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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0화
“설마 죽은 건 아니겠죠?”
(살아 있느니라. 그냥 기력이 순식간에 바닥나 혼절했을 뿐이야.)
“그럼 다행이긴 한데.”
파스스스스스……!
이안이 조금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왼쪽 팔뚝을 보며 미심쩍은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그 보랏빛 팔뚝은 임무를 수행하자마자 녹색 불꽃에 휩싸여 증발하기에 이르렀으니, 이쯤 되면 정체가 궁금한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설명을 좀 들어야겠습니다만.”
(그냥 본녀의 권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위대한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의 강력한 지옥 마법 말이지.)
“아뇨, 크로미 님의 힘이란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넘기기엔 너무 강했어요. 솔직히.”
그 부분은 크로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그분의 힘을 자신의 힘이라고 거짓말하는 건 그녀 역시 내키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가 모시는 분이 계시다.)
“그분이라는 게, 혹시 머리 여러 개 달린 괴물을 말하는 겁니까?”
(괴물이라니! 어디서 감히 그따위 망발을! 그분께서는 무려 마계의 대공이시다! 마족 제일의 미남으로도 소문이 자자한 분이시지!)
하나부터 열까지 수상한 소리다.
특히 마족 제일의 미남이라는 부분, 그 부분은 정말 의심스럽다.
미의 기준이 박살 난 걸까?
“마계는 또 뭡니까?”
(본녀의 고향이니라.)
“여덟 중간계 중 한 곳입니까?”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고작 그따위 저급한 세계와 비교를 당하다니! 내 고향 동포들이 울겠어.)
“……그럼 여기에, 그러니까 슈페리어에 속한 지역 같은 겁니까?”
(시야를 더 넓혀보아라.)
“……시야?”
설마?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슈페리어 차원과 여덟 중간계로 이루어진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 말고도 또 다른 세계가?
‘도대체 얼마나 넓은 거야? 이 세상, 아니…… 우주라는 곳은…….’
새삼 아득함이 느껴진다.
공포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이를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함에서 느껴지는 ‘우주적 공포’라고나 할까?
“……얼마나 멀리 있습니까? 크로미 님의 고향, 마계라는 곳이요.”
(글쎄, 평범한 방법으로는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지. 나도 여기까지 오는데 영겁의 세월이 걸렸으니.)
일단 멀단다.
그건 다행이다.
당장의 적으로도 벅차거늘 바로 옆집에 또 다른 변수가 있었다면?
그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아무튼 간에, 답변을 계속해 주자면, 내 고향에 계신 그분의 힘을 잠깐 빌려 왔을 뿐이다. 직접 오시지는 못할지언정, 이렇게 극히 일부분의 힘 정도는 보태주실 수 있거든. 물론 그마저도 잠깐이지만.)
크로미의 이야기를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이안은 한 가지 추측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추측은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러니까…… 일종의 현현, 혹은 강림 개념인가 보군요.”
(별걸 다 아는구나.)
“보통 강림이나 현현에는 깃들 매개체가 필요한 법인데, 그건 주로 육신이 되죠. 근데 크로미 님께서는 실체가 없는 마도서이시니, 결국 크로미 님과 계약을 맺은 계약자, 지금은 제가 되겠네요. 그쵸?”
(똘똘하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주인 복이랑 계약자 복은 타고났다니까? 예전부터 느끼는…….)
“크로미 님.”
(……응?)
“이거 계약 위반입니다.”
(뭐? 계약 위반?)
“자칫 제 육신의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 아닙니까? 괴물인지, 악마인지, 아무튼 저하고는 생판 남인 존재한테 말입니다.”
(그, 그것은…….)
“근데 크로미 님과 처음 맺었던 계약서에는 이와 관련된 조항이라든지, 설명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닙니까?”
(그야…… 그렇기는 한데…….)
“이러니 계약 위반이죠.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중대사가 또 있으니까요. 이거 이런 식이면 계속 같이 못 갑니다. 그때 제가 삽입했던 계약해지조항 기억나시죠?”
(아, 안 돼! 해지만큼은……!)
“그러니 정확하게 해둡시다.”
(……정확하게?)
“조항 몇 개 추가하자고요.”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도서의 실물을 꺼냈다. 그러고는 맨 첫 장에 있었던 계약서를 펼쳤다.
“을은 갑에게 자신의 고향인 마계와 악마, 강림 등 모든 정보를 언제든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 아니, 그건 좀…….)
“이는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이며, 특정 정보를 숨기는 즉시 갑과 을의 계약은 자동 해지된다.”
(계약자야. 일단 내 말부터…….)
“이후에도 을은 갑의 계약서 수정 및 조항 추가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불합리한 조항도 마찬가지다. 이를 어길 시에는…….”
(자, 잠깐! 이건 너무하잖아?)
“대체 뭐가 너무하단 겁니까?”
(이쯤 되면 노예계약이지! 노예계약! 아무리 그래도 본녀가 계약자의 노예는 아니지 않으냐!)
“안 될 건 없잖아요?”
(……뭐, 뭐라?)
이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쉬울 거 없다는 표정도 잊지 않았다. 이런 디테일이 중요하다.
“이런 안전장치조차 없다면 저도 굳이 마계라는 변수를 곁에 두기 싫습니다. 당장 눈앞에 도사린 문제만 해도 골치가 아프거든요.”
(…….)
“고민거리를 추가할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셈 치겠습니다.”
(그, 그치만 계약자, 그대도 본녀의 도움이 마음에 들었을 텐데?)
“그게 마계라는 변수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특히 아까 봤던 그 팔뚝의 힘이 저를 향한다면…… 이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
“에이! 안 되겠습니다.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마무리하죠. 어차피 해지 조건도 충족되었으니…….”
(아, 아니다! 계약자야! 계약자가 원하는 조항을 추가하겠다! 그러니 제발 계약해지만큼은……!)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이안이 추측하기로, 그녀가 말했던 ‘일치율’이란 곧 강림의 척도를 뜻할 거다. 아마 그 일치율이 높은 계약자일수록 현현 가능한 부위나 권능이 점점 늘어나는 공식이겠지.
‘그런 와중에 나의 높은 일치율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크로미 입장에서는 놓치기 싫은 계약자란 뜻.’
이러니 마음 놓고 배짱을 부리는 거다. 아까 그 힘으로 보건대 마계의 악마란 족속들, 잘만 이용해먹으면 상당히 유용할 것 같거든.
‘아니면 아예 이쪽 세계의 일에는 개입을 하지 못하게끔 만들거나.’
그 짧은 순간.
이안은 이미 계획을 세워놓았다.
입으로는 변수를 걱정하나, 사실 그에게 변수란 또 다른 가능성이요, 무궁무진한 도구에 가까웠다.
오히려 좋아.
“정 그러시다면…… 어서 추가하시죠. 제 마음 바뀌기 전에요.”
(여기! 이미 다 추가해 놓았다! 이제 여기에 새로 수결만 하면…….)
“자.”
이안이 계약서에 피로 수결하자마자 강력한 흑마법의 기운이 이안과 크로미, 두 존재의 계약을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묶어버렸다.
“이제 실험 한번 해보죠.”
(시, 실험……?)
“제가 들은 게 정확하다면, 그 머리 여러 개 달린 괴…… 아니, 마계의 대공께서는 단탈리온이란 이름을 갖고 계십니다. 맞습니까?”
(마, 맞다. 그분의 존함은 단탈리온, 나의 주인 되시는 분이지.)
“아까 제 팔에 현현했던 그 기괴한 팔뚝도 그 양반의 팔이고요.”
(그렇…… 지. 그 양반…… 아, 아니! 그분의 일부가 맞느니라.)
“흐음.”
팔짱을 낀 이안이 끄덕거렸다.
아직 물어볼 게 많지만, 궁금증은 차차 풀도록 해야겠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널브러져 있는 존재, 헤베가 언제 또 깨어날지 모르니까.
“우선 급한 불부터 끄죠.”
마법의 힘으로 쓰러져 있는 헤베를 들어 올린 이안이 어디론가 향했다.
그 위치는 다름 아닌 늑대의 땅 북부 개척지대에서도 헤라클레스의 커다란 천막 앞이었으니…….
[……뭐야? 이 여자가 여기 왜?]
잠깐 개척지 일을 끝내고 온 헤라클레스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천막 앞에 쓰러져 있는 헤라의 딸, 헤베를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 * *
“오랜만입니다.”
슈페리어의 심장으로 향하기 전.
이안은 막간을 이용하여 늑대의 땅 구석진 곳에 숨어 있는 추방자 마을부터 방문했다.
개척사업도 빨라 보이겠다, 이제 슬슬 약속했던 추방자들의 거처 문제를 해결할 차례가 되었으니까.
“시간이 없으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추방자 마을 여러분의 새로운 거취에 관해서 말입니다.”
이안은 고심 끝에 추방자 마을의 주민들을 본인 소유 흑요석 광산과 약초밭으로 이주시키고자 했다.
그곳이라면 침입이나 발각당할 걱정 없이 안전한 데다가, 이런저런 관리를 맡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예컨대 광산 및 약초밭 관리, 수확물 관리를 예로 들 수 있을 터.
“좋소. 우리 마을 주민들이 안전할 수만 있다면야 그곳이 어디든 감사할 따름이오. 또한 중간계에서 온 손님을 미약하게나마 도울 수 있는 일이니, 이건 운명이로군.”
촌장 역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뼈다귀들한테만 일을 맡겨놔서 영 찝찝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은 이안이었다.
“아, 그리고 마을 분들 중에 나타시아란 분을 좀 불러주십시오. 그분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나타시아.
미첼 그린리버의 연인.
그녀는 이안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아까부터 계속 촌장의 집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으니, 덕분에 바로 만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이제는 명계의 검투사가 된, 미첼 그린리버에 관한 소식을 말이다.
“그는 죽었습니다.”
“네……? 죽…… 어요? 미첼이요?”
“명계에 있더군요. 만나서 전해달란 말은 다 전해드렸습니다.”
“…….”
미첼이 죽었다.
명계에 있단다.
그 충격적인 소식에 한참을 침묵했던 나타시아가 천천히 말했다.
“……뭐라고 하던가요? 미첼이.”
“별말씀은 없었습니다만, 그분도 많이 그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확실합니다.”
“그랬군요.”
의외로 담담한 표정.
그녀가 계속 말문을 이어갔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고맙습니다. 보잘것없는 저의 보잘것없는 부탁을 들어주셔서.”
어디 인사만 할까?
이안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지금 당장 그녀가 내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 표시였다.
“이건……?”
“얼마 전에 돌아가신 저희 부모님께서 물려준 유품이에요. 행운의 부적 같은 건데, 이런 것밖에 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행운의 부적.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품고 있는 버팀목.
이안에게도 있다. 클레반한테 받아온 가족 판화가 바로 그것이다.
“……아닙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 성공하려면 그 행운이란 게 필요하거든요. 티끌 같은 운이라도 모아야 할 판이었는데, 마침 잘되었습니다. 감사히 받도록 하죠.”
생각보다 친절한 반응이 의외였을까? 나타시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기야, 처음 이쪽 세계를 향한 악의로 똘똘 뭉쳤을 때.
무작정 마을에 쳐들어와서 보여준 언행이나 행동을 돌이켜보자면…… 충분히 놀랄 만하리라.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모쪼록 마음 잘 추스르십시오.”
이제 볼일은 모두 끝났다.
슈페리어의 심장으로 돌아가 일곱 번째 과업을 마무리할 차례.
떠날 채비를 하는 그때였다.
“요술사님!”
“요술사님!”
익숙한 목소리.
그것도 두 명이다.
누구인지는 빤하다.
“……너희들?”
제리와 카이.
이안이 목숨을 살려준 꼬마들.
알고 보니 변장 주술을 구사할 줄 아는 주술사이기도 한 녀석들.
그 녀석이 쪼르르 달려왔다.
무슨 용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