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38화 (238/342)
  • 238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52화

    어찌 된 영문일까?

    챔피언을 쓰러뜨린 공치사나 보상은커녕, 눈 깜빡할 새 콜로세움이 아닌 다른 곳으로 끌려왔다.

    ‘여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의 공간 속 유일하게 솟아오른 단상.

    그 위에 명계의 왕 하데스와 부하로 보이는 망자 한 명이 보였다.

    [지금부터 과업의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에 대한 재판을 시작한다.]

    ……뭐?

    재판이라고?

    다짜고짜 무슨 헛소리지?

    [자그레우스, 고하라.]

    “예, 하데스 님.”

    하데스로부터 발언권을 넘겨받은 자그레우스란 자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한데 저 남자, 낯이 익다.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지금쯤 의구심을 느끼고 있을 거다. 검투사로 출전하여 검을 휘두르던 그대가 재판장에 소환되었으니까.”

    읊조리는 목소리는 물론.

    얼굴형, 눈동자, 이목구비.

    마지막으로 금빛 머리칼까지.

    그 익숙함을 확인한 이안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존재의 이름과 얼굴이 떠올랐으니까.

    ‘……라그나르?’

    라그나르 그린리버.

    이안을 배신했던, 하여 이안의 첫 번째 회귀를 완성시켰던 존재.

    그중 이안의 손에 죽임을 당한 젊은 라그나르가 자그레우스라는 이름으로 하데스를 보좌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하지만 수행자여. 그대는 마땅히 재판을 필요로 하는 혐의가 입증되었고, 그에 따라 불려 왔을 뿐이니, 겸허한 마음으로 재판에 임하기를 바란다.”

    물론 이안만 라그나르를 알아볼 뿐, 라그나르는 아직 칼리두 와탕카의 정체가 이안임을 몰랐다.

    변장 주술과 높아진 격,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라는 차이가 있으니, 쉽게 알아보긴 어려우리라.

    ‘……그나저나 저 녀석, 설마 저승에서도 한자리 떡 차지하고 있을 줄이야. 저러니 대륙을 통일하고 내 뒤통수까지 후려쳤겠지.’

    역시 보통은 아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자면 이안보다 한 수 위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곧 하데스의 뒤통수도 칠지 모르겠군. 이걸 얘기해 줘야 하나?’

    아주 잠깐 쓸모없는 생각에 빠졌던 이안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죄가 어쩌니 재판이 어쩌니 하고 있는데 이런 실없는 생각이라니.

    오랜만에 옛 친우이자 원수를 만나서 그럴까? 으음,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정신 똑바로 차리자.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우리 명계가 그대에게 적용할 죄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사칭.”

    사칭……?

    첩첩산중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헛소리.

    일단 뭐라 떠드는지 들어나 보자.

    “그대는 눈먼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지 못한 추방자의 신분을 숨긴 채, 조잡스러운 변장 주술로 하여금 지배자들의 눈을 속였다.”

    자그레우스의 말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이안은 더 이상 그들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었다.

    “이는 슈페리언 사칭에 해당하는 중죄다. 이곳이 명계가 아닌 슈페리어 차원의 재판장이었다면 그대는 즉참을 면할 수 없었을 터.”

    변장 주술을 안다.

    심지어 이안이 그 주술로 슈페리언 행세 중이란 사실마저 안다.

    이들이 안다는 건 다른 지배자들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

    여기까지만 들었을 뿐임에도 상황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두 번째로 기만 및 속임수. 감히 수행자 신분을 사칭하며 올림포스 전당의 여러 지배자들뿐만 아니라 명계의 지배자이신 하데스 님을 속였고, 그로 하여금 우리 명계 전체의 명예까지 훼손시켰으니, 그 죄가 막중한 줄 알아야 한다.”

    자그레우스가 이안의 두 번째 죄명으로 기만 및 속임수를 꼽았다.

    비슷한 성질을 가진 죄목이니만큼 함께 묶인 모양인데, 저들 입장에서 보자면 반박할 말이 없었다.

    속인 거 맞고, 기만한 것도 맞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저들 입장에서는 말이다.

    “사칭, 기만, 속임수. 죄인 칼리두 와탕카는 이와 같은 죄목을 순순히 인정하고 죄를 청하겠는가?”

    인정한다.

    마음속으로는.

    사실이 그러하니까.

    하나 겉으로는 다르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어떻게든 모면을 해야 한다.

    재구축조차 힘든 상황 아닌가?

    “인정할 수 없…….”

    [죄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안이 부정을 하려는 그때였다.

    이번에는 자그레우스가 아닌 명계의 왕 하데스가 나서며 말했다.

    [자그레우스.]

    “하문하십시오. 하데스 님.”

    [가장 큰 죄를 말하지 않았군.]

    “예? 송구하오나 어떤……?”

    [죄인이 사칭한 것은 비단 슈페리언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한 것을 사칭했지. 예컨대…….]

    슈페리언 사칭보다 더한 것?

    그 말에 자그레우스는 의구심을.

    이안은 직전보다 더욱 큰 당혹감을 느꼈다. 설마 저놈, 아는 걸까?

    [감히 벌레와 같은 중간계인 주제에 슈페리언을 사칭했다든가.]

    “예? 하데스 님, 그 말씀은……?”

    [미첼 그린리버와 같다. 저놈은 추방자가 아니야. 중간계인이지.]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

    그 존재는 이안의 정체가 중간계인임을, 제우스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진짜’ 정체를 꿰뚫고 있었다.

    [첫 번째 중간계 출신 칼리두 와탕카, 아니, 이안 페이지인가?]

    심지어 이름까지 알고 있다.

    이안 페이지라는 본명을 말이다.

    “……!”

    그 이름에 움찔하는 것은 당사자인 이안뿐만이 아니었다.

    하데스의 옆에서 그를 보좌하던 자그레우스 역시 크게 움찔거렸다.

    그로서도 이안 페이지란 이름은 매우 특별한 이름이었으니까.

    “이안…… 페이지?”

    [아, 그러고 보니 자그레우스, 그대의 살아생전 원수가 아닌가?]

    “…….”

    [재미있는 인연이로군. 원수지간이 명계에서 다시 만나는 경우야 흔하다지만, 이런 식으로 조우하는 건…… 글쎄, 최초 아닐까 싶은데.]

    하데스가 흥미로운 듯 읊조렸다.

    [음, 아직 긴가민가하겠지. 민낯을 보면 좀 더 실감이 되려나?]

    어디 읊조리기만 할까?

    손짓 한 번으로 이안의 변장 주술을 풀어버리기에 이르렀으니, 결국 칼리두 와탕카가 아닌 이안 페이지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너……?”

    자그레우스의 눈빛이 증오로 물들었다. 참으로 오랫동안 잠재워놓았던 라그나르 그린리버로서의 영혼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재빨리 냉정함을 되찾았다.

    “……연약한 껍데기를 가졌던 시절의 낡은 인연입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그레우스로 살아왔으니까요. 오직 명계의 지배자이신 하데스 님만을 섬길 뿐이지요.”

    상황을 한번 보라.

    자신은 하데스의 최측근이다.

    그러나 이안은 산 자의 몸으로 여기까지 숨어든 죄인에 불과하다.

    하물며 발각되었고,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무죄를 받을 수 없다는 명계의 재판장에 죄인으로 섰다.

    상하 관계가 역전되었으니, 지금부터는 천천히 즐겨주면 그만이다.

    뜻하지 않았던 복수의 순간을.

    [마음에 드는 태도로군. 내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구나.]

    “과찬이십니다. 하데스 님.”

    [그대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지금부터 재판은 내가 맡도록 하지.]

    자그레우스가 순순히 물러났다.

    하데스에게 재판을 받아 죄의 대가를 치르는 모습만으로 충분하다.

    결국 승자는 본인 아니겠는가?

    [이쯤 되면 궁금할 거다. 내가 어째서 최상급 지배자들조차 속아 넘긴, 심지어 제우스조차 알지 못하는 그대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

    “……솔직히 궁금하긴 합니다만.”

    승리를 만끽하는 라그나르와 달리, 이안은 온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의 목표는 첫째도 생존, 둘째도 생존뿐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때까지는 반드시.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미첼에게 들었습니다. 과업은 속임수일 뿐이고, 저를 죽여서 명계의 군대에 넣고자 하신다더군요.”

    [그 짧은 사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군. 물론 부정하지는 않겠다.]

    “시계탑에 소속되었음에도 독자적인 세력을 꾸준히 키우고 계신다는 것은, 분명 그만한 목표가 있으시다는 뜻이겠지요. 예컨대…….”

    [예컨대?]

    “시계탑보다, 그리고 혼돈의 전당보다 높은 곳에 군림한다든지, 뭐 그런 거창한 계획 말입니다.”

    이안의 말에 하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숨길 필요조차 없다.

    그런 계획이 맞고, 놈은 여기서 죽는다. 망자가 되어 명계에 소속되는 순간부터 자신의 하수인이 된다. 그러니 무얼 걱정하겠는가?

    [썩 마음에 들지 않거든.]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우리와 아스가르드, 그리고 티탄족은 명분이 있다. 처음부터 이쪽 세계에 존재했던, 말하자면 일종의 토박이들이지. 그러니 이 땅을 차지하고자 영겁의 세월을 투쟁하였을 테고.]

    “그에 비해 시계탑 최상층의 존재들, 혼돈의 전당과 눈먼 아버지는 토박이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차지할 명분이 없다?”

    [그렇다. 그들은 침략자인 주제에 잘도 이 땅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 나는 제우스를 포함한 여러 떨거지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서 말이야. 이 땅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그 꼴을 두고 볼 수가 없겠더군.]

    아주 오래전부터.

    하데스는 차곡차곡 준비해왔다.

    슈페리어를 포함한 모든 중간계의 주인 행세를 하는 침략자들.

    눈먼 아버지와 혼돈의 자식들, 그리고 그 꼴사나운 침략자들이 쌓아 올린 시계탑을 무너뜨려 가장 합당한 통치자를 새로 앉히는 것.

    물론 그 합당한 통치자란 바로 자신, 명계의 왕 하데스를 뜻했다.

    “해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시는 것이군요. 힘부터 키워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요.”

    [말이 통하는군. 하기야, 그대 역시 납득할 수 없겠지. 그대의 고향이 합당한 자격을 갖춘 통치자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나고 자란 족속들, 도무지 근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침략자들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이안의 눈에는 하데스나, 여타 지배자들이나, 아직 마주해 본 적 없는 혼돈의 자식들이나 똑같거든.

    “불쾌한 일이기는 하네요.”

    물론 그 본심을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행동할 뿐.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니까.

    [옳거니, 그럼 이야기가 한결 더 수월해지겠군. 지금 즉시 내 밑으로 들어와라. 제우스에게는 애당초 그만한 깜이 아니었고, 내 과업을 이겨내지 못해 죽었다 하면 그만이니, 그런 떨거지들 말고 내 밑에서 힘을 키워보는 거다. 그리고 함께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게지.]

    예상대로 반응이 괜찮다.

    하지만 순순히 죽어줄 수도 없다.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본연의 목적인 생존에 가장 가까워질까?

    “…….”

    찰나의 고민.

    그리고 답변.

    이안이 입술을 뗐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데스 님.”

    [말하라. 듣고 있으니.]

    “굳이 저를 망자로 만드실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런 판국에 말이죠.”

    [……이거, 말이 좀 통하는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니었나 보군.]

    무척이나 실망한 목소리.

    그럼에도 이안은 멈추지 않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데스 님과 저는 뜻이 같습니다. 우리 모두 시계탑의 몰락을 바라지 않습니까?”

    […….]

    “하데스 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마땅한 명분을 가진 통치자가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를 다스리기 위해서 독자적인 세력을 확보 중이시죠.”

    무어라 답하려던 하데스가 일단은 말문을 멈췄다. 조금 더 들어볼 값어치는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리고 저는 제가 속한 중간계의 완전무결한 평화를 위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 고향 땅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 궁극적인 목표니까요.”

    [그러니 명계의 군대로 들어오라는 것 아닌가? 내 약속하건대 우리가 시계탑을 무너뜨린다면 그대의 고향은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으마.]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이안이 승부수를 던졌다.

    “저를 죽이기보단 계속 살려두십시오. 하데스 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저, 어떻게든 모든 과업을 완수할 겁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반드시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얻어내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데스 님께서는 가장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되시는 겁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 헛소리가 너무 거창하군. 내가 그대를 어찌 믿고 살려둔단 말인가?]

    “저를 믿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하데스 님과 방향이 같은 저의 목표, 그것을 믿어달란 말씀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