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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45화
딸아이가 떠났다.
고작 5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
그럼에도 무척 어른스러운 아이.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비현실적인 마나 하트를 타고났으며, 그래서인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아이.
그런 아이가 집을 떠났다.
‘말리고 싶었는데.’
정말 뜯어말리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떤 5살짜리 꼬맹이가 수련을 한답시고 제 어미의 품을 떠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더라고.’
평범한 5살짜리 꼬맹이처럼 떼를 쓰기는커녕, 하이리 자신을 조곤조곤한 말투와 논리로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혹시 이안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심증만 있을 뿐이다.
‘올리버 경한테 가겠다, 가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울 만큼 강해져서 돌아오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섯 살짜리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리지는 않지만…… 내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어쩌겠어?’
물론 평범한 5살짜리 꼬맹이라 그런 말을 했더라면 웃어넘겼을 거다. 하지만 요하나는 이미 엄청난 경지의 마법사가 되었다.
‘최초의 마법사’처럼 어디서도 배운 적 없는 마법을 구사했다.
마치 그 옛날 12살짜리 꼬맹이 이안 페이지가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그때보다 비현실적인 상황이지. 요하나는 다섯 살이니까.’
이러니 이안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음을 의심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하지만 요하나는 끝끝내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정말 아닌 건지, 아니면 제 어미가 받을 정신적 충격을 고려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올리버 경과 함께 있다는 점. 오히려 그게 나을지도 몰라. 이 세상에 그분만큼 인품이 훌륭하신 분도 없으니까.’
만약 혼자서 무언가를 하겠답시고 떠나려 들었다면 막았을 거다.
하지만 올리버 경과 함께 수련하겠단다, 말릴 명분이 없다. 오히려 집에 있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미 올리버 경의 첫 번째 제자로서 황태자 호위기사단에 입단하신 카놀란 경만 봐도 그렇잖아?’
올리버 레이우드의 첫 번째 제자.
카놀란은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장남이자 그린리버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그린리버’의 호위기사로 입단한 수재로서, 그 인품이 스승과 닮았기로 유명한 기사였다.
‘오히려 아버지가 없는 집에 있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네.’
부모 중 한쪽의 빈자리는 크다.
어머니가 없든, 아버지가 없든.
만약 그 빈자리를 채울 수만 있다면, 올리버 경과 함께 수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나 역시.’
하이리 그린리버.
아니, 하이리 페이지.
그녀 역시 뛰어난 마법사다.
이안이 자리를 비운 지금 로난과 함께 상아탑주 대행을 수행 중인 치료마법학파의 수장 아닌가?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겠어.’
그런 그녀가 오래전부터 연구 중인 치료마법 학파의 숙원이론.
‘치료마법의 궁극.’
그 이론에 관한 연구가 오랫동안 진행되었으며, 마침내 완성이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지금이야말로 마침표를 찍어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이 마법이면 나도, 그리고 우리 치료마법학파도 이번 계획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야.’
생각을 끝낸 하이리가 저택 정원에 잘린 채로 남아 있는 나무 밑동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후우우우우……!”
깊은 호흡.
그 끝에 맺어지는 술식.
하이리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생명의 나무.’
하이리가 일컫기를 ‘생명의 나무’.
감히 치료 계열 마법의 궁극기라고 자부할 수 있는 그 주문이 밑동만 남은 나무로 스며들었다.
우득, 우득, 우드드드득……!
그러자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밑동밖에 남지 않았던 나무가 다시금 자라나기 시작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기 넘치는 거목이 되어 저택 정원을 포근히 수놓았다.
솨아아아아아 - !
어디 그뿐일까?
잘려나간 나무를 재생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건만.
치료마법학파의 숙원 마법 ‘생명의 나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간 줄기와 잎에서 황금색 빛이 쏟아져 내렸으니, 그 빛을 머금은 정원의 식물들이 너도나도 생기를 충전했다.
‘조금만 더 갈고닦는다면…….’
이 대규모 회복 마법을 조금만 더 보완하고 발전시킨다면 향후 타 차원의 초월자들과 벌일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칠 수 있을 터.
‘다른 무엇도 아닌 내 고향을 지키는 일이야. 한 사람한테만 모든 책임과 부담을 떠넘길 순 없지.’
이 세상은 고작 단 한 사람, 이안 페이지한테 너무나도 많은 부담과 책임감을 짊어지게 하였다.
그러니 이제는 분담할 차례다.
이전까지는 어떻게 분담해야 할지조차 몰랐지만, 이제 어느 정도 길이 보이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조금만 기다려요. 이안.’
하이리가 손에 쥔 박달나무 지팡이를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아주 오래전, 이안에게 선물 받았던 대초원의 지팡이였다.
* * *
황실 연금술사장 더글라스.
그는 아버지인 레디오와 할아버지인 바이온과 함께 이안이 보내온 히드라 맹독을 연구했고, 마침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름 하야 ‘맹독 복제’.
그들은 슈페리어 차원의 초월자들조차 꺼린다는 히드라 맹독의 성분을 철저히 분석했고, 그와 99% 흡사한 맹독을 탄생시켰으니, 가히 ‘복제’라고 부를 만했다.
“더글라스 레디오, 바이온, 모두 수고가 많았네. 덕분에 미완으로 남은 이 녀석이 빛을 보겠군.”
그리고 그 3대에 걸친 연금술사들이 탄생시킨 맹독을 포탄으로 재가공한 마도공학 장인, 스람이 공치사를 하며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투석기가 한 대 서 있었는데…….
“자, 그럼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소개하지. 앞으로 우리가 만날 모든 적들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신무기, 맹독 투석기를……!”
쾅! 콰앙! 콰광! 쾅! 콰아앙 - !
스람이 일컫기를 ‘맹독 투석기’.
연금술사 3대가 완성시킨 히드라 맹독의 복제품 덕에 이제야 제구실을 하게 된 강력한 투석기가 신무기 실험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어떤가? 근사하지?”
“독 아깝게 뭐 하는 짓거리야?”
“그러니 지금껏 테스트 한 번 못해본 거 아니야? 독이 아까워서.”
연금술사 바이온의 핀잔에 마도공학자 스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이제는 양산이 가능해졌으니 망설일 게 뭐 있겠나? 자네도 명색이 장인이니 알 것 아니야?”
“갑자기 뭘?”
“버리는 재료가 많을수록 완벽에 가까워진다는 거, 같은 장인끼리 그거 하나 이해를 못 해주시나?”
“흥! 그건 너희 같은 반쪽짜리 장인이나 그러는 게지. 애초에 시작부터 완벽하면 재료를 왜 버려?”
도감 속에 봉인되어 있던 연금술 장인 바이온의 괄괄한 성격은 동료 장인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스람조차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이 통하는 레디오와 더글라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물론 투석기뿐만이 아니네. 이 맹독은 앞으로 우리가 개발할 모든 무기의 핵심이 될 걸세. 진정한 반격의 초석을 다졌다는 뜻이지. 정말 대단한 일들을 했어. 이안 님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게야.”
“흥! 누가 그 애송이 마법사 기쁘게 해주려고 만든 줄 아느냐? 그냥 처음 보는 독이니까 호기심에 연구한 게지. 착각하지 말라고.”
이번에도 바이온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저는 우리 대장님 기쁘게 해드리려고 연구한 거 맞는데…….”
“음, 나도 일정 부분은 그랬지.”
더글라스와 레디오는 달랐다.
그들은 스람의 말에 동조했다.
특히 아직도 이안을 ‘대장님’이라고 부르는 황실 연금술사장 더글라스는 굉장히 진심이었다.
“뭐? 이런 염병, 더글라스! 네놈은 기관장까지 된 마당에 아직도 그 애송이를 대장이라 부르는 게냐? 그놈이 무슨 황제라도 돼?”
“겨우 황제뿐이겠어요? 저랑 우리 아버지한테는 신 그 이상인걸요?”
“암, 그렇고말고.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신에 가까워지기도 하셨지.”
황제는 말할 것도 없다.
가히 신에 가까운 존재.
그것이 이안 페이지다.
특히 그들은 이안 덕분에 암울했던 삶이 통째로 바뀌지 않았던가?
“에잉, 쯧! 광신도 같은 놈들!”
연금술 장인이자 더글라스의 할아버지인 바이온이 혀를 끌끌 차든 말든, 레디오와 더글라스는 그저 서로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 * *
[수행자여, 오셨군요.]
고향으로 모든 물건을 내려보낸 이안이 서둘러 올림포스 신전에 도착했다. 괜히 뜸을 들였다가는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
다행히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고생 많았어요. 아시다시피 원래 계획했던 과업의 방향과는 여러모로 달라졌으니…… 그래도 뭐, 잘 끝냈으니 된 거죠. 그렇지요?]
“아르테미스 님 덕분에 모처럼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사냥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요. 감사합니다.”
[역시 그렇죠? 이제 어디 가서 사냥 못한단 소리는 하시면 안 돼요. 제가 수행자의 스승이니까요.]
“물론이지요. 누가 물어보면 전직 사냥꾼이었다고 소개할 참입니다.”
아르테미스는 이안이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알 것 같기도 했다.
어째서 칼리두 와탕카라는 이름이 시계탑에서 오르내리는지를.
어째서 과업을 내린 이들마다 칭찬하는지를, 그리고 무엇보다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헤파이스토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를.
‘보통이 아니야. 그 옛날 수행자 시절의 헤라클레스를 보는 것 같아.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이러니 제우스와 오딘.
두 전당의 지배자가 동시에 탐을 냈겠지. 충분히 그럴 만한 인재다.
[자, 그럼 할 일을 해야겠지요.]
네 번째 과업의 계시자.
아르테미스가 빛을 내렸다.
과업 완수의 증거가 손등에 새겨졌으니, 이로써 이안은 한 단계 높은 격의 소유자로 거듭났다.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그대는 네 번째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뿐만 아니라 갑자기 발생한 변수, 레르니안 히드라를 제거하는 일에 크나큰 공을 세웠습니다.]
오호, 이건 징조가 나쁘지 않다.
과업 이상의 공을 인정받았잖아?
‘뭔가 더 주려나?’
이안의 직감은 실로 정확했다.
[해서 우리 올림포스 전당은 네 번째 과업에 치명적인 변수가 발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수행자의 공이 기대치를 훨씬 초과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추가적인 보상을 내려주기로 결정했답니다.]
아르테미스의 입에서 ‘추가적인 보상’이라는 표현이 나왔으니까.
[수행자여.]
“듣고 있습니다.”
[혹 바라는 것이 있으신가요?]
바라는 것이라.
있긴 있다. 아주 많지.
“글쎄요. 저는 단지 과업을 수행했을 뿐인데, 받아도 될지…….”
그래도 일단 한번 튕겨주자.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결과, 이쪽 세상도 기본적인 ‘미덕’은 통한다.
예의범절을 부르짖던 헤파이스토스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리라.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미 올림포스 전당에서 충분히 상의한 뒤 결론을 내린 사안입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가감 없이 얘기해 보세요.]
물론 그 미덕은 한 번이면 족하다.
두 번 거절했다가는 영영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일, 그럼 이쯤에서 이야기를 꺼내볼까?
“……그럼 한 가지 조심스레 말씀드려볼까 하는데, 혹시라도 너무 과한 바람일까 봐 걱정이 되네요.”
[무엇이죠? 과한지 적당한지는 제가 판단할 테니 말씀하셔요.]
잠시간의 침묵.
이안이 천천히 읊조렸다.
“혹시…… 저도 저만의 약초밭이나 광산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