장 주술에 관한 문제로 얽혀 있는 사이 아니던가?
그래서 한 번 슬쩍 떠봤건만, 미꾸라지처럼 넘어가는 로키였다.
[내가 다른 사람 얘기를 잘못 들었나 보군. 노는 게 썩 지겨워지거든 명계나 한번 놀러와.]
[죽어서 오라는 뜻은 아니시죠?]
[하하, 그럴 리가. 비프로스트 타고 놀러 오라고.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니까.]
그렇게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몇 마디 더 섞었던 하데스가 수정구 속 번외 과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르테미스의 활에 수없이 많은 전직 수행자들이 죽어나가고 있었으니, 누군가의 말마따나 입이 귀에 걸리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기 바빴다.
‘대충 1,600명 정도였던가? 그중에는 꽤 높은 격을 갖춘 수행자 출신들이 꽤 있으니…… 이거 정말 노 났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안 페이지, 그놈까지 죽어서 명계로 떨어진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아무래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만, 설령 일어나더라도 그 직전에 크로노스를 되감을 것 같다만, 세상일 모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저 녀석은…… 하도 사정을 해서 어떻게든 욱여넣긴 했는데, 제대로 버틸 수나 있으려나?’
번외 과업을 송출 중인 초대형 수정구에는 한 장면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다각적으로, 아르테미스와 수행자들, 그리고 제3의 시점 등으로 다채로운 시점을 송출하고 있었는데, 하데스의 시선은 아까부터 어떤 거적으로 얼굴을 감춘 수행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 * *
[남은 인원 : 1,384 / 1,687]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생존자들.
이미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이안이 계속 나아갔다.
그럼에도 폭발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예상했던 것처럼 엄청난 힘을 가진 사냥꾼이 나타난 것 같았다.
[남은 인원 : 1,296 / 1,687]
[남은 인원 : 1,201 / 1,687]
[남은 인원 : 1,088 / 1,687]
실시간으로 빠르게 줄어들어 가는 머릿수에 이거 잘하면 금방 끝나겠구나 싶을 때쯤, 드디어 숫자 줄어드는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모두 도망을 친 건지, 사냥꾼 쪽에서 여유를 준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든 번외 과업이 시작되자마자 600명가량의 전직 수행자들이 명계로 떨어진 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전직 수행자면 최소 한두 개 이상의 과업을 수행했다는 뜻인데, 이런 페이스면 정말 최상급 지배자라도 나타난 건가?’
가만, 사냥꾼과 사슴이라?
갑자기 떠오르는 지배자가 있다.
이안에게는 나쁘지 않았던 지배자인데, 그 여인이 나섰다면 이 무자비한 속도, 납득할 수 있으리라.
‘만약 정말 그녀가 사냥꾼으로 나섰다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절반이 사냥당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아테나는 분명 이 번외 과업을 여흥거리로 만들겠노라 공언했다.
그 말인즉, 대다수 최상급 지배자들이 이 과업을 지켜보고 있을 터.
그러니 헤베를 단숨에 기절시켰던 악마의 힘은 숨길 필요가 있다.
‘애초에 좀 꺼림칙한 힘이기도 하고, 어지간하면 쓰지 않아야겠어.’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힘이다.
좀 더 나중에, 통제가 가능해진다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영 별로다.
‘차라리 크로노스를 되감고 말지.’
그리 생각한 이안이 멈추지 않고 울창한 숲을 배회했다.
마법으로 모든 감각을 끌어올려 사냥꾼의 기척과 가장 먼 지점만 골라서 움직이는 중이었으니, 아마 변수가 없다면 여기서 죽진 않으리라.
“……아?”
분명 그렇게 믿었다.
솔직히 쉽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번외 과업에 투입된 사냥꾼이 여러 명이란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하물며 그 사냥꾼 무리 중 한 명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또 뵙네요. 칼리두 님.]
아르테미스의 직속 부하 오리온.
그 잘생긴 청년이 이안 앞에서 레르니안 히드라의 힘줄로 만든 활시위를 빳빳하게 당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