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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25화 (22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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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9화

    굳이 숨길 필요 없다.

    그도 그럴 게, 이들은 과거의 상아탑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상아탑이 제국 내 위상을 높이고자 강력한 마법사 확보에 집착하였듯,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는 시계탑 내 두 번째 서열을 견고히 다지고자 수준 높은 지배자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던가?

    ‘그런 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비록 불세출의 천재로 칭송받으며 상아탑에 입성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크게 다를 것도 없어.’

    오히려 일부분은 상황이 더 좋다.

    불세출의 천재로 상아탑에 입성했을 당시에는 상아탑만 존재했다.

    이안 페이지라는 인재를 취할 세력이 상아탑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날 원하는 세력이 두 개지.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아스가르드가 자신을 원한다.

    그 사실을 제우스에게 전했다.

    올림포스 역시 이안을 원한다면 경쟁의 불씨가 붙을 것이고, 그리되면 두 전당 사이에서 이안의 가치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터.

    ‘내 실제 가치보다도 훨씬.’

    그런 이안의 예측과 전망에 화답이라도 하듯 제우스가 되물었다.

    매우 흥미로운 목소리였다.

    [어째서 이실직고하는 거지? 저쪽에서 제시한 조건이 별로였나?]

    “아뇨, 아직 제대로 된 제안을 듣지 못했습니다. 확실한 조건을 들고 오면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죠.”

    [허면 더더욱 지금 이야기할 이유가 없을 터. 의중이 궁금하군.]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말투.

    여기서 내 충성심이 어쩌느니, 배신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느니 하는 것은 그저 하수에 불과하다.

    이안은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

    바로 지금이 과감하게 나설 때다.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있다? 무슨 자신?]

    “제 가치를 지금보다 더 높은 곳까지 끌어올릴 자신이요. 앞으로 계속 과업을 수행하면서 말이죠.”

    [가치라.]

    “제 가치를 높이면 높일수록 선택의 폭도 넓어지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아직은 과업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당장은 과업이 제 가치를 높일 유일한 수단이니까요.”

    당장은 가치만을 높이겠다.

    제안과 선택은 이후로 미룬다.

    사실상 공개입찰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발언에 제우스가 웃었다.

    [불과 얼마 전에 코카서스 아래에서 봤을 때와는 여러모로 다르군. 그것이 네 본래의 모습인가?]

    “어느 안전이라고 본색을 숨기겠습니까? 그저 로키라는 분께서 저에게 확신을 주셨을 뿐입니다.”

    [확신?]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양쪽 모두 우수한 지배자 후보가 필요하고, 제가 그 우수한 지배자 후보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우수한 인재를 원하는 세력들.

    그들 사이에 놓인 우수한 인재.

    그 위치의 특별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안이 잠시간 침묵했다.

    무릇 강자를 향한 과감함에는 약간의 완급조절이 필요한 법이니까.

    [……재미있는 놈이로군.]

    그 침묵이 얼마나 깊어졌을까?

    먼저 입을 여는 쪽은 제우스였다.

    [너는 계속 네 값어치만을 증명할 터이니, 아스가르드 놈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어련히 알아서 처신해라, 뭐 그런 뜻인가?]

    “그럴 리가요. 저는 그렇게 시건방진 놈이 아닙니다. 다만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조건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금만 신경 써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그런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데, 네놈의 행보는 이미 충분히 건방지다.]

    말은 그렇게 해도, 어째서인지 그는 아까부터 매우 즐거워 보였다.

    단순히 쓸 만한 지배자 후보가 나타나서 즐거운 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라도 존재하는 걸까?

    [한 가지만 묻지.]

    “하문하십시오. 제우스 님.”

    [어려울 길로 갈 필요 없이, 그냥 이 자리에서 네놈 머리통에 벼락 한 줄기만 떨어뜨린다면 어떨까?]

    “…….”

    [해서 누구도 갖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면 일이 더 쉬워진다. 굳이 수행자 따위의 비위를 맞춰줄 필요 없이 말이야. 내 말이 틀렸는가?]

    갖지 못하면 차라리 부순다.

    실로 과격한 논리가 아닌가?

    “그리하신다면…….”

    이안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금 저 말처럼, 제우스는 언제든 이안을 지워 버릴 수 있는 존재.

    변덕을 부리는 순간 끝장이다.

    “……어쩔 수 없지요.”

    [어쩔 수 없다?]

    “제 가치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그것이 제우스 님의 판단이시라면, 내려주시는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호오……?]

    이안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을까?

    제우스가 의외라는 듯 읊조렸다.

    [당연히 또 건방을 부릴 줄 알았더니만, 감이 좋은 건가? 아니면 내 생각보다 명줄이 긴 건가?]

    명줄이 길다.

    그 말에서 느껴졌다.

    조금 전 제우스가 했던 말.

    그냥 여기서 벼락을 떨어뜨려 죽이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말.

    그게 결코 농담 따위가 아님을.

    정말 그리하고자 했었음을.

    [안심해라. 적어도 오늘 당장 네놈 머리에 벼락이 떨어질 일은 없겠구나. 따지고 보면 황금 사과까지 공양한 공양자인데, 그런 자를 신전에서 죽일 순 없는 노릇이지.]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다.

    여지를 남긴 제우스가 말했다.

    [뭐, 좋다. 내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도록 하지. 네놈이 말만 번지르르한 놈인지, 아니면 그 건방진 말솜씨만큼 쓸모 있는 놈인지.]

    “지켜봐 주십시오. 실망하시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솜씨만큼 자신을 증명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이어야 할 터. 번거로울 거 없이 세 번째 과업의 완수는 내 친히 내려주도록 하마.]

    제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전 천장 뻥 뚫린 하늘로부터 백색 빛줄기가 이안을 향해 내리꽂혔다.

    손등에 새겨진 각인이 다시 한번 큰 변화를 일으켰으니, 이는 곧 3개의 과업을 완수했단 증거였다.

    [이만 가 보아라. 지체 없이 네 번째 과업을 시작할 수 있을 거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윽고 제우스의 석상에서 백색 안광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이안.

    그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네 번째 과업의 계시자가 아닌, 세 번째 과업의 계시자였던 헤파이스토스의 석상이었다.

    이미 제우스 선에서 세 번째 과업의 완수자로 인정받았거늘, 어째서 헤파이스토스에게 향한 걸까?

    달그락!

    이안이 프로메테우스의 보물창고에서 챙겨온 금은보화 더미를 헤파이스토스의 공양 그릇에 올렸다.

    공양물을 깐깐하게 따지기로 유명한 헤파이스토스였으나, 이번만큼은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왜 또 왔는지 궁금했으니까.

    화악!

    그로부터 잠시 후, 조각조차 수염으로 빼곡한 헤파이스토스의 조각상에 하얀색 안광이 들어왔다.

    [이미 제우스 님께서 세 번째 과업의 완수를 인정해 주셨을 터. 나에게 무슨 용건이 남은 게지?]

    의구심으로 가득한 목소리.

    이안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냥 인사나 드리러 왔습니다.”

    [……뭐라? 인사?]

    “이미 세 번째 과업의 완수를 인정받았다고는 해도, 저한테 과업을 내려주신 분께서는 엄연히 헤파이스토스 님 아니십니까?”

    [그렇기는 한데…….]

    “허니 헤파이스토스 님께도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판단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용서해 주시길.”

    이안이 느낀 바로는,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을 따르면 헤파이스토스는 굉장히 고지식하고 뒤끝이 길다 못해 늘어지는 존재였다.

    비록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제우스가 행한 일이기에 불만을 표하지는 못하였으나, 분명 자신의 권한을 침범당했다 여기고 있을 터.

    ‘문제는 그 불만이 제우스가 아닌, 나한테 겨눠질 거라는 점이지.’

    그만큼 고지식하고 괴팍한 자다.

    전형적인 강약 약강,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성향.

    그런 존재한테 찍혀 사사건건 귀찮아질 바에는 미리 관리해 놓자.

    이미지 챙겨서 나쁠 건 없잖아?

    [……네놈, 칼리두라고 했던가?]

    “칼리두 와탕카라고 합니다.”

    [하는 짓거리가 워낙 오만하고 시건방져서 기대조차 하지 않았건만, 다시 보니 예의를 좀 아는 놈이로구나?]

    목소리부터 확 바뀐다.

    중저음을 넘어 바닥에 붙을 만큼 저음의 목소리가 다소 밝아졌다.

    물론 그래 봐야 맨틀이지만.

    “과찬이십니다.”

    [아니다. 내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느끼는 중이었거든. 요즘 것들은 예의가 뭔지 몰라. 너도 나도 제 생각만 하기 바쁘지. 아닌가?]

    “그런 경향이 있죠.”

    [나 때는 말이야. 제아무리 동격의 지배자라고 해도 지킬 건 지켰어. 서로의 권한을 침범하지도 않았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해 줬지.]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근데 요즘 것들은 참…… 남의 아내를 탐내지 않나, 거기에 홀랑 넘어가질 않나! 말세야. 말세.]

    한번 터진 헤파이스토스의 입이 좀처럼 쉬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그간 쌓인 것들이 많았나 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대체 그놈의 황금 사과는 왜들 자꾸 먹어대는지 모르겠더군. 오래 산 이에게는 그보다 덜 산 이들한테 없는 지혜와 경험이 있고, 그것이 얼굴에 묻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거늘, 어째서 그걸 거스르려는 거지? 이상하지 않나?]

    “공감합니다.”

    [옳거니!]

    끝이다.

    맞장구 몇 번에 완전히 넘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말에 공감을 표하는 이가 얼마 만이던가?

    한때 인생의 반려자였던 전처 아프로디테한테조차 받지 못한 공감.

    그런데 그 공감을 이안이 해줬다.

    그간 알게 모르게 쌓여 있었던 불신과 고까움이 사르르 녹았다.

    [이거 내가 인재를 몰라봤군. 사과하도록 하마. 칼리두 와탕카.]

    기분 좋은 중얼거림.

    목소리가 끝없이 밝아진다.

    심지어 말투까지 친절해졌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리라.

    [마음 같아선 오랜만에 말 통하는 상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겠지. 네 번째 과업이 급할 테니.]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아니, 내가 그 정도로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닐세. 나중에, 자네가 모든 과업을 완수한 뒤 정식으로 지배자의 격을 받게 된다면, 내 특별히 축하주 한 병 쏘도록 하지.]

    거기까지 대화를 나눴을 때.

    이안은 약간의 실망을 느꼈다.

    이만하면 뭐라도 하나 내어줄 법도 하건만, 기껏 한다는 약속이 고작 미래의 축하주 한 병이라니?

    바로 그때였다.

    [그리고 이건…….]

    공양 그릇에 빛이 모여들었다.

    그 빛은 곧 무언가를 형성했다.

    처음 세 번째 과업의 도구로 사슬을 넘겨받았을 때와 똑같았다.

    [내 그간의 오해를 푸는 뜻에서 큰맘 먹고 내어주는 선물이니, 부담 갖지 말고 챙겨가도록 하게.]

    암, 그래야지.

    진즉 이렇게 나왔어야지!

    무릇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이제야 쓸데없이 비위를 맞춰준 보람이 생겼다.

    “이게…….”

    이안은 굳이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눈빛이야말로 선물하는 이에게 뿌듯함을 선사하는 법 아니겠는가?

    “무엇입니까?”

    공양 그릇 위에 나타난 물건.

    이안이 그 물건을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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