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12화 (212/342)
  • 212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6화

    이안의 다음 목적지는 저택 인근에 마련된 장인들의 영역, 사람들이 일컫길 ‘페이지의 장원’이었다.

    장인들에게 공양물로 쓸 물건을 얻고 아레스 몰래 아공간 주머니 가득 담아온 흑요석까지 내어준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일순이 될 터.

    “누구……?”

    다들 어디로 갔는지 장원에는 단 한 사람의 장인만이 보였는데, 바로 조각의 장인이자 여전히 어린아이로 살고 있는 ‘클레반’이었다.

    “클레반님. 접니다. 이안.”

    “네? 당신이 이안 님이라고요?”

    도통 믿지 못하는 눈치.

    그런 주인의 감정을 읽었을까?

    쿵!

    페이지의 장원 곳곳에 석상처럼 굳어져 있던 용용이 1호, 2호, 3호가 제 주인을 지키고자 날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르르릉……!”

    백색용의 형상을 한 조각상.

    용용이들이 이안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순한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리기 시작했으니, 이는 저 침입자가 이안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정말 이안 님이세요……?”

    “꼴이 좀 이상하긴 하죠. 그래도 저 맞습니다. 몇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잠깐 들렀는데, 다른 장인분들은 어디 가셨습니까?”

    “이번에 새로 개발한 무기랑 비행포격선 시험하러 가셨는데…….”

    “이런, 하필이면 바쁠 때 왔군요.”

    별수 없다.

    클레반에게 맡기는 수밖에.

    그도 어엿한 장인 아니던가?

    “그럼 클레반 님께 맡기겠습니다.”

    “네? 저한테요? 뭐를요?”

    “우선 이것부터 보시죠.”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흑요석 몇 덩이를 꺼냈다.

    비록 주머니 주둥이가 워낙 작기도 하고, 몰래 챙겨오느라 많은 수량을 공수하진 못했으나, 이런저런 연구에 쓰일 만큼은 되어 보였다.

    “이건……?”

    “흑요석입니다.”

    “흑요석? 처음 듣는데요?”

    “다른 세상에서 가져온 광물입니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광물이라고 하더군요. 장인 여러분께 가져다 드리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챙겨왔습니다.”

    “으음, 흑요석이라, 흑요석…….”

    수백 살 먹은 꼬마 장인 클레반이 흑요석 한 덩이를 집어 이리저리 살폈다. 확실히 가볍고, 단단하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마침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금속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거든요. 특히 스람 아저씨랑 할리아 아줌마, 그리고 데니스 아저씨가 여기저기 엄청 찾아다녀요.”

    “새로운 금속 말씀이십니까?”

    “세상 그 어떤 금속보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하되, 마나 전도율까지 높은 금속을 찾으러 다니시던데, 이 흑요석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참으로 적절한 때에 가져왔다.

    좀 더 대량으로 가져올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클레반 님.”

    “네?”

    “혹시 남는 조각상 있으면 아무거나 주실 수 있으십니까? 누구한테 선물할 만한 물건으로 말이죠.”

    “선물이요?”

    “네, 선물.”

    “누구한테요?”

    “글쎄요. 소문으로 듣기에는 더럽고 깐깐한 성질을 가졌다더군요.”

    “남잔가요? 여잔가요?”

    “아마 남자일 겁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죠?”

    “클레반 님께서 알고 계신 그 누구보다도 많을 겁니다.”

    “우와, 완전 할배네요.”

    혀를 내두른 클레반.

    그 꼬마 장인이 마침 근처에 있던 자신의 작업실로 걸어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할아버지들 취향은 잘 몰라서요. 그러니 그냥 여기서 아무거나 골라 가셔요.”

    클레반의 통 큰 창고 개방.

    물론 세세히 고를 시간은 없다.

    대충 한 개 골라잡고 떠나야겠지.

    “이게 좋겠군요.”

    이안이 찰나의 고민 끝에 조각상 한 개를 골랐다. 그린리버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황금 손망치였다.

    물론 망치 용도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그저 장식품이었다.

    ‘마침 대장장이라고 했으니…….’

    아프로디테는 분명 세 번째 과업의 지배자를 성질 나쁜 늙은이, 괴팍한 늙은이, 깐깐한 늙은이 등 각종 늙은이로 부르는 와중에 한번은 ‘대장장이’라고도 칭했다.

    대장장이에게 망치란 기사의 검과도 같은 존재, 이왕이면 조금이나마 연관성 있는 물건을 주는 것이 환심 사기에 용이하리라.

    “귀중한 작품을 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제가 시간이 없어서 이만 가 봐야…….”

    “저기, 이안 님.”

    “네, 말씀하세요.”

    “요하나가 많이 그리워해요.”

    “…….”

    요하나.

    그 이름이 이안을 멈춰 세웠다.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가기 전에 잠깐 보고 가시는 건 어떨까요?”

    클레반의 말에 이안이 저택 쪽을 멍하니 바라봤다. 평생 지키고자 다짐한 가족들의 터전, 아마 지금쯤이면 요하나도 깨어 있겠지.

    ‘오래 비우지 않겠다고 했는데.’

    20년 후의 미래.

    그 절망 속에서 끝까지 버틴 요하나와 그런 약속을 했었다. 절대로 곁을 오래 비우지 않겠노라고.

    ‘또 2년이나 비워 버렸군.’

    이안이 마법으로 시간을 살폈다.

    아직 아프로디테가 말한 일순이 지나려면 조금 남았다. 정말이지 조금이긴 하나, 얼굴 살짝 보고 대화할 여유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보고 싶다.’

    가족들이 보고 싶다.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다.

    떨어져 지내는 동안 단 한 순간도 그립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

    ‘잠깐만…… 볼까?’

    시간은 된다.

    오래도 아니고, 잠깐이면 된다.

    그 정도의 여유는 낼 수 있다.

    하지만.

    ‘……아니, 아니야.’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는 확고했다.

    ‘지금 보면, 내가 지금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그 순간 무너질 것 같거든. 아니, 무조건 무너진다.’

    아마 와르르 무너질 거다.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중압감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는 어깨가.

    ‘다시는…… 다시는 가족들을 떠나고 싶지 않겠지. 집 밖조차 나가고 싶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아.’

    다시는 떠나기 싫겠지.

    모든 근심을 잊고 싶겠지.

    가족들의 품에 안겨 있고 싶겠지.

    그래서 아니 된다는 거다. 그 포근한 가족들의 품에 오랜 세월 안기고 싶다면, 그리고 그 행복을 누구한테도 빼앗기기 싫다면 말이다.

    ‘갈 길이 멀다. 벌써 무너지면 안 돼. 내가 무너지는 순간 이 세상도 무너질 테니까. 그리되면 내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

    독하게 마음먹은 이안.

    그가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독을 씹어 삼키며 클레반에게 말했다.

    “클레반 님.”

    “네?”

    “우리 가족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 한마디에 담긴 복잡한 심경을 알아듣기라도 했을까? 마찬가지로 표정이 어두워졌던 클레반이 작업실 안쪽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가져가세요.”

    “이건……?”

    “요하나 생일 때 주려고 조각한 건데, 아무래도 요하나보다는 이안 님께 더 필요할 것 같아서요.”

    클레반이 가져온 물건.

    그것을 보는 순간 어째서 요하나의 생일 선물로 준비했는지, 그리고 요하나보다 이안한테 더 필요하다는 건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페이지 일가분들을 조각해 놓은 판화예요. 일종의 가족 초상화라고 보시면 되는데, 종이에 그린 그림과 달리 변질되지 않죠. 영원히.”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 설명에 홀린 듯 판화를 받아 든 이안이 새겨진 것들을 살폈다.

    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석판에는 총 다섯의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있었는데, 차례대로 더글라스, 레디오, 베네사, 하이리, 이안 자신, 그리고 정 가운데 몹시 귀여운 아기 숙녀가 활짝 웃고 있었다.

    “요하나 생일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그 판화는 이안 님이 가져가세요. 한 개 더 조각하죠. 뭐.”

    예상치 못한 큰 선물.

    작금의 이안에게는 그 어떤 금은보화보다 소중한 선물이기도 했다.

    “……고맙습니다. 클레반 님.”

    판화에 떨어진 눈물이 말라 사라질 때쯤, 이안에게 주어졌던 찰나의 귀향도 그 아쉬운 막을 내렸다.

    부디 이게 마지막이 아니기를.

    * * *

    이안이 떠났다.

    기억과 흑요석만을 남긴 채.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는 그 기억을 토대로 새로운 계획에 나섰다.

    이안이 목숨 걸고 가져온 결과물 아니겠는가? 이쪽 역시 목숨을 걸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보다 공격적인 침략 준비에 나설 차례였다.

    “후우우우……!”

    모두가 바빠진 이때.

    평소라면 황제 곁을 떠나지 말아야할 호위기사,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만이 홀로 수련장에 있었다.

    황제가 특별히 외딴 섬에 마련해 준 올리버만의 특별한 수련장이었으니, 아무런 방해 없이 수련에만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황제 하이든 다음으로 이안의 기억을 살핀 올리버 레이우드가 처음 느낀 감정은 ‘자책’이었다.

    ‘기사로서, 인간의 몸으로, 이만하면 충분하다 여겼다. 인류 중에는 오직 이안 님만 내 위에 있고, 인외의 강자들은 모두 우호적이니, 나도 모르는 새 이 비현실적인 평화를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평화.

    그 일상에 안주해 버렸던 올리버.

    물론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상유지를 위한 수련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헌데 아니다. 전혀 충분하지 않았고, 평화롭지도 않았다. 이안 님의 기억을 통해서 목격한 그 지배자란 족속들, 이안 님조차 벌레 취급을 당할 만큼 초월적인 존재들이 재구성이란 명목하에 우리 세계의 파멸을 바라고 있다.’

    올리버 자신보다 강한 존재들이.

    자신을 벌레 취급할 만큼 강대한 존재들이 저 하늘의 별처럼 많다.

    심지어 그들은 올리버의 고향 땅이 멸망하여 사라지기를 원한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이대로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이안님의 희생으로 유지 중인 평화, 이 달콤한 꿈에서 깨어날 때다.’

    다행이라면 ‘길’이 보였다는 거다.

    두 개의 과업을 완수해냄으로써 격이 올라간 이안과 나눈 한 수.

    그 찰나의 격돌 속에서 올리버는 어떤 깨달음의 실마리를 잡았다.

    ‘이 실마리를 토대로 한계부터 돌파한다.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이안 님만큼 강해지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둔다. 만약 거기까지 해낸다면, 나 역시 이안 님의 발자취를 뒤따를 수 있으니.’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가 과업을 완수하는 것, 하여 높은 격을 얻어 맞서 싸울 힘을 키우는 것.

    바로 이안이 개척 중인 그 루트를 뒤따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올리버의 첫 번째 목표는 바로 그 자격을 거머쥐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늙어버린 몸뚱이부터 바꿔야겠지.’

    마법사의 이상향이 무한한 마나라면, 무인들의 이상향은 ‘평생 노화되지 않는 전성기의 육신’일 터.

    ‘환골탈태.’

    여러 고서에 따르면 전성기의 육신으로 되돌아가는 행위를 환골탈태換骨奪胎라고 부른다.

    실로 비현실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겠으나,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었던 무한한 마나를 이안 님께서는 이미 이루어내지 않으셨던가?

    ‘비현실을 현실로 바꾸는 것, 그 정도는 해내야 이안 님의 뒤꽁무니나마 쫓아갈 수 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이 헬레느가 펼친 마나 보호막을 검으로 베었던 것처럼, 본 드래곤을 죽여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명성을 떨쳤을 때처럼, 이번에도 온 힘을 다해 불가능이란 녀석과 맞서 싸울 차례였다.

    스르릉……!

    올리버가 검을 뽑았다.

    지금부터 그 기사가 나아갈 모든 발자취는 무인들의 역사를 넘어 신화이자 전설로 기록되리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