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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11화 (21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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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5화

    가볍게 흘릴 조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성향을 가진 지배자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아레스의 조언에 따른다.’

    판단을 끝낸 이안이 아프로디테의 조각상 앞에 섰다.

    그러자 조각상 역시 안광을 내뿜으며 반응했다. 그는 아프로디테의 가호를 받았기에, 또한 그녀를 수호성으로 두었기에 공양할 필요가 없었다.

    [수행자여. 두 번째 과업의 무사 완수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아프로디테 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이지요.”

    [헌데 계속해서 과업을 완수해야 할 분이 저에게 왔다는 건, 세 번째 과업에 필요한 공양물 때문이겠지요. 아레스가 보냈을 테고요.]

    어째 다 알고 있다.

    단순히 예리한 걸까, 아니면 또 부부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정확하십니다. 아레스 님께서 말씀하시길, 아프로디테 님과 상의하여 신중히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수행자에게 세 번째 과업을 내릴 지배자, 그는 공양물이 성에 차지 않으면 공양자가 누구든 그 자리서 죽이려고 들 겁니다. 성질이 포악하거든요.]

    그 자리에서 죽인단다.

    조언을 따르기 참 잘했다.

    “그럼 제가 어떤 공양물을 바치는 게 좋겠습니까? 귀띔이라도 해주신다면 어떻게든 구해보겠습니다.”

    [그 늙은이 취향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저도 그래서 일찌감치 갈라섰고…….]

    “……예?”

    [아, 말실수. 아무튼 쉽지 않을 거예요. 공양물도 그렇고, 그 늙은이가 내리는 과업도 그렇고요.]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시련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과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죠.”

    [이미 두 개의 과업을 완수한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을 거랍니다. 한번 고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아프로디테 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그럼 우선 필요한 공양물부터 듣고 판단해 보겠습니다.”

    이안이 한 수 접고 들어갔다.

    여기서 괜한 고집을 피워봐야 애써 쌓아놓은 호의만 깎여나가겠지.

    [음, 좋습니다. 사실 그 괴팍한 대장장이가 선호할 공양물은 간단해요. 구하기 좀 어려울 뿐이지.]

    간단하되 구하기 어렵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

    도대체 무얼 원하는 걸까?

    [희귀한 수집품.]

    “희귀한 수집품?”

    [네, 그 늙은이가 원하는 건 뭐가 되었든 희귀한 수집품이에요. 성능이 좋아서 귀한 물건이 아니라, 말 그대로 희소성이 높은 물건이죠.]

    희소성이 높은 수집품이면 된다.

    아프로디테가 계속 읊조렸다.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할 만큼 귀한 수집품이라면 아무리 볼품없는 물건일지언정 만족할 거예요.]

    성능이나 가치 따윈 필요 없다.

    첫째도 희소성, 둘째도 희소성.

    문제는 그런 물건을 어디서 찾느냐는 건데, 아프로디테 역시 공수할 방법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할 만큼 귀한 수집품이라, 그걸 어디서…….’

    이안의 고뇌가 깊어지는 그때.

    ‘……잠깐.’

    뇌리를 스쳐 가는 한줄기 생각.

    묘수보다는 편법에 가까운 잔꾀.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하다. 조건이 정말 희소성뿐이라면 말이다.

    “……혹시 말입니다.”

    [좋은 수라도 찾으셨나요?]

    “좋은 수일지 아닐지는 아프로디테 님께서 판단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죠. 한번 말씀해 보셔요.]

    “중간계의 수집품은 어떨까요?”

    [중간계의 수집품이라, 글쎄, 그게 그렇게 희소성 있을지는…….]

    “조만간 재구성되어 사라질 중간계의 특산품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혹시 변수가 발생한 첫 번째 중간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변수가 발생한 첫 번째 중간계.

    이안의 고향을 뜻함이 분명하다.

    “네, 그렇습니다. 곧 사라질 세상의 마지막 공예품이라면 희소성이 상당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분석관의 기억으로 미루어볼 때.

    이들이 말하는 ‘재구성’이란 모든 생물과 문명의 초기화다.

    본디 존재하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파괴된 세상에 새로운 자연이 구성되어 생명의 불씨가 꿈틀대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필요할 터.

    ‘이전에 존재했던 문명과 전혀 다른 문명이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다. 사라진 문명의 공예품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지.’

    물론 이안은 고향 땅이 재구성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그걸 막고자 여기에 왔다.

    다만 이들은 재구성을 의심치 않는다. 벌레들의 집을 무너뜨리는 일쯤이야 너무나도 쉬운 일이니까.

    그러니 이용해야겠지.

    저들의 그 오만함을.

    [확실히, 곧 사라질 세상에서만 얻을 수 있는 공예품이라면…… 그 쓸데없이 깐깐하고 성질 나쁜 늙은이가 만족할지도 모르겠네요.]

    깐깐하고 성질 나쁜 늙은이.

    아까부터 세 번째 과업의 지배자를 향한 악의가 남다른 그녀였다.

    [좋습니다. 내 직속 권한으로 비프로스트의 임시 사용권을 드릴 테니 한번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세요. 나도 그대가 그 늙은이 손에 죽임을 당하는 건 싫으니까요.]

    드디어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어쩌면 잠시나마 고향 땅의 상황을 살피고 돌아올 수 있을 터.

    그뿐만 아니라 세 번째 과업에 필요한 공양물 역시 얻게 되리라.

    [단, 이거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합니다. 지배자를 동행하지 않고 중간계로 내려간 슈페리언에게 허락된 시간은 일순뿐이라는 것을.]

    일순.

    고향의 기준으로 한 시간.

    생각보다 굉장히 촉박하다.

    [일개 슈페리언이 그 이상 단독으로 머물 경우 시계탑은 그에게 손상이 발생했다고 판단, 제거 대상으로 분류됨을 잊지 마셔요.]

    촉박하다 못해 위험하잖아?

    그러나 방법은 이것뿐이다.

    ‘한 시간이라, 우선 폐하부터 만나 전달할 것과 전달받을 것을 끝내고 장인들에게 쓸 만한 공예품 하나 얻어서 올라오면 끝이겠군.’

    가족들과의 진한 재회라든지.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이라든지.

    그런 것들은 힘들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얼굴이라도 잠깐 볼 올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작은 바람과 더불어 임시 권한을 부여받은 이안이 올림포스 신전에서 빠져나와 비프로스트로 향했다.

    [슈페리언 칼리두 와탕카, 매혹의 지배자 아프로디테 님께 부여받은 일회성 임시 사용 권한 확인 완료.]

    커다란 싱크홀 위 기이한 구체.

    비프로스트가 이안을 인식했다.

    [목적지를 설정하십시오.]

    “첫 번째 중간계로 부탁합니다.”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을 말씀하시는 것이 맞습니까?]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

    슈페리어 차원에서 이안의 고향을 지칭하는 단어인 것 같았다.

    “……아마 그럴 겁니다.”

    [좌표를 지정해 주십시오.]

    순간 ‘그린리버 왕국의 수도 그린리버디움’이라고 대답할 뻔했다.

    일단 모르쇠로 일관해야겠지.

    “아무 곳이나 상관없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가 보는 중간계라서요.”

    [무작위로 지정할까요?]

    “그렇게 해주십시오.”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로 통하는 다리를 생성합니다.]

    다섯 번째 중간계, 지구였던가?

    그 중간계로 내려갈 때와 같았다.

    무지갯빛 줄기가 싱크홀 아래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으니, 이제 저 빛줄기에 몸을 맡길 차례였다.

    [그럼 즐거운 여행되시길.]

    * * *

    ‘……돌아왔다.’

    비록 잠깐일 뿐이지만.

    어찌 되었든 돌아왔다.

    그리웠던 고향 땅으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양쪽 세상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모르긴 몰라도 이안의 고향 쪽이 더 많은 세월을 감내했을 터.

    ‘……그나저나, 무작위로 보내준다더니 정말 무작위로 보내줬군.’

    보낸 곳이 하필 망망대해라니.

    날지 못하는 이가 내려왔다면 그 자리에서 익사를 당하든, 열심히 헤엄치든, 둘 중 하나였겠지.

    ‘가족들부터 만나고 싶지만…….’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다.

    할 일부터 빠르게 끝내자.

    ‘텔레포트.’

    슈페리어 차원에서는 불가능했던 텔레포트 주문, 하지만 이곳은 이안의 고향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 어디로든 갈 수 있다.

    ‘황궁으로.’

    첫 번째 목적지는 황궁.

    그중에서도 황제의 집무실.

    이 시간이면 거기 계시리라.

    팟!

    빛줄기가 이안을 휘감았다.

    동시에 주변풍경이 달라졌다.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했던 공간, 향기.

    나아가 반가운 얼굴까지.

    “황제 폐…….”

    콰앙!

    이안은 단지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를 부르고자 했거늘, 어째서 문짝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올까?

    ‘가만, 이거 뭔가 익숙한데……?’

    그래, 과거에도 이런 적이 있다.

    텔레포트 주문으로 당시 황태자였던 하이든에게 은밀히 접촉하려는 순간, 이를 침입자로 인식한 호위기사가 달려들었으니…….

    카앙 - !

    그래, 바로 이렇게.

    단지 차이가 있다면.

    “누구냐, 네놈.”

    그때는 이안을 단번에 알아봤다.

    하나 지금은 여전히 적으로 인식했다. 왜냐? 간단하다. 지금 이안에게는 변장 주술이 걸려 있잖아?

    “정체를 밝혀라.”

    “올리버 경, 접니다.”

    “당장 밝히지 않으면 네놈의 그 시퍼런 목이 바닥에 떨어질 거다.”

    언제 봐도 용감무쌍한 기사다.

    그도 그럴 게, 이안은 앞서 두 번의 과업 통과로 격이 오른 상태다.

    당장 올리버의 전력을 다한 검격을 손으로 막아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 아니겠는가?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한데도 당황하거나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날카롭게 조각된 눈빛으로 푸른 피부의 침입자를 응시할 뿐.

    ‘하여튼 이쪽도 만만치 않아.’

    피식 웃은 이안이 손으로 막아낸 올리버의 검을 옆으로 슥 치웠다.

    “모습이 달라지긴 했는데, 자세히 보면 알아볼 만하지 않습니까?”

    “……너, 설마?”

    갑작스런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던 황제 하이든이 먼저 나섰다.

    확실히 누군가 연상되는 얼굴이긴 했으니까.

    “이, 이안……?”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역시 하이든이다.

    눈썰미 하난 좋다니까?

    “이안 공? 정말 이안 공이시오?”

    황제보다 한 박자 늦는 올리버.

    이제야 당황한 기색을 보여준다.

    “사정이 있어서요. 아시다시피 적진 한가운데에서 활동 중인지라.”

    이안의 대답에 칼을 거둔다.

    여전히 의구심 가득한 눈빛.

    그래도 일단 믿는 눈치였다.

    “제가 다른 차원에 있어서 시간관념이 약간 고장 났는데, 혹시 제가 떠난 이후로 얼마나 지났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

    이안의 물음에 황제가 반응했다.

    조금은 울컥한 목소리였다.

    “……2년, 2년이 지났다.”

    2년이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구나.

    다행히 예상 범위 안쪽이다.

    그래도 너무 많이 흐르긴 했다.

    “2년, 그렇군요.”

    “이안, 도대체 무슨 일을…….”

    “폐하, 올리버 경, 이렇게 불쑥 찾아와놓고 이런 말씀부터 드려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해서 말인데…….”

    이안이 손바닥을 쭉 펼치자 그 위에 마나 구체 한 구가 탄생했다.

    “제가 위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담아놓았습니다. 이 기억을 토대로 앞으로의 계획을 진행해 주십시오.”

    그간의 경험이 담긴 구체.

    일컫기를 ‘기억 저장 수정구’.

    이안이 그것을 집무실 책상에 올려놓고는 하이든에게 고개 숙였다.

    “폐하, 2년 만에 나타나서 고작 제 할 말만 하고 떠난다는 거, 굉장한 불충임을 압니다. 부디 이럴 수밖에 없는 저를 이해해 주시길.”

    “이, 이안, 아무리 그래도…….”

    “죄송합니다. 폐하, 올리버 경. 두 분 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텔레포트 주문의 여파가 이안을 휘감았으니, 2년 만에 성사된 재회는 그것으로 끝이 나버렸다.

    “……차라도 한잔하고 가면 좋지 않으냐. 이것아.”

    그렇게 이안이 사라진 공간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던 하이든.

    이내 그가 정신을 차린 듯 이안이 넘겨놓고 간 수정구를 집었다.

    “폐하, 소장이 먼저 확인을…….”

    “아니, 짐이 먼저 봐야 한다.”

    “하오나…….”

    “알아야겠거든.”

    단호한 목소리, 우묵한 눈빛.

    하이든이 천천히 읊조렸다.

    “이안이 그 미지의 세상에서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

    그는 호위기사와 절친한 마법사 뒤로 숨던 겁쟁이 황태자가 아닌.

    일국을 다스리는 황제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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