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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7화
당초 목표였던 재구축 마법을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에 담아놓는 것.
하여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자동으로 시간이 되감기길 노리는 것.
그 계획은 잠시 보류되었다.
어째서냐고? 간단하다.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에 완벽한 자아가 존재할 줄은 몰랐거든.
‘자아가 있고, 자유의지가 있는 이상, 앞으로 일어날 변수부터 파악함이 우선이다. 그전까지는 쉽게 재구축 마법을 공유할 수 없어.’
더군다나 네크로노미콘은 프로메테우스가 눈먼 아버지께 하사받은 선물이다.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를 관리한다는 그 존재 말이다.
‘아직 시기상조다. 좀 더 면밀히 살펴본 다음, 믿을 만하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6번 조항을 써먹는다.’
판단을 끝낸 이안이 마도서 네크로노미콘, 줄여서 ‘크로미’를 아공간 주머니 안으로 쑥 넣어버렸다.
하지만.
[우와, 여긴 뭐야?]
그럼에도 목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강력히 연결되었다는 뜻.
뭐,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내서 물어보고 요청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크로미 님.”
[응?]
“뭐 하나만 묻죠.”
[얘기해 봐. 무엇이든.]
“제가 알기로, 당신은 눈먼 아버지가 프로메테우스에게 선물로 하사한 하사품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그때만 해도 새로운 계약자를 만난 줄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당할 줄은 내 꿈에서도 몰랐다니까?]
“관계가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관계?]
“눈먼 아버지, 그리고 그 휘하 혼돈의 자식들과의 관계 말입니다.”
프로메테우스가 하사품으로 받기 이전까지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의 소유주는 엄연히 눈먼 아버지, 그리고 혼돈의 전당 지배자들이었다.
만약 그들과 가까운 관계라면, 재구축 마법에 관한 이안의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터.
[관계는 무슨 관계?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원수 같은 놈들이지.]
하나 이안의 추측과는 달리 크로미의 반응은 무척이나 거칠었다.
[그놈들은 침략자야. 온갖 행성을 다 들쑤시고 다니거든. 그냥 범 차원적인 도적 떼라고 보면 돼. 눈먼 아버지란 놈은 도적 떼 수장이고.]
범 차원적인 도적떼.
그리고 그 도적 떼의 수장.
단번에 이해가 되는 표현이다.
“그럼 크로미 님의 고향도 그 범 차원적인 도적 떼에게 약탈을…….”
[응? 아니, 그건 아니고.]
“……네?”
[내 명색이 마도서인데 고향 땅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겠어?]
“그럼…….”
[본녀가 계약자랑 찜해놓은 행성을 그놈들이 침범하더라니까?]
“……?”
[아, 너 말고 예전 계약자.]
“…….”
[마기가 참 충만했던 행성이었단 말이야. 한동안 어디 안 가고 정착하겠거니 싶었는데, 글쎄 거길 그놈들이 홀라당 먹어버렸더라고?]
침략자 VS 피해자가 아닌.
침략자 VS 약탈자의 관계.
듣도 보도 못한 관계였다.
[그러니 열 받아 안 받아?]
“……받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글쎄요.”
[글쎄요라니? 들이받아야지!]
“해서, 이기셨습니까?”
[이겼으면 하사품이 되었겠어?]
우문현답이다.
이겼으면 하사품으로 남의 수중에 떨어지겠어? 그 반대였겠지.
[확실히 대단하더라. 그놈들. 특히 그놈들 우두머리는…… 내 예전 계약자를 아주 갖고 놀더라니까?]
갖고 놀았다.
이안이 흥미를 느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그 눈먼 아버지란 존재야말로 이안의 목표 끝에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존재와 이미 한번 싸워본 이의 경험담, 이건 확실히 귀하다.’
뜻밖의 수확.
이안이 물었다.
“얼마나 강하던가요?”
[글쎄, 강하다, 약하다의 개념보다는…… 한 차원 높은 존재 같았어. 살면서 본 모든 것들 중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고나 할까?]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
프로메테우스의 평가와 같다.
대체 눈먼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알면 알수록 의구심만 생긴다.
[내 계약자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다가, 노인으로 만들었다가, 그렇게 한참을 갖고 놀더니 시체로 만들더군. 아예 썩어 없어지는 꼴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이안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확실히 나하고는 크로노스에 관한 응용력이 남다른 존재다.’
이안의 한계는 재구축이다.
전체적인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눈먼 아버지란 존재는 한 개인의 시간마저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모양이다. 크로미의 설명으로 미루어보건대 확실하리라.
‘시간의 지배자라고 볼 수 있지.’
절대적인 시간의 지배자.
오직 그런 존재에게만 허락된 힘을 이안이 침범했으니, 저쪽 입장에서는 이안을 중간계의 변수이자 치명적인 오류로 정의할 수밖에.
[아무튼, 질문에 대답을 해주자면…… 본녀는 그놈들하고 아무런 관계도 아니야. 오히려 원수에 가깝지. 이 정도면 대답이 되겠지?]
“네, 충분합니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대답.
이안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런데, 계약자야.]
“말씀하시죠.”
[아까부터 네 주변을 서성거리는 자가 있는데, 혹 알고 있느냐?]
“대충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는 것 같고.”
[그럼 됐다. 알아서 하겠지?]
“아무렴요.”
그렇지 않아도 접촉할 참이었다.
아까부터 자신을 봐주십사 대놓고 서성거리는데, 이쯤 뜸을 들였으면 아는 척해줄 때도 되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할 말이 있으면 앞으로 나와서 하십시오.”
나지막한 경고가 통했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이안의 눈앞에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치는 진즉 챘을 텐데, 일부러 뜸을 들인 건가? 아니면…….]
“오햅니다. 긴가민가했을 뿐이죠.”
[음, 거짓말도 잘하고, 첫인상부터 마음에 드는군. 내 취향이야.]
그 무언가는 누가 봐도 시계탑의 지배자였다. 다만 이안이 접했던 여러 올림포스 전당의 지배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을 풍겼는데, 이 차이를 이안 나름의 방식대로 묘사해 보자면…….
‘인종이 다른 느낌?’
이안의 고향에는 여러 인종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간에는 문화나 언어 말고도 가장 큰 차이점이 존재하였으니, 바로 ‘외모’였다.
‘올림포스 전당의 외형을 기준으로 뒀을 때, 이쪽은 어딘가 모르게 이국적이다. 그럼에도 지배자의 격이 느껴져. 그렇다는 것은…….’
이안이 어떤 결론에 닿았을 때.
[너무 경계할 필요 없어.]
한발 먼저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하는 정체불명의 지배자였다.
[로키라고 한다.]
“로키?”
[네가 과업을 수행 중인 올림포스 전당 옆 동네 출신이야. 아스가르드라고, 들어는 봤겠지?]
아스가르드 전당의 로키.
그 이름과 출신을 듣는 순간 여러 기억으로부터 로키라는 이름에 관한 정보들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기만의 지배자, 로키.’
장난, 속임수, 기만의 대가.
심지어 최상급 지배자에 속한다.
이런 존재가 어째서, 무슨 용건으로 이안의 근처를 서성거렸을까?
“……용건이 뭡니까?”
이안이 물었다.
제법 날이 선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게, 장난과 속임수, 기만의 대가라잖아? 결코 순수한 의도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괜히 내 소개를 했다가 경계심만 더 늘어난 것 같군. 이게 그 유명한 업보, 뭐 그런 건가?]
치렁치렁한 흑발의 로키가 휘날리는 녹색 망토를 만지작거렸다.
특징을 알아서 그럴까? 행동 하나하나가 참으로 의뭉스러웠다.
[믿지 않겠지만, 당장은 안심해도 좋아. 나는 그저 심부름을 나왔을 뿐이니, 이 심부름 받기 전까지 난 네가 누군 줄도 몰랐다니까?]
“…….”
[그러니 너무 그렇게 도끼눈 뜨고 쳐다보지 말라고. 심부름 나온 사람 민망하게 할 필욘 없잖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투와 음성.
그럼에도 좀처럼 이안의 경계가 풀리지 않자, 로키는 별수 없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쩝, 서운하네.]
“미안합니다.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그래 보여. 속고만 살았나 봐?]
“많이 속으면서 살긴 했죠.”
[그럼 인정, 별수 없지.]
번개처럼 빠른 수긍.
하나 이조차도 기만일 수 있다.
괜히 기만의 지배자가 아니리라.
[그래도 이건 속이는 거 아니니 진지하게 들어봐. 나 말고, 나보다 더 위에서 하는 제안이니까.]
“제안이라 하시면?”
[우리 쪽 수장께서 네 녀석이 마음에 쏙 드신 모양이야. 참고로 너, 시계탑에서 꽤 유명하거든. 이제 고작 세 번째 과업을 수행하는 것치고는 명성이 아주 자자해.]
“그렇습니까?”
[에오스를 티탄의 땅 밖으로 끄집어내서 죽인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프로메테우스의 탈옥을 막았다지? 지배자의 격도 없는 주제에 목숨을 아주 내놓고 다니던데?]
소문 한번 빠르네.
에오스야 그렇다 쳐도, 설마 프로메테우스 건까지 퍼졌을 줄이야.
[사실 내 눈에는 그냥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어대는 하룻강아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만, 나보다 더 위에 군림하신 분께서는 그 두 건의 활약이 마음에 들었나 봐.]
아스가르드 전당 최상급 지배자인 로키보다 위에 군림하는 존재.
아마 그들의 수장을 뜻할 터.
[나더러 직접 찾아가서 제안을 하고 오라시더군. 우리 쪽으로 넘어오라고 말이야. 그러기만 하면 섭섭하지 않게 챙겨주신다네?]
우리 쪽, 그러니까 아스가르드 전당을 뜻하는 표현일 터.
이거 설마, 스카우트 제의인가?
“그 말씀은, 지금 저더러 올림포스 전당을 배신하란 뜻입니까?”
[에이, 엄밀히 따져서 배신은 아니지. 우리가 뭐 예전처럼 적도 아니고, 다 같이 손 붙잡고 혼돈 나부랭이들 밑이나 닦는 신세에.]
로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미간 주름이 유독 도드라졌다.
[그냥 그쪽에서 과업은 거기까지 수행하고, 우리 쪽으로 넘어와서 새로 과업을 치르라는 뜻이야.]
“정확한 대가가 뭡니까?”
[대가?]
“두 세력 간의 암투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즉, 그쪽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저는 사실상 올림포스 전당과 적이 되겠죠. 오히려 배신까지 했으니 더 싫어할 겁니다.”
눈먼 아버지와 혼돈의 자식들.
이른바 ‘혼돈의 전당’ 아래 똑같은 슈페리언으로 묶였을지언정.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는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크고 작은 분쟁을 쉴 새 없이 일으키는 관계였다.
한데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원한 관계 사이에 껴서 한쪽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깝지.’
그러니 들어봐야겠다.
올림포스 전당을 적으로 돌려 이안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물론 뒤통수 칠 생각은 당장 없지만, 중요한 건 대가의 크기였다.
‘그 대가의 크기가 곧 저쪽에서 나를 원하는 크기니까.’
이는 중요한 옵션이다.
알아둬서 나쁠 건 없다.
[흐음, 글쎄.]
그런 이안의 생각을 읽은 걸까?
의뭉스럽게 웃은 로키가 말했다.
[나도 딱히 듣고 온 건 없긴 한데, 일단 우리 쪽 과업의 수준을 크게 낮춰줄 수도 있겠고…….]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부족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한쪽을 적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열두 과업의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열두 과업 자체를 생략해도 모자랄 판이죠.”
12과업 자체를 생략하자.
그 말인즉, 전향하는 즉시 지배자의 격을 내놓으라는 뜻일 터.
“하물며 그게 제가 생각하는 대가의 마지노선인데, 그보다 못한 조건을 들고 오셨다면…… 이건 뭐, 메리트가 없어도 너무 없네요.”
협상의 대가 이안 페이지.
그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번 제안은 듣지 못한 걸로 하겠습니다. 만약 다른 제안을 가져오신다면, 그때는 기꺼이 처음 듣는 것처럼 정중히 경청해 드리죠.”
의뭉스러웠던 로키의 미소에 난감함이 드리운 건 그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