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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32화 (23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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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46화

    [약초밭이나 흑요석 광산……?]

    어째서 그런 것을 원하느냐는 뜻.

    이안이 침착하게 답을 내놓았다.

    미리 준비해 놓은 답변이었다.

    “아레스 님께서 내려주신 과업을 수행할 때, 그분 소유의 약초밭과 흑요석 광산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제 소유의 약초밭과 흑요석 광산이 한두 개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요.”

    [어째서죠? 수행자는 아직 중간계의 여흥을 즐길 수 없을 텐데.]

    “물론 중간계의 여흥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럴 여유도 없고요. 단지, 거기서 키우고 채집할 수 있는 약초와 광물이 탐나더군요. 아시다시피 주술과 요술에는 이런저런 재료가 필요한 법이거든요.”

    주술과 요술에 약초와 광물이 필요하다. 괴수의 부산물을 챙길 때도 요긴하게 써먹었던, 언제나 손쉽게 쓸 수 있는 무적의 논리였다.

    단,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안이 한 가지를 더 말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제가 과업 완수에 실패했을 때, 그 여파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럴 때 광산과 밭이 있다면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굶어 죽을 걱정은 할 필요 없겠죠.”

    [만일에 대비해서 비빌 언덕 하나쯤은 만들어놓고 싶으시다?]

    “정확하십니다.”

    [으음.]

    과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행 도중 죽어 나가는 이가 부지기수다. 어디 하나 부서지고 박살 나 불구가 되는 이도 수두룩하다.

    이안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 비빌 언덕 하나쯤 내어달라.

    그 요구에 아르테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납득되었다.

    [의외로 현실적인 구석이 있으시네요? 보통 수행자들은 이쯤 오면 자신감이 아주 대단하던데,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지요.]

    “저도 끝까지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단지, 가끔은 뒤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뒤를 돌아본다라, 여태껏 그런 말씀을 하셨던 수행자는 본 적이 없는데, 역시 남다르셔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 맞아요. 특급 칭찬이죠.]

    피식 웃은 아르테미스가 자신의 조각상을 통하여 계속 이야기했다.

    [어쨌거나, 좋아요. 수행자의 그 바람을 들어 드리도록 하죠. 멀리 갈 필요 없이, 제 개인 소유의 토지와 광산을 내어 드릴 테니까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재밌었거든요. 이번 사냥, 안 그래도 뭔가 선물하고 싶었는데, 바라는 게 명확하니 좋네요.]

    거기까지 말한 아르테미스가 석상이 아닌 본신으로 올림포스 신전에 나타났다. 물론 덩치는 이안과 비슷한 사이즈를 맞춰왔다.

    [이리 와요. 수행자께서 원하시는 밭, 광산, 전부 보여 드릴 테니. 특별히 고를 수 있게 해드리죠.]

    * * *

    당초 원했던 것은 조그마한 밭과 흑요석 광산 하나가 전부였다.

    시작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급히 먹으면 탈이 나는 법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르테미스의 배포는 그 짐작을 뛰어넘었다.

    그도 그럴 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비옥한 토지와 그 토지 인근에 딸린 거대 광산 한곳을 내어줬으니 말이다. 심지어 흑요석만 나오는 광산도 아니고 온갖 희귀 광물이 다 묻혀있는 광산이란다.

    그야말로 알짜배기다.

    ‘시작이 좋군.’

    이제 이 토지와 광산은 이안.

    아니, 칼리두 와탕카의 소유가 되었으니, 따지고 보면 이쪽 세계에서 처음 갖는 ‘사유 재산’이었다.

    ‘자, 그럼 어디 내 사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 보도록 할까?’

    말이 조금 거창한데, 그냥 약초 심고 광물 채굴하겠다는 뜻이다.

    결심을 굳힌 이안이 감시자한테 받은 갈빗대를 땅 아래에 묻었다.

    사실 이안은 처음부터 이 갈빗대를 전투용이 아닌 다른 쪽으로 활용하고자 마음먹었으니, 그것은 바로 ‘노동자’, 혹은 ‘일꾼’ 되시겠다.

    우득, 우득, 우드드드득……!

    하나둘씩 늘어나는 감시자 군단.

    그럼에도 이안은 좀처럼 감시자 군단의 무한증식을 멈추지 않았다.

    수십의 단위가 수백이 되고, 수천을 넘어갈 때쯤.

    “여기까지.”

    비로소 갈빗대를 거둔 이안이 수천 대군의 감시자들에게 명령했다.

    “주목.”

    그 한마디에 각 맞춰 도열 된 수천 대군이 이안을 바라봤다.

    그런 감시자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오래 전, 단 한 번도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통일 전쟁을 치렀던 삶, 그땐 이따금 군대를 통솔하기도 했지.’

    참으로 낡아버린 기억.

    이쯤 되니 가물가물하다.

    “지금부터 제군들이 할 일은 전투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터이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도록.”

    그래도 그 나름의 통솔력만큼은 몸에 남아 있는 모양인지 제법 그럴듯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먼저 그대들은 절반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한쪽은 밭을 개간한 뒤 약초 농사에 투입될 것이며, 나머지 한쪽은 광산으로 투입되어 광부 일을 도맡을 것이다. 그러니 각자 자신 있는 분야를 상의하고 선택하여 반반으로 나뉘도록.”

    알아서 상의하고 나뉘어라.

    명령이 아닌 선택권을 받자 뼈밖에 남지 않은 감시자 군단이 당황한 듯 서로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선택이 어렵다면 이 가운데를 기준선으로 나누지. 왼쪽은 농사꾼으로 투입, 오른쪽은 광부로 투입.”

    “…….”

    “불만 있나?”

    “…….”

    “없지?”

    “…….”

    “좋아.”

    불만이 있을 리가.

    애당초 이들은 감시자 올드 가드의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자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없으면 이대로 나뉘어 임무를 수행한다. 아, 그러고 보니 뼈로 검이나 창을 만들어 싸우던데, 혹시 쟁기나 곡괭이도 가능한가? 불가능하면 장비를 구해야 해서…….”

    이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뼈로 이루어진 육신 중 일부를 쑥 뽑아 변형시키기 시작하는 감시자 군단.

    이안이 말한 그대로 밭갈이에 필요한 쟁기와 광산 채굴에 필요한 곡괭이였으니, 따로 수천 명 분의 장비를 구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엄청 편리하잖아?’

    힘 좋고, 지치지 않으며, 무한히 증식되는 데다가, 노동에 필요한 장비조차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

    그야말로 노동에 특화된 일꾼들 아닌가? 역시 이안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앞으로 밭이나 광산 등 사유재산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들의 가치 또한 함께 늘어날 터.

    ‘일이 생각보다 더 쉽게 풀렸군.’

    밭과 광산을 얻어냈다.

    이제 여기서 나오는 물자들을 꾸준히, 안전하게, 대량으로 고향 땅에 전달할 방법만 찾으면 되겠지.

    ‘내 아공간 주머니로는 한계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람 님께서 만들어주셨던 난쟁이 광선도 이쪽 세계에서는 먹히지 않으니……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

    과업을 계속 완수한다.

    그 과정에서 대량의 물자를 고향으로 쉽게 옮길 방안을 모색한다.

    ‘아레스처럼 밭이나 광산에 중간계로 연결된 통로를 만들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건 최상급 지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슈페리어 차원과 중간계 사이에 인위적인 통로를, 일명 ‘쥐구멍’을 뚫는 것은 오직 시계탑의 지배자들에게만 허락된 권능이었다.

    심지어 표면적으로는 금지된 힘이니, 아직 12과업조차 완수하지 못한 이안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모든 과업을 끝내고 지배자의 격을 얻든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분명 나아가고 있다.

    벌써 다섯 번째 과업을 눈앞에 뒀으며,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을 모조리 전수받았고, 이렇듯 커다란 밭과 광산을 소유하지 않았던가?

    “후우.”

    이안이 마음을 다잡았다.

    나아가 감시자 군단을 바라봤다.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어 쟁기와 곡괭이를 들고 있는 해골 병사들.

    지금은 이 듬직한 일꾼들과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겠지.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 * *

    [얘기는 들었네. 아스가르드 쪽에서 탐을 낼 만큼 재미난 수행자가 한 명 나타났다던데, 사실인가?]

    [그 친구 명성이 대단하군. 설마 거기까지 소문이 닿았을 줄이야.]

    [온갖 잡것들이 다 모여드는 명계 아닌가? 온갖 소문도 다 드나들지. 최근에는 자네 사생아가 또 들어왔어. 헤라에게 당했다더군.]

    [헤라가 또…….]

    [헤라는 제우스가 또…… 라고 말하면서 죽였겠지. 아니, 그런가? 우리 대단하신 외도의 지배자이시여.]

    [크흠……!]

    올림포스 전당의 최상급 지배자 중에서도 ‘삼황’에 포함되는 존재.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가 오래간만에 만난 제우스와 황금 사과로 만든 과일주를 기울이며 말했다.

    [아무튼 그 얘기나 계속하지. 이번에 새로 나타났다는 수행자 말이야. 얼마나 대단하기에 명계까지 소문이 나? 이런 경우는 헤라클레스 때 말고는 없었던 것 같은데.]

    [어디까지 들었나?]

    [음?]

    [소문 말이지.]

    [소문이 다 그렇듯 대부분은 부풀려진 것 같더군. 티탄의 땅에서 에오스를 끄집어내 죽였다든지, 탈옥한 프로메테우스를 생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든지, 레르니안 히드라를 사냥했다든지…….]

    [그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군.]

    [……설마?]

    [모두 사실이야.]

    [……!]

    슈페리어 차원은 물론 모든 중간계의 망자들이 드나드는 명계.

    그곳까지 흘러들어오는 소문들이란 대개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한데 과장이 아니란다.

    전부 사실이란다.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그래서 더욱 흥미가 생겼다.

    [그쯤 되면 헤라클레스, 그 친구조차 뛰어넘는 수행자 아닌가?]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물건이 하나 굴러들어 왔나 보군. 헌데, 왜 표정이 그 모양인가? 우리 중 그 누구보다 좋아할 줄 알았더니만.]

    강한 지배자를 더 많이 보유하는 것은 곧 시계탑 내 서열의 척도가 된다. 그리고 그 서열에 따라 더 많은 권한과 권능이 나누어진다.

    그걸 제우스가 모를 리 없을 터.

    아니,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겠지.

    한데 어째서인지 표정이 썩 밝지가 않았으니,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하데스가 술잔을 놓으며 읊조렸다.

    [혹 그 수행자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가만, 설마 또 자네의 사생아 중 한 명이라든지……?]

    [……그건 아닐세.]

    [다행이군. 그랬다면 헤라의 과업을 수행하다가 죽을 게 빤하니.]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그럼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어디까지 해줘야할지 모르겠군.]

    [그게 무슨 뜻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아스가르드 쪽에서도 수행자를 노리고 있네. 수행자 역시 그 사실을 알고 당당히 말하더군. 공개 입찰을 하겠다고.]

    [뭐? 공개 입찰?]

    두 전당 가운데서 공개입찰이라?

    그놈,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인지는 몰라도 배포 하나만큼은 두둑한 수행자로구나 싶은 하데스였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수행자 따위한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고, 그렇다 하여 아스가르드에게 빼앗기는 것은 더더욱 골치 아픈 일이니…….]

    수행자에게 쩔쩔매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남한테 빼앗기기도 싫다.

    다른 지배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근엄하고 위압감 넘치는 제우스였으나, 오랜 친우 앞에서는 남몰래 품고 있던 우유부단함을 숨기지 않았다.

    [자네, 이제 보니 그것 때문에 날 만나자고 했구먼? 내가 대신 판단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인데?]

    [……부정하지 않겠네. 우리들 중 하데스 자네만큼 냉철하고 확실한 눈을 가진 이도 없으니까.]

    [아무렴, 황금사과주를 대접할 때부터 나한테 부탁할 거리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

    용건도 알았겠다.

    더는 망설임 없이 귀한 황금사과주를 병째로 들이키는 하데스였다.

    [가만있자, 그놈이 지금 몇 번째 과업을 수행 중이라고? 네 번째?]

    [이제 다섯 번째일세.]

    [계시자는?]

    [원래는 디오니소스가…….]

    [그놈 빼고 내가 들어가지.]

    [……자네가 직접 말인가?]

    [기다릴 거 뭐 있나? 내 당장 만나볼 테니 자네는 마음 편히 있어.]

    그러고는 제우스의 어깨를 툭 쳐주며 오직 하데스만이 내뱉을 수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친구 좋다는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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