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57화 (257/342)

257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1화

“저희들이요. 요술사님 계시지 않는 동안 준비한 것이 있거든요?”

카이가 자신감 넘치게 읊조렸다.

그리고 그 말을 제리가 이어갔다.

“요술사님을 위해서 저희 둘이 열심히 준비한 주술이 있어요! 잠깐만 이쪽으로 오셔서 봐주실래요?”

요술사님, 그러니까 이안 자신을 위해서 준비한 주술이 있단다.

만약 평범한 꼬맹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머리 한번 쓰다듬어주고 말았겠지만, 이 녀석들은 엄연한 주술사 아닌가?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무얼 준비했다는 걸까?

“그래, 한번 보자.”

꼬맹이들의 뒤를 따라간 추방자 마을 구석진 곳에는 녀석들이 꾸며놓은 일종의 사당 같은 게 보였다. 신을 모시는 사당 말이다.

“요술사님께서 슈페리어의 심장으로 떠나셨던 바로 그 날부터……!”

“그날은 아니고, 다음 날이야. 요술사님께 거짓말하면 안 되지.”

“……바로 다음 날부터! 저희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요술사님의 변장 주술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을까!”

그 문제라면 이미 오래전에 해결하긴 했다만, 꼬맹이들의 정성과 노력을 생각해서 입 다물고 있자.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무엇보다 저희들이 모시는 신께 끊임없이 조언을 구하고 또 구한 결과……!”

“드디어 완성했답니다! 이 세상 모든 슈페리언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궁극의 변장 주술을요!”

궁극의 변장 주술.

이름 한번 거창하다.

그래 봐야 하데스의 손안에…….

‘……가만?’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정확히는 이 녀석들이 모시는 존재.

하데스가 아닐 가능성도 있잖아?

‘분명 주문이 달랐어. 그때 그 슈페리어의 심장 지하에서 만났던 로켄이라는 주술사와 말이야.’

주술사 로켄이 모시는 신.

그 존재는 하데스가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꼬맹이들이 모신다는 신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물론 모양새만 다를 뿐, 둘 다 똑같이 하데스의 권역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혹 모르는 일이니.’

그리 결론 내린 이안이 꼬맹이들을 응시했다. 녀석들은 그저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변장 주술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눈치였다.

“……좋아. 한번 보여줘 봐.”

이안은 하데스의 감시를 받고 있다. 그가 걸어준 변장 주술을 지우지 않는 한, 지금 이 상황 역시 감시를 당하는 중일 터.

“그 새로운 주술이라는 거.”

그렇기에 이안은 꼬맹이들의 변장 주술을 받아보기로 했다.

만약 꼬맹이들의 주술을 받았는데 하데스가 제 발로 찾아온다면?

‘나와의 연결이 끊겼다는 뜻이겠지. 그 말은 곧 꼬맹이들의 주술이 정말 하데스가 아닌 다른 존재의 힘을 기반으로 뒀다는 뜻일 테고.’

하데스에게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고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들의 바람을 들어준 것뿐이니까.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으리라.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조금 불편해도 참으셔요!”

잔뜩 신난 꼬맹이들이 이안을 데려온 사당 바닥에 이런저런 주술 문양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그 문양들은 언뜻 보기에 매우 유치한, 나이 어린 꼬맹이들의 낙서처럼 보이는 문양이었으나, 이안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눈으로 꼬맹이들의 문양을 눈에 담았다.

[그림자의 정령이시여. 장막 너머의 지배자시여. 당신을 간곡히 숭배하나니, 부디 이자에게 기만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기만의 군주시여, 위대한 속임수의 주인이시여. 당신을 간곡히 숭배하나니, 부디 이자에게 그림자 가면을 내려주소서.]

역시 다르다.

꼬맹이들은 그림자의 정령, 장막 너머의 지배자, 기만의 군주, 위대한 속임수의 주인에게 기도했다.

그러나 지하수로의 주술사 로켄은 밑바닥의 혼돈, 천 가지 형체의 주인이란 존재에게 기도를 올렸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이명이고, 누구를 지칭하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으나, 핵심은 다르다는 점이다.

‘……잠깐만, 위대한 속임수의 주인? 그 이명은 어째 좀 익숙한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는 순간.

“짜자잔!”

“성공이에요! 새로운 변장 주술!”

제리와 카이가 큰일이라도 해낸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은근 이안이 함께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그 틈에 섞여들기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었다.

‘과연……?’

더군다나 이안은 현재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이니, 그 대상은 바로 ‘하데스의 반응’이었다.

‘……별 반응이 없는 건가?’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깜깜무소식일 뿐, 딱히 하데스 쪽에서 이렇다 할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역시 주문만 다른 거였나?’

결론이 그렇게 굳어지려는 순간.

“저기…….”

누군가 사당까지 찾아왔다.

젊은 청년 추방자였는데, 제리와 카이가 알아보는 것으로 봐서 마을 주민임은 확실해 보였다.

“촌장님께서 손님을 찾으십니다.”

“할 얘기는 다 나눴을 텐데요.”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다고…….”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추방자 마을의 젊은 주민이 앞장섰고, 이안은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는데, 어째서인지 촌장의 집은 멀기만 했다.

“어디 가는 겁니까?”

대충 알겠다.

어떤 상황인지.

그럼에도 이안은 시치미를 뗐다.

괜히 여기서 아는 척했다가는 의심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다, 수행자여.”

결국 마을에서도 인적이 드문 구석진 곳까지 와서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젊은 추방자였다.

“누구……?”

“하데스다. 그대에게 급히 볼일이 있어 잠시 천박한 몸을 빌렸다.”

이안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모든 게 예상 그대로 흘러간다.

“하데스 님께서 어쩐 일로……?”

“아아, 다른 게 아니라, 그…… 왜 그대가 일전에 찾았던 중간계인 있지 않으냐? 그대의 아비라던.”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본심을 필사적으로 숨긴다.

그러면서도 이안을 살펴본다.

연결이 끊겨서 달려온 게 맞다.

어떻게든 다시 연결하고 싶겠지.

본디 하데스처럼 통제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 통제가 풀렸을 때 가장 불안해하는 법이거든.

“네, 그랬죠. 돌아왔답니까?”

“아직 그건 아닌데, 내가 맡긴 임무를 거의 다 완수했다더구나. 곧 복귀시킬 예정이다. 그러니 만나고 싶다면 명계에 들르도록 하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행차하신 겁니까? 아니면 또 다른……?”

“아, 그리고 이건 만난 김에 생각난 건데, 그 변장 주술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주술사 꼬맹이들한테 새로운 변장 주술을 받았는데, 의도하신 일인가 보네요.”

“어…… 그렇지. 의도한 일이기는 한데, 그 꼬맹이들 실력이 영 별로더군.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괜히 그 어설픈 주술로 지배자들 앞에 섰다간 정체가 밝혀지기 십상이거든.”

“아하, 위험했네요.”

“암, 굉장히 위험했지.”

아하?

그런 식으로 다시 하데스 본인의 감시용 변장 주술을 걸어놓겠다?

눈에 빤히 보인다만, 별수 없지.

일단은 순순히 넘어가도록 하자.

“고맙습니다. 설마 이렇게까지 챙겨주실 줄은 몰랐는데, 괜히 전에 범한 무례가 송구스러워지네요.”

“다 그런 것이지. 믿음이란 게 어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더냐?”

이안이 다시금 자신의 통제권 안에 들어왔다. 그리 여기기 시작한 하데스가 본연의 여유를 되찾았다.

“자, 그럼 주술을 다시 걸어줄 테니 곧장 올림포스 신전으로 가도록. 내 가는 길에 여덟 번째 과업의 계시자에 관하여 팁을 주도록 하지.”

자신이 고작 지배자의 격조차 허락받지 못한 수행자에게, 심지어 중간계에서 올라온 벌레한테 농락당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가만, 근데 왜 헤베를 상대할 때 있었던 일은 묻지 않지? 분명 그 힘이 뭔지 궁금해할 줄 알았는데.’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면 헤베와의 전투에서 이안이 발휘한 힘을.

그 악마의 권능을 목격했을 터.

한데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잠깐 한눈이라도 팔고 있었나……?’

* * *

[그래, 다녀온 일은?]

“물론 파악했습니다. 헤라 님의 막내 따님이신 헤베 님이 마음에 품고 있는 남자의 정체 말이지요.”

[오오, 과연 헤라클레스 이후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수행자로구나. 그래, 그게 누구더냐?]

헤라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저 성격으로 어찌 가정을 꾸릴까 걱정이 되던 막내딸 아이 아닌가?

한데 그런 아이가 마음에 품은 정인이 있다니, 심지어 실존인물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귀한 일이다.

“방금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방금?]

“예.”

[내가 무어라 했지?]

“과연 헤라클레스 이후로 가장 우수하다 평가받는 수행자로구나,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은…… 설마 그 아이가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정인이……?]

“예, 그렇…….”

[바로 그대라는 뜻인가?]

“……네?”

그 순간.

조각상에서 번뜩거리는 헤라의 푸른 안광이 붉은빛으로 변했다.

붉은 안광은 곧 지배자들이 분노나 투쟁심 따위로 격양되었단 뜻.

이거 아무래도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예컨대 딸의 정인이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고, 그 수행자는 이미 기혼자라든지, 슬하에 딸까지 있다든지 하는, 가정의 지배자로서 두고 볼 수 없는 오해 말이다.

“아, 아뇨.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뜻이 잘못 전달된 것 같군요.”

[……그래?]

“네, 설마 저일까요? 헤베 님께서도 보는 눈이 있으실 텐데요.”

[으음…… 하긴 그렇지?]

급한 마음에 자학을 하긴 했다만.

막상 저리 반응하니 기분 나쁘네.

저저 안광 파래지는 것 좀 봐라.

……뭐, 일단 그렇다손 치고.

[허면 설마…… 헤라클레스?]

“바로 맞히셨습니다.”

[헤라클레스를? 우리 헤베가?]

“네.”

[반대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심지어 짝사랑이더군요. 헤베 님 쪽에서 말이지요.”

[허어……! 그냥 사랑도 아니고 짝사랑이라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딸이, 그 예쁜 아이가……!]

보통 예쁘고 착한 아이가 라고 말하는 것이 부모의 기본값이거늘.

어머니인 헤라조차 ‘착한’ 부분을 빼먹는다. 정말 검증된 여인이다.

[으음……!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라, 확실히 나쁘진 않은데…….]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헤라가 아까부터 계속 석상 앞에 서 있는 이안이 뒤늦게 생각난 듯 말했다.

[우선 그대의 공로부터 인정을 해줘야겠지. 참으로 잘해줬다. 칼리두 와탕카. 일곱 번째 과업의 완수자로 인정받을 자격이 충분해.]

일곱 번째 과업의 완수.

어느덧 중간을 넘어섰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12과업의 여정이었건만, 이제 보이는 것 같다.

물론 그 끝은 표현 그대로 새로운 시작에 불과할 테지만.

[자, 이제 가거라. 여덟 번째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니. 허면 나는 그대 덕분에 할 일이 많아져서 이만……!]

그 할 일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어찌 되었든 헤라클레스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랄 수밖에.

“자, 그럼…….”

잠시 기도했던 이안이 곧바로 여덟 번째 과업의 계시자가 깃들 석상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황금 사과가 아닌, 하데스의 조언에 따라 특별히 구해온 공양물을 공양 그릇에 올려놓았다.

그 공양물의 정체는 바로 ‘책’.

막간을 이용해 중간계에서 구해온 책이었는데, 하데스의 조언대로면 아무런 책이나 상관없단다.

[오호라? 이건 중간계의 글쟁이들이 집필한 이야기책 아니더냐? 이리 귀한 공양물을…….]

여덟 번째 과업의 계시자.

그 존재의 석상은 헤라와 마찬가지로 여인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다만 여타 여성형 지배자와 다른 것이, 혼자만 갑옷과 투구, 창과 방패를 무장한 형상이라는 점이다.

참고로 말하는데, 올림포스 신전에 세워져 있는 모든 지배자들의 석상 중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석상은 오직 아레스와 이 여덟 번째 계시자의 석상까지 둘뿐이었다.

[흠흠! 이제야 만났구나. 수행자여. 나는 정의와 지혜, 지성, 평화, 전략, 전술, 학문, 영감, 예술,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영웅과 명예, 영광의 지배자 아테나라고 한다.]

이건 또 뭐야?

뭐가 이렇게 거창해?

[아, 몇 가지를 빼먹었군. 공예, 요리, 무력, 기술, 법, 그리고 또…… 음, 이제 다 말한 것 같군.]

……이쪽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