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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49화
‘이게…… 아닌데?’
한 번의 일격으로 승리해 버린 칼리두 와탕카를 바라보며,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가 당혹감을 느꼈다.
‘분명 요술과 주술을 부리는 허약 체질이 아니었나? 근데 무슨 날붙이를 저리 잘 다뤄……?’
사실 하데스는 제우스의 부탁대로 이안을 검증할 생각이 없었다.
애당초 그는 명계의 왕이다. 올림포스 소속이기는 하나 완전히 독자적인 세력을 갖춘 존재 아닌가?
명계의 힘을 키우는 것, 그로 하여금 시계탑 이상의 세력이 되어 죽은 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의 산 자들까지 지배하는 것.
하데스의 오래 꿈이었다.
‘머리가 좋고, 요술과 주술 실력이 출중하며, 날붙이까지 잘 다루는 수행자라, 이거 생각보다 더 쓸모가 많은 놈이로군. 장차 시계탑을 무너뜨릴 명계의 군대에 어울리는 녀석이야. 이번 기회에 반드시 죽여서 내 휘하로 넣어야겠어.’
검증을 빌미 삼아 명계의 투기장에 참전시킨 뒤 망자로 만든다.
하여 먼 훗날 슈페리어의 시계탑으로 진군시킬, 나아가 시계탑을 무너뜨릴 역전의 용사로 키워낸다.
이미 이러한 방법을 통해 수많은 수행자를 명계에 귀속시켜왔다.
‘보자, 누굴 내보내면 좋을까?’
물론 과업의 수행자란 놈들은 하나같이 강하기에, 자신이 공들여 키운 검투사를 내보내야만 한다.
허버트 레온의 경우 공들여 키우기는 했지만 최약체에 불과하다.
두 번째 검투사로는 허버트 레온보다 강한 녀석을 내보내야겠지.
누가 좋을까?
[자그레우스.]
[예, 하데스 님.]
[두 번째 검투사로 어떤 녀석을 내보내는 것이 좋겠느냐? 보아하니 저놈,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하데스의 물음에 투기장 경기를 진행하던 사회자, 자그레우스가 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그는 경기를 진행할 때와 180도 다른 목소리 및 말투를 구사했는데, 생김새도 굉장한 미남자였다.
[흐음, 글쎄요. 몇 명 떠오르는 검투사들이 있긴 합니다만…… 혹 염두에 둔 검투사가 있으신지요?]
[그 녀석은 어떨까?]
[그 녀석이라고 하시면, 누굴?]
[그 왜, 있잖아? 두 번째 중간계에서 온 놈, 그쪽 세계에서는 왕자였다며? 생전 자네처럼 말이야.]
[아, 그 번개술사 말씀이시군요.]
하데스의 제안에 진행자 자그레우스가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정의 뜻이었다.
[글쎄요. 물론 그 친구가 백발의 리치보다는 한 수 위이긴 한데, 그래도 역부족일 겁니다. 체력을 빼놓는 용도라면야 괜찮을지도요.]
[으음, 그렇단 말이지. 허면 그 친구는 어떤가? 허버트 레온, 그리고 자그레우스 자네와 똑같은 중간계 출신 있잖아? 건방지게 슈페리어의 언어를 쓰는 그…….]
[아아, 그 요술사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 그 요술사라면 저 수행자와 급이 맞을 것 같은데.]
[으음…….]
이번에는 자그레우스도 일정 부분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놈이라면, 자그레우스한테는 다소 껄끄럽기는 하나 실력만큼은 발군인 그놈이라면 저 수행자와 호각을 이룰지도 모른다.
다만, 거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 존재라면 좋은 승부가 될 거라고 봅니다만, 아시다시피 그자가 지금 자리에 없는지라…….]
[음? 왜지?]
[일전에 타르타로스로…….]
[아, 참, 그랬었지 허허, 내 정신 좀 보게나. 자꾸 깜빡한다니까?]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 하데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그레우스에게 읊조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검투사 관리는 전적으로 자네한테 맡기지 않았나? 내 허락 구하지 말고 자네가 직접 내보내 보게. 누굴 내보내든 저 수행자를 망자로 만들기만 하면 그만이니.]
[하오면 제 임의대로 대진표를 구상해 보겠습니다. 저 수행자는 소인이 반드시 망자로 만들 예정이오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맡기도록 하지. 부디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그럼 잠시 경기에 내보낼 검투사를 선별하고 오겠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서 컨디션이 좋은 친구를 내보내야 하니까요.]
[그리하게.]
하데스에게 양해를 구한 자그레우스가 명계 검투사들의 숙소로 향했다. 그곳은 전투 경기 대기실을 겸하는 커다란 요새였다.
“이런 제기랄, 제기랄, 제기라아아아아아알! 감히 내 목을 따? 딱 봐도 새파랗게 어린놈이……!”
“허버트 님.”
그곳에는 이미 되살아나 울분을 토하고 있는 첫 번째 라운드의 검투사, 허버트 레온이 보였다. 어찌나 분노했는지 자그레우스의 부름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출전해야겠어. 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번에는 저 애송이를 반드시, 반드시 찢어 죽여……!”
“내 말이.”
그런 모습에 짜증이 난 걸까?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인 자그레우스가 아주 낮게 으르렁거렸다.
“들리지 않으십니까?”
“……소, 송구합니다. 전하. 하도 분통이 터지는 바람에 그만…….”
“이해합니다. 상대가 좋지 않았어요. 과업의 수행자란 놈 중에서도 특별한 것 같더군요. 하데스 님께서 눈독을 들일 만큼 말입니다.”
백발의 리치 허버트 레온은 자그레우스를 ‘전하’라고 불렀다.
저승에 와서 새로운 주인이라도 섬기는 걸까? 아니면 혹시……?
“그러니 화만 낼 게 아니라 더욱 정진하십시오. 제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전하께서는 이미 명계의 참모가 되어 이름까지 따로 받으실 만큼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시고 계신데…… 많이 부끄럽습니다.”
고개 숙여 사죄하는 허버트 레온의 어깨를 친근히 다독여준 자그레우스였으나, 실상은 달랐다.
‘늙은이, 살아생전에도 느꼈지만 총기가 다했군. 슬슬 더 쓸모 있는 무기를 찾아봐야겠어.’
속으로는 혀를 끌끌 찼다.
그뿐일까? 허버트 레온에 대한 평가를 ‘폐기처분’으로 바꿨다.
지금껏 요긴하게 써먹었으니, 이제 슬슬 버릴 때도 되기는 했다.
“……그럼 푹 쉬고 계십시오. 다음번에는 꼭 하데스 님의 눈에 들어 그분의 휘하에 들어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우리들의 오랜 계획도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예, 전하. 다음번에는 반드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하겠나이다.”
“좋아요. 아, 그런데.”
무언가 떠오른 듯 말문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자그레우스였다.
“아까 그놈 말입니다. 허버트 님께서 상대한 그 수행자라는 놈, 어딘가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다니요? 어떤……?”
“검을 쓰는 모양새도 그렇고, 뭔가 느껴지는 아우라도 그렇고, 익숙하단 말이죠. 어딘가 모르게.”
“그…… 사실 저도 느꼈습니다. 어딘가……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말씀하신 검술과 아우라뿐만 아니라 말투도 굉장히……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
자신만의 느낌이었다면 그냥 잊어버렸을 거다. 그런데 직접 마주한 허버트 레온조차 그리 느꼈다?
자그레우스가 생각을 바꿨다.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저 수행자란 존재를.
“탑주께서도 그리 느끼셨다니, 제가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쉬고 계십쇼. 저는 일단 다음 선수부터 선별해야 해서 이만.”
분노를 식히는 허버트 레온을 뒤로한 채, 금발의 자그레우스가 검투사 숙소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상대는 무려 네 차례의 과업을 완수한 슈페리어의 수행자다. 평범한 검투사로는 어림도 없을 터.
어울리는 상대가 필요하리라.
똑, 똑, 똑!
명계 투기장에서 우승한 망자에게는 부활이란 특혜가 주어진다.
하지만 부활을 거절하고 천 번의 우승을 거머쥐면 ‘하데스의 기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 이곳 최상층 숙소는 바로 그 천 번의 우승에 가까운 명계 투기장 최다 우승자에게 허락된 숙소였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무려 그곳의 문을 두드렸으니, 고작 2라운드에 출전할 검투사를 찾는 것치고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
따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자그레우스는 숙소 최상층의 흑요석 문을 활짝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조님.”
그곳에는 금발을 휘날리는 미남자가 숙소 창가로 보이는 전투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자그레우스는 그 검투사를 ‘선조님’이라고 불렀다.
“경기를 지켜보셨을 터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꾸는커녕 눈길 주는 법도 없다.
한데도 자그레우스는 말문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이러한 냉대와 무시가 익숙한 듯 보였다.
“두 번째 경기의 검투사로 나서주십시오. 하데스 님께서 하루빨리 저 수행자를 망자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물론 선조님께서 직접 나서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긴 합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하데스 님의 뜻이 워낙 완강하시니…….”
“그만.”
더 들을 것 없다는 듯 자그레우스의 말을 끊은 최상층의 검투사.
그가 숙소 한구석에 걸쳐놓은 지팡이와 푸른색 로브를 입었다.
“출전하지.”
“……감사드립니다. 허면 준비해 주십시오. 저도 지금 즉시 돌아가서 두 번째 경기를 준비하겠습니다.”
“라그나르.”
“……!”
순간 자그레우스가 흠칫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너무 어색한 이름이다. 하데스에게 자그레우스라는 명계식 이름을 받기 전에나 쓰였던 이름 아닌가?
“……말씀하십시오. 선조님.”
“날 선조라고 부르지 말게. 그대 같은 역적을 내 머나먼 후손이라고 여긴 적, 단 한 번도 없으니.”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하나 그 내용은 명백한 경고였다.
“…….”
그 경고를 알아들었을까?
잠시 침묵했던 자그레우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읍하며 말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마법의 도움 없이, 오직 검 한 자루만으로 허버트 레온의 목을 베어버린 이안이 따로 마련된 검투사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격이라는 건가?’
여전히 말로 다 설명하긴 어렵다.
그러나 초월적인 존재들 사이에 아등바등할 때와는 달리 격이라는 힘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이를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마법뿐만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한계와 제약이 사라진 느낌이다.’
과거 올리버와 5년간의 대련을 나눈 그때만 하더라도 이안이 타고난 검술 재능은 평범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네 차례 과업을 완수해냄으로써 끌어올린 ‘격’은 평범한 검술 재능마저, 하물며 마법 없이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던 육체적 능력조차 비약적으로 끌어올려 줬으니, 이제 슬슬 막연하기만 했던 무언가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당분간은 이 격이란 힘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안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걷고 있는 길이 옳다는 확신이 머릿속을 더욱 맑게 만들어줬다.
그 확신이야말로 미래가 불투명한 작금의 상황 속에서 어두운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장내에 계신 망자 여러분! 이제 곧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될 예정이니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순간.
대기실 바깥으로부터 두 번째 경기에 관한 안내음성이 들려왔다.
다시 나가서 싸울 차례였다.
‘가 볼까.’
이안이 검으로 변한 케이케리온을 집어 들었다. 고작 한 번 휘둘렀을 뿐이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오랜 애검을 쥐는 것처럼 익숙했다.
이 또한 ‘격’의 힘이리라.
(소개합니다! 하데스 님께서 특별히 초대한 검투사 칼리두 와탕카의 두 번째 상대를! 그는 명계 투기장 현역 검투사 중 최다출전, 최다승리, 그리고 최다우승에 빛나는……!)
다시금 경기장의 흙을 밟은 이안이 눈앞에 우뚝 선 상대를 살폈다.
그는 허버트와 마찬가지로 이안과 비슷한 덩치였으며, 어디서 많이 본 금발과 차림새의 소유자였다.
‘……잠깐, 저 로브?’
이안이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진행자 자그레우스의 목소리가 원형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챔피언, 미첼 - 그린리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