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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63화
[그게 그렇게 되나?]
‘아무래도 그렇죠.’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구먼.]
‘그러게나 말입니다.’
속에 능구렁이만 수천 마리를 품고 있는 두 존재의 치열한 공방전.
그 전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제 고향에도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로 말이죠.’
[글쎄, 잘 모르겠군. 말했다시피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이니.]
‘살아 있을 때는 저한테 도움이 되고, 죽어서는 하데스 님의 훌륭한 하수인이 되는 것 아닙니까?’
[몇 번을 얘기하나? 그리 말해도 나는 방법을 모른다네. 차라리 아폴론에게 문의해 보는 것이…….]
‘누가 해달랍니까? 그냥 우연의 일치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죠.’
[…….]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뉘앙스.
물론 그것은 하데스의 바람에 불과할 뿐, 본 게임은 지금부터였다.
‘조금 실망스럽네요.’
[……실망?]
‘적어도 이 필드 위에 저희 둘만 남을 때까지는 전적으로 믿어도 괜찮은 아군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나 싶네요.’
[착각……?]
‘지금부터는 저도 제 살길 알아서 찾아야겠습니다. 하데스 님만 믿고 있다간 일이 더 꼬이겠어요.’
제 살길 알아서 찾겠다.
이안의 푸념은 거기까지였다.
아예 작정한 듯 더 이상 하데스와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이봐, 칼리두 와탕카.]
“…….”
[아니, 이안 페이지.]
“…….”
[설마 진심으로 동맹을 파기하려는 게야? 고작 이따위 문제로?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
[감히 내 말을 무시해? 별것도 아닌 중간계 나부랭이 따위가?]
“…….”
[하……!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한 내 삶을 통틀어 최악의 굴욕이로군. 네놈은 감히 나 하데스에게 모욕감을 줬어. 정녕 그 뒷감당을 견딜 자신이 있느냐?]
“…….”
아무리 말하고 또 말해도 마찬가지다. 이안은 단 한마디조차 대꾸해 주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본연의 목적지였던 올림포스 신전으로 향할 뿐이었으니, 슬슬 애가 타는 쪽은 오히려 하데스였다.
‘……가만, 이놈, 설마?’
제 살길을 찾는다면서 올림포스 신전으로 향하는 꼴이, 설마 제우스에게 일러바치려는 걸까?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가 남몰래 꾸미고 있는 모든 작당들을?
‘아니, 이제 와서 그럴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다. 그보다는…….’
혹시 자신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 이전으로 시간을, 그러니까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를 되감는 것.
만약 하데스가 이안이었다면 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터.
‘일이 틀어졌다고 느낄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란 무릇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까.’
물론 대다수의 존재는 불가능한 방법이다. 하데스가 파악하기로 오직 눈먼 아버지와 이안 페이지만이 가능한 일, 그러니 문제였다.
‘그건 곤란하지. 많이.’
애당초 하데스가 이안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일까?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의 흐름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이잖아?
오직 그 과분한 능력 탓에 벌레만도 못한 놈과 동등한 위치에서 손까지 잡았거늘, 그 모든 노력과 인내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고?
‘……혹시 모르는 일이지. 이미 수차례 물거품이 되어왔을지도.’
그러니 더더욱 아니 된다.
놈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당장 파악하기에는 조금 특별한 중간계인에 불과하니, 시계탑의 지배자이자 명계의 왕씩이나 되어서 그런 벌레만도 못한 나부랭이에게 유린만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존심은 상하지만, 별수 없나.’
마음을 굳힌 하데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굳게 닫힌 입술을 뗐다.
[멈춰라.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안의 걸음이 멈췄으니까.
[다만 여기서는 속 편하게 나누기 어려운 대화다. 별문제야 없겠다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이안이 좋아하는 말이다.
‘좋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누군가 이안의 정면에서 뚜벅뚜벅 다가왔다. 정갈한 의복 차림의 깡마른 슈페리언이었는데, 느껴지는 기운이 하데스와 똑같았다.
덩치는 일부러 이안의 몸집과 맞춘 듯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하데…….”
“쉿, 그 이름 말고.”
목소리 역시 비슷하다.
하데스의 분신이 분명했다.
“플루토스, 라고 불러.”
하데스, 아니, 플루토스.
그가 앞장서 걸으며 읊조렸다.
“미리 말해두지만, 내 연구가 그대의 기준에서 조금 엇나가 있을 수도 있다. 여러모로 말이지.”
“그게 무슨……?”
“직접 보면 알 거야. 대신 약속 하나 해줬으면 좋겠군.”
“말씀하시죠.”
“앞으로 보여줄 모든 것은 전적으로 그대가 원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허니 무얼 보든 그러려니 해.”
“…….”
“괜히 토 달거나 항의하지 말고.”
“…….”
“만약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면 나도 그대와 함께할 마음이 뚝 떨어질 것 같군. 명심하도록.”
그것은 명백한 경고였다.
하도 원하니 비밀리에 진행 중인 무언가를 보여주긴 할 건데, 그 이상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 말이다.
“자, 그럼 움직여볼까?”
본체가 아닌 분신이라서 그럴까?
하데스는 여타 지배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차원문을 열지 않았다.
그 대신 두 발로 직접 걸어 성문을 나섰고, 나와서도 한참 걸었다.
오직 남쪽을 향해서 하염없이.
그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이쯤이 좋겠군.”
“다 온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시계탑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까?”
시계탑의 시야.
그 말에 이안이 지금껏 이동한 거리를 빠르게 복기해 뒀다.
“그러고 보니 내 연구실에 멀쩡한 상태로 들어오는, 그리고 멀쩡하게 나갈 이는 그대가 처음이겠군.”
하데스가 그리 읊조리며 손짓하자 비로소 지배자들이 부리는 차원문이 나타났다. 그가 말하는 ‘연구실’로 통하는 문이 아닐까 싶다.
“가지.”
앞장서 들어가는 하데스.
그 뒤를 바짝 쫓아가는 이안.
그들의 육신이 시공간을 넘었다.
“내 연구실에 온 걸 환영한다. 모쪼록 편히 구경하다 돌아가기를.”
차원문을 넘어 도착한 이곳.
일컫길 하데스의 비밀 연구실.
그곳에 처음 도착한 이안의 첫인상을 몇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건 아무리 봐도 연구실이 아니라…… 그냥 고문실이잖아?’
사방을 빼곡하게 채운 철장 안쪽으로 수많은 사람이,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수많은 머릿수의 다양한 종족들이 감금되어 있었다.
만약 감금만 당한 상태였다면 조금 덜 심각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진짜 문제는 그들의 상태였다.
너무나도 명백한 ‘생체실험’의 흔적들이 두 눈에 들어왔으니, 새삼 하데스가 어째서 선을 넘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여러 중간계의 지성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슈페리언까지 실험의 대상으로 쓰이고 있다. 이 자한테는…… 선이라는 게 없어.’
물론 명계의 지배자답게, 죽은 자들의 왕답게 굉장히 비상식적인 존재일 거라고는 충분히 예상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예상하는 것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일종의 괴리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런 자가 나에게 유독 호의적이라는 건, 아니, 호의를 넘어 굴욕까지 감수한다는 건 단순히 나와 맺은 협상 때문만이 아닐 거다. 예컨대, 뭔가 더 알고 있다든지…….’
“나는.”
이안의 생각이 어느 지점에 닿는 순간, 하데스가 말을 걸어왔다.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하는 걸 넘어서 아예 새로운 일을 만들기도 하지.”
아예 새로운 일.
명계의 왕이 양쪽 팔로 연구실 일대를 넓게 가리키며 읊조렸다.
“망자는 곧 나와 내 군대의 힘이다. 망자들의 힘이 강할수록 내 군대의 힘 역시 강해지는 법이지.”
“…….”
“그런데, 이미 한 번 망자가 된 이들은 그 영혼에 각인된 한계가 있다. 더 강한 하수인으로 만들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아.”
문득 미첼 그린리버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 명계의 검투사가 수행하고 있는 천 번의 우승 말이다.
예컨대 그 천 번의 투기장 우승은 영혼에 각인된 한계를 허물어줄 일종의 의식이 아닐까 싶다.
“해서 방법을 조금 바꿨다. 이미 생전에 강해질 대로 강해진 망자들을 대거 육성하는 쪽으로.”
하데스가 손짓하자 연구실의 생체실험 대상자들을 관리 감독하던 하수인 한 명이 포도주가 담긴 잔을 가져와 하데스에게 건넸다.
자세히 보니 그 하수인은 산 자가 아닌, 죽은 자의 빈껍데기로 되살아난 좀비였다.
“문제는 그대도 알겠지만, 어느 정도 힘이 생긴 놈들은 꼭 영생을 바라기 시작해. 꾸역꾸역 수명을 늘리는 바람에 명계로 떨어지는 시간이 자꾸만 늦춰지지. 그런데 마침 아폴론이 제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네 번째 중간계를 폐기한다더군. 고맙게도 말이야.”
아폴론이 시작한 부분적 재구성.
이는 곧 수많은 네 번째 중간계인들이 망자가 된다는 뜻 아닌가?
명계의 왕으로서 이는 기회였다.
강력한 망자들을 대거 확보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 말이다.
“그다음부터는 뭐, 그대의 추측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성공적이었고, 나의 군대는 양질의 병력을 얻었지. 앞으로도 그럴 거고.”
네 번째 중간계인들은 자신들의 각성 현상을 위기에 빠진 인류의 마지막 생존본능, 혹은 인류를 가엾게 여긴 신의 축복이라 여겼다.
그러나 실상은 명계의 왕, 하데스가 품은 야망의 결과에 불과했다.
“그럼 혹시 제 고향은…….”
“아, 거기도 조만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마침 그대를 만나서 말이야. 그쪽은 당분간 보류다.”
“그렇군요.”
이안이 두 눈을 감았다.
약간의 고민이 필요한 순간.
물론 그 고뇌가 길지는 않았다.
“……그 보류, 철회하시죠.”
이안 때문에 멈췄다는 그 장난질을 보류하지 말고 계속해라.
“아까 말씀드린 거, 살아 있을 때는 저에게 도움이 되고, 죽어서는 하데스 님께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 진심입니다. 그러니 보류할 필요가 없죠. 계속 진행합시다.”
계속 진행하자.
그 요구에 하데스가 진심으로 의외라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솔직히, 나는 그대가 당장 이 연구실부터 트집을 잡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원래 하찮은 존재일수록 자기들만의 도덕적 잣대 따위에 얽매이는 법이거든.”
하찮은 존재들.
그 표현은 곧 시계탑의 지배자를 제외한 전부를 뜻하는 표현일 터.
“헌데 지금 보니…… 벌써 한 꺼풀 벗어던졌군. 더는 그대에게 하찮은 족속 특유의 악취가 진동하지 않아. 오히려 지배자로서의 품격마저 느껴지는 것 같군.”
악취 대신 품격이 느껴진단다.
지배자로서 갖추어야 할 품격이.
“축하한다. 이안 페이지, 그대에게서 이전까지는 없었던 가능성이 느껴지는군. 어쩌면…… 정말 나와 동등한 위치에 설지도 모르겠어.”
분명 칭찬을 해주는 것 같긴 한데, 이게 정말 칭찬이 맞는 걸까?
인간이라면, 제대로 된 인간성을 갖춘 지성체라면, 칭찬보다는 악담으로 들려야 정상이 아닐까?
근데 왜 자꾸 칭찬처럼 들리지?
“…….”
이안이 어떤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하데스 말하는 ‘품격 있는 행동’을 멈추고 싶진 않았다.
괴물을 잡기 위해서는 똑같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따라 그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