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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08화 (20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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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2화

    [네놈은 내 부탁을 듣고 반지와 약속까지 받아냈으면서 그 길로 아프로디테에게 갔다. 맞느냐?]

    “그랬죠.”

    [나와 은밀히 나눈 대화와 약속을 모조리 고자질했으며, 그녀와 따로 계략까지 세워 에오스를 죽였지. 결국에는 말이다. 맞느냐?]

    “그랬습니다.”

    [네놈, 내 명예와 격을 걸고 맹세하지. 절대로, 절대로 곱게 죽지는 못할…….]

    “시계탑 꼭대기에 계신 분들.”

    [……뭐?]

    “혹 그분들의 약점을 알아내 주겠다는 약속, 하신 적 있으십니까?”

    [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에오스 님에게 말이지요.”

    [네놈이 정녕……!]

    “이대로 계속 얘기할까요? 아니면 따로 은밀하게 말씀을 드릴까요?”

    […….]

    찰나의 침묵.

    결과는 긍정이었다.

    [……되었다. 지금부터 너와 내가 나눌 대화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하니 마음 놓고 지껄여보도록.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게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목걸이를 받자마자 화를 내며 말하더군요. 가져오라는 정보는 없고 이따위 목걸이뿐이냐고, 자신이 정말 연애놀음이나 하는 줄 아느냐고.”

    [그, 그게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제가 어찌 아레스 님과 에오스 사이의 비밀을 알고 있겠습니까?”

    [커흠흠……!]

    헛기침을 내뱉는 아레스의 동상.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표정없는 동상임에도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이 사실을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아프로디테 님께도요.”

    [그런 것 같더군. 그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추궁도 받지 않았으니까…… 헌데 어찌 그런 것이냐? 전부 고자질했다면 그녀의 성격상 더 큰 보상을 내어줬을 터인데.]

    “함부로 발설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 아닙니까? 아레스 님께서 배신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요.”

    [배, 배신자라니! 내 격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나는 절대……!]

    “어련히 결백하시겠지요. 해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아레스 님께 먼저 말씀드린 것 아니겠습니까?”

    [으음……!]

    됐다.

    거의 다 넘어왔다.

    처음의 그 분노는 어디에도 없다.

    ‘슬슬 쐐기를 박아볼까?’

    주도권을 잡았다. 심지어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넘어온 주도권이다.

    요긴하게 써먹어야겠지.

    “저는 아레스 님께서 일족의 배신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누구든 그렇겠지요.”

    [당연하다! 시계탑을 통틀어 나만큼 충직한 자가 어디 있다고!]

    “알지요. 아레스 님의 우직함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해서 입을 다문 겁니다. 저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레스 님께서는 그저 난봉꾼으로만 남으실 테니까요.”

    [나, 난봉꾼이라니, 그건 좀…….]

    “일족의 배신자라는 불명예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그간 쌓아온 업적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으음……!]

    이안의 말에 일간 일리가 있다고 여긴 걸까? 잠시 뜸을 들였던 아레스가 수긍한 듯 중얼거렸다.

    [……네놈, 보기보다 괜찮은 채신머리를 가졌군. 그래도 날 속인 것은 당장 죽여 마땅하나, 내 이번만큼은 특별히 넘어가 주도록 하지.]

    “은혜를 입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으, 은혜는 무슨, 그냥 한 번 봐준 거니까 호들갑 떨지 마라.]

    괜히 핀잔을 주는 아레스.

    그가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진 말투와 목소리로 말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건 네놈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누구도 나를 난봉꾼으로 여기지 않아. 왜냐? 사실 이런 문제야 우리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거든.]

    비일비재하다.

    도대체 무엇이?

    [당장 아프로디테도 나 몰래 다른 놈들과 놀아난 적이 있지. 그럴 때마다 내 손으로 죽여왔으니, 이제야 서로 공평해졌을 뿐이다.]

    “……그렇군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족속들.

    영겁의 세월을 살면 다 이렇게 되는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어찌 되었든 잘 왔다. 서둘러 두 번째 과업을 수행하고 싶겠지?]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요. 제가 감히 과업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이다. 특히 네놈하고 맺은 약속도 있고 하니 특별히, 정말 특별히 쉬운 임무를 내려주마.]

    쉬운 임무.

    이안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도 그럴 게, 아레스는 헤라클레스와 달리 한 번 맺은 약속을 무조건 지킬 인물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몇 가지 수를 준비해 왔는데, 다행히 잘 먹혀든 모양새다.

    [쉬운 임무이니만큼 별건 아니고, 나와 함께 어디를 좀 가야겠다.]

    “어디를 말씀이신지요?”

    [신전 밖으로 나와라. 안 그래도 지금 가려던 참이었거든. 내 가면서 천천히 얘기해 주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곧장 신전 밖으로 나왔다. 거기에는 언제 와 있었는지 검은 머리칼과 푸른 피부의 소년이 서 있었는데, 신전 문지기가 그 꼬맹이를 향하여 군기 바짝 든 목소리로 경례했다.

    [오, 올림포스 3군단 8보병대 소속 천부장 에키온, 투쟁의 지배자이신 아레스 님을 뵈옵니다!]

    [이 모습으로 있을 땐 경례하지 말라고, 아니, 아예 그냥 아는 척을 하지 말라고 얘기했을 텐데?]

    [소, 송구하옵니다!]

    [……됐다. 말을 말자.]

    둘의 대화를 들은 이안이 살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게, 천부장이라 함은 천 명의 병사를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 아닌가? 한데 고작 문지기 신세라니, 새삼 올림포스 신전의 권위가 체감되었다.

    [뭐하고 섰느냐? 따라오지 않고.]

    “아, 예.”

    전에 봤을 때는 어설프게나마 심부름꾼인 척 연기라도 하더니.

    이젠 아예 포기했나 보다.

    [어딜 가느냐 물었지? 네놈은 지금부터 나와 함께 중간계로 간다.]

    “……중간계 말씀이십니까?”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고향을 뜻하는 걸까?

    거긴 갑자기 왜?

    ‘분석관 전용 코드로 시간을 제법 넉넉히 벌어놓았다. 아직 수상함을 느낄 만한 시간은 아닐 텐데……?’

    시간을 되돌리기 전.

    당시 분석관은 20년이란 시간을 유예받았음에도 추가 인원이 내려온 적은 없었다. 분석관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은 이상 확실하다.

    한데 이번 시간대에는 얼마 되지도 않아 추가 인원이, 심지어 최상급 지배자가 직접 나선다고?

    ‘설마 변수라도 생긴 건가?’

    이안의 머리가 재빨리 굴러갔다.

    [네놈도 잘 알겠다만, 우리 세계는 전쟁이란 것이 사라진 지가 제법 오래되었다. 티탄 놈들은 자기네 땅에 숨어들었고, 나머진 모두 눈먼 아버지께 굴복하였으니…….]

    물론 아레스는 이안의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제 할 말만 끊임없이 늘어놓을 뿐이었으니까.

    [아, 물론 평화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좋지. 다 좋은데, 그래도 내 명색이 투쟁의 지배자 아니더냐?]

    아레스는 이곳 슈페리어 차원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전쟁광’이다.

    그런 그의 삶에 전쟁이라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으니, 그 적적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터.

    [그렇다고 눈먼 아버지께서 구축하신 이 평화를 망가뜨릴 수는 없고, 이래저래 고민을 하다가 묘수가 떠오르더구나. 바로 중간계지.]

    “중간계라 하시면……?”

    [간단하다. 중간계에 개입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영웅도 키우고, 후원도 해주고, 이런저런 여흥을 즐기는 거지. 비유하자면 일종의 체스라고나 할까? 조금 더 현실감 넘치는, 피와 살점이 튀기는 체스 말이야.]

    피와 살점이 튀기는 체스.

    전쟁이란 무릇 무고한 이들의 목숨이 오가는 비극이건만, 아레스에게는 그저 체스나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재밌는지 나 말고도 꽤 많은 지배자들이 몰래 즐기고 있더군. 특히 아테나, 나와 동류인 그녀야말로 중독 수준이던데?]

    “…….”

    [뭐, 아무리 말로 해봐야 직접 보느니만 못하겠지. 다 왔다. 아스가르드 놈들이 쓰는 거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만, 그래도 중간계 내려갈 땐 이만한 게 또 없거든.]

    꼬맹이 아레스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올림포스 신전 뒤쪽에 뚫려 있는 커다란 ‘싱크홀’이었다.

    그 위로는 무지갯빛 구체가 둥둥 떠다녔는데, 여러 기억들이 그 구체와 싱크홀의 이름을 알려줬다.

    ‘비프로스트.’

    이곳 슈페리어 차원과 나머지 중간계를 이어주는 무지갯빛 다리.

    [잘 보아라. 앞으로 과업을 수행하다 보면 탈 일이 많을 터이니.]

    아니나 다를까, 아레스가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비프로스트여. 나, 투쟁의 지배자 아레스가 명하니, 다섯 번째 중간계로 통하는 다리를 열어다오.]

    [투쟁의 지배자 아레스님. 반갑습니다. 다섯 번째 중간계, ‘지구’로 연결되는 다리를 원하시는지요?]

    [그래, 그 이름이 맞는 것 같군.]

    비프로스트의 목소리는 사내보다 여인에 가까웠다. 그것도 매우 사무적인 말투였는데, 분석관과 남매가 아닐까 싶을 만큼 흡사했다.

    [좌표를 지정해 주십시오.]

    [매번 가던 곳 있잖아?]

    [아레스님의 직전 비프로스트 사용 내역에 따르면 ‘아나톨리아 반도, 트로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목적지가 맞으신지요?]

    [맞다. 맞아. 트로이! 네놈은 왜 매번 똑같은 걸 물어보는 게냐?]

    [확인 감사드립니다. 목적지이신 다섯 번째 중간계 지구, 아나톨리아 반도, 트로이로 향하는 다리를 즉시 열어드리겠습니다.]

    아레스한테 핀잔을 듣든 말든.

    비프로스트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뿐이었으니.

    우우우우우우웅……!

    구체로부터 무지갯빛 줄기가 뿜어져 싱크홀 아래로 내리꽂혔다.

    정말이지 강렬하고도 거대한, 감히 그 끝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머나먼 무지갯빛 줄기였다.

    [그럼 즐거운 여행되시길.]

    비프로스트의 인사와 더불어.

    [뭣하고 서 있느냐?]

    아레스가 손짓하며 읊조렸다.

    [어서 이쪽으로 와라. 내 특별히 재미난 경험을 시켜줄 터이니.]

    아레스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멀미’를 처음 느껴봤으니, 이를 재미난 경험이라 우긴다면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 * *

    다섯 번째 중간계.

    아레스와 함께 비프로스트를 타고 그곳에 도착한 이안이 첫 번째로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내 고향이…… 아니다.’

    전혀 다른 세상.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차원.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긴 어디지?’

    이안의 생각에 호응이라도 하듯.

    옷가지를 툭툭 턴 꼬맹이 아레스가 이안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환영한다. 우리 지배자들의 새로운 놀이터에 첫발을 디딘 것을.]

    한데 아레스의 모습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푸른 피부와 꿈틀대는 머리칼, 백색 안광 따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평범한 중간계의 인간처럼 보였다.

    [아, 내 얼굴이 좀 달라졌지? 이게 이쪽 세상에서는 제일 표준적인 외형이거든. 중간계 놈들이 워낙 겁쟁이라서 말이야. 적당히 비슷해야 어울리기 편하더라고.]

    그래, 그럴 것 같긴 하다.

    여기뿐만 아니라 이안의 고향에서도 이질감이 없을 외형이니까.

    [겸사겸사 네놈 외형도 바꿔놓았다. 헌데 네놈은 어째…… 그 꼬락서니가 더 자연스러운 것 같군. 의외로 중간계 체질인가? 하하.]

    모습이 바뀐 것은 비단 아레스뿐만이 아니었다. 이안 역시 비프로스트를 타고 내려오면서 중간계와 어울리는 외형으로 바뀌었으니, 이는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가 아닌 본연의 이안 페이지 그 자체였다.

    [아무튼 가자꾸나. 내 손으로 직접 키운 도시와 군대를 구경시켜주마. 과업은 그다음 차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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