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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22화 (22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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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6화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

티탄족이었던 프로메테우스가 눈먼 아버지와 혼돈의 자식들에게 투항하며 ‘기간테스’라는 이름을 새로 받았을 때, 그 이름과 더불어 하사품으로 받았던 혼돈의 마도서.

‘배신의 낙인이라고 볼 수 있지.’

말이 좋아서 하사품이지.

사실상 ‘낙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게, 가장 먼저 티탄 동족들을 배신하고 전향하였기에 받을 수 있었던 하사품 아니겠는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시기상 배신의 상징처럼 보일 수밖에.’

물론 프로메테우스는 동족들조차 혐오했기에 단 한 순간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쓸모가 없어서 방치했을 뿐.’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에 담긴 옵션은 간단하다. 마도서와 계약을 맺은 계약자가 사망할 경우, 네크로노미콘에 담아놓은 권능이나 주술 따위가 자동으로 발동된다.

‘예컨대 폭발 마법을 담아놓는다면, 내가 죽는 순간 네크로노미콘이 그 폭발 마법을 일으킨다. 내 육신을 매개체 삼아서 말이지.’

마도서와 계약할 때, 계약자는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인을 하며 마도서에 담길 권능이나 주술, 이안으로 치자면 마법이론 따위를 빈 페이지에 상세히 적어야 한다.

‘그걸로 계약 끝, 마도서가 발동하는 건 계약자가 죽을 때 단 한 번이며, 이후 계약은 해지된다.’

듣기만 해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예를 든 것처럼 자폭이 전부였다.

정말이지 별거 아닌, 이러니까 창고에 박혀 먼지만 쌓이지 싶을 만큼 쓸모없는 마도서.

분명 그런 마도서이건만, 이안은 이 마도서에 관한 기억을 읽자마자 농담 아니고 ‘이거다’ 싶었다.

‘다른 권능이나 주술, 마법 따위로는 백날 계약해 놓고 죽어봐야 자폭밖에 되지 못해.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러나 이안이라면, 오직 이안만이 펼칠 수 있는 마법을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에 담아놓는다면?

‘예를 들자면, 재구축이라든지.’

재구축.

시간 회귀의 새로운 단계.

이쪽 표현을 빌리자면, 완벽한 시간 ‘크로노스’마저 되감는 주문.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에 그 마법을 담아 계약자인 이안이 죽을 때마다 재구축 회귀가 발동된다면?

‘시간을 되돌릴 틈도 없이 비명횡사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더는 몸 사릴 필요가 없어져.’

비록 재구축이라는 믿을 구석이 있다곤 하나, 지금껏 이안은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려야만 했다.

시간 회귀든 나발이든, 주문을 완성하기 전에 죽어버릴 경우 모든 것이 다 물거품으로 돌아갈 터.

그러나 마도서 네크로노미콘과의 계약에 재구축 마법을 담아놓을 수만 있다면, 해서 이안이 죽을 때마다 재구축 회귀가 발동된다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과감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그 계획에 따라 도전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지.’

과감한 계획, 도전적인 행보.

이안마저 하찮아 보일 만큼 강자들이 넘치는 세계에서 변수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

그런 것들이 가능해지리라.

‘문제는 이 마도서가 재구축 이론을 소화할 수 있느냐는 점인데.’

밑져야 본전.

이안이 마도서에 감겨있는 쇠사슬을 끊어낸 다음 천천히 펼쳤다.

샤락!

네크로노미콘은 마도서답게 평범한 서책과 궤를 달리했다.

여러모로 남달랐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라면 모든 페이지가 검은색이라는 점, 그리고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점이었다.

[우와! 계약자다!]

특정한 언어가 아니다.

이런 제3의 존재들이 으레 그렇듯, 말에 담긴 뜻 자체가 머릿속으로 주입되는 의사소통방식이었다.

[이게 얼마 만에 계약자야?]

다만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명백한 여인의 그것이었다.

장난기 넘치면서도 왠지 모르게 광기가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

지극히 마도서다웠다.

[계약해 줄 거지?]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하자!]

“……?”

[본녀랑 계약하자고!]

“…….”

[계약하자, 응? 하자!]

“…….”

[하자, 응? 하자, 응? 하자, 응?]

“그…….”

[너무 심심해! 외롭단 말이야!]

목소리는 마도서답다.

그런데 행실은 정반대다.

이안이 생각하는 마도서란 무릇 간교함과 사악함의 극치와도 같거늘, 지금 이안의 머릿속에서 옹알거리는 이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은 그런 이미지와 정반대의 존재였다.

‘왜 이렇게…… 징징거려?’

사악하고 교활한 마도서는 어디로 갔을까? 애초에 선입견이었나?

보기 드물게 당혹감을 느낀 이안이 일단 대화부터 시도했다.

“우선 진정부터 하고…….”

[본녀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얼마만의 계약자인데! 심심하고 외로워서 죽을 뻔했단 말이다!]

“…….”

[그러지 말고 일단 계약부터 하자. 응? 잘해줄게. 계약서에 네가 원하는 조항 팍팍 넣어! 어지간하면 다 들어줄 테니까. 어때?]

소용이 없다.

제 할 말만 쏟아낸다.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판단 잘해. 본녀만큼 급 되는 마도서랑 종신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

[와, 이걸 고민해? 진짜 제정신이야? 본녀 같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장부터 찍었을 텐데……!]

계약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난 건 잘 알겠다. 그 이유는 외로움과 심심함이라는데,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 좀 더 살펴보자.

“……계약을 원하시는 건 알겠는데, 순서가 틀리지 않았습니까?”

[응? 순서? 무슨 순서?]

“최소한 어떤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지는 설명을 해주셔야지요.”

[아, 그거?]

이안의 말에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스스로 페이지를 넘겼다.

[여기다가 적어봐.]

“무엇을……?”

[아차, 본녀부터 적어야 하지?]

그러자 텅 빈 검은색 페이지에 붉은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마도 계약서)

(1. 본 계약서에서는 계약자를 갑으로, 마도서를 을이라고 칭한다.)

(2 을은 갑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갑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3. 을은 갑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갑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4. 갑이 원한다면 을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지식과 권능을 발휘해야 하며, 갑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상황에도 자중한다.)

(5. 갑은 네크로노미콘의 계약자로서 계약된 마도서가 현세에 활동하게끔 만들어주는 필수 영양소 ‘마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

(5-1. 마기는 최소한의 지능을 가진 모든 생물체의 영혼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으며, 추출 과정은 을이 자유롭게 진행하도록 한다.)

(6. 을은 갑의 수명이 끝나는 순간 갑이 원하는 권능이나 주술을 발동시킨다. 이때, 매개체는 목숨을 다한 갑의 육신으로 한다.)

(7. 본 계약은 갑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혹은 을이 소멸할 때까지 유지되며, 그전까지는 임의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슈페리어의 언어로 적힌 계약서.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은 이안을 슈페리언이라고 판단한 눈치였다.

“흐음.”

이안이 마도서가 제시한 계약조건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조금 갑작스럽기는 하나, 애당초 얻고자 했던 마도서 아니겠는가?

“다 좋은데, 몇 가지 걸리네요.”

[응? 뭐가? 종신계약 수준인데?]

“먼저 5번 조항, 결국 무언가를 죽여야 한다는 뜻 같은데, 좀 더 확실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마도서에게 필요한 마기의 공급.

계약서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반드시 무언가를 죽여 제공해야 한다.

썩 꺼림칙한 조항 되시겠다.

[아아, 뭘 걱정하는지 알겠네. 근데 그거 별거 아니야. 그냥 아무런 짐승이나 잡아먹어도 된다고.]

“짐승이라…….”

[그냥 앞에다가만 데려다줘, 나머진 본녀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으음.”

[자주 먹지 않아도 돼. 일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

“좋습니다. 그럼 몇 가지 더 수정하죠. 이 부분만 협의가 이뤄진다면 기꺼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계약자 말입니다.”

[뭔데? 뭔데? 말만 해!]

“마지막 7번 조항.”

마지막 계약조건.

계약종료 시점에 관한 조항.

이안이 계속해서 말문을 이었다.

“갑이 계약종료를 원할 때 아무런 이견 없이 계약해지를 진행한다, 쯤으로 바꾸는 게 어떻습니까?”

[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이게 안 되면 저로서는 계약을 맺기가 어렵습니다. 시간 드릴 테니 고민해 보고 판단하세요.”

마도서를 손에서 놓은 이안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물 더미 쪽으로 휙 돌아 가버렸다.

[자, 잠깐……!]

그 미련 없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을까?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화들짝 놀라며 이안을 붙잡았다.

재빠른 조건 수정은 덤이었다.

[자! 이걸 봐! 네가 원하는 대로 수정했어! 이거면 충분하지? 응?]

“한 가지 더.”

[……뭐라고? 한 가지 더?]

“8번 조항 추가하겠습니다. 4번 조항의 연장선이니 4항 1번 조항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새로운 8번 조항.

혹은 4번 조항의 부속.

[……하아, 말해보아라.]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안의 철저함에 반쯤 내려놓은 눈치였다.

“4번 조항에는 갑이 원할 경우 을이 가진 모든 지식과 권능을 발휘해야 한다고만 적혀있는데, 발휘는 당연하고 필요에 따라 전수도 해주셔야 합니다.”

[전수……?]

“갑이 원할 경우 을이 가진 모든 지식과 권능을 갑에게 전수해야 한다, 쯤으로 정리가 되겠군요.”

[…….]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게, 발휘와 전수는 엄연히 다르다. 발휘는 제힘을 쓰는 것에 불과하지만, 전수는 막말로 밑천 다 털리는 일 아닌가?

‘그치만…….’

그렇다고 계약을 하지 않기에는.

이대로 다시 아무도 오지 않는 창고에 처박혀 세월을 보내기에는.

‘너무…… 너무 괴롭다고……!’

이 창고에서 썩은 세월이 얼마인 줄 아는가? 네크로노미콘도 모른다. 계산하는 걸 포기했거든.

그마저도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인제 그만 나가고 싶다. 계약자가 누구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과거 수많은 계약자와 함께 여러 행성을 파괴하고 다니던 그때처럼.

다시 한번 신나게 날뛸 수만 있다면 진짜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에잇! 좋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그러니 계약하자! 해줄 거지? 해줘야 해. 꼭!]

마침내 모든 요구를 실시간으로 반영한 계약서가 이안 앞에 나타났다. 이제 지장만 찍으면 될 터.

“피로 찍으면 됩니까?”

[응? 피는 무슨 피?]

“지장 말입니다.”

[하!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네?”

[우리가 무슨 야만인이야? 요즘 누가 계약할 때 핏물을 써?]

“그럼…….”

[문명인답게 잉크를 쓰면 되잖아? 잘 찾아봐. 별게 다 굴러다니던데 잉크 한 병쯤은 있겠지.]

“…….”

하나 프로메테우스의 보물창고는 잉크 따윈 취급하지 않았으니, 결국 ‘야만인처럼’ 손가락에 피를 내어 지장을 찍는 이안이었다.

파스스스스스스……!

그러자 마도서로부터 시꺼먼 안개가 뿜어져 나와 무척 가냘픈 팔과 손의 형상을 이루어냈다.

그 손은 네크로노미콘의 손이었으니, 이안의 붉은 지장 옆에 나란히 지장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계약 끝! 잘 부탁해. 계약자.]

잔뜩 신이 난 목소리.

그런 마도서에게 이안이 물었다.

“저도 잘 부탁합니다. 그럼 이제 6번 조항부터 얘기해 볼까 하는데.”

[6번 조항? 아, 그거?]

이안의 손바닥에 놓인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새로운 장을 펼쳤다.

[여기에 적어둬. 원하는 권능이나 주술, 아니면 기술이라든지, 뭐가 되었든 발동원리만 적으면 돼. 어차피 그걸 발동시키는 건 본녀가 아닌 죽은 계약자의 육신이니.]

“천천히 적어도 되죠?”

[얼마든지.]

“좋습니다. 근데…….”

이안이 마도서를 덮었다.

그러고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응?]

“네크로노미콘, 너무 기네요. 발음하기도 어렵고요. 간단히 부를 만한 이름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편할 대로 부르면 돼. 예전 계약자는 ‘크로미’라고 부르더군.]

“크로미?”

[네크로노미콘에서 네, 노, 콘을 빼서 부르더라. 귀엽다나 뭐라나.]

“음, 괜찮네요. 부르기도 쉽고. 귀여운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마도서 네크로노미콘.

단순한 마도서인 줄 알았건만, 어째서인지 자아를 갖춘 그 마도서의 이름은 지금부터 ‘크로미’였다.

[참, 그러고 보니 본녀는?]

“네?”

[본녀도 계약자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이름…….”

이름.

이안 페이지를 말해줘야 할까?

아니, 그건 여러모로 곤란하다.

그럼 결국 또 칼리두 와탕카?

“…….”

쓰읍, 그것도 별로인데.

지배자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굳이 여기서 또 그 이름을 쓸 필요는 없잖아?

“그냥 계약자라고 부르십쇼.”

결국 신비주의를 택한 칼리두.

아니, ‘계약자’ 이안 페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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