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59화 (259/342)
  • 259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3화

    바로 그 순간.

    시계탑 앞에 모인 수행자들은 비로소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지배자의 격을 갖춘 존재, 하물며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갖춘 존재가 지닌 힘을,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벌레처럼 죽일 힘을.

    그도 그럴 게, 조금 전 창날 끝에 이마가 꿰뚫려 죽은 전직 수행자는 무려 여섯 번째 과업을 완수했던, 전직 수행자 카르텔 내에서도 실력자로 손꼽히는 이가 아닌가?

    한데 그런 실력자가 단 한 번의 저항조차 없이 명계로 떨어졌다.

    지배자란 그런 존재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자신들을 벌레처럼 죽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 어쩌면 일생일대의 위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명백하다.

    ‘그러고 보니 하데스, 아마 지금쯤이면 입이 귀에 걸려 있겠는데?’

    물론 그 위기가 모두에게 위기는 아니다. 누군가한테는 엄청난 이득이며 기회일 수도 있는데, 이안이 생각하기에는 하데스가 딱 그랬다.

    ‘어쩌면 이 상황 자체를 하데스가 의도했을지도 몰라. 평의회에서도 상당한 입지를 구축했을 테니.’

    가능성 높다.

    심지어 전직 수행자들이 슈페리언 사회에서 왕 노릇을 시작한 것부터 하데스의 설계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도 남을 존재 아닌가?

    ‘고생해서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건, 특히 하데스 좋은 일 시켜주는 건 썩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당장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언제쯤 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지배자의 격을 얻는다면?

    격을 얻고도 계속 나아가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에 오른다면?

    그것도 아니면…….

    [아,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사항을 빼먹었군. 이걸 들었다면 방금 그놈도 죽지 않았을 텐데. 말을 아꼈을 테니. 음, 아쉽게 되었어.]

    생각이 어느 지점에 닿는 순간.

    아테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평의회의 또 다른 결론은 이러하다. 강제성을 띤 번외 과업이니만큼 그 보상 역시 통 크게 주자.]

    보상.

    그것도 통 큰 보상.

    아테나의 언급에 수행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굉장히 오묘한,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마지막 번외 과업까지 통과하는 이들에게는 사망자들의 격을 균등하게 나누어 몰아주기로 결정되었다. 쉽게 말해서, 마지막에 혼자 남는 것이 가장 이득이라는 거지.]

    여기 모인 전직 수행자들의 머릿수만 수천 명이다. 정확히 1,687명.

    그러니 혼자 살아남는다면 1,686명의 격을 독식한다는 뜻이 된다.

    이들은 모두 최소 한 번 이상의 과업을 완수했던 수행자 출신이니만큼 그 격의 총량이 상당할 터.

    [그만한 격이면 선택지가 많아질 것이다. 다시 수행자로 돌아와 끝까지 과업을 완수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겠고, 계속 적당한 선에서 왕 노릇을 할 수도 있겠지. 앞서 말했듯 적당한 선만 지킨다면 우리도 터치할 생각은 없어.]

    물론 누구도 믿지 않았다.

    이미 된통 당하는 중 아닌가?

    실로 갑작스러운 ‘터치’를 말이다.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불신할 수밖에.

    [눈빛들이 좋아졌군. 역시 뭔가 걸려야 의욕이 솟는 법이라니까?]

    한결 달라진 공기에 아테나가 만족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녀는 이 게임, 번외 과업에 굉장한 기대를 품고 있는 모양이다.

    [자아! 그럼 다들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슬슬 첫 번째 번외 과업 경기장으로 이동들 해보자고.]

    번외 과업 경기장으로 이동하자는 아테나의 한마디와 더불어 시계탑 앞에 모인 전직 수행자 수천 명이 강제로 순간이동을 당했다.

    ‘……여긴?’

    순식간에 눈앞 풍경이 바뀌었다.

    더는 시계탑 앞이 아닌,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광활하고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였다.

    [약 10분 후부터 첫 번째 번외 과업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어디 그뿐일까?

    마치 마나 수정구를 통한 편지처럼 수행자들의 눈앞 허공에 새파란 글귀가 수놓아졌으니, 그 내용을 따르면 첫 번째 번외 과업은 약 10분 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첫 번째 번외 과업은 ‘사슴과 사냥꾼’입니다. 사슴에 지나지 않은 여러분을 사냥하고자 특별히 초청된 사냥꾼이 숲을 배회할 예정이오니, 사슴 여러분께서는 부디 전력을 다하여 살아남으십시오.]

    이 숲에 사냥꾼이 배회한다.

    그 사냥꾼을 피하든, 숨든, 도망치든, 맞서 싸우든, 표현 그대로 ‘전력’을 다하여 살아남도록 하라.

    [참가 인원의 숫자가 절반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사냥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오나, 사냥꾼이 사망하거나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경우 모든 생존자의 두 번째 번외 과업 진출이 확정됩니다.]

    참가 인원의 절반.

    즉 1,687명이 843명 아래로 떨어지거나, 수행자 전원이 합심하여 사냥꾼을 무찔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안의 직감에 후자는 어려울 것 같았다.

    어째서냐 하면…….

    ‘그렇게 쉬운 사냥꾼이 투입될 것 같지 않거든. 낙오자들의 머릿수를 줄이는 게 첫 번째 목적이니까.’

    강력한 사냥꾼이 투입된다.

    1,687명의 수행자가 합심해도 쉽게 꺾지 못할 만큼 강력한 사냥꾼이.

    그리된다면, 1,687명의 수행자들은 너도나도 도망치기 바빠질 터.

    ‘그편이 아테나가 말했던 훌륭한 여흥 거리에 훨씬 더 가까울 테고.’

    절반의 사망, 절반의 생존.

    이안은 그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적당히 숨으면 어렵지는 않으리라.

    [남은 시간 9분 31초. 전원 사냥꾼의 추적에 대비하십시오. 지금부터 자유롭게 도망쳐도 좋습니다.]

    미리 도망쳐도 좋다는 메시지가 수행자 1,687인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앞장서 도망치는 이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카르텔을 형성 중이다.

    결정권자가 존재한다는 뜻.

    “……다들 도망치고 싶으신 거 잘 압니다. 그래도 잠깐만 제 말에 주목해 주십시오. 1분이면 됩니다.”

    역시.

    저 남자가 카르텔의 꼭대기.

    즉 이들 모두의 결정권자일 터.

    “먼저 우리한테는 거부권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배자분들께서는 우리의 머릿수가 줄어들길 바라시고, 저희는 그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니까요. 조금 억울하긴 한데,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청산유수처럼 쏟아지는 목소리.

    듣기 좋은 톤, 신뢰 가는 말투.

    괜히 카르텔의 정점이 아니리라.

    “그런데, 아무리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극소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판이라지만, 시작부터 절반이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하.

    이 남자는 아무래도 전투를.

    모두가 합심하여 사냥꾼을 물리치는 쪽으로 갈피를 정했나 보다.

    “가능하면 최대한 많이 살아남아야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번외 과업이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만, 분명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요. 반드시요.”

    앞으로 또 어떤 번외 과업을 줄지 모른다. 그러니 시작부터 아까운 목숨 절반을 버리지 말자.

    “힘을 합쳐봅시다. 우리도 보통은 아니잖아요? 다들 과업 한두 개는 기본으로 수행하신 분들이니, 아마 어지간해서는 우리를 상대로 쉽지 않을 겁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수행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지배자의 격을 갖춘 이들이 특별해서 그렇지, 자신들 또한 슈페리언 사회에서 보기 드문 강자들 아닌가?

    수치로 치면 상위 0.5퍼센트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리라.

    “다들 갑작스러우시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신중해야 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죠. 명계보다는. 그러니 생존을 최우선으로 둡시다.”

    제법 일리가 있는 연설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게, 힘과 지혜를 합하여 나아가는 편이 옳다.

    이안 역시 그랬을 거다. 이들이 고향 땅의 백성들이었다면 말이다.

    ‘내 고향 사람들이면 몰라도, 이들을 위해 목숨 걸 필요는 없지.’

    판단은 끝났다.

    이안이 말문을 이어가려는 카르텔의 우두머리에게 손들며 말했다.

    “저기.”

    “아, 말씀하십시오.”

    “1분 지났습니다.”

    “……예?”

    “한참 전에요.”

    “…….”

    “먼저 가도 되겠습니까? 여기 계속 가만히 있기 조금 겁나서요.”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은…….”

    “들었습니다. 약간 공감하긴 했는데, 그래도 저는 도망치렵니다.”

    “…….”

    순간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어딘가 굉장히 싸한 그런 눈빛.

    물론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웃음기를 되찾은 남자가 대꾸했다.

    “개인의 선택까지 통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모쪼록 살아남으시길 바라지요. 헌데, 우리 초면인가요?”

    “그럴 겁니다. 저는 따지자면 현역이거든요. 재수 없게 똑같은 수행자로 묶여서 끌려온 케이스죠.”

    “아아, 그러셨군요. 어쩐지 처음 뵙는 분이시다 했습니다. 으음, 아쉽네요. 뜻을 함께하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현역분들 실전 감각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보니…….”

    “그 실전 감각이 말해주더군요.”

    “네? 무슨…….”

    “빨리 도망치라고.”

    “…….”

    “그럼 이만.”

    쌩.

    그야말로 쌩하니 도망쳐 버린다.

    현역 수행자라는 저 조그마한 남자,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른다.

    “쯧쯧……! 현역이라는 놈이 저리 패기가 없어서야. 보나 마나 과업 하나 운 좋게 통과한 놈이겠지.”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는데도 내빼는 꼴이라니. 도망치다가 제일 먼저 뒈져버리는 건 아닐까 몰라.”

    “그거 가능성 있네. 원래 겁 많은 놈들이 제일 먼저 죽는 법이거든.”

    그 모습에 수행자들이 너도나도 웅성거렸다. 대부분 도망친 현역 수행자를 욕하는 분위기였다.

    “……자자, 너무들 그러지는 마시고요. 다 개인의 선택이니까요.”

    그럼에도 전직 수행자 카르텔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유다’는 그 욕설 행렬에 전혀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우리는 여기서 대열을 갖추고 기다리죠. 아마 그 사냥꾼이란 존재도 우리의 역공에 당황할 겁니다.”

    카르텔의 정점 유다의 명령에 전직 수행자들이 전투대열을 갖췄다.

    그래도 왕년에 한가락 했던 자들이라서 그럴까?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이쯤 되면 정말 사냥꾼을 이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빈틈없는 대열이었으니까.

    [첫 번째 번외 과업이 16초 남았습니다. 이후 사냥꾼이 숲을 누빕니다. 표적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준비하세요! 싸우든, 도망치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0초, 9초, 8초, 7초, 6초.]

    수행자들이 무기를 움켜잡았다.

    무기를 챙겨오라는 지침이 있었기에 맨손인 자는 보이지 않았다.

    [5초, 4초, 3초, 2초, 1초……!]

    드디어 시작된 번외 과업.

    그 첫 번째 경기 ‘사슴과 사냥꾼’이 화려한 서막을 올리는 순간.

    콰아아아앙 - !

    멀리서 날아온 거대한 무언가.

    저게 화살인지 투창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투사체가 수행자들의 대열 일부를 박살 내버렸다.

    [애처로운 사슴들이여!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치세요! 시작부터 다 죽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연이어 들려오는 사냥꾼의 음성.

    그 목소리에 수행자 중 대부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거든.

    “서, 서, 서, 설마……?”

    “아, 아르…… 테미스 님……?”

    고결함의 지배자 아르테미스.

    첫 번째 번외 과업에 투입된 사냥꾼은 다름 아닌 바로 그녀였다.

    [생존 인원 : 1,531 / 1,687]

    더불어 고작 한 대의 화살이 156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이것이 마음 굳게 먹고 나선 최상급 지배자의 진정한 ‘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