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09화 (209/342)
  • 209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3화

    ‘내 고향보다 문명 수준이 낮아.’

    아레스와 도착한 중간계.

    비프로스트가 칭하기를 ‘지구’.

    사막, 성벽, 바다가 보이는 이 다섯 번째 중간계의 전반적인 문명수준은 이안의 고향보다도 낮았다.

    ‘특히 마나가 없다. 그 말인즉 마법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전반적인 문명의 발전도가 낮다.

    사람들의 삶이 질 역시 그렇겠지.

    심지어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법의 힘이 없이는 문명의 발전 속도 역시 더딜 수밖에 없을 터.

    ‘같은 인간을 두고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심심한 지배자들의 체스판으로 쓰이기에 부족함이 없군. 그야말로 백지 같은 세상이니…….’

    다섯 번째 중간계, 지구.

    이 세상을 총평하자면 그랬다.

    그렇기에 더욱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서글프기도 했다.

    ‘우리 세상이나, 이 지구라는 세상이나, 지배자라는 족속들 입맛대로 놀아나는 건 마찬가지로구나.’

    여러모로 생각이 깊어지는 그때.

    [칼리두 와탕카, 저기 보이는 저 웅장한 성벽이 보이느냐?]

    아레스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들뜬 목소리였다.

    “……네, 보입니다.”

    도통 익숙하지가 않다.

    칼리두 와탕카라 불리는 것이.

    하여 조금 느리게 대꾸했으나, 아레스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 세계에서 공수해 온 흑요석으로 쌓아 올린 성벽이지. 아마 이쪽 세상 인간 놈들의 문명으로는 흠집 하나 내기 어려울 게다.]

    우리 세계.

    인즉 슈페리어 차원에서 공수해 온 광물로 쌓아올린 성벽이라고?

    듣던 중 흥미가 생기는 소리다.

    이안 역시 기회가 된다면 슈페리어 특유의 여러 자원을 고향 땅으로 빼돌리고자 하지 않았던가?

    “흑요석이라면 오직 우리 세계에서만 채굴되는 금속 아닌지요?”

    [맞다. 슈페리어의 심장을 둘러싼 성벽이 바로 흑요석 성벽이지.]

    “한데 그런 귀한 광물을 중간계로 유통해도 문제가 없는 겁니까?”

    [문제야 있지.]

    “……?”

    [몰래 가져왔을 뿐.]

    “…….”

    문제 있고, 몰래 빼돌렸다.

    참으로 대책 없는 존재가 아닐까 싶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관심이 갔다. 노하우만 알아낸다면 이안 역시 추후를 도모할 수 있을 터.

    ‘천천히 알아봐야겠군.’

    보면 볼수록 단순한 놈이다.

    투쟁의 지배자, 아레스 말이다.

    과업과 더불어 이런저런 실용지식을 얻어내기에 최적화된 타입.

    ‘일단 과업에 집중하자.’

    이안이 당장 목전에 놓인 문제부터 똑바로 응시하려는 그때였다.

    [이리 오너라!]

    몰래 가져온 흑요석으로 쌓아 올린 성벽 앞에 우뚝 선 아레스.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 도시의 주인이 왔느니라!]

    이 도시의 주인이 왔다.

    그 오만한 외침이 통했을까?

    굳게 닫혀 있던 흑요석 성문이 활짝 열리며 안쪽 풍경을 공개했다.

    [자, 들어가자.]

    성벽 안쪽을 처음 보는 순간.

    이안은 문득 고향 땅의 중립도시 ‘데미데라’가 떠올랐다. 과거 삼국협정 당시 접선장소를 제공해 주기도 했던 바로 그 도시 말이다.

    [잘 봐둬라. 칼리두 와탕카. 위치부터 흙 한 줌, 정착할 이주민과 왕족까지 내 손으로 직접 고르고 골라서 쌓아 올린 도시, 트로이다.]

    도시국가, 트로이.

    이안의 고향 땅에 존재하는 중립도시 데미데라가 느껴지는 도시.

    아레스와 이안이 그 도시에 입성하자, 누군가 쏜살처럼 달려왔다.

    “오셨군요. 아레스 님.”

    잘생긴 금발 청년이라서 그럴까?

    이안은 순간 그를 보고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를 떠올렸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호리호리한 황제와 달리 다부진 체격이라는 점.

    ‘거의 올리버에 가깝군.’

    하이든과 올리버가 적절히 조화된 청년이 이안을 힐끔 살펴보고는 계속해서 아레스에게 말했다.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 하늘 세계에서 내려오신 아레스 님과…….”

    “……칼리두 와탕카입니다.”

    “칼리두 와탕카 님을 뵙습니다.”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

    그 청년한테서는 왠지 모르게 남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마나는 아닌 것이, 도대체 뭘까?

    ‘가만, 그러고 보니 올리버 공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 계속 수련을 하다 보니 마나 말고도 다른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이름을 뭐라고 붙였더라, 용력이었던가?’

    올리버가 명명하기를 용력.

    올리버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 까닭은 바로 이 용력 때문이리라.

    [이야, 헥토르, 네놈은 어째 볼 때마다 강해지는 것 같구나.]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쯤 되면 알지 않느냐? 내 사전에 빈말이란 없다는 것을. 물론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힘이긴 한데, 너희 세상에서는 그럭저럭 어깨에 힘주고 다닐 만하지. 자랑스러워해도 돼.]

    “아레스 님께서 실망하실 일 없도록 끊임없이 정진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조만간 기회 되면 수련을 봐주도록 하지.]

    자신의 비위를 귀신같이 맞춰주는 헥토르가 마음에 들었을까?

    아레스의 얼굴에서 좀처럼 웃음꽃이 사라지지를 않았으니, 어딘가 모르게 황태자 시절 하이든 그린리버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하면 가자꾸나. 네 아비인 프리아모스 왕과 나눌 얘기가 있으니.]

    “모시겠습니다. 아레스 님.”

    [그리고 칼리두 와탕카.]

    “말씀하세요.”

    [너에게 맡길 과업은 총 세 가지다. 셋 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 불만 품지 말도록.]

    쉽다고 세 개씩이나?

    짜증이 났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놈이 절대적인 갑이니까.

    [먼저 여기 보이는 헥토르 왕자와 함께 성벽 보수를 돕는다.]

    “성벽 보수를 말씀이십니까?”

    [내 듣자 하니 아프로디테를 도우면서 몇 가지 괜찮은 요술을 부렸다던데, 그럼 요술사가 아니더냐?]

    요술이 아니라 마법이긴 한데.

    어쩌겠는가? 슈페리어 차원의 지성체들은 하나같이 마법을 요술이라 부르거늘, 그럼 요술사지. 뭐.

    [그 요술이면 성벽 보수쯤이야 식은 죽 먹기겠지. 이것 참, 내가 생각해도 과업을 날로 먹는구나.]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마는.

    왠지 얄미운 아레스의 말투였다.

    [그리고 두 번째 임무는, 네놈이 직접 나서 염탐을 좀 해줘야겠다.]

    두 번째 임무는 염탐.

    어디를 염탐하라는 걸까?

    [아까 얘기한 것 같은데, 나 말고도 여기서 왕국을 키우고 전쟁을 준비하는 지배자들이 많다고.]

    아레스가 속닥거리자 눈치껏 몇 걸음 떨어져 걷는 헥토르였다.

    눈치와 처신에 도가 튼 자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테나, 그 여자가 일군 왕국이 아주 막강하다더군. 조만간 전쟁이라도 일으킬 기세라던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봐야겠어.]

    그런 일이라면 꼬맹이 모습으로 직접 가면 될 걸 왜 나한테 시켜?

    알게 모르게 내비쳐진 이안의 눈빛을 읽어낸 걸까? 아레스가 황급히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직접 가기엔 체면이 빠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게임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거든. 절대로 우리 지배자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 왜냐? 나서는 순간부터 이 전쟁은 중간계의 전쟁이 아닌, 지배자들의 전쟁이 되어버리니까.]

    변명치고는 제법 일리가 있다.

    하긴, 체스 두다가 체스판 엎고 주먹부터 나가는 것만큼 추한 일이 또 없겠지. 인정해 주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물자 운반이다. 아까 얘기했지? 우리 세상의 물자를 지원해 주고 있다고.]

    이번에는 구미가 당긴다.

    그렇지 않아도 알고 싶었거든.

    슈페리어 차원의 물자를 중간계로 남몰래 들여오는 방법 말이다.

    [원래 내가 직접 하는 일인데, 이번에는 네놈이 대신해 줘야겠다.]

    “볼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런 셈이지.]

    볼일에 관해서는 딱히 더 설명해 주지 않는 아레스였다. 비밀이거나,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거나,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지.

    [설명이 더 필요하면 여기 있는 헥토르에게 물어보아라. 성벽 보수, 염탐, 물자 운반, 그 밖에 무엇이든 자세히 설명해 줄 거다. 내가 특히 아끼는 체스 말이니 믿어도 좋아.]

    “알겠습니다.”

    [그럼 잘 좀 부탁한다.]

    이안의 어깨를 툭툭 쳐준 아레스가 다시금 앞장서 나아갔다.

    이안 역시 그 뒤를 따르며 도시의 이모저모를 눈에 담아놓았다.

    [자, 그럼 나는 볼일을 좀 보고 올 테니 헥토르, 너는 나와 함께 온 칼리두 와탕카한테 세 가지 과업에 대해서 안내해 주도록.]

    “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자.]

    트로이 성에 도착한 아레스가 몇몇 하인들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갔으니, 덩그러니 남은 이안과 헥토르가 어색함을 공유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칼리두 와탕카 님. 아레스 님께서 맡기신 일에 관하여 설명을 올리겠습니다.”

    물론 그것도 잠시일 뿐.

    헥토르는 아레스와 함께 온 이안을 자신보다 높은 인물로 규정, 재빨리 예의를 갖추며 알아 모셨다.

    “먼저 아레스 님께서 언급하신 성벽 보수는…… 원치 않으신다면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도와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보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귀한 분께 그런 허드렛일을 부탁드릴 수는 없지요.”

    보수가 필요한 성벽 쪽으로 이안을 안내하고자 했던 헥토르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안의 대꾸에 따라 발걸음의 방향이 달라지겠지.

    “급한 문제가 아니라면 후자부터 해결하죠. 그 염탐이라는 거, 정확히 어디에서 뭘 하면 되겠습니까?”

    이안의 선택은 ‘일단 보류’.

    발걸음이 반대쪽으로 꺾였다.

    그 방향에는 도시 왕국 트로이의 군인들이 머무는 병영이 존재했다.

    “우선 염탐의 대상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카이아 연합으로 불리는 도시국가들입니다. 다만…….”

    “다만?

    “……사실 아레스 님께서 하늘 세계에 가 계시는 동안 이에 관한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오시면 곧장 보고부터 드리려고 준비해 놓았는데…… 원하신다면 칼리두 와탕카 님께 내어 드리겠습니다.”

    일은 다 해놓았다.

    그러니 보고만 하시라.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바라보는 이안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마음에 드는데……?’

    최상급 지배자인 아레스가 어째서 중간계의 인간을 벌레가 아닌 아끼는 체스 말로 취급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대목이었다.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보류하도록 하죠. 그럼 마지막으로 물자조달은 어찌하면 되는 겁니까?”

    “아, 물자조달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거 여러 번 방향을 틀어 송구스럽네요.”

    또다시 방향을 튼 헥토르와 이안의 발길이 도시 외곽에 멈췄다.

    중심지와 달리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땅.

    그곳에 도착한 헥토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며 읊조렸다.

    “이 열쇠는 아레스 님께서 저에게 맡겨두신 열쇠입니다. 하늘 세계와 통하는 열쇠라고 하시더군요.”

    “하늘 세계와 통하는 열쇠……?”

    붉은색으로 반짝거리는 열쇠.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마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예사 물건이 아님은 확실하다.

    “이 열쇠를 하늘에 바치면…….”

    맨바닥에 무릎을 꿇어앉은 헥토르가 두 손으로 ‘하늘 세계와 통하는 열쇠’를 공양하듯 떠받들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나아가 이안에겐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으니.

    쿠구구구구구구……!

    열쇠로부터 쏘아진 가느다란 빛줄기가 트로이 도시 외곽 하늘에 붉은색 포탈을 여는 것이 아닌가?

    “……저건?”

    슈페리어 차원으로 통하는 길.

    분석관의 기억에 따르면 존재는 인지하고 있으나, 딱히 보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차원의 틈.

    이안이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올 때 통과했던 ‘쥐구멍’이 확실하다.

    ‘그렇다는 것은…….’

    슈페리어의 분석관은 단지 보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차원의 틈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뚫려 있는 통로였으니까.

    ‘기록에 남지 않고 은밀히 슈페리어와 중간계를 오가기 위한 통로.’

    아레스도 마찬가지다.

    이 구멍을 통해서 슈페리어 차원의 희귀 자원들을 조달하였을 터.

    ‘……가만.’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이안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럼 내 고향에는 어째서 이런 쥐구멍이 뚫려 있었던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