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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50화 (25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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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64화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설산지대 하늘에서 새로운 물자와 정보, 간략한 편지가 내려왔다.

    한 사람의 노고와 희생이 가져다준 값진 결과물이니만큼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는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편지를 읽었다.

    [붉은색 수정구에는 우리보다 몇 단계 더 발전된 세계의 문명과 기술력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주로 무기에 관한 기술을 다루었으니, 장인 분들에게 전달해 주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순간 한순간이 급박한 상황 아닌가? 쓸데없는 인사나 미사여구 따윈 생략되었다.

    서두부터 정보, 오직 정보다.

    [그리고 나머지 푸른색 수정구는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또 다른 세계가 겪고 있는 각성 현상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전체 인구 중 일부가 무작위로 강력한 힘을 각성하게 되는 현상인데, 이 현상이 조만간 우리 세계에도 발현하기 시작할 겁니다.]

    [어련히 알아서 잘 대처해 주시겠지만, 가능하면 빠르게 이 각성자들을 선별하여 육성하십시오.]

    [훗날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기에 관한 발전된 기술력.

    그리고 편지의 내용만으로는 좀처럼 감을 잡기 어려운 각성 현상.

    그 두 가지에 관한 언급과 당부가 편지의 첫 장을 수놓은 가운데.

    [저는 그럭저럭 살 만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이쪽 세계의 생활방식에 적응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네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향 생각을 합니다. 폐하, 가족들,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자면, 그냥 다 포기하고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겠지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폐하께서 어련히 잘 보살펴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들 말이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특히 요하나, 저의 빈자리가 덜 느껴지게끔 많이 아껴주십시오.]

    [황제 폐하께서도 건강관리 잘하고 계십시오. 폐하나 저나, 슬슬 관리가 필요한 나이 아닙니까?]

    [그럼 언젠가 서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날을 고대하면서,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황제가 서운해할 것을 대비라도 한 걸까? 편지의 나머지 장은 지극히 가벼운 사담으로 가득했다.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도 그런 이안의 의도가 느껴졌기에, 다소 안타까움이 섞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녀석, 내가 아직도 그때 그 얼간이 황태자인 줄 아나? 돌아오거든 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겠군.”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황제의 속은 편치 않았다. 이안이 혼자 엄청난 짐을 떠맡게 된 그 날부터 단 하루도 속편한 날이 없었으니까.

    “바깥에 부단장 있나?”

    “하명하시옵소서.”

    황제 하이든의 물음에 수련 중인 올리버 대신 서재 입구를 지키고 있던 부단장 폴이 들어왔다.

    “급히 회의를 소집해야겠어. 매번 소집하는 구성원 그대로, 알지?”

    “바로 준비하겠나이다.”

    “좋아, 그리고 폴.”

    “예, 폐하.”

    주군의 명을 기다리는 부단장 폴에게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제 턱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올리버 말이야. 못 본 지 너무 오래됐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나?”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설마 잘못된 건 아니겠지? 수련하다가 어디를 다쳤다거나…….”

    “그럴 리는 없을 것이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장님이시니.”

    “흐음, 그건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올리버가 그런 실수를 할 리는 없긴 한데, 근데 말이야. 뭔가 한계를 뛰어넘는 폐관 수련이잖아? 그 정도 되면 올리버도 실수 한 번쯤 할 수도 있지 않겠어?”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사옵니다만, 요하나 양께서 함께 수련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역시나 그럴 가능성은 적지 않을까 하는 것이 소장의 소견이옵니다.”

    “아, 그랬지? 요하나도 거기 있다고 했었지? 그럼…… 가능성이 적긴 하겠군. 음, 오케이. 알겠어.”

    요하나 이야기 나와서 그럴까?

    괜히 방금 편지에서 본 당부가 떠올랐다.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잘 보살펴달라는 내용 말이다.

    ‘이게 네가 원하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빈자리 올리버가 잘 채워주고 있다고. 내가 아니라.’

    비록 잘 지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만, 아무튼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좀 더 기다려 보자고. 절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찾아오지 말라고 했으니.”

    많이 궁금하지만, 어쩌겠는가?

    잘 하고 있으리라 믿는 수밖에.

    “좋아. 그럼 회의 소집 좀 서둘러줘. 단장 대신 부단장이 참석하는 거 잊지 말고. 지금은 부단장이 모든 기사들의 수장이야. 알지?”

    “명심하겠나이다. 폐하.”

    왕실 기사단 특유의 경례 자세를 취한 부단장 폴이 서재에서 나가고자 했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긴급회의를 소집하기 위함이었다.

    “……어?”

    바로 그때, 서재 문을 열고 나가려는 부단장 폴이 휘청거렸다.

    “쿨럭……!”

    어디 휘청거리기만 할까?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피까지 토한다.

    “부단장!”

    부단장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서재 앞을 지키던 호위기사들이 그를 부축했다. 하이든 역시 즉각 뛰어나가 폴의 상태부터 살폈다.

    다짜고짜 각혈하며 쓰러지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카놀란 경!”

    “예, 폐하……!”

    “지금 당장 가서 황실 의원을, 그리고 하이리를 불러와! 어서!”

    * * *

    “강한 육신에 강한 정신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다. 네 부친이신 이안 공께서도 내 조언에 따라 기사단의 체력 훈련 코스를 완주하시곤 했지. 내 대련 상대가 되어주셨던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올리버 레이우드의 개인 훈련장.

    산 중턱을 깎아 만든 그곳에서 환골탈태의 경지에 닿은 기사, 올리버 레이우드가 가부좌를 튼 채 중얼거렸다. 물론 혼자서 중얼거리는 건 아니고, 듣는 이가 있긴 했다.

    딱 한 명 말이다.

    “질문 있슴다!”

    여전히 짧은 팔을 번쩍 든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아담하며 짜리몽땅한 꼬마 숙녀.

    요하나 페이지였다.

    “해보도록.”

    “그냥 마법으로 육체를 강화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것과는 다르다.”

    “무엇이요?”

    “오랜 단련으로 빚어진 육신에 깃드는 정신과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은 육신에 깃드는 정신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

    “우음…….”

    올리버의 대답에 요하나가 가부좌를 튼 채로 고민에 잠겼다.

    물론 길지는 않았다.

    “저기, 스승님?”

    “말해보아라.”

    “그럼 그 정신력도 그냥 마나로 강화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요?”

    “…….”

    “솔직히 우리 아버지도 스승님이랑 대련할 때나 운동했지, 그 이후로는 평생 안 하셨을걸요?”

    “…….”

    거의 모든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변을 내어주던 올리버 레이우드가 이번만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논리에서 막히는 순간 대부분의 스승이란 존재들은 버럭 화를 내게 마련이나, 올리버는 그러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러고 싶긴 한데, 필사적으로 참는 쪽에 가까웠다.

    “……정녕 그리 생각하느냐?”

    결국 한참의 고민 끝에 입을 열기 시작하는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그리 생각한다면 그리 행동하도록 해라. 내 말리지는 않을 테니.”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뜻이 다른 이와 함께 수련할 필요는 없겠지. 하산하도록 하라.”

    “와, 또 하산으로 협박하시는 것 좀 봐. 우리 스승님 진짜 치사하시네!”

    “치, 치사……?”

    “네! 치사요! 왕치사!”

    “…….”

    올리버가 또다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번에는 논리적 문제가 아닌, 지금껏 황실기사로 살면서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언어폭행(?)에 정신이 어질어질한 까닭이었다.

    “……요하나.”

    “하산하라고요?”

    “아니, 생각이 바뀌었다. 하산을 명하지는 않으마. 나는 네 말본새처럼 왕치사한 인간이 아니니까.”

    “진짜요? 그럼…….”

    “50바퀴.”

    “……네?”

    “오늘 저녁 체력 훈련은 가볍게 비무장 50바퀴로 시작하자꾸나.”

    “…….”

    “싫으면 하산하고.”

    “아, 아니에요! 하산은…….”

    싫다.

    절대 절대 아니 된다.

    그만큼 올리버 아저씨와 훈련을 하는 것이 좋았다. 본디 목표였던 실력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올리버와 함께 있노라면 아버지 생각이 조금은 덜 나거든. 그래서 좋다.

    “뛸게요! 50바퀴!”

    “잘 생각했느니라.”

    “그 대신! 저녁밥은 스승님께서 차려주셔야 합니다! 설마 저 넓은 비무장을 50바퀴 뛰고 밥까지 차리라는 건 아니시겠죠? 그건 진짜 왕치사를 넘어서…….”

    “그리하마.”

    “……진짜요?”

    “감당할 수 있다면.”

    “감당……?”

    “맛을 말이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그랬지.

    애당초 요하나가 수련을 시작한 이후 쭉 식사 당번이었던 까닭.

    그건 전적으로 요하나의 선택이었다. 왜? 올리버의 요리가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맛이 없었거든.

    “……아닙니다. 제자가 어찌 스승께 식사 준비를 시키겠습니까? 불초제자, 비무장 50바퀴를 마무리한 뒤 식사 준비에 나서겠나이다.”

    “그럴 필요 없다. 식사 준비야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상관이…… 있어요.”

    “어떤 상관?”

    “알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무슨 소린지 당최 모르겠군.”

    “다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맛을 감당할 수 있냐고 하신 거잖아요!”

    “글쎄,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몇 초 전에 말씀하셨어요! 몇 초 전에! 이게 기억이 나지 않으시면 지금 여기 계실 게 아니라 우리 엄마한테 가야 해요! 치료받으러!”

    버럭 고함치는 요하나의 반응이 재미있어서일까? 잘 웃지 않기로 유명한 올리버가 피식 웃었다.

    “어어? 이거 봐요. 지금 웃으시잖아요? 다 알고 하신 말씀 맞네!”

    요하나는 알까? 휘하 기사단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황제 앞에서도 이토록 환한 미소는 드물다는 거.

    “알면 어서 연병장 50바퀴 뛰고 식사나 준비하거라. 배고프니까.”

    “와…… 진짜…….”

    솔직히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이안 공의 하나뿐인 딸아이다.

    근데 그 딸이 미래에서 왔단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받아들인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 그랬던 적이 있는데, 이제는 사제의 연까지 맺어버렸군.’

    이로서 올리버의 공식적인 제자는 카놀란과 요하나 두 명이 되었다. 설마하니 마법사를 제자로 받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뭐, 나쁘지는 않아. 딸 가진 아비의 행복이 이런 거구나 싶기도 하고. 이안 공에겐 미안하지만.’

    원래는 이안이 누려야 했을 아비로서의 그것도 딸 가진 아비로서의 소중한 추억일 게다.

    한데 정작 그 아버지는 막중한 임무를 띤 채 사지로 나가 있다.

    남아 있는 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행복을 가로챘다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미안하오. 이안 공. 그래도 내 조만간 도울 수 있을 것 같소. 조금만, 딱 한 꺼풀 깰 수 있다면…….’

    올리버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이안의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가기 직전, 딱 그 시점의 이안만큼 강해지자. 그리한다면 자신도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가 이안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목표는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득한 높이였다.

    꾸역꾸역 올라왔건만, 이제 조금 보이는 것도 같건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답답한 일이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그 소리에 요하나가 짐짓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더니, 아주 조심스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스승님.”

    “……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법사 아닌 기사로서, 이미 역사적으로 한계가 뚜렷한 무인으로서 그 경지까지 오르셨다는 건…… 솔직히 저희 아버지보다도 천재라고.”

    “…….”

    “단지 타고난……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뿐, 스승님께서도 아버지 못지않게 대단하시다고 봐요.”

    이안만큼.

    혹은 이안보다 더 대단하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당사자인 이안 페이지마저 그렇게 생각할 만큼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올리버의 생각은 달랐다.

    “요하나.”

    “네, 스승님.”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

    “마찬가지다. 나는 타고난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니어도 그렇게 믿는다. 그래야 핑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

    혈통, 재능, 재력, 기연, 운.

    탓을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렇기에 올리버는 과감히 그 탓이 될 만한 것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모든 것은 노력과 실력이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삶을 살아온 지가 벌써 수십 년째, 매 순간이 증명이었다.

    이번에도 가능할진 모르겠다만.

    “그러니…….”

    분명 무언가 더 이야기하려는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스승이 제자에게 해줄 말이야 차고 넘치니까.

    문제는 그의 입에서 말이 아닌 피가 뿜어져 나온다는 점이다.

    “쿨럭……!”

    각혈과 동시에 느껴지는 격통.

    눈앞이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이게 뭐지? 설마 죽는 건가?

    ‘무엇 때문에……?’

    냉정하게 생각하자.

    죽을 이유가 전혀 없다.

    매번 혹독한 수련을 펼쳤을지언정 육체의 상태는 언제나 최상으로 유지했다. 한데 급사를 한다?

    아니, 결단코 그럴 리 없다.

    분명 다른 까닭이 있을 터.

    “후우우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올리버가 크게 심호흡했다.

    무엇이 나타나든, 어떤 일이 벌어지든,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언제나 그래왔듯, 이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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