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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10화 (21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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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4화

    첫 번째 가설.

    지배자들이 뚫어놓은 다섯 번째 중간계 ‘지구’의 쥐구멍과 달리, 고향에서 발견한 쥐구멍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가설은…….’

    두 번째 가설.

    이안의 고향 땅 역시 다섯 번째 중간계 지구처럼 지배자들의 체스판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였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군.’

    많은 것을 따져봤을 때 그러하다.

    전자보다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애석하지만 냉정한 판단이었다.

    ‘두 번째 가설로 가면 프란 페이지가 어째서 슈페리어의 언어를 구사하는가, 그 의문이 풀린다.’

    프란 페이지가 구사하는 언어의 힘은 슈페리어 차원의 공용어다.

    문제는 그 자신조차 언제부터 구사했는지, 누구한테 배웠는지, 어떻게 습득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의 농간으로 과거를 체험했을 때, 과거의 프란 페이지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하늘 세상에서 내려오신 귀인이라고, 마치 헥토르가 아레스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지.’

    헥토르 역시 아레스를 ‘하늘 세계에서 오신 분’이라 하지 않았던가?

    여러모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두 번째 가설에 힘이 실렸다.

    ‘조만간 프란을 다시 만나야겠군.’

    그러긴 싫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으로서는 그가 필요한데.

    ‘분명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지.’

    이안의 격이 높아질수록 프란의 흔적은 사라진다. 물론 거짓말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이안이 느끼기에 거짓말처럼 보이진 않았다.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이용하는 거다. 잘만 하면 아레스가 이 도시국가를 지원하는 것처럼, 나도 내 고향을 지원할 수 있을 테니까.’

    확실한 목표를 세운 이안, 그가 계속해서 헥토르의 말에 집중했다.

    “아레스 님께서 하늘 세계에 소유하신 흑요석 광산 중 한 곳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흑요석 광산으로 통하는 문임을 설명한 헥토르가 여러 개의 열쇠꾸러미를 찰랑거리며 읊조렸다.

    “저희한테 출입과 채광, 채집 허락해주신 광산이 여섯 곳, 약초밭이 열 곳입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세 번째 광산으로부터 채광된 광물들을 가져오는 날이지요.”

    그리 설명한 헥토르가 두 다리에 힘을 줬다. 마치 하늘 높이 도약하여 차원문이라도 넘어갈 기세였다.

    “그럼 가 보실까요?”

    “가능하겠습니까? 꽤 높은데.”

    “소인 비록 하늘을 날지는 못합니다만, 날 듯이 뛸 수는 있답니다.”

    날 듯이 뛴다라.

    도약력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

    “좋습니다. 그럼.”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준 이안이 두둥실 떠올랐다. 가 보자 함은 저 붉은색 포탈 너머를 뜻할 터.

    “건너편에서 뵙겠습니다.”

    이안의 말에 헥토르 역시 끌어모은 힘을 방출하며 ‘날 듯이 뛴다’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쿵!

    지면을 박차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도약력이었으니, 여러모로 올리버 레이우드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였다.

    ‘어떻게 마법도 없이 저럴 수 있는지…… 하여튼 신기하다니까.’

    찰나의 잡념 끝에 도착한 광산.

    그곳은 으레 ‘광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여러모로 많이 닮았다.

    단지 규모가 남다를 뿐.

    ‘광산이 뭐 이렇게 넓어?’

    기본적인 구조는 광산이 맞다.

    여러 갈래의 통로가 있고, 채광한 광물을 쉽게 옮길 수레와 레일이 깔렸으며, 수많은 광부들이 흑요석 곡괭이로 벽을 두들기는 풍경.

    다만 그 상상에서 족히 수백 배 이상 키운 규모가 바로 아레스 소유의 세 번째 흑요석 광산이었다.

    “아, 마침 준비가 되어 있군요.”

    눈앞에 도열된 수레, 그리고 그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흑요석들.

    헥토르가 그 대량의 흑요석 더미를 천천히 살펴보더니, 이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이제 여기에 흑요석으로 만든 갈고리와 사슬을 끼워놓고 던지면 끝이랍니다. 광물만 아래에 쌓이고 수레는 그대로 거둬 올리는 거죠.”

    “간단해서 좋네요.”

    “간단해서 좋지요.”

    덜컹!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흑요석이 가득 실린 수레를 번쩍 들어 차원문 너머로 던지는 헥토르였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그는 마나가 없다. 마나의 힘을 빌릴 수 없다는 뜻, 한데도 저걸 저리 쉽게 든다. 대체 얼마나 힘이 센 거야?

    “……도와드리죠.”

    “아닙니다. 아레스 님 대신 감독을 하시러 오신 것 아니십니까? 지켜봐 주시기만 해도 영광이지요.”

    정말 이안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부관쯤으로 여기는 모양새.

    평소였다면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겠으나, 지금은 다르다. 이래저래 알아볼 문제가 많아졌거든.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이렇게 하면 금방입니다.”

    이안이 가볍게 손짓하자 열 맞추어 도열되어 있던 흑요석 수레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어디 그뿐일까?

    일렬로 차례차례 차원문을 넘어가 광물 더미를 쌓아놓고 되돌아오기에 이르렀으니, 따로 갈고리와 사슬을 걸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더 간단하죠?”

    “그거 정말…… 간단하네요. 역시 하늘 세계에서 오신 분께서는 뭐가 달라도 확실히 남다르십니다.”

    단순한 아부가 아니다.

    휘둥그레진 눈이 증명한다.

    아레스는 직접적으로 힘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으니, 마법을 모르는 헥토르 눈에 이안은 하늘 세계의 신 그 자체처럼 보였으리라.

    “다음은 또 뭘 하면 됩니까?”

    오늘 하루.

    이안은 아레스의 대리인으로서.

    그리고 먼 훗날을 기약하며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완수해 냈다.

    * * *

    [헥토르 녀석이 네놈 칭찬을 많이 하더구나. 거의 존경하는 수준이던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게냐?]

    “아레스님께서 맡겨주신 과업을 충실히 이행하였을 뿐입니다.”

    [그래? 흐으음, 네놈, 생각보다 일머리도 좋은가 보군. 가능성이야 희박하겠지만, 혹시라도 12과업을 전부 완수해서 막내 지배자로 올라오면 여러모로 쓸 만하겠어.]

    헥토르는 영리한 자다.

    이안이 아레스에게 어떤 시험을 받고 있음을 몇 마디 대화로 알아챈 뒤, 양쪽한테 모두 점수를 딸 수 있는 처세술까지 펼쳐놓았다.

    그런 이가 왕세자이며 차기 국왕으로 내정된 왕국 트로이, 모르긴 몰라도 쉽게 망하지는 않으리라.

    [아무튼 네놈도 고생 많았다. 물론 과업으로 치면 고생 축에도 끼지 못한다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비프로스트를 통해 슈페리어 차원으로 돌아온 아레스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본연의 푸른 피부로 돌아왔고, 이안 역시 변장 주술이 씌워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근데 말이다.]

    “말씀하십시오.”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인데, 뭐 물어볼 거라도 있느냐?]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다.

    설마 이안의 표정을 읽을 줄이야.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숨기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아라. 내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어지간하면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사실, 여쭈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그래, 그래. 허락하니 말해봐.]

    아레스에 재촉에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가벼운 질문부터 던졌다.

    “혹 제가 모든 과업을 수행한다면, 해서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는다면, 저도 아레스님처럼 중간계의 왕국과 왕조를 키우고 운영해 나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요?”

    많은 뜻이 내포된 질문이었다.

    어쩌면 합법적으로 고향을 지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여야 할 터. 12살 어린 아이로 살던 시절의 천진난만함을 다시 한번 발휘하는 이안이었다.

    [네놈, 오늘 내 도시와 왕국을 보고 감명이라도 받았나 보구나?]

    “솔직히 조금 부러웠습니다.”

    [하하! 충분히 그럴 만하지. 나도 지금껏 살면서 이만큼 완벽한 장난감을 만들어 본 적은 없거든.]

    아레스도 별다른 의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장난감을 부러워하는 모습에 의기양양할 뿐.

    너무 오랜 세월을 존재한 탓에 정신연령이 낮아졌거나, 처음부터 많이 낮았음이 분명하리라.

    [네놈 질문에 답을 해주자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우리한테나 막내지,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는 순간 네놈은 전 차원에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강자가 되는 거니까.]

    충분히 가능하단다.

    12과업을 모두 완수한다면, 하여 지배자의 격만 얻는다면, 여흥이라는 명목하에 고향을 향한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이안.

    물론 표정관리는 필수였다.

    “그럼 혹시 아레스 님과 여러 지배자분들께서 키우시는 중간계 말고, 다른 중간계도 가능할까요?”

    [음? 다른 중간계?]

    “같은 곳에서 시작했다간 아레스님의 왕국과 너무 비교될 것 같아서요. 이왕 하게 된다면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는 편이…….”

    [못할 것도 없지. 널리고 널린 게 중간계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이번에도 가능성을 확인했다.

    두 번째 쾌재를 불러 마땅한 일.

    [다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이미 모든 중간계가 체스판으로 쓰였거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말이야. 허니 네놈이 바라는 것처럼 아예 새로운 터전은 없다고 봐야겠지.]

    하나 그 쾌재도 잠시.

    아레스의 첨언이 찬물을 뿌렸다.

    그가 말하는 ‘모든 중간계’에 이안의 고향이 빠질 리 없을 터.

    [아, 그래도 너무 실망할 건 없다. 내 알기로 조만간 중간계 한 곳이 대대적으로 재구성될 예정이니까. 가만있자, 만에 하나 네놈이 지배자의 격을 얻는다 치면…… 그때쯤에는 완료될 것도 같구나.]

    조만간 재구성될 중간계 한 곳.

    그 별거 아닌 듯 읊조리는 말에 하마터면 표정을 찌푸릴 뻔했다.

    이안의 고향 땅을 뜻하는 발언임이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던가?

    [뭐, 좋다. 네놈 눈빛이 하도 초롱초롱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 만에 하나라도 네놈이 12과업을 모두 완수해서 내 아래로 들어온다면, 축하선물로 광산 몇 개를 선물해 주도록 하지.]

    찰나의 흔들림을 다르게 해석했을까? 아레스가 별안간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물을 약속했다.

    “……정말이십니까?”

    [별거 아닌 네놈과 한 약속도 모두 지켰다. 지배자씩이나 되었는데 약속을 저버릴 리 있겠느냐?]

    틀린 말은 아니다.

    헤라클레스와 달리 믿음은 가지 않는다만, 어찌 되었든 이안과 맺은 약속을 전부 지키긴 했으니까.

    [싫으면 말고.]

    “싫을 리가 있겠습니까? 아레스 님의 호의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12과업,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 네놈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한번 해보아라. 벌써 두 개나 완수하지 않았더냐?]

    아레스는 이안이 싫지 않았다.

    비록 칼리두 와탕카란 이름과 첫인상은 좀 별로였으나, 알면 알수록 부려 먹기 딱 좋은 놈 같거든.

    [아무튼 들어가자꾸나. 정식으로 두 번째 과업에 완수했음을 인정받아야지. 다시 말하지만 네놈, 꿀 제대로 빤 거다. 알지?]

    바로 그때.

    자신의 석상 앞에서 괜한 생색을 부린 아레스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더불어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던 아레스의 석상이 안광을 내뿜었으니, 꼬마 아레스는 여기까지였다.

    [수행자는 무릎을 꿇어라.]

    석상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아레스의 음성에 이안이 무릎을 꿇었다.

    꼬맹이 모습 때와는 달리 굉장한 위압감을 자랑하는 목소리였다.

    [나, 투쟁의 지배자 아레스, 과업의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에게 내린 과업이 완수되었음을 시계탑의 모든 지배자 앞에서 인정하는바.]

    첫 번째 과업을 완수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와 이안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바꿔놓았으니, 이는 두 개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표식이었다.

    [그대에게 세 번째 과업의 수행 자격을 부여하니, 준비가 끝나는 대로 자유롭게 시작하도록 하라.]

    세 번째 과업.

    이안이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을 살폈다.

    아레스와 마찬가지로 남성의 조각상이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풍성한 수염이 조각되어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조언을 해주자면, 세 번째 과업의 공양물은 부디 신중히 고를 것을 권한다. 괜히 나한테 했던 것처럼 조약돌 따위를 올려놓았다간 그 자리에서 머리가 터져버릴 터. 이와 관련해서는 아프로디테와 상의하는 것을 추천하지.]

    공양물에 신중해라.

    무슨 뜻인지 알겠다.

    [또한 세 번째 과업의 담당자는 바다와도 같은 아량을 가진 이 몸과 달리 수행자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니, 마음 단단히 먹고 임하기를 권장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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