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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40화
[내 취미 삼아 만든 브로치네. 딱히 효능은 없고, 폼이 좀 날게야.]
“……예?”
[농담일세. 내 명색이 대장장인데 설마 브로치 같은 걸 선물할까?]
그래, 다행이다.
폼 나는 브로치는 무슨.
실용적인 물건을 내놓으라고.
[일전에 프로메테우스의 허를 찔렀을 때도 그렇고, 제법 실력 있는 주술사인 것 같던데, 아닌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런저런 주술을 익히고 있는 건 맞습니다.”
[겸손은, 이미 그 주술로 두 명의 티탄을 끝장내지 않았나? 그만하면 지배자의 격을 갖지 못한 슈페리언 중에서는 손으로 꼽힐 만큼 강자일 게야. 자부심을 갖게.]
그 퉁명스럽던 헤파이스토스가 맞나 싶을 만큼 인자해진 목소리.
이래서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
[자고로 실력 있는 주술사한테는 그에 걸맞은 주술 도구가 필요한 법이지. 거기 공양 그릇에 놓인 지팡이를 가져가게나.]
특이하게 생긴 지팡이였다.
지팡이 자체는 평범한데, 그 지팡이를 타고 올라가는 두 마리 뱀의 형상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생생하게 조각했는지 살아 있는 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건…….”
[케리케이온.]
“케리…… 케이온?”
[그 지팡이의 이름일세.]
케리케이온κηρ?κειον.
프로메테우스의 기억대로면 본디 이 지팡이는 올림포스 전당 최상급 지배자 ‘헤르메스’의 지팡이다.
‘이걸 왜 나한테……?’
이미 다른 지배자에게 줬던 물건을 빼앗아서 주기라도 하는 걸까?
그건 곤란하다. 자칫 헤르메스라는 지배자와의 관계가 시작부터 틀어질지도 모르는 일 아니던가?
[본디 헤르메스 놈한테 줬던 지팡이인데, 그놈이 글쎄 다른 지팡이를 얻었다면서 도로 내놓더군.]
“이상하네요.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친히 만드신 물건보다 더 뛰어난 지팡이는 존재하지 않을 텐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그 건방진 놈 말고도 많아. 더 좋은 걸 얻었답시고 갈아타는 놈들, 그런 놈들 공통점이 무엇인 줄 아는가?]
“무엇입니까?”
[나중에 다시 은근슬쩍 찾아와서 부탁을 하더군. 예전에 반납한 물건들 좀 다시 받을 수 있느냐고.]
“그럴 줄 알았습니다.”
[보는 눈이 없는 놈들이지. 아마 헤르메스 녀석도 곧 쪼르르 달려와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질 텐데, 이미 내 손에 없다는 걸 알면 아주 표정이 볼만하겠어.]
아하, 그런 것이라면 괜찮다.
어차피 버린 물건이고, 여의치 않을 경우 공양물로 바치면 되잖아?
“그럼 사양치 않겠습니다.”
이안이 공양 그릇에 나타난 헤파이스토스의 지팡이, ‘케리케이온’을 두 손으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
그 순간 어떤 힘이, 지금껏 접해온 모든 아티펙트를 장난감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거대한 힘이 파도처럼 밀려와 오감을 자극했다.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그대의 격을 한층 더 높여줄 게야.]
“……확실히 그런 것 같군요.”
[높은 격은 그대가 부리는 주술의 한계를 확장시켜 줄 터. 앞으로 요긴하게 쓰일 거라 자부하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물론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 세계에서 격이란 권력이며 권한, 그리고 계급 그 자체 아닌가?
“감사히 받겠습니다.”
[잘 어울리는군. 케리케이온이 드디어 제 주인을 만난 것 같아.]
좀처럼 지팡이 든 이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헤파이스토스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읊조렸다.
[가만있자, 네 번째 과업의 담당 지배자가…… 오, 아르테미스로군.]
“어떤 분이십니까?”
[제법 괜찮은 친구야. 다른 놈들과는 달리 예의가 뭔지 알고, 향락과 여흥에 빠져 사는 타입도 아니지. 보기 드물게 성실하거든.]
대다수 지배자에게 이런저런 악감정을 품고 있는 헤파이스토스가 이렇게까지 극찬하는 지배자라니?
새삼 궁금해졌다. 아르테미스.
그 지배자는 어떤 존재일까?
[……다만, 어떠한 경우라도 그녀의 자존심만큼은 건들지 말게.]
“자존심 말씀이십니까?”
[특히 그녀의 활 솜씨나 사냥 실력에 관해서는 절대로 훈수를 두거나 참견하지 않는 편이 좋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음……!]
절대 자존심만큼은 건들지 마라.
특히 활 솜씨와 사냥 실력에 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니 된다.
아무래도 그쪽 방면으로 어마어마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나 보다.
[내친김에 이것도 가져가게. 공양물로 바치면 아주 좋아할 게야.]
지팡이 다음으로 공양 그릇에 나타난 물건은 한 대의 ‘화살’이었다.
새빨간 깃과 은빛 촉이 인상적인 화살이었는데, 헤파이스토스는 그 화살을 네 번째 과업의 계시자, 아르테미스에게 공양하라 조언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는 또 어떤 공양물을 바쳐야 하나 고민이 많았거든요.”
[감사는 무슨, 어차피 그 친구한테 매번 보내주는 물건이야. 그냥 겸사겸사하는 거지. 겸사겸사.]
“그래도 감사드릴 일은 감사드려야죠. 언젠가 꼭 오늘 입은 은혜를 보답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보답이라, 정 그러면 자네가 모든 과업을 완수하고 지배자의 격을 얻었을 때, 내 그때 한번 부탁할 게 있나 고려해 보도록 하지.]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수행자가 아닌 지배자로 찾아뵙겠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좋아. 그럼 어서 가 보게. 아마 지금쯤이면 아르테미스도 기다리고 있을 게야.]
세 번째 과업의 계시자, 헤파이스토스와의 대담은 거기까지였다.
괜한 미움을 살 필요는 없겠거니 싶어 만났을 뿐이건만, 이거 생각보다 크나큰 이익을 취해버렸다.
앞으로 종종 써먹어야겠다.
‘이 조각상인가?’
네 번째 과업의 계시자 아르테미스의 조각상은 명백한 여인이었다.
다만 드레스 차림이었던 아프로디테와 달리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날개 문양이 달린 써클릿을, 두 손으로는 굉장히 커다란 롱보우를 쥐고 있었다.
‘들고 있는 무기만 봐도 왜 이 화살을 공양하라고 했는지 알겠네.’
완전히 이해한 이안이 아르테미스의 공양 그릇에 화살을 바쳤다.
그러자 곧 여러 조각상이 그러했듯 새하얀 안광과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그는 분명 네 번째 과업의 계시자, 아르테미스였다.
[공양자여. 언제 오나 했습니다.]
“이런,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세 번째 과업을 워낙 성대하게 완수하셨잖아요? 곧바로 오실 줄 알았는데, 제 생각이 틀렸더군요.]
그새 소문이 났나 보다.
제우스와 담판을 지은 수행자.
혹은 목숨이 아깝지 않은 불나방.
모르긴 몰라도 여러 지배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이벤트였을 터.
“송구합니다. 잠깐 헤파이스토스 님부터 뵙고 온다는 것이…… 본의 아니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아, 어떻게 알고 이걸 공양하셨나 했더니, 헤파이스토스 님을 만나 뵙고 오셨군요? 그럼 이해가 되네요. 이 화살도 그렇고, 수행자께서 들고 계신 지팡이도 그렇고.]
이제야 모든 것을 납득한 그녀가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께서 남한테, 특히 수행자한테 선물을 주실 분이 아닌데,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셨나 봐요.]
“그냥 어쩌다 보니 좋은 인상을 심어 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요? 흐으음…… 뭐, 수행자께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죠.]
전혀 믿지 않는 눈치.
그럼에도 캐묻지는 않았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 말해주기를 ‘이미 지나간 것에 연연치 않는 성격’이라던데,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잘 왔어요. 나는 고결함의 지배자, 아르테미스라고 해요.]
고결함의 지배자, 아르테미스.
그녀가 자기 자신을 소개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알고 있어요. 칼리두 와탕카, 이미 우리 쪽에서는 유명하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봐주시길.”
[그럴 필요 있나요? 입방아에 올라서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다 능력이 좋아서 지배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데, 자랑스러운 일이죠.]
“하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양날의 검과도 같다.
당장은 실보다 득이 더 많아 보일지 모르나 장담할 순 없는 노릇.
여러모로 주의가 필요하리라.
[아무튼 잘 되었어요. 내 그렇지 않아도 심부름꾼이 한 명 필요하던 참인데, 마침 능력 있는 수행자께서 짜잔 하고 나타나 주셨네요?]
“맡겨만 주십시오. 유명세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복잡한 건 아니고, 내일 하루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주셔야겠어요.]
“그게 어딘지 여쭈어도 될까요?”
[그건 비밀, 대신 뭘 할지는 살짝 알려드릴 수 있는데, 들어볼래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사냥 좋아하세요?]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어째서요? 이 재미난 걸.]
그녀의 되물음에 이안이 선뜻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절대로 자존심만큼은 건들지 말라던 헤파이스토스의 조언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던 본심만큼은 반드시 숨겨야 한다.
그도 그럴 게, 이안은 예전부터 생존이 아닌 여흥 삼아 행하는 모든 사냥을 한심하다고 여겨왔거든.
“……제가 사냥에는 영 소질이 없더군요. 워낙 어렵지 않습니까?”
[의외네요? 에오스를 티탄의 땅 밖으로 끌어낼 때의 그 몰이 능력이면 사냥도 꽤 하실 것 같은데.]
일단 무난하게 넘겼다.
이거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자존심을 자극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으음, 아무리 봐도 사냥에 소질이 없을 타입은 아닌데…… 어때요? 이참에 한번 배워보시는 거.]
“아르테미스 님께 직접 말입니까?”
[왜요? 썩 내키지 않으신가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영광이죠.”
[그렇죠? 후후.]
기분 좋은 웃음소리.
이번에도 잘 넘어갔다.
[내일은 저랑 같이 사냥 한번 나가주셔야겠어요. 생각보다 큰 놈을 잡을 거라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일종의 조수랄까요?]
사냥이라.
일단 듣기로는 나쁘지 않다.
심지어 함께 간다니, 최상급 지배자와 함께 하는 사냥이라면 크게 위험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 싶다.
[겸사겸사 저한테 사냥도 배우시고, 과업도 완수하시고, 이쯤 되면 네 번째 과업은 거의 쉬어가는 구간 아니겠어요?]
듣기로는 참 좋다.
사냥도 배우고, 과업도 수행하고.
정말 쉬어가는 구간 같긴 하다.
분명 그렇기는 한데…….
뭘까? 이 서늘함.
[같이 가실 거죠?]
“…….”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거쳐야 할 관문.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어요! 그럼 내일 이 시간까지 성문에서 봐요. 그 왜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는,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오케이, 그럼 내일 봐요. 옷은 최대한 따뜻하게 입고 오시고요.]
……옷은 갑자기 왜?
도대체 어디를 가기에?
[가능하시면 치료제 같은 것도 넉넉하게 챙겨오세요. 전 필요 없는데, 수행자께서는 필요한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치료제까지?
그것도 넉넉하게?
단순한 조수 역할이라면서?
사냥에 도가 튼 최상급 지배자 뒤에서 쉬어가는 구간 아니었냐고.
“저기…….”
[내일 봐요!]
“…….”
묻고 싶었으나 물을 수 없었다.
그때는 이미 아르테미스의 조각상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 * *
[칼리두 와탕카! 지금 거기서 뭐하고 계신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함정 쪽으로 몰아가시라니까요?]
“…….”
다음 날.
약속대로 아르테미스와 만나 사냥터에 도착한 이안 페이지.
아니, 칼리두 와탕카.
그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걸 사냥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