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24화 (224/342)

22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8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 과업 생략이라니, 그런 일은 티탄의 시대에도 없었는데?]

“제가 잘 몰라서 여쭙는 건데, 이미 한쪽에서 세 번의 과업을 완수해놓고, 심지어 그 집단의 수장 눈에 들어놓고 다른 한쪽으로 전향하는 일이 흔합니까? 티탄의 시대든, 지금이든, 언제든 말이죠.”

[그건…….]

로키가 쉬이 대꾸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흔할 리가 있나?

이런 상황 자체가 흔치 않거늘.

[……좋아. 원하는 걸 말해봐.]

“아뇨, 그 반대입니다.”

[뭐……?]

“저한테 해주실 수 있는 것들을 확실하게 정해서 다시 와주십시오.”

[…….]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최상급 지배자에 속하는, 하물며 아스가르드 전당을 대표해서 온 자신한테 이토록 당당한 요구라니.

[몸값이 좀 올랐다 이건가?]

“일단 올라간 건 확실한데,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알고 싶어서요.”

[그 얼마나를 우리 쪽에서 제안하는 조건으로 가늠해 보고 싶다?]

“정확하십니다. 혹하는 게 있어야 과감해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

로키가 팔짱을 낀 채 주억거렸다.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지배자다.

[네 뜻은 잘 알겠다. 물론 위에 계신 분께서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전달은 해주지.]

“감사합니다. 로키 님.”

이안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당당히 대응하긴 했지만, 상대는 이안을 언제든지 벌레처럼 죽일 수 있는 최상급 지배자다.

최소한의 예우를 지킴이 옳다.

적어도 지금 당장에는 말이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아, 그땐 내가 아닐 수도 있어. 오늘은 네놈이 궁금해서 왔을 뿐이거든.]

두 존재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로키가 손가락을 튕기기 무섭게 에메랄드빛 그림자가 그를 집어삼켜 버렸으니, 더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올림포스 쪽 지배자들도 그렇고, 어차피 심장으로 갈 거면 같이 좀 가지. 다들 혼자만 가네.”

에라이, 치사한 놈들.

하루빨리 격이 올라 이곳 슈페리어 차원에서도 텔레포트 사용이 가능해지길 염원하는 이안이었다.

* * *

[꽤 재미있는 놈이더군요.]

[……그래,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흥미로운 수행자라고는 생각했다. 지금 그대가 하는 말을 듣자니 더더욱 흥미가 생기는군.]

기만의 지배자 로키는 분명 이안의 말을 전달해 주겠노라 약속했다.

한데 어째서인지 그는 자신이 속한 아스가르드 전당의 우두머리가 아닌 올림포스 전당의 우두머리.

제우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니까요? 그놈, 생각보다 더 물건입니다. 괜히 우리 쪽 어르신께서 노리는 게 아니더라고요.]

로키는 위에다가 전달해 주겠다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누구한테 전해주겠노라 명시하지는 않았다.

참고로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는 다 같은 슈페리언, 즉 로키에게는 제우스 역시 자신보다 ‘위’였다.

[……그런데, 로키.]

[듣고 있습니다.]

[또 무슨 장난을 꾸미는 거지?]

[장난이라니요, 그 무슨……?]

[오딘이 아닌 나에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점, 특히 그 이야기를 지껄이는 자가 무의미한 장난질의 지배자인 네놈이라는 점.]

[무의미한 장난질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말씀이 너무…….]

[이 두 가지 특징으로 볼 때, 지금 네놈은 또 새로운 장난질을 준비하는 중이다, 내 말이 틀린가?]

[……반박은 못 하겠네요. 제우스 님 앞에서 거짓말해 봐야 괜히 또 저번처럼 벼락만 맞을 테니.]

무의미한 장난질의 지배자.

그런 불명예스러운 이명이 붙었을 만큼 지배자들 사이에서 로키의 위상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너 같은 놈에게 심부름을 맡긴 오딘의 속내가 궁금하군. 곧 죽어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놈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마냥 자식이라고 믿으시는 건지, 별생각이 없으신 건지, 아니면 뭔가 뜻이 있으신 건지, 아마 본인만 아시겠죠.]

로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여전히 의뭉스러운 표정이다.

[……아무튼, 저랑 간단하게 내기 한번 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내기?]

[전 어떻게든 그놈이 원하는 조건, 맞춰줄 생각이거든요.]

[해서?]

[간단합니다. 그놈이 제우스 님의 뒤통수를 치고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지, 아니면 끝까지 버티는지.]

[글쎄, 잘 모르겠군, 그따위 내기를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뭐지?]

[뭘 꼭 얻어야 하나요? 그냥 여흥이지. 그래도 정 무언가를 원하신다면…… 으음, 저한테 바라시는 한 가지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가능하다면 말이죠.]

[질문을 바꿔야겠군.]

로키가 무얼 제안하든 제우스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만을 내뱉었고, 듣고자 하는 말만을 원했다.

[그따위 되도 않는 내기를 해서 로키 네놈이 얻는 게 무엇이지?]

내가 아닌 네가 얻는 것.

그걸 한번 지껄여보아라.

제우스의 물음에 말 많던 로키가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고는 이내 할 말이 떠오른 듯 웃었다.

[제우스 님, 그간 저라는 놈을 여러 번 겪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묻는 거다. 겉으로는 여흥이니, 즐거움이니 지껄여도 결국 무언가를 얻어가는 놈이니까.]

[엥? 제가 말입니까?]

[아닌가?]

[당연히 아니죠! 그건 진짜 옛날 얘기잖아요? 우리가 한창 치고받고 싸우던 시절, 이렇게 마주 볼 수조차 없었던 옛날 옛적 말입니다.]

억울함으로 가득한 표정.

로키가 계속해서 읊조렸다.

[다른 지배자들도 중간계까지 내려가서 별 짓거릴 다 하지 않습니까? 심심하다는 명목으로 말이죠.]

[…….]

[저도 그런 겁니다. 단지 남들 다 하는 중간계 인형 놀이는 영 취향이 아니라서, 그냥 이런 식으로나마 심심함을 달래는 중이지요.]

[…….]

[너무하십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도 절 그렇게 보고 계시다니, 우리 동족 아닙니까?]

[……하아.]

결국 제우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이 또한 로키 특유의 기만이고 장난임을 안다. 그럼에도 끝까지 냉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히 오랜 세월 미운 정이 들어서 그럴까? 아니, 약간의 영향은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

말 못 할 까닭이.

[좋다. 내기에 응하지. 단, 네놈이 이긴다 하여 내가 내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래도 할 거냐?]

[물론이죠. 어차피 다 여흥인데요 뭐, 얻는 것이 없어도 좋습니다.]

어차피 다 여흥이다.

얻는 것이 없어도 좋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지배자 중 로키의 말을 믿어줄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확신하는 제우스였다.

설령 그의 아비인 오딘조차도.

* * *

내기가 시작된 지 얼마 후.

이제야 슈페리어의 심장에 도착한 이안은 지체할 거 없이 올림포스 신전으로 직행했다.

세 번째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일까? 물론 그것도 있다. 중요한 볼일이기도 하고, 다만 그것이 이안의 첫 번째 용무는 아니었다.

뚜벅, 뚜벅, 뚜벅.

놀랍게도 이안의 발걸음은 세 번째 과업의 계시자인 헤파이스토스의 석상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보다 더 깊숙한 곳.

이곳 올림포스 신전의 열두 석상 중 가장 안쪽에 세워져 있는 석상.

제우스의 석상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췄으니 말이다.

“…….”

심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안에게는 여러 고민이 있었다.

그중 일부는 마도서 크로미와 의견까지 나눠가며 신중을 기했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마도서와 황금 사과다.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가진 존재라면 나와 연결된 마도서의 기운을 감지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겠지.’

첫 번째 고민거리는 마도서였다.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은 눈먼 아버지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내린 하사품 아닌가? 한데 그런 물건을 소지하고 있음이 밝혀져 봐라.

‘이래저래 피곤해지겠지.’

두 번째는 고민은 황금 사과다.

공양물로 바치기에 최적의 물건.

하나 그 출처를 의심한다면?

어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결국 답은 이것뿐이야.’

그 이름도 찬란한 ‘정면 돌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과였다.

탁!

이안이 제우스의 공양그릇 위에 황금사과 한 덩이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곧 반응이 왔다. 석상의 눈에 백색 안광이 피어올랐으니까.

[……황금 사과?]

제우스는 이안이 어째서 과업의 계시자인 헤파이스토스가 아닌 자신에게 공양했는지를 묻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제우스한테도 황금 사과는 굉장히 귀한 과일이었다.

[과업의 수행자여, 그대가 어찌 황금 사과를 갖고 있는 것이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일.

이안이 읍하며 대꾸했다.

“제우스 님, 소인 일전에 뵈었을 때는 너무 경황이 없었던지라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네.”

[그게 무엇이지?]

“아시다시피 저는 주술을 부릴 줄 압니다. 타고난 것도 있고,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주술도 있지요.”

[한데?]

“그중에는 타인의 기억을 일부 훔쳐볼 수 있는 주술도 있습니다.”

타인의 기억을 훔쳐보는 주술.

그 말에 제우스가 흥미를 느꼈다.

[계속 얘기해 보아라.]

“죄인 프로메테우스에게 붙잡혔을 때, 어떻게든 빠져나가고자 이런저런 주술을 펼친 바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앞서 말씀드린 기억을 훔쳐보는 주술도 있었지요.”

[……설마, 프로메테우스, 그 죄인의 기억을 훔쳐보기라도 한 것이냐?]

“비록 소인과 그 죄인 사이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격의 차이가 있는지라 모든 기억을 훔쳐볼 수는 없었습니다만, 아주 조그마한 기억의 파편 정도는 가능하더군요.”

잠시 말문을 멈춘 이안이 프로메테우스의 창고에서 챙겨온 몇 가지 보물들을 꺼내놓았다. 물론 마도서 네크로노미콘도 함께였다.

“그 기억의 파편 속에는 죄인이 숨겨놓은 보물창고가 있었습니다.”

[보물창고?]

“예, 기억을 읽고도 긴가민가하여 가장 가까운 곳을 들러봤는데, 놀랍게도 이런 보물들이 숨겨져 있더군요. 뿐만 아니라 온갖 금은보화가 태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금은보화가 쌓여 있는지라, 부디 제우스 님께서 살펴주시길 청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면 돌파.

속된 말로 ‘선빵’ 되시겠다.

[음……!]

잠시 생각에 빠졌던 제우스가 이안이 내놓은 보물 중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을 두둥실 띄우며 물었다.

[한데 이 마도서는 어찌 챙겨온 거지? 우리 중에는 마도서를 공양물로 반길만한 이가 없을 터인데.]

“아, 이것은…… 그저 살펴봤을 뿐인데 덜컥 계약이 맺어졌습니다.”

[계약이 맺어졌다?]

“예,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도통 떨어져 나갈 생각이 없더군요. 해서 부득이하게도 이리 달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마도서와의 계약이라,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문제에 휘말렸군.]

“송구합니다. 제우스 님.”

[됐다. 알아서 잘 다스리도록.]

마도서를 내팽개친 제우스가 이번에는 이안이 내놓은 황금 사과 절반을 시계탑으로 옮기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황금 사과는 이게 전부인가?]

“예, 그렇습니다. 창고에 있던 모든 황금 사과를 다 챙겨왔지요.”

[그렇군. 알겠다. 하면 오늘부로 그 보물창고는 과업의 수행자이며 최초의 발견자, 칼리두 와탕카의 소유물로 귀속하도록 하지.]

“……네?”

[그대가 아니었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보물창고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어차피 평생 방치되었을 금은보화, 찾아낸 이가 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

“…….”

[앞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이건 조금 의외였다.

이안의 예상을 빗나간 전개.

하지만.

‘오히려 좋아.’

번개의 지배자 제우스.

생각보다 통이 큰 양반이다.

“크나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 프로메테우스의 보물창고 말고 더 할 말이 남아있는가?]

“자꾸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하지만, 한 가지 더 남아있긴 합니다.”

[좋다. 말해보아라.]

“실은, 돌아오는 길에 아스가르드의 로키라는 자를 만났습니다.”

[……로키를?]

제우스가 두 눈을 반짝였다.

황금 사과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자신이 속한 아스가르드로 전향하기를 권유하더군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지요.”

거기까지 이실직고했을 때.

올림포스 신전 입구 문지기로 변장한 채 이안과 제우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로키가 기겁했다.

‘저 미친놈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