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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57화
“사람……?”
“……사람이라고? 저게?”
“사람처럼 생긴 괴물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내가 못 본 건가?”
“아니, 정확해. 사람처럼 생긴 괴물은 나타난 적 없어. 한 번도.”
“그, 그럼…….”
“저건 뭐지……?”
의아함을 느끼는 헌터 연합.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어찌 되었든 균열 너머에서 나타났고, 차림새 역시 남다르지 않나?
모르긴 몰라도 이곳 사람이 아닌 것은 맞다. 그러니 경계해야겠지.
“내가 접촉하지.”
“……네가?”
“나밖에 더 있어? 여차하면 싸워야 하는데, 그럴 거면 내가 맞아.”
모두가 경계심만 세웠을 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때, 단검을 쥔 차민성이 앞으로 나서며 읊조렸다.
“다들 긴장하고 있어. 나 죽으면 니들도, 이 세계도 다 끝이니까.”
꿀꺽……!
차민성의 경고에 국제 헌터 연합 대부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진정한 종말이 눈앞에 있다.
조금은 실감 나기 시작했다.
“자, 그럼.”
백색 균열에서 나타난 인간.
차민성이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음, 헬로우?”
그러고는 가볍게 말을 건넸다.
단검 쥔 손을 흔들기도 했다.
“…….”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언어가 다른가 본데.
아니, 다른 게 당연한 건가?
“아아, 내 말 들립니까? 들리면 앞으로 좀 나와봐요. 아니, 아니지. 나오지 말고 그냥 거기 있어요. 거리 좀 두고 얘기합시다.”
“…….”
“흐음, 이거 말이 안 통하면 쉽지 않은데…… 이를 어찌한다……?”
헌터 차민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도 모든 감각을 내려놓지 않았다. 여차하면 전투 아닌가?
“이봐요. 뭐라 말이라도 좀…….”
“……적이 아닙니다. 일단은요. 그러니 경계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어? 말이 통하네?”
말이 통한다.
놀라운 일이다.
설마 여기 사람인가?
“누구십니까? 민간인이라면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근데 사실 민간인이 균열을 넘어올 리는 없으니…….”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사람은 아니다. 균열을 넘어오는 걸 똑똑히 봤잖아? 근데 뭘 더 고민해?
“우선 정말 적이 아니라면 손에 든 그 지팡이부터 내려놓으십쇼.”
민성의 요청에 균열 너머의 남자가 순순히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두 마리 뱀 장식이 지팡이 일부분을 휘감은 독특한 지팡이였다.
“좋아요. 그럼 이제 머리 위로 손 올리고 이쪽으로 나오면…….”
“이렇게 말입니까?”
“아, 네. 좋네요. 하하.”
순순히 따른다.
정말 적이 아닌 걸까?
“원래는 그쪽이 나온 균열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경계하는 것이니 양해 좀 해줘요.”
“네, 이해합니다.”
균열의 영향권 바깥으로 나온 그 정체불명의 남자는 밝은 갈색 머리칼, 푸른 눈, 하얀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서양인이었다.
다만 복색이 누가 봐도 이쪽 사람은 아니었으니, 정체가 뭘까?
“먼저 통성명부터 하자면, 제 이름은 칼리두 와탕카라고 합니다.”
칼리두 와탕카.
그것이 장발을 휘날리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소개한 이름이었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방금 말씀하신 그 괴물이 쏟아지는 문제, 그거에 관해서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쪽 황제와 독대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 * *
‘본의 아니게 소란을 떨었군.’
당초 계획은 그랬다.
몰래 와서 살펴보고자 했다.
일단 살펴봐야 어떻게 과업을 수행할지, 가능하면 완전한 재구성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지 따위를 알아볼 계획이었으니까.
‘나도 내 세상 지키겠답시고 이러고 있는데 죄 없는 남의 세상 멸망에 일조할 순 없잖아?’
그런데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넘어오자마자 네 번째 중간계인들한테 포위를 당해버렸다.
‘그냥 자리를 벗어나는 건 오히려 악수일 뿐이니, 어쩌겠어? 일단 적의가 전혀 없음을 보여줄 수밖에.’
다행이라면 말이 통한다는 거다.
물론 저들과 이안이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건 아니고, 그냥 통한다.
아마 높아진 ‘격’의 영향이리라.
‘……그나저나, 1티어의 문명이라는 게 이런 것이로군. 이쯤 되면 슈페리어보다도 놀라울 지경인데?’
그저 놀랍다.
별천지, 요지경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놀랍고도 놀라운 세계다.
‘왜 그렇게까지 경계를 하는지는 알 것도 같군. 다른 중간계와 문명의 수준이 너무 벌어져 있잖아?’
거대하고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
이끄는 말이 없음에도 바퀴가 굴러가는 쇳덩이 마차, 사람의 모습과 음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초대형 유사 수정구에 이르기까지.
“신기하신가보네요. 저희 세상이.”
열심히 구경하는 이안에게 차민성이 물었다. 그는 균열 너머로부터 넘어온, 그럼에도 아무런 적의가 없는 이안을 시꺼먼 쇳덩이 마차에 태워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네, 신기하네요. 여러모로.”
“균열 너머에서 오셨다는 건 곧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뜻인데, 괴물들과 같은 곳에서 오신 건가?”
“그렇긴 한데, 제가 보낸 건 아닙니다. 조금 복잡한 문제라서…….”
물론 적의가 없다고 해서 처음부터 이리 협조적인 것은 아니었다.
차민성 말고 다른 헌터들이 믿을 수 없다며 이안을 공격했으나, 그야말로 순식간에 제압당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차민성을 포함한 헌터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싸우면, 저 칼리두 와탕카란 남자와의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무조건 진다. 일방적으로 말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 남자가 본색을 드러낸다면…… 그때는 정말 자폭이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군.’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만한 강자는 처음이다.
호승심조차 발동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건대, 적이 아니기를 바란다. 처음으로 신께 기도한다.
“……참, 그리고 저희 세상에는 왕이나 황제가 없습니다.”
“없으면 누가 통치를 합니까?”
“대통령이…… 아니, 아닙니다. 물론 저희도 예전에는 다 있었죠. 왕도 있고, 황제도 있고, 근데 이제 다 사라졌습니다. 이래저래 많이 바뀌었는데…… 음, 제가 역사나 정치 쪽은 영 젬병이라 설명 드리기가 어렵네요. 이 부분은 조금 있다가 전문가 한 명 붙여드리죠.”
차민성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왕도 없고, 황제도 없는 세상이라니. 그럼 국가의 통치는 누가 담당한단 말인가?
“……그럼 지금은 누굴 만나러 가는 겁니까? 저는 분명 이곳 황제와의 독대를 요청드렸을 텐데.”
이안의 목소리에 짐짓 노기가 어렸다. 속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아, 물론 왕이나 황제가 없어졌다 뿐이지 비슷한 일을 하시는 분들은 있습니다. 그 양반한테 가는 중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차민성의 급한 해명이 먹혔다.
노기가 사라진 이안이 조금은 편해진 쇳덩이 마차의 소파에 기댄 채 다시금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근데, 저건 뭡니까?”
“예? 어떤……?”
“강가 너머에 저 크고 높은 건축물 말입니다. 혹시 상아탑입니까?”
“상아…… 뭐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왠지 모르겠는데, 부끄럽다.
더 물어보기 껄끄러울 만큼.
그런 이안의 반응을 느꼈을까?
차민성이 황급히 주제를 바꿨다.
보기보다 빠른 눈치의 소유자다.
“그건 그렇고, 칼리두 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니면 그쪽 세계만의 호칭법이 있다거나…….”
“그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칼리두 님.”
“네. 듣고 있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방금 가리키신 빌딩이 협회 사옥이거든요.”
빌딩, 협회, 사옥……?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하지만 왠지 더 물어보기 싫다.
방금 전까진 부끄러웠다면, 지금은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으니까.
* * *
국제 헌터협회는 이안이 궁금증을 느꼈던 유사 상아탑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본디 다른 용도로 쓰이던 건축물이었으나, 대격변 이후 줄곧 헌터협회의 사옥으로 쓰였다.
“여기도 마도공학이 있나 봅니다.”
“예? 마도공학이요?”
“지금 타고 있는 마나 승강기, 마도공학품 아닙니까? 물론 모양새가 조금 다르긴 한데…….”
“아, 승강기요? 음…… 뭐, 맞습니다. 공학기술이 들어가긴 했죠.”
역시.
다른 세상에도 통하는 건 있다.
자신의 고향과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느낀 이안이 기분 좋게 마나 승강기에서 내렸다.
그곳은 총 63층으로 이루어진 황금빛 빌딩의 최상층, 국제 헌터협회장의 사무실이 딸린 공간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뵙고자 하시는 분들이 저 문 너머에 계시니까요.”
마침내 도착한 협회장 사무실 안쪽에는 국제 헌터 협회의 수장 ‘웨인 베르너’ 말고도 몇몇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고위층으로 보이는 중년인도 몇몇 보였고, 차민성이 보기에 어째서 여기 있는지 순간 의아했던 젊은이들도 다수 보였는데, 이내 저들의 의중을 깨달은 차민성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보고를 그렇게까지 해놓았잖아?
“반갑습니다. 칼리두 와탕카 님. 저는 칼리두 님께서 만나기를 청하신 황제는 아닙니다만, 논의하시고자 하는 주제의 최종 책임자 되는 웨인 베르너라고 합니다.”
협회장 웨인 베르너가 악수를 권했다. 이안 역시 마다치 않았다.
“칼리두 와탕카입니다. 이쪽 세계는 국왕이나 황제가 없다는 게 사실인가 보군요. 이제 믿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는 보고를 받자마자는 믿지 않았어요. 근데 또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평화롭기만 했던 이 세상에 균열이 열리고 괴물이 쏟아지는 것부터가 이미 말도 안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믿기로 했고, 이렇게 직접 뵈니 더더욱 믿겨지네요. 하하.”
예상보다 더 부드러운 분위기.
단순한 기우였던 걸까? 차민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때였다.
“헌데, 제가 그쪽을 무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황제는 아니시라니 폐하라고 부르기도 좀 그렇고.”
“그냥 협회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이름을 부르셔도 되고요.”
“그럼 간단하게 협회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죠. 다들 그리 부릅니다.”
“좋습니다. 협회장님.”
“예, 말씀하시지요.”
“저는 분명 대화를 나누자고 요청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이고 계신 문제에 관하여 긴히 상의드릴 게 있다고 했죠.”
“…….”
이안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의 냉기가 흐르는 음성.
차민성은 물론 협회장 역시 상당한 힘을 가진 각성자다. 한데 그럼에도 이런 오싹함이 느껴진다?
결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닙니까?”
“……아, 예, 맞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안이 말문을 멈췄다.
찰나였으나, 여기 모인 이들에게 만큼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사방팔방에서 온갖 것들의 살기와 덫 냄새가 진동하는 겁니까?”
“……!”
그 순간.
차민성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이 양반들, 내가 그렇게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놓았는데, 그걸 무시해!?
와장창!
그리고 또 그 순간.
사무실 창문이 깨지며 협회 소속 S급 헌터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이안이 느낀 살기의 근원지였다.
“저자다! 저자가 바로 균열 너머에서 나타난 괴생물체다! 가능하면 생포하되, 여의치 않으면 제거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