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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58화 (25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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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2화

    제아무리 자기네들 멋대로 정했다고는 하나, 이건 좀 과하다 싶다.

    아니면 그냥 만물의 지배자라고 하든가, 뭘 저리 거창하게 늘어놔?

    ‘알면 알수록 화가 난다니까? 고작 이런 놈들한테 내 고향 땅 전체가 유린당했다는 사실이.’

    이쯤 되니 모멸감마저 느껴진다.

    대다수 지배자는 그저 강력한 힘을 가졌을 뿐, 절대로 신적인 존재거나 신에 가까운 이들이 아니다.

    신의 기준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안의 기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

    ‘신의 기본은 전지전능, 하지만 이놈들은 전능하지 않아. 기본적으로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잖아?’

    혹시 이들보다 더 강력한 존재들.

    눈먼 아버지를 필두로 한 혼돈의 전당 지배자들은 뭔가 좀 다를까?

    ‘글쎄, 그것도 장담하기 어렵네.’

    물론 이안 입장에서, 그리고 이런 족속들한테 유린을 당하는 중간계 입장에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완벽하지 않으니까, 전능하지 않으니까 꿈틀거리기라도 해보는 거다. 바로 작금의 이안처럼 말이다.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계속 지금처럼만 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결의를 다진 이안이 계속해서 이런저런 잡다한 분야의 지배자, 아테나가 깃든 석상을 올려다봤다.

    [수행자의 화려한 영웅담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내가 또 이 세상 모든 영웅들의 지배자이다 보니…… 아, 이건 이미 말을 했던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랬군. 이해를 좀 해다오. 내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가 많아서 말이야. 종종 헷갈리더라고.]

    “그만큼 다재다능하시다는 뜻이겠지요. 그 많은 분야를 어찌 다 관리하시는지, 이건 이해가 아니라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으음……!]

    물론 속으로 하는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을 술술 뱉는 이안이었다.

    아부를 좋아한다는, 그중에서도 인정받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하데스의 조언이 제대로 먹혔다.

    [말을 참 예쁘게도 하는군.]

    이런 거, 듣기 좋은 말과 아부를 하는 거, 이안은 이미 익숙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깟 아부 따위, 얼마든 해줄 수 있다.

    아마 지금쯤 입이 귀에 걸렸겠지.

    굳이 석상 너머 진짜 얼굴을 볼 필요도 없다. 반응만 봐도 알거든.

    [그래서 더 아쉽구나. 오랜만에 보기 드문 수행자를 만났는데, 하필이면 내가 악역을 맡았으니 원.]

    악역?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

    [그래도 내 독단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좋겠군. 나야 평의회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고, 워낙 할 줄 아는 게 많아서 특별히 총괄 책임자로 임명되었을 뿐이니…….]

    “어떤 결정을 말씀하시는지요?”

    [아아, 그러고 보니 수행자는 아직 평의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전달받지 못하였겠구나.]

    “결정된 사안이라 하시면?”

    [이번이 몇 번째 과업이지?]

    “여덟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여덟 번째 과업의 내용이 되겠네. 음, 딱히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어차피 과업이라는 게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니…… 그렇게 나쁜 소식도 아니긴 할 것이다. 그대는 현재에 안주하고 눌러앉은 낙오자들과 다르지 않나?]

    현재에 안주하고 눌러앉은 낙오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안은 여태껏 습득한 기억과 정보 덕분에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수행자라고 해서 모두 12과업을 끝까지 수행하거나 도중에 죽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런 이들보다 적당히 타협하여 과업을 멈춘 뒤 그때까지 끌어올린 격으로 슈페리언 사회에서 상류층의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던데, 이는 아프로디테가 이안에게 권유했던 삶이기도 했다.

    “글쎄요. 그렇게 많이 다를까요?”

    [달라야 할 것이다. 이번에 평의회로부터 새롭게 의결된 사안이 그 낙오자들을 청소하는 일이니까.]

    “……?”

    그들을 청소한다고?

    설마 학살이라도 벌일 셈인가?

    학살에 동참하는 것이 과업이고?

    [본디 이 땅의 모든 이는 오직 시계탑만을 섬겨야 마땅하다. 그 진리는 이 땅이 슈페리어라는 이름과 함께 새로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온 근본이지.]

    뭐, 이해 못 할 말도 아니다.

    어느 세상, 어느 국가, 어느 왕조나 비슷한 논리를 펼치고 있잖아?

    [헌데 고작 과업 몇 개 수행한 낙오자들 따위가 슈페리어의 심장 이곳저곳에서 같잖은 황제 노릇을 일삼는다더군. 물론 처음에야 그러려니 했지. 과업 수행의 대가로 안락한 삶을 살겠다는데, 남들보다 조금 더 대접받으며 살고 싶다는데, 그걸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자들.”

    [그래, 아주 많지. 어느 정도 묵인하기도 했고. 문제는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는 것이다. 선을 넘었다는 뜻이야.]

    선을 넘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시계탑의 지배자들은 오직 시계탑 안에서 자기네들끼리의 권력과 알력다툼, 여흥 따위에 몰두한다.

    그러나 적당한 ‘격’을 얻은 채 슈페리언 사회로 스며든 수행자들은 그 힘을 앞세워 실질적인 지배계층으로 군림하기 시작했을 터.

    결국 평범한 슈페리언들은 마주칠 기회조차 없는 시계탑의 지배자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행자들을 더욱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율법과 질서의 지배자로서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할 의무가 있다. 해서 이번 대청소의 책임자로 임명된 것이고.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양측 전당이 모인 평의회의 만장일치로 말이야.]

    대청소.

    과연 단순한 학살일까?

    아니면 좀 더 인도적인 방법을?

    이안이 귀를 기울였다. 어떤 방법이냐에 따라 과업의 난이도 역시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뀔 테니까.

    “대청소라는 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은어입니까? 설마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간다든지…….”

    [하하, 그럴 리가. 그건 너무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방법인걸?]

    “그럼…….”

    [정확히 내일 자정,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수행자를 대상으로 번외 과업이 부여될 예정이란다.]

    “번외 과업이라 하시면?”

    [낙오자들의 머릿수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게임, 내 다재다능함을 살려서 이것저것 준비해 놓았지. 이왕 하는 청소, 여흥거리로 써먹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이왕 모조리 죽일 거 여흥거리로 충분히 갖고 놀다가 죽이겠다는 뜻처럼 들린다면 착각일까?

    아마 아닐 거다. 이 지배자란 족속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앞서 여러 차례 화려한 전적의 소유자들 아니던가?

    “정확히 어떤 게임입니까?”

    [그걸 벌써 말해줄 수는 없지. 그대도 엄연한 참가자인데, 다 말해주면 혼자만 너무 유리하잖아?]

    “수행자들이 거부한다면…….”

    [괜히 만장일치겠어? 불참은 곧 어느 전당을 막론하고 죽음이다.]

    정말이지 막무가내다.

    과업을 멈춘 수행자들 처지에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래도 그대는 여타 낙오자들과는 다르니, 힌트 하나 줄까?]

    “지배자 여러분의 여흥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부탁드립니다.”

    슬슬 아부의 효과가 온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데스와의 동맹은 성공적이다.

    [그대의 여덟 번째 과업이자 모든 낙오자들이 참가할 번외 과업은 표현 그대로 게임이다. 그중에서도 생존 게임이라고나 할까?]

    생존 게임.

    대충 감이 온다.

    결국 한 사람만 남겠지.

    나머지는 모두 죽을 테고.

    여덟 번째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머지를 죽여야 한다.

    무자비한 학살에 동참하는 것과 별다를 거 없는 일이 된다는 뜻.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향 땅의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면, 기꺼이 학살자가 되어 주리라.

    설령 그 길 끝자락에 선 자신이 추악한 괴물처럼 변해갈지라도.

    * * *

    [금일 자정까지 슈페리어의 심장 시계탑 정문 앞으로 집결하라.]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수행자, 혹은 수행자 출신한테만 전해지는 시계탑의 전언이었다.

    [불참 시 평의회의 집행자가 찾아갈 예정이므로, 모쪼록 시간을 내어 늦는 일이 없길 바란다.]

    평의회의 집행자.

    크로노스를 되감기 직전, 분석관의 요청으로 이안의 세계를 끝장내기 위하여 파견되었던 존재.

    그가 찾아온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할 터. 이래서 시계탑 정문 앞이 저토록 득시글한가 보다.

    죽기 싫은 수행자들이 너도나도 시계탑 앞으로 모여들었으니까.

    “갑자기 무슨 일이래?”

    “난들 아나, 이렇게 전당 구분 없이 다 소집한 적은 처음 아닌가?”

    “그러게 말이야. 집행자를 보내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걸로 봐서는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전쟁이라도 났나?”

    “전쟁? 무슨 전쟁?”

    “따지고 보면 시계탑 꼭대기의 저 높으신 분들도 다 침략자 아니야?”

    “이 사람이 경을 칠 소리를…….”

    “근데 또 다른 침략자들이 나타난 게지. 시계탑의 전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침략자가.”

    “흐음, 그래서 우릴 소집했다? 전시니까, 싸울 병력이 필요하니까?”

    “그런 일이 아니고서야 전당 구분 없이, 협박까지 해가며 우리 전부를 소집할 이유가 또 있겠어?”

    “확실히 그럴듯하긴 한데…….”

    “……저기, 그런데 말이야.”

    의아함을 느끼는 전직 수행자들.

    아테나의 표현을 빌리면 ‘낙오자’들이 두리번거리다가 이안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한두 명만 힐끔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대다수 낙오자들이 이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저 친구는 누구지?”

    “그러게. 처음 보는 얼굴인데?”

    “덩치도 작고…… 소인족인가?”

    이미 전직 수행자들끼리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했기에 다들 어느 정도 아는 얼굴인데, 유독 덩치가 작은 이안만 초면인 까닭이었다.

    “저기, 실례지만 그쪽은…….”

    참다못한 수행자 중 누군가가 이안에게 말을 걸어보려는 그 순간.

    [다들 모였군.]

    시계탑의 커다란 문이 열리며 어떤 여인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온통 황금빛으로 가득한 투구와 갑옷, 기다란 창과 커다란 방패.

    그리고 그 황금빛 무구와 조화를 이루듯 번쩍이는 은빛 머리칼까지.

    [반갑다. 나를 아는 이도 있을 거고, 이번이 초면인 이도 있겠지.]

    그녀가 자신의 소개를 시작했다.

    [난 정의, 지혜, 전쟁, 평화, 전술, 전략, 무력, 문명, 공예, 예술, 학문, 율법과 질서, 이 땅의 모든 전사와 영웅, 그리고 영광의 수호신이자 지배자, 아테나라고 한다.]

    또다시 시작된 거창한 소개말.

    심지어 오늘은 그 거창한 소개말에 한 가지 더 추가되었으니…….

    [오늘부터 그대들이 의무적으로 수행하게 될 ‘번외 과업’의 진행자이며, 총괄 책임자이기도 하지.]

    아테나의 말에 전직 수행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도 그럴 게 번외 과업이라니? 심지어 의무 참가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애당초 과업에 강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여기 모인 전직 수행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따라서, 너희는 지금부터…….]

    “저기, 실례지만 아테나 님.”

    결국 전직 수행자 중 한 명이 대표 자격으로 나섰다. 그는 전직 수행자들끼리 결성한 카르텔 내에서도 꽤 윗선에 속하는 권력자였다.

    [말해라.]

    “죄송하지만, 모든 과업에는 강제성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랬지.]

    “헌데 어찌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평의회의 결정이다.]

    “……예?”

    평의회의 결정.

    그 말에 얼마나 큰 무게가 담겨 있는지 이들은 너무나 잘 알았다.

    “하,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너희는 시계탑이 허락한 격을 무기 삼아 슈페리언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혔다. 이는 본디 즉결처분하여 마땅한 중죄이나, 한때 과업을 수행했다는 공로를 인정하여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니, 입 다물고 따르도록 하라.]

    연이어 쏟아지는 아테나의 발언에 수행자들이 당혹감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다.

    일단 모두가 합심하여 오늘 번외 과업이 시작되는 건 막아야 한다.

    그런 눈빛들이 오가는 가운데.

    [그리고…….]

    잠시 말문을 멈췄던 아테나가 다시금 읊조렸는데, 그의 두 눈에 피어오르는 안광이 점차 붉어졌다.

    [천한 것들 사이에서 왕 노릇 좀 하더니 눈에 뵈는 것이 없나 보구나. 감히 누구 말을 끊는 것이지?]

    “아……! 그, 그, 그것은……!”

    [죽어야 철이 들 놈이로군.]

    “아, 아테나 님! 저는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 단지……!”

    호기롭게 질문을 했던 전직 수행자의 말로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아테나가 던진 황금빛 창날 끝이 머리통을 꿰뚫고 지나갔으니까.

    “…….”

    그 순간 내리깔리는 적막함.

    누구도 말소리를 내지 못했다.

    말은커녕 숨소리조차 마찬가지.

    [반응들 보니 대충 다 알아들은 것 같구나.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번외 과업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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