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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14화 (21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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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8화

    코카서스는 지역이 아니다.

    단지 거대한 산맥에 불과할 뿐.

    다만 그 면적이 어지간한 지역만큼 넓었으니, 슈페리언들은 모두 그 산을 코카서스 산맥이 아닌 코카서스 ‘산악지대’라고 불렀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네.’

    사람도 크고, 땅도 크고, 나무도 크고, 산도 크다. 하다못해 잡초마저 크니, 간혹 보이는 이안만 한 덩치의 슈페리언은 어찌 사나 싶다.

    ‘뭐, 살아보니 대충 살아지긴 하는데, 이래저래 불편하단 말이지.’

    거의 대부분의 슈페리언들이 이안보다 머리 두세 개는 더 크다.

    고향에선 그리 작은 키가 아니건만, 여기서는 난쟁이 그 자체였다.

    ‘나중에, 일 다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드워프나 노움처럼 키 작은 이종족들한테 잘해줘야겠다.’

    아마 제국 사회에 스며든 드워프나 노움 종족들이 작금의 이안과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겠지.

    고향으로 돌아가거든 반드시 그들의 처우부터 개선해 주리라.

    ‘……그나저나, 도대체 이 산꼭대기를 무슨 수로 올라가야 하지?’

    이안이 알아본바.

    이 산악지대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나무나 풀 한 포기 없이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진 바위산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번 과업의 목표라고 볼 수 있는 죄인, 프로메테우스가 바로 그 바위산 꼭대기에 포박되어 있을 터.

    ‘거기까지 올라가서 사슬을 바꾸면 끝이긴 한데, 문제는 이놈의 산이 보통 높이가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높은 산은, 아니, 그냥 모든 것을 다 통틀어서 이렇게 높은 무언가는 처음 본다. 하물며 이안은 아직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두 번의 과업 수행으로 격이 높아졌을지언정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니군.’

    여기까지 오는 데도 제법 긴 시간을 허비했다. 아마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으리라.

    ‘다른 방법은 없을 것 같고.’

    애석하게도 슈페리언이나 추방자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인적이 뚝 끊긴 산맥.

    비행과 물리적 등반을 섞어 꾸역꾸역 올라가는 수밖에 없을성싶다.

    ‘슬슬 올라가 볼까?’

    오기 전에 몇 가지 파악한바.

    이 거대한 산맥 꼭대기에 묶여 고통받고 있는 죄인 ‘프로메테우스’는 본디 티탄족으로, 눈먼 아버지께 충성을 맹세하여 기간테스 일족의 이름을 허락받은 존재였다.

    ‘원래는 기간테스 일족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곳에 군림하던 존재.’

    본디 올림포스 전당의 최상급 지배자들한테 밀리지 않는 격을 갖춘 존재였건만, 무슨 죄를 저질러 이 높은 산맥 꼭대기에 영원히 결박당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걸까?

    ‘듣기로는 슈페리어의 심장에서 쫓겨난 추방자들, 예컨대 추방자들을 돕고자 일족을 배신했다던데.’

    중간계와 추방자를 모두 벌레나 쥐새끼 취급하는 여타 지배자들과 달리, 그 프로메테우스란 자는 진심으로 추방자들을 아꼈다고 한다.

    단순한 동정심인지, 남모를 속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쪽 기준으로 독특한 존재 같기는 했다.

    ‘그래서 미첼 그린리버가 아닐까 싶었건만, 수소문하면 할수록 그자와는 거리가 멀어지더군.’

    본디 티탄족 출신으로 기간테스가 되었다는 배경을 어찌 중간계에서 온 자가 만들 수 있겠는가?

    가능하다면 이안 역시 그러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이쪽 세계에서 활동하기 더욱 쉬울 테니.

    ‘많은 것들이 편해질…….’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코카서스 산맥을 등반하는 바로 그때였다.

    [외부인.]

    “……!”

    [더는 산을 오르지 마라.]

    어떤 목소리가 이안의 귀를, 아니, 귀가 아닌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순간 골통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또한 직감할 수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거대한 산악지대, ‘코카서스’ 그 자체가 침입자를 경계하는 목소리.

    대자연의 속삭임이 확실했다.

    [일개 슈페리언이 침범할 공간이 아니다. 순순히 돌아간다면 보내주겠으나, 계속 오르고자 한다면 자연의 일부로 되돌릴 수밖에 없다.]

    자연의 일부로 되돌린다.

    한 줌 흙으로 만들어준다는 뜻.

    대자연의 강한 경고가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지.’

    결심을 굳힌 이안.

    그가 손등에 새겨진 과업 수행자의 표식을 사방에 보이며 외쳤다.

    “저는 평범한 슈페리언이 아닙니다. 이미 올림포스 전당에서 두 개의 과업을 완수해냈으며,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명하신 세 번째 과업을 수행 중인 수행자입니다.”

    [수행자……?]

    “그렇습니다. 세 번째 과업에 따라 이 산맥 꼭대기에 있는 죄수를 만나야만 합니다. 허니, 제가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갈 수 있게끔 허락해 주시길 청합니다.”

    [수행자, 수행자라.]

    자신이 수행자이며, 과업 때문에 오르고 있었다는 주장에 잠시 멈칫거린 코카서스 그 자체의 의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대자연이 읊조렸다.

    [그랬군. 그러니까 그대는 올림포스 열두 신의 심부름꾼이었는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와 올림포스 열두 신의 계약 역시 알고 있겠지?]

    “……계약 말씀이십니까?”

    글쎄.

    그런 건 처음 듣는데?

    설마 헤파이스토스 이 작자.

    일부러 설명해 주지 않은 건가?

    [그대가 수행하는 과업이란 곧 시련을 뜻한다. 높은 격을 얻기 위한 시련 말이다. 내 말이 틀렸는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올림포스 열두 신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했지. 만약 과업을 수행한다는 이가 이 산을 오르고자 한다면 인정사정 봐주지 말라고, 그 자리에서 죽여도 상관없노라고.]

    “…….”

    [그것이 바로 시련이니까.]

    이런 제기랄.

    어차피 산을 오르다가 죽을 거라던 말이 이런 뜻이었나?

    [좋다. 그대가 정말 과업의 수행자라면 더는 경고하지 않으마. 어디 한 번 계속 올라가 보아라. 내 친히 대자연의 격노로 하여금 시련이 무엇인지 맛보여줄 터이니.]

    “아직 올라간다고 한 적은…….”

    [시작해 볼까?]

    쿠구구구구구구구……!

    지진이다.

    그것도 대지진이다.

    중간계로는 한 국가요, 슈페리어 차원으로는 지역에 필적할 만큼 커다란 산맥의 지축이 뒤흔들렸으니, 이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마법하고는 차원이 달라.’

    이안이 직접 창조해낸 자연 계열 마법 중 대자연의 격노란 이름을 가진 주문이 있다.

    당시에는 정말 대자연이 분노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 붙였는데, 이거 이제 보니 잘못 지은 이름인 것 같았다.

    ‘이게 대자연의 분노면, 내 마법은 고작해야 나무 한 그루의 분노밖에 되지 않는다.’

    진정한 대자연의 분노, 그것은 곧 구체적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어……!”

    “우오오오오오오……!”

    “컹! 커엉……!”

    흙과 바위가 모여 빚어진 커다란 골렘과 바깥으로 꺼낸 뿌리를 다리처럼 쓰며 움직이기 시작한 나무 괴물들이 꼭대기로 오르는 길목을 가득 채우기에 이르렀다.

    어디 그뿐일까? 흙과 돌로 이루어진 커다란 팔과 손아귀가 산맥 지면에서 솟구쳐 이안을 붙잡으려 들었고, 일개 짐승조차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달려들었으니…….

    [도망쳐라! 한순간이라도 멈추는 순간 네놈은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옥’이 되어버린 코카서스 산악지대였다.

    * * *

    “허억! 헉! 허어억……!”

    여기 와서는 참 자주 겪는다.

    이렇게까지 숨이 차는 경우를.

    생명의 위협을 느껴지는 상황을.

    한평생 마법사로 살면서, 그것도 8클래스를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로 살면서 흔치 않은 경험이건만.

    이게 무슨 그동안 밀린 빚 한꺼번에 갚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몇 날 며칠을 도망만 치더구나. 간사한 쥐새끼가 따로 없더군.]

    “……맞서 싸우라는 말씀은 없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도망쳐야죠.”

    [그대보다 먼저 이 시련을 겪었던 과업의 수행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명예롭게 맞서 싸웠다.]

    “그래서 몇 명이나 살았습니까?”

    [……그리 많지는 않다만.]

    “바로 그겁니다. 전 여기서 죽을 생각이 없거든요. 물론 언젠가 죽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닙니다.”

    숨 차는데 자꾸 말을 시킨다.

    그래도 또박또박 대꾸는 잘한다.

    어찌 되었든 상대는 이 커다란 산악지대의 의지가 아니겠는가?

    굳이 적대할 필요는 없으리라.

    ‘……근데, 모든 과업의 수행자들이 명예롭게 맞서 싸웠다고?’

    그렇다는 건 일전에 만난 헤라클레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안의 세상에 내려왔던 분석관조차 이 시련을 통과했다는 뜻일 터.

    ‘헤라클레스면 모를까, 분석관 그놈이 그렇게까지 강할 리가…….’

    단언할 수 있다.

    만약 이안이 진정한 대자연의 격노를 정면으로 돌파했더라면, 아마 지금쯤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분석관 따위가, 더는 이안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그 거인이 이걸 명예롭게 돌파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놈은 분명 12과업을 완수하고 최하급 지배자가 되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아무리 시시각각 변할지언정 열두 개나 되는 과업이 모두 쉽진 않을 거다.

    한데 분석관 따위가, 심지어 지배자가 되기 이전의 분석관이 어떻게 모든 과업을 완수했을까?

    ‘과업에 관한 기억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전부 삭제되어 있으니 원…….’

    이거 분명 무언가 있다.

    이안이 모르는 무언가가.

    그 비밀을 알아낸다면 앞으로 과업을 완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

    ‘돌아가는 즉시 알아봐야겠군.’

    마음을 굳힌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묻은 먼지도 좀 털고, 챙겨온 물도 몇 모금 마셨다.

    슈페리어의 물은 중간계의 물과 달라서, 그 자체로도 연금술로 조제한 고급 회복제 효과를 냈다.

    정말 축복받은 세상이다.

    “보아하니 바위산부터는 그냥 보내주시는 모양인데, 더 볼 일 없으시면 슬슬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바위산부터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그곳은 올림포스 열두 신의 우두머리, 제우스에게 넘긴 땅이지.]

    올림포스 열두 신의 우두머리.

    통칭 ‘번개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제우스가 코카서스의 의지로부터 정당하게 넘겨받은 사유지.

    하기야, 그런 곳이니 천년만년 죄인을 묶어놓고 괴롭힐 수 있겠지.

    [가보아라. 적어도 바위산에 발을 들일 자격은 증명하였으니. 물론 쥐새끼와 같았지만, 그대 말이 맞다. 명예롭게 싸우란 말은 하지 않았지. 다음부터는 추가해야겠군.]

    비록 누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괜히 다음 차례 수행자에게 미안함을 느낀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눈앞에 나타난 바위산은 생각보다 인간적인 높이의 산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고향 땅 그 어떤 산맥보다 높았으니, 어디까지나 코카서스와 비교했을 때의 경우다.

    ‘대충 저쯤에 있겠지.’

    가장 높은 봉우리.

    뾰족하게 솟아오른 지점.

    저곳에 일족의 배신자라 불리는 죄인, 프로메테우스가 있을 터.

    팟!

    이안이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봉우리 끝의 모습 또한 선명해졌으니, 그곳에는 죄인으로 추정되는 이가 헤파이스토스의 사슬에 묶여 축 늘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작네?’

    다만 티탄족 출신 기간테스라는 풍문과 달리 그 덩치가 이안에 필적할 만큼 작았는데, 풍문이 잘못되었든 기간테스의 권능을 빼앗겼든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정도면 반항은 없으려나?’

    마침내 바위산 꼭대기의 죄인.

    프로메테우스 앞에 도착한 이안.

    그 흔치 않은 인기척을 느꼈을까?

    “사슬을 갈 때가 되었나 보군.”

    두 눈을 감고 있던 죄인 프로메테우스가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짤막한 중얼거림.

    하지만 그 말소리는 이안의 오감을 바짝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째서냐고?

    간단하다.

    ‘……제국어?’

    이는 명백한 고향 땅의 언어.

    다만 오늘에 와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고대의 제국 방언을 어째서 이 죄인이 구사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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