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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7화
황성 그린리버디움 인근.
신무기개발 및 실험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장인들의 새로운 터전.
그곳 널따란 실험장에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 올리버를 제외한 호위기사단, 장인들과 실험을 돕는 마법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폐하, 이것이 흑요석을 기반으로 개발한 새로운 붐스틱이옵니다.”
“오, 드디어……!”
이안이 떠난 뒤.
그가 남긴 기억과 흑요석 몇 덩이는 이안의 고향이자 첫 번째 중간계, 이름하야 ‘문드아일’에 실로 어마어마한 대격변을 일으켰다.
“기존의 대물 저격 붐스틱과 달리 연사 기능이 추가되었고, 흑요석으로 만들어 가벼운 무게, 고도의 출력에도 끄떡없는 내구성, 무엇보다 총신의 길이를 늘여 파괴력과 사거리 역시 대폭 증가시켰습니다.”
마도공학 장인 스람이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 앞에서 새로이 개발한 붐스틱, ‘슈페리어 킬러’를 야심 차게 내놓았다. 이는 이안의 기억과 흑요석을 기반으로 개발한 신무기 중 여덟 번째 결과물이었다.
“설명만 들어도 좋군.”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던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는 어느덧 자타공인 ‘대륙 최고의 명사수’로 거듭났으니, 새로 개발한 붐스틱을 시연하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 당장 쏴봐야겠어.”
하이든의 말에 장인들을 돕는 상아탑 마법사들이 주문을 펼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안의 기억 속 슈페리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허상들이 나타났으니, 이는 바로 침략훈련에 쓰일 ‘마법표적’이었다.
“안나, 표적 분석해.”
하이든이 명령하자 오른쪽 눈에 장착된 독특한 모양새의 외눈 안경이 에메랄드빛을 내며 반응했다.
스람의 또 다른 걸작, ‘인공정령 안나’와 연결된 외눈 안경이었다.
(50미터 내 5기의 표적이 존재합니다. 5기 모두 주인님께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이니 조심하셔요.)
인공정령 안나가 가장 가까운 표적 다섯 기의 정보를 분석했다.
표적의 크기와 정확한 거리, 접근 방향 및 빠르기 따위가 이미지화되어 외눈 안경의 특수렌즈에 표시되었으니, 이는 그야말로 마도공학의 집대성과 같은 발명품이었다.
“우선 조준 사격부터.”
신중히 조준하는 황제 겸 명사수 하이든 그린리버가 호흡을 멈췄다.
적어도 붐스틱 다루는 솜씨에 한해서는 이안과 올리버조차 가뿐히 뛰어넘는 사격 천재 아니겠는가?
그의 조준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타앙!
과거의 붐스틱은 아주 자그마한 매직 미사일을 발포하는 원거리 무기였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탄생된 ‘슈페리어 킬러’는 달랐다.
흑요석 총탄이 마나가 폭발하는 힘의 원리로 발포되었으니, 그 파괴력과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미간에 정확히 명중했습니다.]
인공정령 안나의 말 그대로였다.
가장 가까이 접근 중이었던 가상의 슈페리언 미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으니, 만약 평범한 생물이었다면 즉사였으리라.
하지만.
“스람.”
“예, 폐하.”
“이 방아쇠 왼쪽 조정간으로 단발과 연사를 지정하는 건가?”
“그러하옵니다.”
스람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거린 하이든이 최신형 붐스틱 슈페리어 킬러를 ‘연사 모드’로 바꿨다.
“후우……!”
붐스틱 사격은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다. 검이나 마법과는 달리 그 누구도 먼저 나아간 이가 없다.
그렇기에 하이든이 취하는 모든 자세와 호흡, 기타 여러 가지 비법들은 그가 직접 연구하고 끊임없이 훈련하여 얻은 결과였다.
탁!
당장 오른쪽 어깨에 정확히 견착 되어 반동을 받아내게끔 설계된 붐스틱의 몸통, 개머리판 역시 하이든의 조언으로 탄생한 부착물이었으니, 붐스틱 개발에서는 필수불가결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터.
투두두두두두두두!
투두두두두두두두!
투두두두두두두두!
마침내 격발을 시작한 신형 붐스틱 슈페리어 킬러의 야심 찬 비기.
연사 모드가 대륙 최고의 명사수 하이든의 손아귀로부터 그 절도 있는 총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연사력.
입으로 호를 그린 하이든이 본격적으로 신형 붐스틱을 다루었다.
단발, 연사, 짧은 연사, 긴 연사.
움직이면서 쏴보고, 무릎을 꿇어서도 쏴보고, 엎드려서도 쏴본다.
이는 모두 하이든이 직접 만든 사격 교본의 일부였는데, 창시자답게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뽐냈다.
“…….”
그렇게 한참을 쏘고 또 쏘았다.
온갖 방법으로 붐스틱을 다뤘다.
그 결과가 이거다. 하이든의 얼굴에 피어난 저 표정, 누가 봐도 만족감으로 가득한 표정이었으니까.
“스람.”
“말씀하시지요.”
“이거, 대량생산은 가능한가?”
“핵심 재료인 흑요석을 제외한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끝내놓았습니다. 이안 님께서 흑요석 광물을 꾸준히 제공해 주실 수만 있다면, 그때부터는 붐스틱 부대 전원에게 보급하고도 남을 것이옵니다.”
재료만 충족된다면 언제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신형 붐스틱은 물론이거니와 흑요석 총탄까지도.
당장 불가능한 것이 아쉬웠으나,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좋아. 우선 이 붐스틱은 100점 만점에 120점, 역시 스람이야.”
역시 스람이다.
그만한 칭찬이 또 있을까?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스람이 서둘러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이네요. 허면 여세를 몰아서 다음 물건을 보여 드리지요.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오, 또 보여줄 게 남아 있나?”
“신형 붐스틱이 황제 폐하, 그리고 폐하께서 친히 양성 중이신 새로운 제국군을 위한 발명품이었다면, 지금부터 보여 드릴 녀석은 오직 폐하만을 위한 물건이옵니다.”
오직 황제만을 위한 물건이라는 말에 하이든의 기대감이 치솟았다.
대체 무엇이기에 스람이 저토록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하는 걸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장인이 합심하여 탄생시킨 야심작, 인공정령 안나와 결합하여 전선에 나설 폐하께 최적의 서포팅을 제공해 드릴……!”
무언가를 가리고 있던 붉은색 천이 거두어지며 하이든과 비슷한 크기의 ‘야심작’이 공개되었다.
“……이건?”
* * *
슈페리어 차원으로 돌아온 이안.
그는 곧장 올림포스 신전으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지하 도시 주술사 로켄한테 변장 주술을 새로 받았으니,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잘 왔다. 원래 중간계 왔다 갔다 거리면 주술의 힘도 약해지는 법이거든. 네놈은 두 번씩이나 다녀왔으니…… 그냥 지배자들 앞에 섰으면 그 자리에서 뒈졌을 거다.’
이안의 선택은 실로 완벽했다.
슈페리어 차원과 중간계를 오가며 주술의 힘이 미약해졌단다.
정말 큰일 날 뻔했네.
‘운 좋은 놈.’
운 좋은 놈 이안 페이지.
변장 주술을 새로이 점검한 그가 마침내 올림포스 신전으로 향했다.
더불어 세 번째 과업의 조각상 앞 공양 그릇에 고향으로부터 공수해 온 장식용 황금 손망치를 내려놓았다.
[……이게 뭐지?]
그러자 백색 안광을 내뿜는 조각상에서 매우 무겁고 음울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처음 보는 물건인데…….]
“이제 곧 재구성이 시작되어 멸망할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의 장인이 만든 공예품입니다.”
[곧 멸망할 세계의 공예품……?]
흥미가 느껴지는 목소리.
공양 그릇에 올려놓았던 황금 손망치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시계탑으로 날아갔으니, 곧 조각상으로부터 한층 밝아진 음성이 들려왔다.
물론 그래 봐야 여전히 무겁고 우울했지만, 바로 그 직전과 비교하자면 많이 나아진 수준이리라.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불나방 주제에 제법 쓸모 있는 눈썰미를 가졌구나. 좋다. 일단 살려주도록 하지. 어차피 곧 죽을 테니까.]
어차피 곧 죽는다. 그만큼 과업의 난이도가 엄청나다는 뜻이겠지.
긴장한 듯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이안에게 세 번째 과업의 지배자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나갔다.
[수행자, 이름이 뭐지?]
“……칼리두 와탕카라고 합니다.”
[그것참 되도 않는 이름이군.]
“종종 듣는 말이긴 합니다.”
[하! 여유롭구나. 이게 다 앞서 과업을 내린 것들이 물러 터져서 그런 것이겠지. 하여튼 지배자의 격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쯧!]
아프로디테가 세 번째 지배자한테 노골적인 악감정을 표현했던 것처럼, 세 번째 지배자 역시 아프로디테에게, 추가로 아레스까지 묶어 유감없이 악감정을 표출했다.
어떤 관계인데 이러는 걸까?
[별수 있나, 타고나기를 글러 먹은 족속들이니. 나라도 지배자의 격을 바로 세워야겠지.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칼리두 와탕카.]
“하문하십시오. 지배자시여.”
[나, ‘불의 지배자 헤파이스토스’가 명하노니, 수행자는 지금 즉시 코카서스의 바위산으로 향하라.]
불의 지배자 헤파이스토스.
진명을 밝힌 그가 이안에게 코카서스의 바위산으로 향하라 명했다.
“거기서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간단하다. 코카서스의 바위산 최정상에 오르면 죄인 한 명이 보일 것이다. 내가 만든 사슬이 놈을 결박하고 있을 터인데, 바로 그 사슬을 새것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헤파이스토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텅 비었던 공양 그릇에 묵직한 사슬 뭉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전부인가요?”
[그렇다.]
“알겠습니다.”
듣기에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아프로디테의 경고를 잊지 말자.
[아, 그리고.]
과업을 내린 헤파이스토스.
그 지배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바위산 꼭대기의 죄인을 만난다면 내 말을 꼭 전해다오.]
“어떤 말을 전해드릴까요?”
[네놈이 그토록 아끼던 심장 밖의 추방자들, 그 쥐새끼들을 박멸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노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안은 왠지 모르게 누군가의 이름이 떠올랐다.
‘미첼 그린리버……?’
약간의 궁금증이 느껴졌다.
헤파이스토스가 수상함을 느끼지 못할 선에서 슬쩍 물어나 볼까?
“그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가능하다면 제가 죄인의 이름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굳이 알 필요가 있나?]
“씻지 못할 죄를 저지른 죄인이고, 그 처벌로 결박되어있는 것이라면, 사슬을 바꾸는 과정에서 반항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해서 미리 수소문을 할까 합니다. 죄인이 어떤 성향인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그런 것들을 파악해 둔다면 일이 좀 더 쉬워질 테니까요.”
[일리가 있군.]
다행히 잘 먹혀든 눈치.
헤파이스토스가 답을 내놓았다.
[딱히 유명한 놈은 아니라서 수소문이 될까 싶다만, 그래도 알려는 주지. 놈의 이름은 프로메테우스, 과분한 격을 허락받은 주제에 일족의 뒤통수를 친 죄인이지.]
프로메테우스.
예상했던 이름은 아니다.
물론 이안 역시 가명으로 활동하는 만큼 가능성이 없진 않을 터.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 없다. 어차피 네놈은 바위산 꼭대기로 가는 길에 죽을 터, 사실상 쓸데없는 짓이지.]
글쎄다.
거기서 죽을지, 나중에 죽을지.
혹은 죽지 않고 적들을 죽일지.
무엇이 되었든 해봐야 아는 일.
“……반드시 완수하여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헤파이스토스 님.”
헤파이스토스의 특별한 쇠사슬을 챙긴 이안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음 목적지는 코카서스.
여러 기억에 따르길 이곳 슈페리어 차원을 통틀어 가장 험하고, 척박하며, 위험천만한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