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40화 (240/342)
  • 240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54화

    ‘아직 크로노스의 접속 권한에 닿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던, 기껏해야 기초적인 이론만 갖고 있는 줄 알았던 중간계인이 모두를 속이고 슈페리어까지 침투했다. 분석관을 내려보냈음에도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명계의 지하 궁전.

    온갖 마도서로 가득한 서재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 버린 하데스.

    그는 얼마 전부터, 정확히는 중간계인 이안 페이지가 슈페리어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남몰래 파악한 뒤부터 줄곧 같은 생각에 빠졌다.

    ‘……크로노스를 되감았음이 확실하다. 이론을 완성시킨 게야. 눈먼 아버지의 권한에 완전히 닿아버린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고작 중간계인 따위가 분석관을 쓰러뜨렸다는 것,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네 번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까지 전부.’

    미첼 그린리버야 첫 번째 과업부터 하데스 자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 또다시 나타난 중간계인 수행자 이안 페이지는 달랐다. 무려 네 번의 과업을 아무런 도움 없이 직접 해냈다.

    하물며 과업을 수행하기 전에는 최하급 지배자에 해당하는 분석관마저 꺾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분석관이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든 신호를 보내왔을 터이니까.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냈다. 우리의 눈까지 속였어.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뿐이야.’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오랫동안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분석할지언정 답은 유일했다.

    크로노스, 중간계인 이안 페이지는 분명 그 절대적인 시간을, 오직 눈먼 아버지에게만 허락된 그 시간의 조작을 해냈음이 분명하리라.

    ‘그토록 든든한 밑천을 갖고 있으니 내 앞에서도 당당할 수밖에.’

    절대적인 시간을 되돌린다.

    이는 최상급 지배자들조차 알아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권능이다.

    무려 그런 힘을 가졌으니, 앞으로 나아감에 거칠 것이 없겠지.

    ‘크로노스를 되감을 수 있다면 확실히…… 놈의 말이 옳다. 모든 과업뿐만 아니라 최상급 지배자의 격까지도 충분히 올라갈 놈이야.’

    백날 되감아 봐야 최상급 지배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그저 중간계나 분열시키는 카이로스가 아닌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를 되감는 경지에 올랐다?

    이제 더 이상 중간계인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말은 곧 협력관계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눈먼 아버지와 더불어 크로노스를 되감을 줄 아는 극소수의 존재다. 그런 존재와 벌써부터 척을 질 필요는 없지.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고, 어쩌면 그 힘까지 빼앗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선 놈이 했던 말처럼 필드 위에 둘만 남을 때까지 협력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파악해야만 한다. 예컨대 크로노스를 되감는 중간계인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그 존재의 시간 조작에 놀아나지 않을 묘수가 존재하는지.

    혹은 그 특별한 힘을 빼앗을 방법이 존재하는지도. 사실 하데스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그도 그럴 게, 혼돈의 자식들이 슈페리어 차원을 정복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이 무엇이던가?

    바로 눈먼 아버지의 저항할 수 없는 시간 회귀 능력 아니었나?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곁에 두어야만 한다. 놈의 표적이 내가 아닌 다른 지배자들, 특히 시계탑의 꼭대기로 향하도록 구슬려야겠지.’

    잘만 하면 그 비현실적인 권능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수도 있는.

    최소 입맛에 맞게 써먹을 기회다.

    어느 때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거, 잘만 이용하면 내 계획을 훨씬 더 앞당길 수 있겠군.’

    그 힘을 앞세워 시계탑의 지배자들부터 무릎 꿇리고, 침략자에 불과한 혼돈의 전당까지 몰아내는 것.

    나아가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에 새로운 통치자로 군림하는 것.

    상상만 해도 짜릿한 일이리라.

    ‘눈먼 아버지여.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조차 알지 못할 만큼 저 중간계인의 시간 조작이 절대적인 겁니까?’

    하데스가 커다란 수정구 안에 비친 시계탑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어느 쪽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웬만하면 후자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나의 계획이 성공에 더 가까워질 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음흉한 미소.

    하데스가 수정구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계탑이 아닌 이안의 모습이 비쳤다.

    그는 자그레우스를 따라 미첼 그린리버의 숙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간계인 따위가 그 엄청난 권능을, 우리 지배자들조차 파악하지 못한 절대적인 시간에 닿았을 리는 없겠고…….’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놈은 평범한 중간계인 아니다.

    분명 무언가 있다. 하데스조차 간파하지 못한, 그런 엄청난 비밀이.

    ‘……네놈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더냐? 중간계인, 이안 페이지여.’

    수정구 속 이안에게는 닿지 못할.

    그저 하데스 혼자만의 중얼거림.

    그 의문점이 언제 풀릴지는…….

    ……글쎄, 장담하기 어렵다.

    * * *

    “사과라도 하지?”

    그것이 자그레우스, 한때 라그나르 그린리버라는 이름을 가졌던 망자가 이안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무슨 사과?”

    “네가 날 죽일 때 보여줬던 전생의 기억, 그리고 내가 명계에 떨어져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조합해 봤을 때, 너를 독살했던 나는 내가 아니야. 전혀 다른 존재지.”

    라그나르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이안은 그 사실을 프란 페이지와의 싸움에서 알아챘다.

    “여기서 만난 네 아비가 말해주기를, 너도 이제 그 사실을 알 거라고 하더군. 그럼 나한테 사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이안을 미첼 그린리버의 숙소로 안내 중인 라그나르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언젠가 망자 대 망자로 만났을 때 하고 싶었던 말을 모조리 쏟아내기에 이르렀으니까.

    “……글쎄다. 다른 존재라는 건 어느 정도 인정하겠다만, 사과할 일도 아니지 싶은데?”

    물론 이안은 사과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애당초 이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결론을 내려놓았거든.

    “그때 상황만 놓고 봐. 너는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어. 실제로 천천히 독살하는 중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즉참에 해당하는 죄잖아?”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 네놈이다. 내 손으로 내 아버지를 죽이게끔 만든 게 바로 네놈이라고! 설마 그것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겠지?”

    “천만에, 너는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라그나르. 필요하다면 제 부모를, 형제를, 친우를 죽일 수 있는, 그러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만큼 결여된 인간.”

    “…….”

    이안의 발언에 라그나르가 발길을 멈추고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럼에도 이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말했다.

    “어차피 넌 내가 없었어도 사고나 쳤을 놈이야. 네 형을 포함한 황자들을 모조리 제거했겠지.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태어났거든. 라그나르 그린리버라는 인간 자체가.”

    “…….”

    “그러니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결국 너나, 나나, 각자의 사정에 따라 날을 세웠고, 승자와 패자로 나뉘었을 뿐이니까.”

    “…….”

    “싸움의 승자가 패자한테 이겨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는 않잖아?”

    그저 승패가 나뉘었을 뿐이다.

    그러니 사과할 이유 따위는 없다.

    그 말에 가만히 멈춰 있었던 라그나르가 다시금 발걸음을 내디뎠다.

    더는 사과를 요구하거나, 살아생전의 분쟁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하데스 님께 들었다. 완전한 재구성 처분이 떨어졌다지? 그러니 슈페리언 행세까지 해가면서 과업을 수행 중일 테고. 뭐든 지키려면 힘이 필요한 법이니까.”

    “왜, 막상 네 고향이 멸망한다니까 아쉬운 마음이라도 드나?”

    “그럴 리가. 난 여기가 좋아. 혈통이나 인복, 부모의 차별 없이 오직 내 능력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왔거든. 명계는 그런 곳이야.”

    이안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어쨌거나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여 하데스의 참모가 되지 않았나?

    “내 가치를 알아주는 세상이 여기 있는데, 그깟 생전의 고향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지. 어차피 곧 멸망해 버릴 고향이라면 더더욱.”

    라그나르가 계속 읊조렸다.

    어떻게든 이안의 속을 뒤집어엎고 싶어서 안달이 난 눈치였다.

    “그러고 보면 네놈도 참 부모 복이 없어. 어미는 천출에, 아비라고 있는 작자는 제 고향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니.”

    프란 페이지가 고향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고?

    이안은 여태껏 자기 자신 때문에.

    본인이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의 접속 권한에 닿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일어났다고 여겨왔다.

    한데 다짜고짜 프란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음?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일단 확인이라고 해둘까.”

    “확인할 게 뭐 있다고. 네놈도 알다시피 네 아비가 우리들의 고향…… 그러니까 첫 번째 중간계를 여러 갈래로 분열시켰잖아? 그 망할 놈의 회귀 마법으로 말이야.”

    살아생전의 프란 페이지는 시간 회귀 마법을 수차례 반복하여 무분별한 시간 축의 분열을 야기했다.

    그 때문에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에는 수없이 많은 평행세계가 생겼고, 이를 어떻게든 수습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안 아니었던가?

    “덕분에 시계탑이 첫 번째 중간계를 복구대상으로 분류했지. 아,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복구란 재구성을 뜻해. 솔직히 나도 거기까지 갈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네놈 아비의 원죄가 깊은가 보더군.”

    그 비아냥거림을 듣는 순간.

    검열처리 되었던 분석관의 기억 중 일부가 실시간으로 되살아났다.

    비단 이안이 연구했던 재구축 마법만 문제가 아니었다. 애당초 프란이 먼저 시계탑의 이목을 첫 번째 중간계로 집중시켜 놓았던 거다.

    ‘……하여튼 도움 안 되는 양반.’

    어쩐지.

    너무 빨리 알아챈 감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실제로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에 닿았다면 모를까.

    겨우 이론만 세웠던 시점에 다짜고짜 분석관이 나타나지 않았나?

    ‘어떻게 알고 벌써 왔나 했더니만, 전부터 감시당하고 있었잖아?’

    이미 예전부터 요주의 중간계였던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에서 이젠 하다 하다 크로노스 접속 권한을 침범하려는 변수마저 나타났다.

    이러니 저들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치워 버리고 싶을 수밖에.

    “……내가 아는 사실과 별반 다를 건 없군. 얘기해 줘서 고마워.”

    물론 그 사실을 라그나르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할 필욘 없을 터.

    “그런데, 라그나르.”

    “뭐냐?”

    “한 가지 더 묻고 싶은데.”

    “하……! 대답 한 번 해주니 내가 편해지기라도 했나 봐?”

    그리 말하면서도 거절의 뜻은 보이지 않았다. 질문하라는 의미다.

    “네 말처럼 내 아비가 우리 고향을 분열시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내가, 그리고 수많은 네가 생겼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게 뭐 어쨌다고?”

    “그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모두 명계로 떨어지는 건가?”

    무분별하게 늘어난 평행세계.

    그 숫자만큼 늘어난 사람들.

    그들이 목숨을 다한다면? 모두 이곳 명계에서 만나게 되는 걸까?

    마치 쌍둥이처럼?

    “우리 명계에서도 제법 오랫동안 논의되었던 일이야. 고심 끝에 하데스 님께서 결정을 내리셨고.”

    “어떤?”

    “가장 쓸모 있는 한 명.”

    라그나르가 오른쪽 검지를 쭉 펼쳐 들며 읊조렸다. 어디 그뿐일까?

    자기 자신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 한 명만 남겨두기로.”

    라그나르의 대답은 거기까지였다.

    마침 검투사 숙소 최상층 ‘챔피언의 방’ 앞에 도착하였으니, 라그나르가 자신을 가리켰던 손가락으로 그 방의 출입문을 가리켰다.

    “하데스 님께서는 널 미첼의 숙소까지 안내하라 명령하셨다. 즉 임무는 여기까지고, 더 이상 네놈과 얼굴 맞댈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어지간히도 싫었나 보다.

    곧장 등을 돌려 멀어질 만큼.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어지간하면 또 마주치지 말자. 그게 서로한테 최선일 것 같으니.”

    그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라그나르의 뒷모습이 멀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