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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55화 (25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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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69화

    ‘보통 이런 일치율은 말년에, 거의 늙어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보여주는 수치였는데…….’

    마도서 네크로노미콘.

    일명 크로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전 은하계에 퍼져 나간 모든 마도서의 목적.

    그것은 바로 ‘마도’를 널리 퍼뜨리는, 일종의 전파 수단이었다.

    ‘이번 계약자는 나와 계약을 맺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런 수치를 보여주는 거지?’

    참고로 말하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마도란 마력과 마법을 뜻하는 표현이 아닌, 얼마 전 계약자를 통해 보았던 지하 세계보다 훨씬 더 어둡고 깊은 곳에서 들끓어 오르는 진정한 의미의 마魔를 뜻하니, 결국 이 마도서란 악마 숭배를 위하여 존재하는 도구란 뜻이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번 계약자……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계약자를 오랜 시간에 걸쳐 진정한 마魔의 길로 인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 마도서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궁극적인 목표였다.

    마도서 네크로노미콘 역시 그러한 임무를 부여받은 채 머나먼 고향 은하에서 이곳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까지 넘어오지 않았나?

    ‘어쩌면,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그분께오서 온전하신 모습으로……!’

    다만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의 임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창조자는 고향 은하 ‘마계’에서 ‘솔로몬의 72악마’라고 칭송받을 만큼 강력한 악마였는데, 주로 마계의 이권 다툼에만 관심이 있는 여타 악마와 달리 자신의 직속 마도서, 그리고 그 마도서의 계약자를 통해 어느 세계, 어느 차원, 어느 은하일지언정 가리지 않고 강림하여 행성 파괴를 일삼는 끔찍한 파괴자였다.

    ‘여태껏 해왔던 부분적 강림이 아닌, 그야말로 완벽한 강림 말이지.’

    물론 지금까지는 계약자의 한계 탓에 일부분만 강림하였으나, 이번 계약자는 벌써부터 엄청난 일치율을 자랑하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어쩌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쪽 세계는 아마도…….’

    이거 벌써부터 흥분된다.

    계약자 한번 잘 골랐구나 싶다.

    ‘……부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단탈리온 님!’

    크로미가 누군가의 이름, 그리고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리며 잠시간 추억에 잠겼다.

    비록 책 속에 존재하는 정신체에 불과하나 그녀는 명백히 웃고 있었다. 그 상대가 자신의 영혼을 산 채로 거둬 책 속에 가둬 버린 악마라 할지언정, 딱히 상관은 없었다.

    추억이란 미화되게 마련이니까.

    ‘……그나저나 이 계약자,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단 말이지. 이런 경우가 또 없었잖아?’

    원래부터 마도의 길을 따르는 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설마 이것도, 마魔의 기운에 물드는 것도 재능을 타고나는 걸까?

    * * *

    쿠쾅……!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주먹질과 채찍질의 파괴력 차이도 차이거니와, 지금은 마음가짐조차 ‘반드시 죽여 입을 막겠다’는 목적의식으로 가득하지 않던가?

    ‘쉽지는 않군.’

    슈페리어의 분석관과 헤베.

    최하급 지배자와 중급 지배자.

    그 격차는 흔한 표현처럼 ‘격’이라는 게 달랐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엄청난 차이를 자랑했다.

    ‘이쪽이 특별한 건지, 중급 지배자쯤 되면 다 이 정도는 하는 건지, 웬만하면 후자였음 좋겠는데.’

    그렇게 이안이 중급 지배자 헤베의 ‘격’을 체험하고 있는 한편.

    ‘뭔가 이상해. 원래 수행자 따위가 이렇게까지 강했었나? 그래 봐야 평범한 슈페리언 출신이잖아?’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는 건 비단 이안만의 몫이 아니었다.

    이안을 전력으로 상대하고 있는 헤베 역시 느끼는 부분이었으니까.

    다시 말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무려 제우스와 헤라의 고귀한 혈통을 물려받았으며, 동급 지배자 중에서도 강자로 손꼽히는 자신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고작 수행자 따위가, 아직 지배자의 격조차 허락받지 못한 슈페리언 나부랭이가 버틴다고?

    자신의 전력을 다한 맹공을?

    ‘그런 말도 안 되는…….’

    단언컨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수행자 시절의 헤라클레스 님께서도 이처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던데, 그분과 이깟 수행자를 동격으로 치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 마침 잘되었어. 이런 놈이 헤라클레스 님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는 시계탑의 소문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죽이면 그 소문도 끝이 나겠지!’

    역시 여러모로 죽이는 편이 좋겠다.

    그분의 아성마저 넘보는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를.

    [괜히 유명한 게 아니로구나.]

    “괜히 지배자는 아니시네요.”

    [기어올라도 좋단 뜻은 아닌데?]

    “앞에서 죽이겠다고 날뛰고 계신데 차릴 예의가 어디 있습니까?”

    [살려달라고 빈다면 고려해 볼 용의는 있다.]

    “살려주세요.”

    [좋다. 대신 네놈과 그분 사이의 약속은 오직 나를 위해서…….]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그렇게 해봐야 더 불행해질 뿐이라고.”

    [불행해져도 상관없어. 이미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거든. 여기서 더 불행해질 밑바닥이 없다고!]

    “…….”

    [한 사람이 날 바라봐주길 천 년간 바라고 기다려 본 적 있나?]

    자그마치 천 년이다.

    한 사람을 남몰래, 혼자서 좋아한 세월이 천 년이라는 거다.

    제아무리 불행해진다 한들 작금의 자신보다 밑바닥일 수 있을까?

    다른 이들 생각은 몰라도, 헤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없지?]

    “그게 흔한 경우는 아니니까요.”

    [맞아. 흔한 경우는 아니지. 그러니까…….]

    헤베가 다시금 채찍질을 준비했다.

    그 눈빛에는 어떤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날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 그냥 죽어서 입이라도 다물어라!]

    더 이상의 대화를 불허.

    채찍이 지나간 자리에 대지가 움푹 파이고 불길이 솟구쳤다.

    천 년간 식지 않은 짝사랑을 표현하듯 뜨겁게 불타올랐다.

    쿠콰콰콰콰콰쾅 - !

    물론 피하지 못할 만큼은 아니다.

    작정하면 반격도 가능할 것 같다.

    그만큼 이안이 강해졌다는 증거.

    ‘문제는 아직 내가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피하고 반격하는 거, 거기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치명타를 확신할 수 있는 빈틈이 보이지 않아. 이러면 결국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고, 장기전이 되면 진다. 아직은 약소 열세니까.’

    중급 지배자를 상대로 약소 열세.

    언뜻 보기에 아쉬울지 몰라도, 이는 사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은 아직 지배자의 격조차 허락받지 못한 수행자 신분 아닌가?

    이러니 훗날 모든 과업을 완수하고 지배자의 격마저 얻게 되는 날을 기다리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날이 오면, 비로소 궁극적인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겠지.

    ‘이번 고비만 넘긴다면 말이야.’

    헤베는 자신을 살려줄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인다.

    반대로 자신은 헤베를 헤치지 못한다.

    그녀는 무려 일곱 번째 계시자, 헤라의 딸이며 과업의 일부 아닌가?

    괜히 그런 존재에게 위해를 가했다가 어떤 꼬투리를 잡힐지 모른다.

    ‘도망치기도 좀 애매하고.’

    이 여자, 굉장히 빠르다.

    시야도 좋고, 추적에 능하다.

    더군다나 저 특이한 채찍은 상대를 제 스스로 뒤쫓는 것 같다.

    여러모로 도망치기 최악의 상대다. 과연 천 년 경력 스토커답다.

    ‘결국 제압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상처 하나 없는 제압이란 곧 상대보다 강한 존재한테나 허락되는 일.

    지금처럼 우세하지도 않고 열세인 상황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으음…….”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어디 뾰족한 묘수가 없을까?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 테냐?)

    바로 그때.

    이안의 뇌리에 침투한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넌지시 물었다.

    마침 방법이 있단다.

    당연히 들어봐야겠지.

    “……그게 뭡니까?”

    (간단하다. 내게 몸을 맡겨라.)

    “그게 무슨…….”

    (네 몸에 어떤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더라도 거부하지 말라는 뜻이니라.)

    쉽게 말해서 육체의 주도권을 내어달라는 뜻인 것 같다.

    흐음, 글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

    (온몸을 다 허락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팔 한쪽이면 충분하다.)

    “정말 팔 한쪽이면 됩니까?”

    (물론, 애당초 계약자의 일치율로는 팔 한쪽이 한계이니라.)

    콰앙 - !

    대화 중 빈틈이 보인 걸까?

    헤베의 공격이 갈수록 거세졌다.

    더 늦기 전에 조치가 필요했다.

    “그럼 정말 팔 한쪽만 허락해 드리죠. 어느 쪽이 좋겠습니까?”

    (왼팔.)

    “어지간하면 거부하지 않을 테니 보여주십시오. 그 방법이라는 거.”

    (호호, 굉장히 만족스러울 거다.)

    크로미의 호언장담과 더불어.

    “큭……?”

    허락해 주겠노라 약속한 왼쪽 팔에 처음 맛보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 감각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압도적이어서, 감히 거부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끔 만들었다.

    ‘이게…… 뭐지……?’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어떤 형상이 강제로 그려졌다.

    그것은 언뜻 인간의 형상처럼 보였으나, 좀 더 자세히 본다면 인간의 형상이란 말이 쏙 들어갈 만큼 기괴하게 생긴 인외의 존재였다.

    어깨 위로는 무려 여덟 개의 얼굴이 한 덩어리처럼 뭉쳐져 들고 있는 책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수많은 얼굴과 책을 든 손, 솟아난 날개까지 모두 탁한 보랏빛 피부를 갖고 있었다.

    ‘……악마?’

    그 끔찍한 형상과 마주하는 순간.

    머릿속에 절로 떠오르는 단어.

    그것은 바로 악마.

    그래, 악마가 틀림없으렷다.

    (???? - !)

    (??????? - !)

    (?????? - !)

    (??????????? - !)

    (????????! ????????! ????????!)

    그리고 그 소름 끼치는 형상과 더불어 이안의 귓가에 맴도는 소리.

    그 목소리는 분명 크로미의 것이었는데, 구사하는 언어가 달랐다.

    이안조차 해석할 수 없는 미지의 언어였으니까.

    다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미지의 언어 끝부분만큼은 정확히 들렸다.

    크로미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단탈리온! 단탈리온! 단탈리온!

    콰득, 콰드득, 콰드드드드득……!

    그리고 그 순간.

    크로미에게 맡긴 이안의 왼팔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모양새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피부는 탁한 보랏빛이요, 크기는 기간테스의 팔뚝만큼 거대해졌으니, 이 팔은 조금 전에 마주했던 그 악마의 형상, ‘단탈리온’의 왼쪽 팔과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무, 무슨……?]

    그 거대한 팔의 등장에 유독 당황하는 쪽은 역시나 헤베였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퍼부어댔던 채찍질마저 멈춘 채 이 세상에 강림한 어떤 존재의 팔뚝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팔뚝은 정말이지, 정말이지 사악한 기운을 내뿜어댔다.

    [큭……!]

    더욱이 놀라운 점은, 그 팔이 순식간에 헤베를 낚아채 버렸다는 점.

    그리고 중급 지배자가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어디 그뿐일까?

    낚아챈 헤베를 기절시키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손아귀에 강력한 수면약이라도 발라져 있는 듯 스르르 혼절했으니까.

    (어떠냐?)

    “…….”

    (깔끔하지?)

    “…….”

    마도서 네크로노미콘.

    아무래도 이 미지의 존재와는 나눌 이야기가 참 많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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