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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47화 (24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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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61화

    ‘이건 참…… 알고 봐도 적응하기 힘드네. 도저히. 진짜 괴물인가?’

    단숨에 수백 마리 괴수는 물론.

    균열마저 얼려 버린 냉기 마법.

    냉기 계열 마법사로 각성한 헌터들과 궤를 달리하는, 그야말로 초월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으리라.

    ‘이런 괴물 멱살 잡고 날 도와라 배짱을 부렸다니, 예전부터 느끼지만 나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하기야, 더는 온전한 정신만 붙들고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 아닌가?

    잘했다. 참으로 잘했어. 차민성.

    스스로를 다독인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저 균열 너머에는 이거보다 더 무지막지한 강자들이 넘쳐흐른다, 뭐 이런 뜻이죠?”

    “정확합니다. 넘쳐나죠. 저를 벌레 잡듯 죽일 수 있는 존재들이.”

    “혹시 아까 했던 말 취소 가능합니까? 그자들 면상에서 눈깔 하나는 뽑아야 죽을 수 있다는 거.”

    “무르기 없습니다.”

    “하, 이거 큰일이네.”

    차민성이 너스레를 떠는 사이.

    경복궁 하늘에 나타났던 수십 개의 붉은 균열이 소멸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일대를 가로막았던 보호막도 사라졌으니,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던 지원팀 헌터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민성에게 물었다.

    “차민성 헌터! 괜찮으십니까?!”

    “예, 뭐, 보시다시피.”

    “죄송합니다! 균열 일대를 웬 방어막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어서…… 저희로서는 뚫고 들어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보호막을 동반한 균열 같은 건 처음이다 보니…….”

    “괜찮습니다. 저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보다 저 대신 균열 봉쇄 보고부터 올려주실래요?”

    “아! 물론입니다. 저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쉬고 계십시오. 지원 3팀! 차민성 헌터를 병원으로…….”

    “아뇨, 병원까지 갈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앉아서 좀 쉬면 돼요.”

    민성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둠의 춤을 쓴 부작용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힘이 없었다.

    “저기, 그런데 이분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점이다.

    차민성 헌터야 그렇다 치고, 그와 함께 있는 이 서양인은 누굴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원팀장 조성환의 물음에 차민성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답했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무언의 뜻.

    다행히 조성환은 눈치가 빨랐다.

    “……그럼 본격적으로 뒷정리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차민성 헌터님.”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뒷정리 과정에서 추출되는 마정석과 부속물은 전부 차민성 헌터님의 개인 창고로 귀속을…….”

    “아뇨, 이 현장에서 나온 부속물들은 전부 지원팀 몫입니다.”

    “……예? 하, 하지만.”

    “저는 딱히 필요 없거든요. 능력상 쓸 일도 없고, 가져다 팔기에는 제 계좌에 돈이 좀 많으니까요.”

    “아…….”

    “챙길 수 있을 때 챙기세요.”

    “……감사합니다. 헌터님한테는 어째 매번 받기만 하는 것 같네요.”

    종로구 지원팀장 조성환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무래도 그가 차민성의 안위를 그토록 걱정했던 까닭은 단순히 그가 인류 최후의 희망이라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 있어서요.”

    지원팀장 조성환이 내어준 헌터 전용 체력 회복제 한 병을 쭉 들이켠 차민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하던 가이드 계속하러.”

    그가 말하는 ‘처리할 일’이란 바로 이안의 가이드 노릇을 뜻했다.

    “둘러볼 만한 곳은 다 둘러본 것 같고, 또 본의 아니게 재밌는 구경도 시켜드렸으니…… 가이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죠. 대신 부탁하셨던 숙소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민성이 덜 회복된 몸을 이끌고 균열이 발생했던 경복궁을 빠져나갔다. 이안 역시 한동안 침묵을 지킨 채 그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사실 이안은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가이드나 숙소 따윈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고? 간단하다. 민성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그것도 많이.

    “보아하니 뭔가 생명력을 갉아먹는 기술이라도 쓴 모양인데, 가서 제대로 된 치료부터 받으시죠.”

    즉각적인 치료는 중요하다.

    자칫 시기를 놓친다면 그 후유증이나 증상이 평생 갈지도 모른다.

    무려 90점을 확보한 최상급 인재 아닌가? 이렇게 잃고 싶진 않았다.

    “진짜 괜찮습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아는 약국이 있는데, 거기 가서 주는 약 몇 병 받아먹으면 돼요.”

    약국?

    약 몇 병 받아먹는다는 표현으로 미루어보건대, 연금술사가 차린 비약 상점이라도 되는 모양이리라.

    “여기도 연금술사가 있나 보군요.”

    “예 뭐, 흔하진 않아도 몇몇 있긴 하죠. 공식적인 건 아닙니다만.”

    대충 중얼거린 차민성이 근처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로 향했다.

    이안을 안내하며 계속 몰고 다닌 차량인데, 저 균열 너머의 존재는 자동차를 ‘쇳덩이 마차’라 불렀다.

    “타십쇼. 당분간 묵으실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헌터들 전용 호텔처럼 쓰이는 곳인데, 시설 좋고 깔끔해요. 만족하실 겁니다.”

    “호텔은 또 뭡니까?”

    “돈 내고 쓰는 숙소라고 보시면 되는데, 혹시 여관은 아십니까?”

    “알죠.”

    “그 비슷한 겁니다.”

    이쪽 세계의 헌터 전용 호텔.

    그러니까 헌터 전용 여관이라.

    ‘내 고향으로 따지자면, 용병들이 장기 투숙하는 여관 같은 건가?’

    그렇게밖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뭐, 시설만 좋다면야 상관없다.

    고개를 끄덕여준 이안이 쇳덩이 마차 안에 올라탔다. 마차를 운전하는 차민성의 바로 옆자리였다.

    “잠시.”

    그러고는 손짓 몇 번으로 차민성의 상처와 피로를 일부 치료했다.

    명색이 치료 계열 마법학파의 창시자이며 수장이 아내 아니던가?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지.

    “이제 당분간은 그럭저럭 버틸 만할 겁니다. 그래도 치료는 받으세요. 아직 부탁할 게 많으니까요.”

    그날 이후.

    종로 헌터 지원팀을 필두로 세간에는 어떤 가십이 돌기 시작했다.

    인류 최강의 남자 차민성이 전투를 끝내자마자 쉴 겨를도 없이 운전석으로 달려가게 하는 남자.

    그 장발의 서양인은 누구인가?

    * * *

    “부탁하신 것들입니다.”

    정확히 보름이 지난 오늘.

    약 15년 전부터 국제헌터협회의 소유물이 된 63층짜리 건물 지하.

    그 널따란 공간을 방대한 양의 종이뭉치가 독차지하였으니, 이는 모두 이안이 부탁한 ‘자료’였다.

    “이쪽으로는 각종 현대 무기 및 헌터 전용 무기에 관한 자료들이고, 반대편에 있는 저쪽이 바로 저희 쪽에서 지난 20년간 꾸준히 연구해온 각성 관련 자료들입니다.”

    이안이 부탁했던 두 부류의 자료 더미를 가리키며 협회장 웨인 베르너가 읊조렸다.

    그는 대격변 이후의 세계 평화를 책임지는 헌터 집단의 수장답게 각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여 이안이 요구한 자료를 빈틈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보이시는 것처럼 물량이 너무 많다는 건데, 혹 말씀하셨던 방법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간단합니다.”

    이안이 서면 자료로 가득한 지하 공간 한가운데까지 성큼성큼 나아갔다.

    어디 그뿐일까? 지팡이를 쥐지 않은 왼쪽 손바닥 위에 상당량의 마나를 끌어모아 응집시켰다.

    “여기에 저장할 겁니다.”

    “……예? 그, 그게 무슨.”

    마나로 빚어진 푸른색 구체.

    이안이 그 마나 수정구를 잡더니 서면 자료가 쌓인 쪽으로 뻗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나 수정구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색 빛이 서면 자료 중 일부를 비췄고, 그 빛을 머금은 종이뭉치로부터 문자가 추출되기 시작했다.

    “……!”

    눈에 보인다.

    자료에 적힌 글자들이 푸른 마나로 이루어진 제국어가 되어 종이 바깥으로 추출되는 모습이.

    뿐만 아니라 이안의 마나 수정구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까지 전부.

    ‘저, 저게 말이 돼……?’

    ‘우리도 아직 저런 기술은…….’

    ‘역시 외계인은 외계인인가?’

    그 광경에 협회장 웨인 베르너는 물론 헌터들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는데, 그중 오직 차민성만이 익숙한 듯 평온해 보였다.

    ‘저런 걸 한두 번 봤어야지.’

    그는 지난 보름간 이안을 담당하여 실로 많은 것들을 목격했다.

    단순히 그가 지닌 엄청난 힘뿐만 아니라 지금 저 모습처럼 여러 종류의 자잘한 편의적 능력들을 목격하고 놀란 경험이 많다 보니, 이제는 뭘 봐도 덤덤하게 느껴졌다.

    “됐습니다. 준비해 주신 자료들은 제 방식대로 건네받았으니, 여기 있는 것들은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아, 예. 알겠습니다.”

    고작 두 개의 마나 수정구로 모든 정보를 습득한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에 마나 수정구를 담았다.

    그러고는 이 모든 자료준비의 책임자였던 협회장 웨인 베르너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읊조렸다.

    “무리한 요구였을 텐데, 흔쾌히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답례로 말씀드렸던 세 번째 방법, 반드시 성사시켜서 돌아오도록 하죠.”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만 된다면 텅 빈 도시 몇 개쯤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미 각국 정상들과 합의도 끝났습니다.”

    협회장이 악수한 손을 꼭 잡으며 재차 부탁했다. 살아남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 시간 흐름이 달라서 그런 거니 양해해 주시고요.”

    이제 돌아가서 이들에게 제안한 세 번째 방법을 실행할 차례였다.

    물론 여기서 얻어낸 자료를 고향에 보내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차민성 씨.”

    “아, 네. 말씀하세요.”

    “돌아가기 전에 따로 할 얘기가 있습니다. 잠깐 시간 좀 내시죠.”

    이상하다.

    이미 보름간 거의 붙어있다시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건만.

    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걸까?

    “이쪽으로.”

    이미 몇 번 오고 가서 그럴까?

    자연스레 협회 건물 밖으로 향하는 이안이었으니, 그 뒤를 따라나온 차민성이 두 귀를 쫑긋 세웠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보여줘요? 저한테요?”

    “네, 다른 사람들 말고, 오직 차민성 씨 혼자서만 봐야 합니다.”

    오직 너 혼자 봐라.

    도대체 무엇이기에?

    “받으시죠.”

    “이건……?”

    그 정체는 조금 전 자료들을 취하면서 사용했던 마나 수정구였다.

    이걸 갑자기 왜 주는 걸까?

    “아까 쓴 수정구와는 다른 물건입니다. 거기에는…… 제 개인적인 기억들이 담겨 있죠. 물론 전부는 아니고, 차민성 씨한테 전달하고 싶은 기억만 골라서 말입니다.”

    기억 중 일부가 담긴 수정구.

    그걸 받아든 차민성이 물었다.

    “무슨 기억이기에…….”

    “보면 압니다. 그간 제가 쭉 지켜본 차민성 씨라면…… 거기 담겨 있는 기억이 제법 달가우실 겁니다.”

    달가운 기억이라.

    차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히 이게 뭔가 싶긴 한데, 그럼에도 강렬한 호기심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존재가 권하는 것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간 괜히 큰 손해를 입을 것 같았거든.

    “……어떻게 읽으면 됩니까?”

    “그냥 꼭 쥐고 계십시오. 나머지는 수정구가 알아서 해줄 테니.”

    “…….”

    가볍게 호흡한 차민성이 이안의 말대로 마나 수정구를 꼭 쥐었다.

    그러자 곧 수정구에 담겨 있는 기억들이 차민성의 왼손과 팔을 통로 삼아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큭……!”

    워낙에 방대하고도 생소한 기억의 파도가 밀려 들어와서 그럴까?

    약간의 두통을 느낀 차민성이 신음하면서도 꾸역꾸역 버텨냈다.

    읽으면 읽을수록 버틸 만한 가치가 있는 기억이었으니 말이다.

    “이, 이게 도대체……?”

    먼저 이 균열 너머에서 온 남자.

    그의 진짜 이름은 칼리두 와탕카가 아닌, 이안 페이지였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중간계인이었고, 멸망을 눈앞에 뒀으며,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하여 다른 세계까지 넘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바치고 있는 존재.

    그런 존재의 투쟁기가 자그마한 수정구 안에 담겨 있으니, 두통쯤이야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저도.”

    그렇게 이안이 건네준 수정구 속 기억들을 한참 곱씹고 또 곱씹었던 차민성이 마침내 입술을 뗐다.

    “당신처럼 할 수 있는 겁니까?”

    짐짓 떨리는 차민성의 목소리.

    그 떨림은 공포나 두려움 따위가 결단코 아닌, 명백한 ‘희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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