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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34화 (23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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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48화

    ‘허버트 레온이라니. 저 늙은이가 여기서 갑자기 왜 나와……?’

    하지만 그 의문도 잠시.

    이안은 이곳이 명계임을 되새겼다. 슈페리언뿐만 아니라 모든 중간계 망자들이 모이는 땅이잖아?

    ‘탑주뿐만 아니다. 어쩌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

    그 외에도 여기 있을 가능성이 높은 존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날 알아볼까?’

    이안이 긴장한 얼굴로 허버트를 응시했다. 그는 명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굴러먹었는지 인상부터 달라졌는데, 이전보다 더 악독하고 증오가 넘치는 눈빛의 소유자였다.

    “아직 죽음을 맛본 적도 없는 애송이가 여기까지 굴러들어오다니.”

    “…….”

    “아마 하데스 님께서도 네놈이 죽기를 바라고 초대하셨을 게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 생지옥에 내보낼 리가 없거든.”

    “…….”

    “그러니 내 하데스 님의 뜻에 따라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다행이다.

    전혀 모르는 눈치다.

    하기야, 변장도 했고 격까지 올랐다. 아무리 명계 투기장에서 3,000경기 이상을 굴러먹었다고는 하나, 놈은 그저 허버트일 뿐이다.

    간파당할 리 없으리라.

    ‘그래도 긴장을 풀지는 말자. 여기서 승률이 꽤 높아. 이래저래 달라졌다는 뜻이겠지. 특히나 흑마술사로 분류된 걸 보면, 아예 그쪽으로 전향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슈페리어 차원과 중간계가 그러하듯 명계와 중간계도 시간이 다르게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허버트는 이곳 명계에서 이안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시간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을 터.

    오랫동안 수련을 쌓았다면, 아마 상당한 강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전에 확인해 두자.’

    이안이 자신만의 관중석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하데스 쪽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제스처였으니, 진행자 자그레우스가 그 손짓을 발견했다.

    (칼리두 와탕카 님,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신 걸까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이 경기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말 그대로 경기니까 그냥 패배만 하는 건가요? 아니면…….”

    (음, 먼저 칼리두 와탕카 님께서는 아직 살아계시니…… 망자가 되어서 명계에 떨어지실 겁니다. 그때부터는 공식적으로 우리 명계에 소속된 식구가 되는 거죠. 하하.)

    이안은 아직 망자가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죽는다면, 그때부터는 망자가 되어 명계에 남는다.

    (단 우리 베테랑 검투사 허버트 레온도 그렇고, 이미 죽어서 명계에 떨어진 망자들은 죽어도 죽는 게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복구되죠. 영혼이 말입니다.)

    다만 이미 죽어서 명계에 떨어진 망자들은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단다. 이거, 생각보다 불리하잖아?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실까요?)

    “아뇨, 당장은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진행자 자그레우스가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콜로세움 관중석을 가득 채운 망자들 역시 덩달아 숨죽이고 자그레우스의 말에 집중했다.

    과연 진행자다웠다.

    (하데스 님의 특별 초대 검투사 칼리두 와탕카 대 명계의 베테랑 허버트 레온의 목숨을 건 진검승부!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 !)

    허버트 따위한테 시간을 허비할 순 없는 노릇, 단숨에 끝내버리자.

    놈이 여기서 얼마나 오래 굴러먹었든, 이안 앞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상아탑주…….

    우우우우웅……!

    바로 그때였다.

    이안이 쥐고 있던 지팡이 케리케이온으로 백색의 빛이 모여들었다.

    어디 그뿐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들한테 어울릴 만한 지팡이였던 케리케이온의 모습이 커다란 검으로 변하는 것 아닌가?

    “이게 갑자기 왜……?”

    다짜고짜 검으로 변해버리다니.

    설마 이 지팡이의 옵션일까?

    지금껏 이런 적은 없는데?

    (아~! 방금 하데스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특별 초대 검투사 칼리두 와탕카 님은 칼 한 자루만으로 명계 투기장을 평정할 수 있다 호언장담하셨다고 합니다!)

    ……뭐?

    내가 언제?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지금 무슨 헛소리일까?

    (따라서 칼리두 와탕카 님께서는 본디 요술사이지만, 본인의 뜻에 따라 특별히, 아주 특별히 검 한 자루로 모든 경기를 치르게 될 예정입니다! 물론 요술 역시 금지되겠죠!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 리스크를 안고 참가하시다니요! 자신감이 참 대단하시지 않습니까?!)

    요술과 주술.

    그러니까 마법 없이.

    검 한 자루로 싸우라고?

    이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하데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오직 자신만의 관중석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

    그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의미심장하게.

    혹은 약이 오르게.

    ‘웃기는 소리, 마법을 쓰지 않고 어떻게 싸우라고? 최소 기본적인 보조 마법을 쓸 수 있어야 검이라도 휘두르든 말든…….’

    이안은 저들의, 특히 하데스의 장난질에 놀아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애당초 그런 약속을 한 적 없으니 그냥 써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어?’

    이상한 일이다.

    술식이 전혀 발동되지 않는다.

    마치 주문 방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설마……?’

    이안이 다시금 하데스를 노려봤다.

    웬만한 주문 방해에도 끄떡없는 이안의 마법을 먹통으로 만들 만한 존재는 오직 하데스뿐일 터.

    그는 이곳 명계에서 못 하는 일이 없는 절대적인 인물 아닌가?

    [과업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지금껏 그대에게 과업을 내렸던 계시자들이 너무 물러 터졌던 게지.]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음성.

    이 투기장에서 오직 이안만이 들을 수 있는 하데스의 목소리였다.

    [단순히 요술에 되도 않는 잔꾀 좀 섞어서 부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그러니 한번 증명해 봐라.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건지.]

    내용은 근엄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말투는 은근히 사람 신경을 건드는, 장난기 가득한 말투다.

    이 작자, 지금 즐기고 있다.

    이안이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라도 상상한 모양이다.

    ‘……별수 없지.’

    그러나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당황하긴 했는데, 그래도 허둥지둥 댈 만큼은 아니다.

    ‘한번 해보는 수밖에.’

    ‘격’이 오른다는 것은 곧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며, 많은 부분에 걸려 있었던 제약이 풀린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안의 육신 역시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뜻.

    ‘워낙 오래전에 배워서 될진 모르겠다만…… 어떻게든 되겠지.’

    아주 오래 전.

    이안은 올리버 레이우드와 5년간의 대련을 나누며 겸사겸사 올리버의 검법을 배워보기도 했다.

    비록 올리버가 평가하길 ‘검에 한해서는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이긴 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그 이후로도 가끔 대련을 나누며 올리버의 경지를 엿봤고, 무엇보다 ‘격’이라는 것이 달라진 상황.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른다.

    “후우우우……!”

    이안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나아가 온몸으로 퍼뜨려 채웠다.

    올리버가 처음 고안해냈고, 이제는 제국의 모든 기사들에게 널리 퍼뜨려진 육체 강화 기술이었다.

    “이봐, 노인장.”

    “……뭐? 노인장.”

    “뭐 하나만 묻지.”

    명계에서는 서로가 자신이 익숙한 언어를 쓴다. 하지만 그 뜻만큼은 명계의 법칙에 따라 실시간으로 전달되니, 이안은 의심을 받지 않도록 슈페리어의 언어를 썼다.

    “이 투기장에 3천 번이 넘도록 참가했다는 건, 어떻게든 우승해서 되살아나고 싶다는 뜻인데,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명계에서 사는 게 그 정도로 힘들어?”

    명계를 직접 보기 전까지.

    이안의 머릿속 사후 세계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묘사하는 ‘지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이 경기를 보려고 모여든 저 망자들을 보라.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가?

    이쯤 되면 다 잊고 사후의 삶을 즐길 법도 하건만, 무엇이 허버트 레온을 투기장으로 이끌었을까?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 어디로?”

    “나의 세상, 나의 탑으로.”

    “……탑?”

    분명 상아탑을 뜻할 터.

    허버트 레온의 목소리에서 이승을 향한 미련이 뚝뚝 묻어났다.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쳐 죽여도 모자랄 놈이 아직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버젓이 살아 있어!”

    “…….”

    “여기서 얻은 힘으로 그놈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거야. 그놈뿐만 아니라 가족에 주변까지도 모조리!”

    쳐 죽여도 모자랄 놈.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

    눈앞에 조우한 상대가 그라고는 꿈도 못 꿀 허버트 레온을 바라보며, 이안이 한심한 듯 혀를 찼다.

    “……그것참 하찮은 이유군.”

    “뭐? 하찮아? 애송이 놈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그렇잖아? 물론 내가 당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그딴 소리 지껄이는 늙은이들치고 제대로 된 놈을 못 봤거든. 본인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끝까지 언급을 하지 않아. 지능이 딸리는 건지 원.”

    “늙은이……? 지능……? 이 시퍼렇게 어린 애송이 따위가 감히……!”

    결국 분노가 한계에 닿은 검투사.

    허버트 레온의 두 눈동자에서 시꺼먼 안광이 넘실거렸다. 저 눈빛으로 미루어보건대, 놈은 이미 흑마법에 완전히 먹혀버린 상태였다.

    거의 리치에 가깝다고나 할까?

    “……오냐, 정 소원이라면 네놈부터 죽여주마! 망자가 되어 다시 만나거든 내 눈조차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그 순간.

    원형 경기장 일대가 끈적끈적한 흑마법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그 기운 아래로부터 시꺼먼 팔뚝이 여럿 튀어나와 이안을 노리기에 이르렀으니, 능력을 떠나서 굉장히 불쾌한 마법이었다.

    “죽어라 이 건방진 놈……!”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은 손아귀.

    그 한가운데 놓인 이안이 검으로 변해버린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더불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올리버 특유의 검법을 펼치고자 했다.

    “후우우우우……!”

    처음에는 어색했다.

    이안은 기사가 아니니까.

    그러나 그 어색함도 잠시일 뿐.

    지금껏 과업을 수행하며 끌어올린 ‘격’이, 이안의 다소 어색한 검법을 완전무결하게 만들어줬으니.

    팟!

    반쯤 무아지경의 상태에 돌입한 이안이 지면을 박차고 나아갔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허버트 레온의 목!

    서걱 !

    단 한 수.

    그거면 충분했다.

    툭, 투둑, 투두두두두두……

    너무나도 허무하게.

    3,820전 3,119승이란 전적이 무색할 만큼 순식간에 떨어져 버렸다.

    백발의 리치, 명계 투기장의 베테랑 검투사 허버트 레온의 머리가.

    “…….”

    일순간의 정적.

    진행자 자그레우스는 물론이거니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머릿수의 관중들조차 이 순간만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진행자님.”

    (……예, 예?)

    “판정하시죠.”

    (어…… 어어…… 아……!)

    이안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 자그레우스.

    잠시 넋을 놓았던 그가 경기 진행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깨달았다.

    (처, 첫 번째 경기의 승자는 슈페리어에서 온 하데스 님의 특별 초대 검투사, 카, 칼리두~ 와탕카!)

    너무나 강력한 존재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체감하기 힘들었던 ‘격’.

    이안은 마침내 그 격이라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이것이…… 격의 힘?’

    이미 네 번의 과업을 수행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욱 높은 격을 네 번이나 허락받은 이안 페이지.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가 아니었다.

    표현 그대로 ‘격이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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