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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30화 (23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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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44화

“안나, 분석해.”

(일부 품목에서 흑요석 성분이 감지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식별이 불가합니다. 이계의 물건입니다.)

“이안이 보낸 게 맞나 보군.”

북부 설산 지대에서 이안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내려왔다.

그 소식을 전달받기 무섭게 북부로 달려온 하이든 그린리버였다.

“그럼 슬슬 옮겨볼까?”

(상자 안쪽에 각각 대륙 공용어로 쓰인 메모가 존재합니다. 확인 후 옮기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정확히는 황제의 행색이 그랬다.

일단 의복은 확실히 아니고, 갑옷이라 보기에도 어딘가 남달랐다.

굳이 따지면 전신을 보호하는 풀 플레이트 아머에 가까워 보인다.

“흑요석 깃털, 히드라의 맹독, 가죽, 그리고 마정석……? 마정석이라, 이게 뭐지? 처음 듣는데.”

(천연 마나 저장기라고 합니다.)

“……어? 이게 뭔지 알아?”

(이안 님께서 남겨놓으신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에 적혀 있습니다.)

“아, 그러네?”

그러나 흔히 알려진 풀 플레이트 아머와 달리 활동하기가 편해 보였고, 무게 역시 가벼웠으며, 회색이 아닌 검푸른 색으로 번쩍거렸다.

도대체 무얼 입고 있는 걸까?

“오케이, 접수 완료.”

확인을 끝낸 하이든 그린리버가 챙겨온 붐 스틱을 허공으로 쏘았다.

그 시퍼런 총탄의 정체는 마나 신호탄이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슈페리어 차원의 물자를 회수해 갈 특수인력이 설산 지대로 몰려왔다.

“폐하! 안녕하세요!”

그 특수 인력이란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명의 인간과 다수의 피조물로 이루어졌으니, 바로 조각술 장인 클레반과 짐꾼 조각상 ‘불끈이’ 무리였다.

“연구실로 옮길까요?”

“그리 해주겠나?”

“넵! 맡겨주세요!”

“허면 부탁하지.”

그들은 황제 하이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슈페리어 차원에서 내려온 물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안.’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며,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생각에 잠겼다.

‘조금만 더 버텨다오. 우리도 나름 사활을 걸고 준비하는 중이니.’

황제도, 장인들도, 올리버도.

그밖에 모든 이들이 각자의 임무를 목숨 걸고 수행하는 중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인류는 분명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리라.

“안나.”

[말씀하세요. 주인님.]

“올리버가 폐관수련 들어간 지 얼마나 됐더라? 한 2년쯤 됐나?”

[오늘로 정확히 2년째입니다.]

“오, 맞췄네?”

본디 황제의 호위 기사였던 올리버 레이우드는 일시적으로 호위 기사 직책을 반납, 자신만의 수련장에서 폐관수련을 들어갔다.

(올리버 경께서는 자신이 직접 돌아오기 전까지 누구도 수련장에 방문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혹 잊어버리셨는지요?)

“그럴 리가, 나도 알고 있어. 그냥…… 이쯤 되면 슬슬 돌아올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을 뿐이야.”

이안도 없고, 올리버도 없다.

언제쯤 이 쓸쓸함에서 벗어날까?

아니, 벗어날 수는 있을까?

“…….”

마음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다잡아야겠지.

유능한 부하들을 믿는 것.

그것이 스스로 자평하기를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황제, 대신 인복만큼은 타고난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돌아가자.”

(플라이 모드를 가동할까요?)

“걸어서 돌아갈 순 없잖아?”

(건강에는 좋으실 겁니다.)

“나 아직 팔팔하거든?”

(주인님과 같은 통치자들이 흔히 겪는 질병으로는 고혈압, 욕창, 척추손상, 심장병, 뇌졸중 등이 있습니다. 미리 관리하셔야 해요.)

“이야, 황후한테도 듣지 않는 잔소리를 너한테…… 좀 새로운데?”

(다 주인님을 위한 조언입니다.)

“……그래 뭐,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은근슬쩍 맞먹으려 드는 게 이안이랑 올리버하고 똑같아.”

황제 하이든이 중얼거리는 사이.

검푸른 전신 갑옷에서 푸른색 마나가 요동쳤다. 어디 그뿐일까?

흡사 플라이 마법이라도 발동시킨 것처럼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으니, 누가 보면 마법사인 줄 착각할 만큼 자유로운 비행이었다.

“……예전에는 이안 그 녀석이 하늘 날아다니는 거, 그게 정말 그렇게나 부러웠는데, 이젠 내가 하늘을 날고 있을 줄이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그렇지?”

(더 오래 사셔서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싶으시다면 역시 지금부터 건강관리를 시작하셔야…….)

“일절만 해. 일절만!”

* * *

쾅!

검을 휘두른다.

한데 굉음이 울려 퍼지는 곳은 검이 휘둘러진 일대가 아닌, 그보다 멀찌감치 떨어진 바위벽이었다.

콰광! 쾅!

올리버가 명명하기를 ‘검기’.

이 세상에서 오직 올리버 레이우드만이 선보일 수 있는 검의 정점.

다만 그 정점이라 함은 어디까지나 이쪽 세계의 기준일 뿐.

이안의 기억 속에서 본 초월자의 육신에 생채기 한 줄이나마 입히고 싶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후우우우우……!”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가 깊이 호흡했다.

한데 그의 얼굴이 어딘가 조금 달라 보였다. 아니, 확실히 달랐다.

명백히 노년기에 이르렀던 과거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만이 수련장 가운데 검을 쥐고 있을 뿐.

스르륵!

검을 거둔 그가 대륙에서 흔치 않은 가부좌 자세를 틀고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만의 독특한 호흡으로 조금 전까지 혹사했던 육신을 빠르게 회복시키고자 했다.

‘한동안 폭발이었던 성장세가 다시금 더뎌졌다.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음이야.’

환골탈태換骨奪胎.

모든 무인의 꿈으로서, 육신을 전성기로 되돌리는 궁극의 경지.

올리버는 그 경지에 닿았다.

청년의 얼굴이 증거였다.

다만 환골탈태를 이루어내고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아직 모든 것이 부족했으니까.

‘이럴 때 이안 님께서 계셨으면 뭔가 조언이라도 구했을 터인데.’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안은 여기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내건 채 다른 세계에서 조용한 반란을 준비 중일 터.

‘결국 내 손으로 이겨내야 한다.’

물론 해내지 못할 것도 없다.

환골탈태의 경지로 이루어낸 몸 아니겠는가? 충분히 할 수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흡……!”

회복을 끝낸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이상의 휴식은 사치이며 나태의 증거일 뿐이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나날 아니겠는가?

“……누구시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의 접근을 감지한 올리버가 검에 손을 얹으며 읊조렸다.

“내 분명 아무도 찾아오지 말라 신신당부해놓았을 터. 폐하께서는 내 말을 허투루 들으실 분이 결코 아니시니…… 그대는 누구요?”

올리버는 안다.

황제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과거와 다르게 아랫사람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음을.

그러니, 폐하께서는 아니다. 그분께서 보낸 심부름꾼도 아닐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일까?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저씨?

실로 생소한 호칭이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앳되다.

앳되다 못해 어린아이의 그것.

‘이 수련장은 산꼭대기를 통째로 깎아 만든 곳이다. 저만한 목소리의 어린아이가 올라올 수 있는 위치가 아니야. 그렇다는 것은…….’

결코 어린아이일 리가 없다는 뜻.

“내게 아저씨라 부를 만한 이가 없을뿐더러, 그런 호칭을 쓸 만한 이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소. 그러니 허튼수작 그만 부리고 정체를 밝히시오.”

결론을 내린 올리버가 경계심을 잔뜩 세웠다. 방심은 금물이다.

“저예요. 요하나.”

“……요하나?”

요하나?

그 이름은 분명 이안 공의 딸아이가 아닌가? 심지어 올해로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꼬맹이일 터.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마침내 그 어린아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조그마한 키, 짧은 팔, 짧은 다리를 가진 꼬마 숙녀가 제 몸에 딱 맞는 푸른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사뭇 귀여웠다.

“…….”

그럼에도 올리버의 눈은 여전히 경계와 의심으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그 의심을 풀기 위해서는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으니, 이쯤에서 승부수를 던지는 요하나 페이지였다.

“아직 아무한테도 말씀드리지 않은 건데, 저는 미래에서 왔어요.”

“……미래?”

“20년 후 미래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되돌렸죠. 그게 아니고서야 저한테 느껴지는 마나, 설명이 되시나요?”

그래, 맞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

저 다섯 살짜리 꼬맹이의 육신으로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마나.

과거 자신과 함께 수련을 시작했던 열두 살의 이안 페이지보다도 강력한 다섯 살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경계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제가 아는 미래의 올리버 아저씨께서는 항상 우리 아버지와 했던 5년간의 대련을 회상하셨어요. 그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아마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거라고요.”

“……!”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올리버는 당시 이안과 나눴던 약 5년간의 대련을 자신의 인생에 엄청난 전환점으로 여겼으니까.

“그래서 제가 여기 온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지?”

“평생 갚아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께서 자리를 비우고 계시잖아요?”

후드를 내린 요하나의 머리칼은 이안의 갈색 머리칼과 하이리의 밝은 금발이 절묘하게 섞인 황금색이었는데, 그 아래로 조그마한 얼굴과 커다란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그 마음, 부채감, 지금부터 저한테 마음껏 갚아주세요.”

“그게 무슨…….”

“우리 아버지께서 올리버 아저씨한테 해주신 것처럼, 이제 아저씨께서 제 대련 상대가 되어주세요.”

“……대련 상대?”

올리버의 되물음에 요하나가 장인들한테 받아온 맞춤형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역시나 조그마했다.

“제가 살았던 20년 후 미래에 저는 8클래스의 경지를 이룬 마법사였어요. 엄청 셌죠.”

“……!”

8클래스.

본격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평가할 수 있는 그 상징적인 경지를 올리버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이상, 8클래스마저 뛰어넘은 경지에 닿아볼까 해요. 가능하면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기도 하고요. 물론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꿈은 크게 가져야 하는 법이잖아요?”

8클래스마저 뛰어넘는.

이안 페이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경지의 대마법사가 된다.

그런 원대한 목표를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읊조리고 있으니 조금 우스울 법도 하건만, 올리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정말 미래에서 오셨다면, 마냥 어린아이 취급할 일은 아니군. 내가 그대를 무어라 부르면 좋겠소?”

“그냥 이름 부르시면 돼요. 제가 살던 미래에도 그러셨고, 사실 여기서 스무 살을 더 먹든 안 먹든 아저씨보다야 훨씬 어리잖아요?”

“그건…… 그렇군.”

어차피 손녀뻘이다.

물론 미래에서 온 만큼 나이만 갖고 하대할 순 없으나, 저쪽에서 그걸 원한다니 실례는 아니겠지.

“요하나, 한 가지만 물으마.”

“말씀하셔요. 아저씨.”

“이유가 무엇이지?”

“네? 어떤 이유요?”

“강해지려는 이유, 8클래스의 경지를 넘어서 네 아버지만큼 강해지고자 하는 진짜 목적 말이다.”

강해지려는 이유.

대충 알 것도 같다만.

그래도 한번 확인해야겠다.

“똑같아요.”

“……똑같다?”

“아저씨께서 2년씩이나 폐관수련 중이신 까닭이나, 그리고 제가 8클래스의 경지를 뛰어넘으려는 까닭이나, 똑같다는 뜻이에요.”

우리를 벌레 취급하는 초월적인 존재의 손아귀로부터 아끼는 모든 것들을 보살피고자.

혼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는 이안의 짐을 덜어주고자.

올리버는 검을 잡았고, 요하나는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지팡이를 잡았다. 그러니 똑같다는 거다.

“허니 부탁드릴게요. 올리버 아저씨, 제가 목표를 이룰 수 있게끔 도와주셔요. 그럼 저도 아저씨께서 원하시는 경지에 닿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도와드릴 테니까요.”

다섯 살 꼬맹이 요하나의 고사리 같은 손이 올리버에게 뻗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올리버의 커다란 손이 그 조그마한 손을 맞잡았다.

대에 걸친 대련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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