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53화 (253/342)

253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67화

그나저나 합격이라고?

설마 이걸로 과업 완수인가?

그런 뜻이라면 정말 기쁠 텐데.

과업 하나를 거저먹는 셈이잖아?

[과업의 수행자로서 자격이 충분하니, 내 기꺼운 마음으로 일곱 번째 과업을 계시하마.]

아아, 그러면 그렇지. 쉬이 과업 완수를 인정해 줄 리가 없다.

그래도 꽤 좋은 인상을 심어놓은 것 같으니, 과업의 난이도 하락 정도는 기대해도 되려나?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말씀하시지요. 헤라 님.”

[아까도 말했듯, 나는 이 모든 세상 모든 종족의 근간이 되는 혼인, 번영, 그리고 모든 가정의 평화를 관장하는 지배자이니라.]

“고결한 임무를 갖고 계시군요.”

[정녕 그리 생각하느냐? 고결한 임무라고?]

“물론입니다.”

[뭘 좀 아는 수행자로구나.]

새삼 어울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이들은 무책임하다.

여덟 개의 중간계를 자기네들 입맛대로, 마치 장난감처럼 쥐락펴락하다가 뒤늦게 균형이니 나발이니 하면서 뒤집어엎으려 드는 놈들이 가정의 평화 운운이라니.

‘자기네들 마음대로 있어 보이는 담당 분야를 정했다더니만, 그게 사실인가 보군.’

이안에게 정보를 넘겨준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따르면 그랬다.

이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말하는 담당 분야, 예컨대 제우스의 번개, 아레스의 투쟁 따위는 모두 스스로 정한 것이다.

제우스는 마침 번개를 다룰 줄 알았고, 아레스는 단순히 전쟁광이라서 그렇게 자칭하고 있을 뿐.

정말 그들이 번개의 신이라서, 투쟁의 신이라서가 아니란 뜻이다.

‘그 하데스 역시 처음부터 명계의 왕이었던 건 아니야. 원래 왕은 따로 있었고, 그 왕의 자리를 힘으로 빼앗은 찬탈자에 불과하니까.’

알면 알수록 인간과 별다를 게 전혀 없는 족속들, 어쩌면 더 추악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하다. 이들은 이안이 아는 한 인간 대다수보다 훨씬 더 추악하다.

‘아마 나도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얻는 순간부터 무언가 한 가지를 정하게 되겠지.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마나의 지배자쯤 되려나?

[그래, 뭘 좀 아는 수행자여. 과업을 수행할 준비가 되었느냐?]

“무엇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반드시 완수해 내겠습니다.”

[좋다. 마침 그대에게 맡길 만한 과업이 있느니라. 올바른 가정관을 가진, 그리고 그런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그대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겠지.]

올바른 가정을 꾸린 이에게 맡길 만한 임무라.

도대체 어떤 과업을 맡기려고 저리 거창할까?

[나에게는 과년한 딸아이가 한 명 있다.]

혼인 시기를 넘어섰다는 뜻.

이쪽 세계에도 그런 게 있긴 있구나.

한데 기준이 뭐지?

사실상 영생을 살면서?

[그 아이에게 좋은 짝을 맺어주고 싶은데, 자꾸 혼인을 약속한 상대가 있다고만 말하고 누구인지를 가르쳐주지 않아. 제 어미한테까지 숨길 이유가 없을 텐데 말이야.]

헤라의 목소리에서 평범한 부모의 걱정이 느껴졌다.

물론 그 걱정에는 자칭 가정의 지배자로서 갖는 책임감도 섞여 있겠지.

[해서 말인데, 그 상대가 실존하는지, 정말 실존한다면 어떤 존재인지, 내가 한번 봐야겠느니라. 허니 그대가 수행할 과업은 바로…….]

“실존 여부와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겠군요.”

[바로 맞혔다.]

하다하다 지배자의 딸 연애상대 뒷조사까지 하게 될 줄이야.

쉽고 어려운 걸 떠나서, 이게 정말 과업이 맞기는 맞는가 싶을 지경이다.

[그리고 이건 그대가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둔다만…….]

그런 이안의 심정을 읽기라도 한 걸까?

별거 없던 임무에 사족을 추가하는 헤라였다.

[……내 딸아이, 도대체 누굴 닮은 건지 성격이 아주…… 아주 불같아.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가능하면 처음부터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고, 피치 못할 경우 절대로 내 부탁을 받았다느니, 혼인을 약속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있다느니 하는 말은 삼가도록.]

성격이 불같다.

더럽다는 뜻이다.

“간단한 정보를 알려주시면,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이안이 읍하며 말했다.

어쨌든 이것도 과업이다.

완벽히 수행하면 그만이리라.

* * *

혼인, 번영, 가정의 지배자 헤라는 제우스의 정실부인이다.

그런 그녀의 딸, ‘헤베’ 역시 최상급 지배자 둘을 부모로 둔 존재이니만큼 타고나기를 강력한 지배자였으니, 비록 부모만치는 되지 못해도 중급 지배자 이상의 ‘격’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다 성격이 더럽고, 호전적이며, 헤파이스토스가 유일하게 아끼는 동생이라 온갖 신적인 아티펙트로 무장한 탓에 그 힘은 대다수 동격의 지배자들을 압도하는 수준이라지.’

여러모로 까다로운 존재다.

헤라의 충고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선일 터.

띄더라도 마찰을 빚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리라.

‘다른 지배자들과 달리 슈페리어의 심장이 아닌 외부에서 따로 지낸다더니만…….’

그 거처가 하필이면 늑대의 땅에 있단다.

이안이 처음 슈페리어 차원을 넘어왔을 때 발 디뎠던 땅이며, 고향과 연결된 통로, 일명 ‘쥐구멍’이 존재하는 까닭에 최근에도 여러 번 방문했던 그 지역 말이다.

‘음, 이쯤인가?’

물론 그 넓은 땅에서 헤베를 찾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헤라가 준 수정구에 그녀의 위치가 표시되고 있었으니까.

‘가만, 그러고 보니 이쪽은…….’

한데 그녀의 위치가 어째 낯이 익다.

그도 그럴 게, 이미 한번 와본 곳이다.

헤라클레스가 지휘 중인 북부 개척지 아닌가?

‘개척지 자체는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벌써 많이 달라졌군.’

본디 온갖 종류의 나무와 바위, 풀, 울퉁불퉁한 지형 따위로 가득했던 늑대의 땅 북부 일대가 깨끗해졌다. 마치 잘 깎아놓은 연무장처럼 완벽한 평지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비록 아직 개척되지 못한 땅이 더 많긴 하였으나, 이만하면 오랜만에 방문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엄청난 속도였다. 역시 기간테스 일족이 대거 투입된 개척사업다웠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개척지도 성벽이 세워지고, 결국 심장의 일부가 되겠지.’

슈페리어의 심장.

선택받은 슈페리언의 도시.

애당초 늑대의 땅 개척의 명분이 그렇다.

과포화 상태에 돌입한 도시의 거주지역을 확장하는 것.

시계탑 평의회에서 진행 중인 일종의 ‘주거안정대책’ 되시겠다.

‘슬슬 추방자 마을의 이주지도 찾아봐야겠군.’

그건 그렇고, 이 헤베라는 지배자.

어째서 개척지에 있다고 나오는 거지?

혹시 그녀도 개척사업의 관계자인 걸까?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그런 의구심과 더불어 수정구에 표시된 위치에 도착했을 때.

“……?”

이안은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어떤 깨달음을 느꼈다.

“……아하?”

헤베를 처음 목격하는 순간.

이안은 아하, 이거였구나 싶었다.

정말 단숨에 모든 의문이 풀렸으니까.

(흠모하고 있군.)

그 모습이 얼마나 전형적이었으면 한동안 조용했던 마도서 네크로모니콘마저 훅 들어올까?

(저 무식하게 생긴 거인을.)

물론 크로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헤라의 딸 헤베가 양쪽 뺨을 붉힌 채 슬쩍슬쩍 엿보고 있는 대상이 바로 크로미 왈 ‘무식하게 생긴 거인’, 헤라클레스였으니 말이다.

“……어디 가신 줄 알았습니다. 한동안 조용하셔서.”

(딱히 나설 일이 없었을 뿐이니라.)

“그러셨군요. 아무튼, 크로미 님께서 보기에도…….”

(맞다. 저 거인을 흠모하고 있어. 짝사랑인 것 같군.)

심지어 짝사랑이란다.

거기까지는 몰랐는데.

어떻게 알았지?

“확실합니까?”

(무조건이지. 잘 아는 표정이거든.)

이안이 다시 한번 헤베의 표정을 살폈다.

짝사랑,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엄청 빠졌느니라. 저 무식한 거인한테 말이다.)

“그게 보이십니까? 표정만으로? 아니면 뭔가 다른…….”

약간의 미심쩍음을 느낀 이안이 크로미에게 물었다.

아니, 묻고자 하는 그때였다.

[어디서.]

익숙한 장소.

익숙한 상황.

그리고…….

[쥐새끼가 기어 들어왔지?]

익숙한 대사에 이르기까지.

다른 점이라고는 목소리뿐이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여인의 그것이다.

[정체가 뭐냐?]

투명화 마법으로 숨어든 이안의 두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읊조린다.

과연 동격의 중급 지배자들 사이에서 최강자로 평가받는 지배자다웠다.

[대답해. 죽기 싫으면.]

이는 결코 허언이 아니다.

진득한 살기가 느껴지는 경고.

문제는 뾰족한 대답거리가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무어라 대답해야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을까?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냥 지나가다 걸린 것도 아니고, 몸을 숨긴 채 한참을 훔쳐보다 걸렸다.

제아무리 화술에 능한 이안일지언정 말 몇 마디로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으리라.

[정말 죽고 싶으신가 봐?]

“일단 그런 건 아닌데…….”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잠깐…….”

쿵!

빠르다.

정말이지 순식간이다.

이안이 서 있던 곳에 주먹 자국이 새겨졌다.

표준적인 슈페리언 덩치에 걸맞은 커다란 주먹이었다.

[이걸 피해?]

아니 그럼 피해야지 이 양반아.

한 방이면 골로 가게 생겼는데.

쿵!

이번에는 발길질이다.

다시 한번 이안이 머물던 위치에 거대한 발자국이 생겼다.

있는 힘껏 내리찍은, 아마 스치기만 해도 골로 갔을 헤베의 발길질이었다.

‘……그래도 나름 피할 만한데?’

그간 꾸준히 쌓아 올린 격의 힘일까?

아니면 전력을 다하지 않는 걸까?

덕분에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가만있자, 이걸 어떻게 멈추지?’

힘으로 제압한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피하는 게 할 만한 거지, 싸우는 게 할 만하다는 건 아니거든.

그렇다면 역시 설득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떤 화두를 던져야…….

‘……잠깐.’

바로 그 순간.

이안의 뇌리를 스쳐 가는 생각 한 줄기.

‘헤베의 짝사랑 헤라클레스는 내 정체를 알고 있으며, 나에게 약속을 했다. 만약 내가 살아남아서 다시금 만나는 날이 온다면 그 자리에서 내가 바라는 것 한 가지를 들어주겠노라고. 그게 무엇이든.’

무려 여섯 번의 과업을 완수했다.

이만하면 굉장히 오랫동안 살아남은 거, 맞다.

그렇기에 그가 내건 조건, 충분히 충족되었다.

이제 헤라클레스 쪽에서 약속을 지킬 차례 아닌가?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나 한번…….]

“헤라클레스.”

[……?]

“내 말 한마디면 당신한테 마음을 열어줄 겁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반대로 당신한테 영원히 마음을 닫을 수도 있고요.”

[하는…….]

“믿지 못하겠다면 실험해 보십시오.”

[그따위 허튼수작에 놀아날 내가 아니…….]

“일단 부를 테니까, 부끄러우면 알아서 숨으십시오.”

[자, 잠깐……! 난 아직 준비가……!]

“헤라클레스 - !”

[……!]

이안이 큰 목소리로 헤라클레스를 불렀다.

격이 담긴 외침을 듣지 못할 리가 없을 터.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가 했더니만.]

과연 빠르다.

번개처럼 나타나 이안을 내려다본다.

황급히 도망친 헤베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을 존재감.

‘용감무쌍한 자’ 헤라클레스가 이안을 알아봤다.

이것으로 두 번째 만남이었다.

[요즘 시계탑에 소문이 자자하신 과업의 수행자, 콜로투 와투탕카 아니신가?]

……알아보는 게 용하다 싶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