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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33화 (23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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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47화

    약초밭과 흑요석 광산을 성공적으로 가동해 놓은 이안이 서둘러 올림포스 신전으로 들어왔다.

    지체 없이 다섯 번째 과업을 완수하기 위함이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정확히는 달라졌다.

    ‘원래 저런 조각상이 있었나?’

    신전에 한두 번 와보는 것이 아니다. 조각상들의 대략적인 생김새와 위치 정도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처음 보는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이안이 다섯 번째 과업을 받아야 할 위치에 떡하니 말이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뭘까?

    ‘만나보면 알겠지.’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공양물로 바칠 황금 사과를 꺼냈다.

    [황금 사과 부자라더니, 진짜였잖아? 설마 이 귀한 걸 공양물로 턱턱 바칠 줄은, 예쁨 좀 받겠는데?]

    역시 귀한 사과답게 공양을 올리자마자 반응이 왔으니, 그 새로운 조각상의 목소리는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속에 명백히 존재했다.

    ‘죽은 자들의 왕, 하데스.’

    죽은 자들의 왕.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

    제우스에 버금가는 격을 가진 지배자가 어째서 다섯 번째 과업의 계시자로 나섰단 말인가?

    [소문은 익히 들었다.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나는 또 이름이 워낙 과격해서 헤라클레스 같은 기간테스일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아주 호리호리하구먼?]

    “많이들 그리 말씀하시더군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 송구합니다.”

    [기대라기보다는 의외인 게지. 송구할 일도 아니고. 음, 아무튼 만나서 반갑다. 나는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라고 한다.]

    “이미 알고 계시지만 칼리두 와탕카라고 합니다. 명계의 왕이시자 올림포스 전당의 삼황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데스 님.”

    [오, 나를 아는군.]

    “과업을 완수하고 올림포스의 지배자가 되길 원하는 이가 어찌 하데스님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흐음, 글쎄, 올림포스의 지배자가 되길 원하는 게 맞긴 한가?]

    의뭉스러운 목소리.

    하데스가 계속 읊조렸다.

    [듣자 하니 우리와 아스가르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던데.]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그 말은 모순이 아닌가?]

    “개인적인 선호도는 여전히 올림포스 전당이 압도적입니다. 다만 아스가르드 측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라서요.”

    [왜지?]

    “저는 아직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수행자에 불과합니다. 지배자의 격을 얻지도 못하였죠. 이런 상황에서 아스가르드라는 거대 세력과 척을 진다면, 글쎄요. 여러분께서 저를 지켜주신다는 보장이 없는 한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해서 줄을 탔다? 아직 수행자에 불과한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

    “일단 살아남고 봐야 과업을 수행할 테고, 지배자의 격을 얻어 안전을 꾀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꽤 그럴듯하군.]

    제법 그럴듯한 말솜씨.

    하데스가 말문을 멈췄다.

    물론 그 침묵이 길지는 않았다.

    [본디 나는 과업의 계시자로 나서지 않는다. 딱히 시킬 일도 없고, 심부름시킬 놈이야 명계에 썩어 넘치거든. 하지만 오늘은 내 특별히 다섯 번째 과업의 계시자로 나섰지. 그 이유가 짐작되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척하지 말고.]

    “……제 소문을 듣고 흥미가 생기신 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누군가 부탁하더군. 수행자에 관한 평가를 해달라고 말이지.]

    “…….”

    [정말 파격적인 조건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할 재목인지, 아닌지를.]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

    그야 당연히 제우스겠지.

    그가 아니면 누가 또 그런 고민을 하고,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한테 이런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쉽게 말하면, 앞으로 그대가 잘 보여야 할 대상이 나라는 뜻이지.]

    이안이 잘 보여야 할 대상.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 지배자.

    하데스의 말에 이안이 끄덕였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명계의 왕이자 올림포스의 삼황께 저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군. 좋다. 지금 즉시 바이프로스트로 와라. 다섯 번째 과업은 중간계보다도 깊숙한 땅, 명계에서 치러질 예정이니.]

    명계.

    죽은 자들의 땅.

    말 그대로 사후 세계 아닌가?

    그런 곳에서 치르는 과업이라니.

    슈페리어 차원에 처음 발을 들일 때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어떤 생각을 떠올렸던 이안이 잡념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오직 눈앞에 놓인 과업만을 생각할 때.

    “비프로스트에서 뵙겠습니다.”

    잠시 후.

    올림포스 신전 뒤뜰에 도착한 이안을 비프로스트가 먼저 알아봤다.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님, 환영합니다.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 님께서 칼리두 와탕카 님의 비프로스트 탑승을 허용하셨습니다.]

    저번에는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가 싶더니만, 오늘은 달랐다.

    [명계, 죽은 자들의 궁전으로 연결되는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부디 즐거운 여정 되시기를.]

    * * *

    하데스의 지하 궁전.

    그곳은 어딘가 모르게 음침한 기운이 흘렀으나, 풍경 자체만 놓고 보자면 이안이 접해본 그 어떤 궁전보다 넓고 화려했다.

    여러 세계의 건축양식과 장식품이 한곳에 모여 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다고나 할까?

    [내 집에 온 걸 환영한다. 죽지 않고 지하 궁전에 방문한 수행자는 헤라클레스 이후로 처음인 것 같군. 아니, 몇 명 더 있던가?]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이 참 자주 언급된다. 그만큼 역대 수행자 중에서도 압도적이었다는 뜻이겠지.

    그런 자와 만나 약속까지 받아냈으니, 새삼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따라와라. 그대의 과업이 시작될 장소는 궁전 안이 아닌 밖이니까.]

    하데스가 손짓하자 놀랍게도 지하 궁전이 사라졌다. 아니, 궁전이 사라진 게 아니라 이안과 하데스가 밖으로 공간을 이동한 것이다.

    ‘텔레포트 주문과는 결이 다른 공간 이동이다. 명계에서는 혼돈의 자식들조차 하데스를 이길 수 없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보네.’

    마치 티탄의 땅에서 티탄족이 불사의 존재인 것처럼, 명계에서 하데스는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저곳이다.]

    밖으로 나온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가 손가락을 쭉 뻗어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위치에는 커다란 원형 건축물이 시뻘건 하늘 아래, 그리고 사방으로부터 들끓어 오르는 용암 한가운데 세워져 있었으니.

    그 건축물의 이름은…….

    [콜로세움.]

    “콜로…… 세움?”

    [명계의 투기장이지.]

    명계의 투기장, 콜로세움.

    그 원형 경기장을 가리킨 하데스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수행자는 지금부터 다섯 번째 과업이 끝날 때까지 나의 검투사가 되어 전투 경기에 참가한다.]

    “……검투사 말씀이십니까?”

    [우리 명계에서는 주기적으로 저 콜로세움에서 전투 경기를 거행하지. 형식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우승한 검투사가 받아갈 상은 같아.]

    “그 상이 무엇이죠?”

    [부활.]

    “부활……?”

    [되살려준다. 그래서 그런지 참여율이 상당한 편이야. 이승에 미련이 남아있는 망자들, 여기서는 발에 차이는 게 그런 놈들이거든.]

    죽은 자를 다시 되살려준단다.

    생각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이다.

    [물론 수행자는 아직 살아 있으니 다른 보상을 걸어야겠지. 흐음, 어디 보자. 다섯 번째 과업의 완수와 더불어 긍정적인 평가, 이 두 가지면 어떻게 계산이 좀 맞을까?]

    “충분합니다.”

    무언가를 더 요구해 볼까 했지만 이내 생각을 거두는 이안이었다.

    애당초 과업 자체가 목숨을 걸고 행하는 임무이니만큼 그걸로 만족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하데스는 이안을 평가하기 위하여 특별히 계시자로 나선 존재 아닌가?

    [충분하다니 다행이군. 그럼 바로 참가해 보도록 할까?]

    “제 자리가 있습니까?”

    [없는 자리도 만들어야지. 어차피 이 경기는 내 여흥을 위한 재롱잔치에 불과하니까. 참가한 망자들이 죽고 사는 건 그다음의 문제고.]

    피식 웃은 하데스가 다시 한번 손짓하자 이번에는 주변이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 안쪽으로 변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안 혼자 경기장의 모래바닥에 서 있다는 점.

    그리도 하데스는 어느새 가장 높은 곳 자신만의 관중석에 앉아 이안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

    하데스의 위치부터 파악한 이안이 멈추지 않고 주위를 둘러봤다.

    감히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머릿수의 관중들.

    예컨대 망자들이 넓고 높은 관중석을 빼곡히 채운 채 목청 터지라 소리치고 있었으니, 어지간한 존재가 여기 선다면 그 압도감에 혼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냥 고함만 치는 게 아니라 이상한 기운을 뿜고 있어. 까딱 잘못했다간 나도 위험하겠군.’

    그나마 네 번의 과업을 완수하며 쌓아 올린 격, 거기에 추가로 헤파이스토스한테 선물 받은 지팡이 케리케이온 덕에 버티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힘들었으리라.

    (아아, 장내에 계신 모든 망자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고, 금일 예정된 경기에 몇 가지 변경사항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 거대한 콜로세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마치 음성 증폭 수정구를 통한 것처럼 인위적으로 증폭되어 있었는데, 경기를 진행하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먼저, 우리 지하 세계의 왕이신 하데스 님께서 특별히 초청한 이승의 검투사가 금일 대회에 검투사로 참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데스의 특별 초대 검투사.

    순간 관중석의 망자들이 경기장 한가운데 나타난 이안을 바라봤다.

    (망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이승에서도 가장 높은 곳, 슈페리어 차원에서 지배자가 되기 위한 과업을 수행 중인 하데스 님의 특별 초대 검투사, 칼리두~ 와탕카-!)

    사회자가 이안을 소개하는 순간.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 !”

    그야말로 천둥번개와도 같은.

    아니, 비교당한 천둥번개조차 부끄러워할 만큼 압도적인 함성이 사방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자자, 무려 하데스 님의 초대를 받은 검투사가 이번 대회에 참가한 만큼, 그 상대 역시 그에 걸맞은 검투사가 나와야 제맛이겠죠?)

    글쎄.

    딱히 그럴 필요는 없는데.

    괜히 시작부터 힘 뺄 필요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하데스 님.)

    (허한다.)

    ……저 양반이?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 !”

    이안을 뺀 모든 망자들이 하데스의 결정에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좋습니다! 좋아요! 망자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 그리고 우리들의 왕이신 하데스 님의 허락에 힘입어서 저, 콜로세움의 관리자 자그레우스가 특별히 내세우는 첫 번째 상대! 그 이름은 바로……!)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관중들이 다 함께 발을 굴렀다.

    이러니까 괜히 더 긴장되네.

    “…….”

    마음을 다스린 이안이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그러고는 상대가 나올 것으로 추정되는 원형 경기장의 정면 쇠창살 문을 응시했다.

    끼이이이이이이……!

    마침내 그 쇠창살 문이 열리며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는 이안과 비슷한 덩치를 가졌으며, 길게 늘어진 백발과 수염이 참으로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어?”

    그런데 가만.

    저 얼굴, 분명 어디선가…….

    (통산 전적 3820전 3119승 701패에 빛나는 베테랑! 무시무시한 흑마술과 음흉한 속임수의 대가! 강자들이 즐비하기로 유명한 다섯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 출신……!)

    다섯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

    그곳은 분명 이안의 고향이다.

    거기서 온, 낯이 익은 얼굴.

    ……설마?

    (백발의 리치, 허버트 - 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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