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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36화 (23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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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50화

    미첼 그린리버.

    아내 하이리 이전까지 황실에서 배출했던 가장 위대한 마법사.

    까맣게 잊고 있었으나, 뜬금없이 슈페리어 차원까지 와서 다시 듣게 된 그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죽은 자들의 땅, 명계에서.

    ‘망자가…… 되었다?’

    그가 슈페리어 차원에서 모습을 감춘 이유는 간단했다. 죽었다.

    아마도 과업을 수행하는 도중에 죽었거나, 다른 모종의 이유로 죽었겠지. 이유는 확신할 수 없다.

    핵심은 그가 죽었다는 거다.

    (장내에 계신 망자 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 명계 투기장의 챔피언! 미첼 그린리버는 이미 여러 번의 투기장 우승 경력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선택하지 않았죠. 어째서일까요?)

    경기 진행자 자그레우스가 마침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네! 그렇습니다. 챔피언의 목표는 명계의 왕, 하데스 님의 기사가 되는 것이죠. 그걸 위하여 천 번의 우승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현재 920번의 우승을 거머쥐셨습니다!)

    한 번의 우승은 부활.

    천 번의 우승은 하데스의 기사.

    과연 그 하데스의 기사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힘과 권능을 얻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찌 되었든 미첼 그린리버의 목표임이 확실했다.

    (물론 챔피언을 2라운드부터 출전시키는 것이 너무 이르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백발의 리치 허버트 레온을 단칼에 쓰러뜨린 특별 초대 검투사 칼리두 와탕카와의 결투라면 굳이 늑장 부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관중 여러분께서도 공감하시죠?)

    자그레우스의 물음과 동시에.

    “미첼! 미첼! 미첼! 미첼!”

    “보여줘! 챔피언! 이승에서 온 놈한테 저승의 맛이 무엇인지를!”

    “이참에 숨통을 끊어버려!”

    “죽여! 살아있는 놈은 모조리!”

    거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산 자를 향한 증오, 부러움, 열등감 따위가 잔뜩 묻어나는 외침들.

    그 외침에 호응이라도 하듯 미첼 그린리버가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자, 그럼 두 번째 경기! 특별 초대 검투사 칼리두 와탕카 대 명계의 챔피언 미첼 그린리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하데스 님?)

    (시작하라.)

    하데스의 허락은 곧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미첼 그린리버가 두 손으로 지팡이를 쥔 채 이안을 응시했으며, 이안 역시 올리버한테 배운 자세를 토대로 전투준비에 나섰으니까.

    ‘조금은 바꿔야겠지.’

    이곳은 망자의 땅이다.

    이미 허버트 레온을 만났고, 이제는 미첼 그린리버와 마주했다.

    이것이 무얼 뜻하겠는가?

    ‘그 밖에도 많이 있을 거다. 나와 같은 곳에서 왔고, 어쩌면 올리버의 검법을 알아볼지 모르는 자들.’

    그런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면.

    하여 만에 하나라도 이안의 정체를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일이 틀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바꿔야겠지.

    저들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예전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 내가 검에 대해서 뭘 안다고 검법을 바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격의 힘이 많은 것을 바꿔줬으니까.’

    검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응용력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격의 힘이란 그런 거다.

    “슈페리어 차원에서 하데스와 함께 왔다면, 아마 그대는 과업의 수행자겠지. 올림포스 쪽일 거고.”

    자세를 바꾼 이안에게 미첼 그린리버가 넌지시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몇 번째 과업을 수행 중이지?”

    “이걸로 다섯 번째입니다.”

    “다섯 번째 과업이라, 내가 열 번째의 문턱에서 미끄러졌으니, 한참 아래로군.”

    그리 읊조린 미첼 그린리버의 사방으로부터 강력한 불꽃 회오리바람이 불어 닥쳤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볼케이노’였다.

    “그럼에도 명계의 왕이 어떻게든 그대를 망자로 만들어 휘하에 넣고자 한다는 건…… 그만큼 남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뜻이겠지.”

    ……뭐?

    망자로 만들어?

    이건 금시초문이다.

    과업이 아니었던 건가?

    당장 그게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안은 그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뼛속까지 슈페리언이라면 반드시 던져야 하는 질문부터 던졌다. 그는 지금 철저히 슈페리언 행세를 하는 중 아닌가?

    “……제가 알기로 이곳 명계는 슈페리어 차원을 제외한 모든 중간계의 망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 역시 명계에 있다는 점, 그리고 그 특유의 생김새로 볼 때 중간계인이 확실하고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과업은 우리 세계의 사람들 중에서도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이들한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

    “헌데 당신 같은 중간계인 따위가 무슨 수로 과업을 수행합니까? 그것도 아홉 번씩이나? 날 혼란스럽게 만들 작정이라면 집어치우십시오. 하데스 님께서는 그저 다섯 번째 과업을 내리셨을 뿐입니다.”

    이안이 시치미를 뚝 뗐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놨다.

    그야말로 ‘네 번째 과업의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가 가장 먼저 품어야 할 의문이며, 질문거리였다.

    “그런가.”

    이안의 질문이 합당하다고 여긴 걸까? 미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그가 일으킨 불꽃의 회오리바람, ‘볼케이노’는 원형 경기장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해졌다.

    “더 나눌 대화는 없겠군. 우선 하데스가 원하는 대로 그대를 망자로 만듦이 우선인 것 같으니.”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죠. 가만히 당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이안이 검을 들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몸 말고, 마음이 그랬다.

    아무리 격의 힘으로 엄청난 이해도와 숙련도를 갖게 되었을지언정.

    그보다 더 깊숙이 박힌 심리적 거리감은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만약 미첼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데스는 나를 망자로 만들어 자신의 휘하에 넣고자 함이 확실하니까.’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속 하데스는 언제나 속내를 읽기 어려운, 매우 의뭉스러운 최상급 지배자였다.

    올림포스에 소속된 지배자이면서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존재라서 그런지 과업의 계시자로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간혹 제우스의 부탁을 받고 나설 때면 어김없이 수행자가 사망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프로메테우스를 포함한 여러 지배자들은 그저 하데스가 수행자에게 엄격하다고만 여겼는데, 지금 미첼의 발언을 듣고 보니 뭔가 더 있겠구나 싶어졌다.

    ‘문제는 미첼 그린리버, 저 마법사를 마법도 아닌 검 한 자루로 어찌 꺾느냐는 점인데…….’

    아홉 차례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분명 이안보다 강력한 존재일 확률이 높다.

    겨우 5클래스 마법사였던 자가 무슨 수로 아홉 차례의 과업을 완수할 만큼 강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만, 어찌 되었든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상대임은 분명했다.

    ‘……이거, 어쩌면 높은 확률로 시간을 되돌려야 할지도 모르겠군.’

    문제는 이안에게 허락된 모든 마법과 언령이 막혀 버렸다는 점이다.

    이곳이 명계이기에, 하데스가 그 세계의 신이기에 가능한 현실조작이었으니, 그야말로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크로미 님, 들리십니까?’

    이안에게는 아직 방법이 있다.

    그의 품에는 여전히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존재하지 않던가?

    모든 마법과 언령의 제한은 이안에게만 걸렸지. 크로미는 아니다.

    (들린다. 어찌 그러느냐?)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아니, 생각을 잘 들으십시오. 크로미 님께서 급히 해주실 일이 있으니까요.’

    계약자와 마도서 간의 소통방식에는 여러 개가 있는데, 이안은 입이 아닌 마음으로 크로미와 소통했다.

    이제 아껴뒀던 수를 쓸 차례다.

    (말해보아라.)

    ‘아직 채워 넣지 않은 계약 조건 중 하나, 지금 채워 넣겠습니다.’

    (어떤 조건을 말하는 게지?)

    ‘계약자의 죽음으로 이행되는 조건 말입니다. 제가 마도서에 기록해 놓은 마법이든, 주술이든, 무엇이든 발동시켜준다는 계약 조건.’

    (아하, 그거?)

    이안이 마음속으로 크로미와 소통하는 그 순간, 챔피언 미첼 그린리버의 맹공 역시 시작되었다.

    콰광! 쾅! 콰광! 콰과과과과……!

    그리고 그 맹공을 마주하는 순간.

    이안은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첫째, 미첼 그린리버는 아홉 번의 과업을 완수한 것이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만큼 파괴적인 마법을 쉴 새 없이 퍼부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터이니까.

    그리고 둘째, 고작 네 번의 과업을 완수한 본인은 절대로 미첼 그린리버를 이길 수 없다. 하물며 검을 쥔 상태로는 결단코 불가하다.

    그러니 더더욱 급박해졌다.

    죽지 않으려면 회귀뿐이다.

    ‘지금부터 시간 회귀에 관한 이론과 술식을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뭐? 시간 회귀? 그게 가능해?)

    ‘가능합니다. 일단 저는요.’

    크로미가 눈을 반짝였다.

    시간 회귀라니, 처음 듣는다.

    누구나 꿈꾸는 기적 아닌가?

    ‘어려운 주문입니다. 일단 들어보시고 힘들 것 같으면 빨리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다른 방법을…….’

    (지금 본녀를 무시하는 게냐? 나 마도서다. 한때 전 우주를 공포에 빠뜨렸던 마도서, 네크로노미콘!)

    전 우주를 공포에?

    정말일까? 허풍일까?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던 이안이 황급히 본론으로 넘어갔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언쟁할 시간 없으니 바로 시작하죠.’

    별수 없는 게, 시간이 부족하다.

    아홉 차례의 과업을 완수하며 이안보다 높은 격을 소유한 미첼 그린리버의 맹공은 그만큼 엄청났다.

    화염, 냉기, 바람뿐만 아니라 빛과 어둠 계열의 마법을 무자비하게 쏟아냈으니, 애당초 검 한 자루만으로는 불가능한 싸움이리라.

    (챔피언의 맹공에 슈페리어의 검투사는 그저 속수무책! 도망을 다니는 것이 전부입니다! 검 한 자루만으로 평정할 수 있다던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 갔을까요?)

    미꾸라지처럼 도망만 다니는 모습에 진행자 자그레우스가 조소를 날렸다. 그것은 진심 어린 비웃음이 아닌, 관중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사회자로서의 화술이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챔피언의 공격이 적중합니다! 살을 에는 얼음송곳으로 다리를 관통했는데요! 이러면 계속 도망 다니기 힘들죠! 이제 슈페리어의 검투사 쪽에서도 무언가 보여줘야 합니다!)

    자그레우스의 말이 옳다.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이상.

    도망 말고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안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마법이라도 부릴 수 있다면야 뭐든 하겠지만, 검으로는 한계다.

    “검 다루는 실력은 형편없군. 명계의 왕이 눈독을 들일 만큼은 아니야. 예컨대 요술 쪽이 진정한 힘이겠지?”

    “……말해 뭐 합니까? 그러니 시작부터 막아놓았겠죠. 참고로 저는 검 한 자루로 여기 평정할 수 있다는 말, 맹세코 한 적 없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나 또한 그대와 비슷하게 당했고, 여기 있으니까.”

    고꾸라진 이안 앞에 우뚝 선 미첼 그린리버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어찌나 건조한지, 흡사 감정이라는 게 말라비틀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분명 추방자 마을에서 묘사된 미첼 그린리버는, 그리고 그가 남긴 일지 속의 미첼 그린리버는 감정이 풍부한 존재였는데 말이다.

    “망자가 되어 제약이 사라진다면 다시 겨루어보도록 하지. 나 또한 그대의 진짜 힘이 궁금해졌거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

    대화 흐름상 비웃음이 튀어나올 차례임에도 여전히 아무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명계의 챔피언.

    미첼 그린리버가 왼손을 뻗었다.

    그 손가락을 이안의 머리에 겨누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색의 빛이 손가락 끝에 모여들었으니…….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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