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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39화 (23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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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53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목표.

    바로 그 뚜렷한 목적을 믿어라.

    그 말에 하데스가 코웃음을 쳤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얕보였나 보군. 고작 그따위 말 몇 마디로 위기를 모면하려 들 줄이야.]

    말은 좋다.

    같은 목표를 가졌단다.

    놈이 정말 최상급 지배자의 격이라도 얻는다면 금상첨화다.

    솔직히 명계의 하수인보다야 최상급 지배자가 훨씬 강력한 존재이니, 그런 아군을 곁에 둔다면 앞으로의 계획이 수월하긴 할 거다.

    다만, 문제는 여전히 같다.

    [정녕 그대가 내놓은 대답이 내 불신의 해결책이라 생각하는가?]

    “왜 안 됩니까?”

    [여기서 살아남은 그대가 제우스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모든 걸 일러바친다면? 하데스가 혁명을 꿈꾸고 있다, 이미 여러 수행자를 망자로 만들어 자기 휘하에 두고 있다, 제우스 그 친구만큼 의심 많고 음흉한 지배자가 또 없거든.]

    의심 많고 음흉하다.

    어째 본인 소개처럼 들린다만, 스스로는 그리 여기지 않는 눈치다.

    [하물며 그대는 그대가 속한 중간계의 완전한 평화와 독립을 원할 터. 그런데 어찌 나와 같은 목적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나? 그 목표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여타 시계탑의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제거해야 할 대상일 터인데?]

    하데스가 예리한 눈으로 말했다.

    물론 그 말이 틀리지도 않았다.

    지극히 합당한 논리였으니까.

    하지만.

    “누가 끝까지 함께 하자던가요?”

    [……뭐?]

    “목적의 방향이 같을 뿐, 목적이 같다고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알아듣게 말하라.]

    이미 알아들었을 거다.

    눈치가 빠른 존재 아닌가?

    그럼에도 하데스는 설명을 요구했다. 확실히 하고 싶은 눈치였다.

    “필드 위에 우리 둘만 남기자는 겁니다. 그때까지 힘을 합치고요.”

    [이후에는?]

    “그건 그때 가 봐야 알겠죠. 물론 서로의 목표가 다른 만큼 치고받고 싸울 가능성이 높겠지만요.”

    필드 위에 둘만 남자.

    나머지는 함께 치우자.

    둘이 싸우는 건 그 이후다.

    “그러니 일러바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싸움을 붙여도 체급이 맞을 때 붙여야죠. 지금은 하데스 님께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밖에 더합니까? 그러면 저한테 득 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안의 설명에 하데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긍정의 뜻인지, 부정의 뜻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결 낫군. 고려해 봄 직한 제안이기도 해. 허나, 이안 페이지.]

    “말씀하시지요.”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저도 많이 의존하는 편입니다.”

    [그 감각이 속삭이는구나.]

    “무어라 속삭이던가요?”

    [제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지껄일지언정 결단코, 결단코 그대가 지껄이는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고.]

    거기까지 읊조린 하데스가 반지 낀 왼쪽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판결을 내리겠다.]

    그러자 이안의 머리 위에 검붉은 빛이 모여들었다.

    [죄인, 이안 페이지.]

    그 빛은 곧 ‘처형 도끼’의 형상을 빚어냈는데, 누가 봐도 이안의 목덜미를 내려치려는 모양새였다.

    [사형.]

    콰직!

    강하게 내리꽂히는 처형 도끼.

    그 도끼가 이안의 목덜미를 가르며 재판장 바닥 한가운데 꽂혔다.

    “……?”

    그럼에도 이안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순간의 환상.

    오직 명계에서만 부릴 수 있는 하데스의 ‘현실조작’ 능력이었다.

    “허억! 헉! 허어억……!”

    이안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조작이긴 해도, 목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두려움은 그대로였다.

    정말이지 최악의 경험이리라.

    [하도 건방을 떨기에 믿는 구석이라도 숨겨놨나 싶었는데, 별거 없나 보군. 맥없이 죽는 걸 보니.]

    죽음을 직면할 때의 반응.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 밑천.

    그런 것들이 전혀 없음을 확인한 하데스가 비로소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취미가 참 고약하시네요. 아무리 그래도 목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까지 재현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직도 얼얼합니다.”

    [그 정도는 해줘야 밑천을 드러내겠지. 요즘 것들은 하도 음흉해서 밑바닥을 파악하기 어렵거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이안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을까?

    하데스가 단숨에 주제를 바꿨다.

    물론 이안한테는 더할 나위 없을 만큼 긍정적인 주제 변경이었다.

    [필드 위에 우리 둘만 남자고 했던가? 그 말이 뇌리에 남더군. 직감이란 녀석의 말을 무시할 만큼.]

    솔직히 말하건대, 하데스는 가진바 포부나 목적에 비하여 세력이 약해도 너무 약했다. 아무리 망자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곤 하나, 결국 진짜배기 강자들은 좀처럼 명계로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상 불멸자에 가까운 지배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간계의 강자들 역시 저마다의 방법으로 영생을 유지하지 않던가?

    [단, 쓸모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가차 없이 거둘 것이다. 그대의 목숨을 말이지.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행동하도록.]

    그런 상황에서 괜찮은 패가 나타났다. 지배자의 격을 얻어낼 확률이 높고, 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데다가, 어느 지점까지는 같은 곳을 노리는 그런 존재 말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래야 할 게다.]

    그래서였다.

    당장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확히는 거부할 이유가 마다할 이유보다 논리적으로 빈약했다.

    그러니 일단 지켜봐야겠지.

    믿음의 단계는 그 이후다.

    “그럼 이왕 한배를 타기로 한 거, 몇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할 처지가 아닐 텐데?]

    “처지가 아닐 건 또 어디 있습니까? 목적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일이니만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당돌한 놈이로군. 광기마저 느껴질 지경이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면서도 계속 뒷목을 붙잡았는데, 목덜미가 잘려나가던 감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까닭이었다.

    [어디 한번 지껄여보아라. 가능 여부는 내 들어보고 판단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첫 번째로 저와 결투를 벌였던 검투사, 미첼 그린리버와의 독대를 원합니다.”

    [어렵진 않은데, 이유가 뭐지?]

    “서로 처지가 비슷합니다. 저보다 먼저 아홉 번의 과업을 완수하기도 했고요. 이래저래 구할 조언이나 노하우가 많지 않겠습니까?”

    [글쎄,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만, 뭐, 좋다. 원한다면 자리를 마련해 주도록 하지. 다음은?]

    의외로 시원하게 받아들인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우선 넘어가도록 하자.

    “사람을 한 명 찾고 싶습니다.”

    [사람?]

    “그러니까, 망자 말이죠.”

    [네 고향에서 온 망자를 찾고 싶나 보군. 어디 연인이라도 되느냐?]

    이번에는 또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하데스였다. 역시 제우스만큼이나 파악하기 힘든 유형이다.

    “연인은 아니고, 음, 따지자면 아버지에 가장 가깝기는 합니다.”

    [아버지면 아버지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가장 가까운 건 또 뭐지?]

    “그런 게 있습니다. 언제고 시간 나면 제 인생 이야기나 해드리도록 하죠. 흥미가 있으시다면요.”

    [사양하지. 기껏해야 중간계인으로 살아온 과거 따위 들어봐야 시간 낭비일 뿐. 그대도 벌레의 삶이 궁금했던 적은 없을 것 아닌가?]

    연인이 아닌 아버지.

    그것도 매우 복잡 미묘한 관계라는 말에 급격히 흥미를 잃는다.

    그러고는 짐짓 귀찮은 일을 해치운다는 표정으로 이안에게 물었다.

    [아무튼 말하라. 누굴 찾고 싶은 게지? 그대의 아비라면 첫 번째 중간계 출신이겠고, 이름이나 특징을 말해준다면…….]

    “이름은 프란 페이지, 중간계인이면서 슈페리어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저처럼 요술사입니다.”

    [아하, 그 친구?]

    아는 눈치다.

    하기야, 슈페리어의 언어를 구사하는 중간계인이 흔하겠는가?

    슈페리어의 지배자들 눈에는 사람 말을 하는 벌레와도 같을 터.

    뇌리에 콕 박혀 있을 만하다.

    [그 친구라면…… 자그레우스?]

    “……아, 예.”

    하데스의 물음에 넋을 놓고 있던 자그레우스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죽임을 당해야 할 이안의 생존에 적잖이 허망한 눈치였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프란 페이지는 현재 하데스 님께서 맡기신 임무로 타르타로스에 잔류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타르타로스는 연락이 불가능한 지역이라서, 따로 귀환을 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하는군. 미안하지만 두 번째 부탁은 보류하도록 하지.]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타르타로스로 임무를 보냈단다.

    그곳이 어디인가? 프로메테우스처럼 강력한 티탄 일족이나 죄인들을 가둬놓은 지하 세계 아닌가?

    무려 그런 곳까지 임무를 보낼 만큼 강한, 더불어 하데스의 믿음직한 심복이 되었다는 뜻일 터.

    ‘라그나르도 그렇고, 프란도 그렇고, 어째 나와 악연이 있는 것들은 여기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군.’

    참으로 질긴 악연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또다시 만나고, 또다시 만날 예정이 될 줄이야.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 없단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그럼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더 올릴까 하는데, 들어주시렵니까?”

    [끝이 없군.]

    “챙길 때 챙겨야죠.”

    [그런 성정이 우리의 계획에 성공을 가져다주겠지. 말해보아라.]

    “앞으로도 종종 신세 질 예정이니 제 부탁,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거야 앞으로 상황 봐서 고려하겠다만, 해서 당장 할 부탁은?]

    “이게 제 부탁입니다.”

    [음?]

    “앞으로 계속 들어달라는 거, 이것이 부탁입니다. 제가 먼저 하데스 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한, 그리고 그 부탁이 선을 크게 넘지 않는 한, 무조건적으로 말이지요.”

    무조건적으로 부탁을 들어 달라.

    하데스는 살면서 이토록 당돌한 부탁을 받아본 역사가 없었다.

    누가 감히 명계의 지배자 앞에서 이따위 언변을 늘어놓겠는가?

    [……하, 하하하!]

    그러나 눈앞에 이 중간계인.

    이안 페이지란 놈은 달랐다.

    [이안 페이지, 보기보다 재미난 놈이구나.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가?]

    겁이 없는 건지, 그만한 능력의 소유자인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으나, 적어도 지금껏 보여준 모습만으로는 후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대의 말마따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적정선만 지킨다면야, 그 당돌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니 증명해라. 이런 관계가 지속할 수 있음을 말이지.]

    “좋습니다. 반드시 보여 드리죠.”

    [기대하지. 자그레우스.]

    “……예, 하데스 님.”

    [미첼에게 안내해 줘라. 가는 길에 지난 악연도 좀 풀고, 이제 같은 일을 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내 정신 좀 보게. 재판은 정식으로 끝내는 것이 도리이거늘.]

    하데스가 판결의 망치를 들었다.

    조금 전, 가짜로 사형을 내렸을 때는 잡지 않았던 판결 도구였다.

    [죄인 이안 페이지, 아니, 아니지.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무죄.]

    탕, 탕, 탕!

    [아! 그리고 이건 아까 얘기하려다가 말았던 것인데,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이 빠르겠군.]

    그리 읊조린 하데스가 손짓했다.

    처음 이안의 변장 주술을 지워 버릴 때와 비슷한 손놀림이었다.

    “……!”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하데스의 손짓 한 번에 지워졌던 변장 주술이 다시금 그 손짓 한 번으로 복구되는 것 아닌가?

    [애당초 이 변장 주술을 만들고 퍼뜨린 게 나거든. 이 주술에 걸린 자들은 모두 내 시야에 있지. 그러니 괜한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니까.]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

    그가 무슨 수로 이안의 정체를 알아챘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안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는지.

    그 모든 의문이 작금의 손짓과 첨언 몇 마디로 말끔하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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