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46화 (246/342)
  • 246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60화

    차민성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그것도 무려 특수임무를 주로 수행하는 제707특수임무단 소속이었던 만큼 온갖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었는데, 20년전 대격변 당시 최초의 균열 앞에서 끝까지 맞서 싸운 것도 제707특수임무단, 그리고 차민성의 아버지 차태준이었다.

    그는 괴물에게 화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류 최초로 파악하고 보고한 군인으로서, 여러 균열 보고서 및 역사 기록에 꾸준히 회자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차민성은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고, 최초의 균열 전투에서 사망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초의 헌터’이자 ‘최후의 희망’으로 거듭났다.

    ‘싸우다가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거 보면 이거, 위기긴 한가 보네. 레르니안 히드라 이후 처음이니…….’

    위기가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게, 너무 늦어진다.

    균열이 발생한 지 벌써 1시간째.

    지원팀에서 보충인력을 보냈어도 진즉 도착하여 합류했을 시간이건만, 헌터 차민성은 여전히 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군다나 이곳은 경복궁이잖아?

    서울에서도 중심지에 발생한 균열을 감지하지 못하였을 리도 없거니와, 설령 놓쳤다고 한들 무수히 많은 신고가 들어갔을 터.

    ‘쉽지 않겠어.’

    처음 짐작이 정확했다.

    A급 이상 괴수종이 끝을 모르고 쏟아지는 균열, 협회에서는 이러한 균열을 S급 균열이라고 명명했다.

    S급 헌터 1인이 혼자만의 힘으로 봉쇄할 수 있는 정도의 균열이란 뜻인데, 문제는 그러한 균열이 경복궁 일대에만 수십 개라는 거다.

    S급 균열이 수십 개면 제아무리 S+급 헌터 차민성이라고 한들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장기전 양상이라면 더더욱.

    ‘나 혼자서 모든 균열을 봉쇄하는 건 무리고, 어떻게든 지원팀이 올때까지는 버텨야 할 텐데…….’

    그나저나, 여기서 죽으면 현충원에 묻어주겠지? 이왕 죽는 거 아버지 곁에 묻히면 참 좋을 텐데.

    ‘……벌써부터 땅에 묻힐 생각이라니, 안 되지. 할 일이 많잖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의 신은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적어도 오늘은 안 돼.’

    낫 투데이.

    오늘은 아니야.

    내가 죽을 날이.

    ‘버텨보자. 어떻게든.’

    피식 웃은 차민성이 양손에 쥔 단검 한 쌍을 빙그르 돌려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측정불가 등급 균열에서 나타난 레르니안 히드라의 어금니로 만든 단검 아닌가? 이거면 앞으로 1시간 정도는 족히 더 버틸 수 있으리라.

    “후우우우…….”

    깊은 호흡.

    차가운 눈빛.

    차민성이 자신을 휘감고 있던 새까만 기운, 이른바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디 그뿐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괴수들의 틈바구니로 재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림자 밟기.’

    한때 그림자 사냥꾼이라 불렸던 차민성의 고유 기술, 그림자밟기.

    그림자 그 자체가 되어 일대를 누비는 접근기와 함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작금의 전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비기까지 발동시켰으니…….

    ‘어둠의 춤’

    남은 체력과 정신력을 모조리 불태워 신체 능력의 비약적 강화를 꾀하는, 나아가 모든 공격에 어둠 속성을 부여하는 그림자 사냥꾼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궁극기, ‘어둠의 춤’ 이 차민성을 고무시켰다.

    두 눈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시꺼먼 안광이야말로 그 증거였다.

    파바밧!

    그림자와 혼연일체가 된 차민성의 전투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균열 너머에서 튀어나오는 A급 이상의 괴수들, 일반 화기로는 흠집조차 내기 힘든 그들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 해체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모양새가 사뭇 기괴했다.

    “후욱……!”

    빠르게 쌓이는 괴물들의 시쳇더미에서 차민성이 입김을 내뿜었다.

    어둠의 춤의 최대 지속 시간은 기껏해야 1시간 남짓, 그 안에 지원팀이 도착하거나 균열이 소멸하지 않는다면 차민성은 죽고 만다.

    그 목숨을 건 사투가 어떠한 결말에 도달할지는…… 글쎄, 아직 누구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 사람만 빼고.

    * * *

    “팀장님, 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빈틈이 아예 없어요!”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도요! 지금 차민성 헌터는 저 안에 완전히 고립된 겁니다!”

    “으음…….”

    한편.

    차민성의 추측과 달리 종로구 일대 균열 지원팀 소속 헌터들은 균열 발생 10분을 넘기기 전에 도착한 상태였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보호막이 동반된 균열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종로구 지원팀장 조성환이 이를 까득 물었다.

    살다 살다 이런 균열은 처음이다.

    실제로 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희귀 균열 사례집에서 조차 읽어본 적 없는 균열이었다.

    ‘이를 어쩐다……?’

    이미 상부에 보고는 올렸다.

    곧 특별관리팀을 파견한다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 아직 뚜렷한 대처법이나 지원은 받지 못했다.

    아마 시간이 꽤 걸리겠지.

    ‘제아무리 차민성 헌터여도 S급 균열 수십 개를 혼자 감당하는 건 사실상 무리일 텐데…….’

    문제는 저기 고립된 차민성이다.

    그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 아닌가?

    그런 이가 여기서 죽고 경복궁마저 폐허로 변한다면? 그 여파는 이루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터.

    “……새로운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전원 지정된 위치에서 균열을 예의주시한다. 사소한 변화라도 감지되는 즉시 보고하도록.”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관망뿐이었으니, 지원팀장 조성환의 명령 아래 지원팀 소속 헌터 30인이 사방으로 흩어져 균열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 * *

    ‘저쪽은 이거면 됐고.’

    한편.

    모습과 기척을 완벽하게 숨긴 이안이 헌터지원팀의 행적을 살피고는 만족한 듯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마음 편히 감상해 볼까?’

    헌터지원팀이 정체불명의 보호막에 가로막혀 민성을 도울 수 없는 까닭, 그 배후에는 칼리두 와탕카가, 아니, 이안 페이지가 있었다.

    ‘한 세계를 짊어진 자의 끝을.’

    그 끝이란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

    아니, 죽음‘만’을 뜻하지 않았다.

    한 세계를 짊어진 존재로서 얼마나 버티는가? 어디까지 보여주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해내는가?

    그런 것들을 살펴보고 싶었다.

    좀 더 진득하게 말이다.

    ‘그래야 판단할 수 있으니까.’

    슈페리어와 중간계의 격차를 체감하면 체감할수록 이안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확신이 굳어졌다.

    그건 바로 이안 혼자만의 힘으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애당초 그렇기에 고향 땅의 문명 발전을 앞당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필요하다면 내 고향뿐만 아니라 나머지 여덟 중간계의 손까지 빌려야 한다. 그렇게 모든 힘을 긁어모아도 장담키 힘든 싸움이잖아?’

    물론 힘을 긁어모은다고 해서 어중이떠중이들의 힘까지 모을 필요는 없다. 그래 봐야 불필요한 희생만 늘어날 뿐이니까.

    그러니 선별하려는 거다. 계속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그런 동력이 충분한 이들을.

    ‘일단은 60점 정도인가.’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첫 번째 예비전력 ‘차민성’의 점수는 대략 60점 남짓에 불과했다.

    물론 현재의 점수일 뿐,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보아하니 먼가 제 생명력 깎아 먹는 기술이라도 부린 모양인데, 저대로 끝나면 좀 아쉬울 것 같군.’

    표현 그대로 목숨 바쳐 끝까지 싸운다, 물론 대단한 일이다.

    숭고한 희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안이 보고자 하는 ‘끝’이란 단지 대단함에서 끝날 희생정신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덜 추상적인 무언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눈앞에 도사린 문제를 해결해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리고 실질적인 성공.

    그런 것들을 보고자 했고, 차민성은 아직 그 단계에 닿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자기 목숨 버려가면서 시간 버는 거 말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보여줘라.

    한 세계를 오롯이 짊어진 자의 특별함을, 머리 위에 도사린 모든 적을 부수고 또 부수는 저력을.

    ‘그래야 그 저력만 믿고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이안의 바람이 통한 걸까?

    무아지경에 빠져 괴수들을 도륙하기만 하던 차민성이 멈칫거렸다.

    ‘역시, 아직 보여줄 게 더 남았나 보네. 내 진즉 이럴 줄 알았…….’

    이안이 안도하는 그 순간.

    ‘……어?’

    그의 바람과는 달리 민성은 여태껏 숨겨왔던 비장의 무기라든지, 기술이라든지, 기타 이안이 바랐던 통상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새까만 안광이 피어오르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가 싶더니.

    “……!”

    무려 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보이는 모습과 기척, 기운 따위를 완벽하게 감춘 이안과 말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간 여러 과업을 수행하면서. 나아가 몇 가지 강력한 아티펙트를 통하여 끌어올린 ‘격’이 있다.

    이만한 격이면 최상급 지배자의 눈조차 잠깐은 속일 수 있겠거니 싶었거늘, 설마 이걸 감지했다고?

    시계탑의 지배자가 아닌, 기껏해야 이안보다도 훨씬 약한 차민성이?

    ‘감지 쪽으로 특화된 건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

    중요한 건 차민성의 기행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싸우다 말고, 여전히 균열에서 괴수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이안만을 바라봤다.

    팟!

    어디 바라보기만 할까?

    아예 이쪽으로 다가온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대체 무얼 하려는 심산일까?

    “칼리두 님.”

    차민성이 이안에게 말을 걸었다.

    등 뒤에서 괴물들이 달려들고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좀 도와주십쇼.”

    “……?”

    “뭐가 잘못된 건진 모르겠는데 나혼자서는 힘듭니다. 그러니 거기서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도와줘요.”

    “…….”

    “나 죽으면 당신 같은 괴물 가이드 노릇 해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나마 나 정도 되니까 당신 앞에서 말이라도 몇 마디 하지, 다른 사람들은 그게 가능할 성싶어요?”

    “…….”

    “내가 여기서 죽으면 이 균열은 당신이 한 짓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요. 그럼 그쪽이 원하는 자료, 정보, 데이터, 아무것도 얻지 못할 테고.”

    “…….”

    “보아하니 우리한테 따로 바라는게 있어 보이던데, 그거 내가 협조 해줄 테니까 한 번만 좀 도와줍시다. 나 아직 죽으면 안 되거든. 살아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

    “특히 당신이 말했던 그 뭐야, 지배자들? 아무튼 그런 족속들이 내 머리 위에서 나를 장난감 취급한다는데, 여기서 죽을 순 없잖아?”

    “…….”

    “못해도 그 면상은 보고, 어떻게든 눈깔 하나라도 파버리고 죽어야 속이 시원하지. 안 그래요?”

    “…….”

    “그러니까 힘 좀 보태요. 살려달라고. 여기서 죽으면 억울하니까.”

    “…….”

    그저 속에 있는 말을 모조리.

    뒷감당할 생각 없이 쏟아낸다.

    언뜻보면 그리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 이안이 느끼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된 말처럼 들렸다.

    ‘내가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다른 뜻이 있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그 뜻이 명령을 내린 지배자의 뜻에 반하는 사실도 파악했어. 그러니 저런 발언으로 나를 부추기려 드는 것이겠지.’

    보기보다 영리한 자다.

    흐름을 읽는 눈이 있고, 과감하게 나설 줄 아는 추진력도 갖추었다.

    전투에만 능한 게 아니라는 뜻.

    ‘재밌네. 이건 예상 밖이야.’

    설마 숨어 있는 자신을 찾아내서 협상으로 해결하고자 할 줄이야.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모름지기 한 세계를 짊어진 자라면 이 정도 뻔뻔함은 보여줘야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법.

    “……구십 점.”

    “네? 구십 점? 갑자기 뭔…….”

    “살려주겠다는 뜻입니다.”

    거기까지였다.

    차민성의 뒤를 쫓던, 그의 뒤통수까지 접근했던 수십, 수백 마리 괴수들의 뜀박질이 멈춘 것은.

    그리고 그 수많은 괴수의 육신이 차디찬 얼음 속에 갇혀 버린 것은.

    콰득, 콰득, 콰드드드드득……!

    지팡이 쥔 이안의 손짓 한 번.

    그거면 충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