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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06화 (20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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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0화

‘나중이고 자시고, 일단은 첫 번째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야겠지.’

아레스의 은밀한 부탁을 받은 직후, 이안이 곧장 향한 곳은 티탄의 땅이 아닌 올림포스 신전이었다.

‘시작부터 괜한 꼼수를 부렸다가 어떤 불이익이 생길지 모르니까.’

아프로디테에게 모든 사실과 더불어 한 가지 계책을 제안하니, 그녀 역시 해볼 만하다며, 그렇게만 해준다면 가호를 넘어 ‘수호성’이 되어주겠다며 격하게 반응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고.’

아프로디테는 정말이지 강했다.

최상급 지배자다운 힘을 가졌다.

당장 저 에오스 역시 이안에게는 높디높은 태산처럼 느껴질 만큼 강한 존재였건만, 그런 그녀를 아프로디테가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괴물이 따로 없네.’

신의 힘에 닿은 괴물들.

신은 아니되, 신처럼 보일 만큼 강한 힘과 권능을 가진 괴물들.

이안은 이쪽 세계의 모든 지배자들을 그리 규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네년은 오늘 내 손에 죽는다.]

신의 힘을 가진 괴물.

최상급 지배자 아프로디테.

그녀의 본신이 분노로 물들었다.

[남의 것을 탐낸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내 손으로 보여주겠어.]

붉게 물든 안광, 일그러진 표정.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매혹의 지배자가 아닌, 격노의 지배자가 되어버린 그녀가 창대를 휘둘렀다.

쿠쾅!

창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지형지물이 바뀔 만큼 어마어마한 싸움.

처음에는 당혹감 탓에 주춤주춤 물러나는 에오스였으나, 이내 그녀 또한 정신을 차린 듯 맞서 싸웠다.

[착각을 하는구나. 아프로디테.]

어디 그뿐일까?

비릿한 미소와 함께 아프로디테를 도발하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네년의 그 가엾은 반려께서 한탄을 하더군. 네년과 함께 있으면 숨이 다 막힌다고, 눈먼 아버지께 부탁드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노라고.]

[…….]

[얼마나 못살게 굴면 그럴까 싶었는데, 지금 내 앞에서 날뛰는 꼴을 보니 이해가 될 것도 같네.]

[…….]

[잠깐 본 나도 숨이 막히는데, 평생의 반려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입으로는 도발을.

나머지로는 전투 준비를.

에오스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끝부터 허벅지까지를 천천히 쓸어내리자 그저 옷 한 벌뿐이었던 그녀의 전신에 갑옷이 나타났다.

[차라리 잘되었어. 내 손으로 널 죽여서 가엾은 아레스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 기껏해야 자기네들 땅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티탄 나부랭이 따위가 뭐? 날 죽여? 시계탑에서도 최상급 격을 가진 나를?]

[격? 아하, 줏대 없는 박쥐 새끼마냥 여기저기 붙어먹으면서 빨아 드신 그 잘난 격을 말하는 건가?]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서로를 향한 날 선 도발과 증오가 어떤 한계점에 봉착하는 순간.

콰광! 쾅! 콰아아앙!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직전까지와는 비교조차 불허할 만큼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겠군.’

이안이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태산이 무너지고 지축이 뒤흔들리는 두 지배자의 싸움 아닌가?

근처에 있어서 좋을 게 없다.

다만.

‘기회를 엿보자.’

앞서 말했듯 고래와도 같은 저들 앞에 이안은 그저 새우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그 새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하여 한쪽 고래에게 크나큰 도움을 준다면 어떨까?

‘단순히 과업을 수행하는 것 이상의 이득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

이안이 지금껏 파악하기로, 매혹의 지배자 아프로디테는 다분히 기분파였다. 가호부터 수호성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무얼 해준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꾸만 새로운 약속을 남발하지 않는가?

‘아프로디테의 목적은 당장 에오스를 죽이는 것이지, 명예로운 결투 따위가 아니다. 그러니…….’

빈틈 한 번 만들어주자.

아주 사소한 틈이라도 괜찮다.

저런 괴물들 수준에서 사소한 틈은 곧 치명적인 실수로 작용할 터.

“…….”

마침 주변 환경이 좋다.

이안의 마법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자원이 참으로 많았다.

흙이며, 바위며, 바람이며, 땅속에 숨어 있는 거대 식물의 뿌리까지.

이만하면 충분하다. 독이 바짝 오른 새우의 뿔이 고래 싸움에 자그마한 부스럼을 만들기에는.

‘이그드라실의 속박.’

시간을 되돌리기 전.

분석관에게 펼쳤던 포박 마법.

다만 이곳 슈페리어 행성에서 펼친 이그드라실의 속박은 달랐다.

먼저 이안 본인이 그때보다 강해졌고, 저쪽 세상과 달리 대기 중에 마나가 충만하며, 결정적으로 거대 식물이 흔하게 널려 있지 않는가?

‘아직.’

지면 아래 잠들어있던 거대 식물의 뿌리 수만 갈래가 마치 두더지처럼 움직여 두 지배자의 발밑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한다.

조금 더 완벽한 순간을 기다린다.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다신 없을 기회니까.

‘지금!’

바로 지금이다.

이안이 판단하기로는 그랬다.

두 지배자의 싸움이 결렬해지다 못해 극한으로 치달은 지금!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격렬히 진동하는 땅, 그 밑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수만 갈래 줄기들.

예전보다 수십 배는 더 크고 질긴 줄기들이 에오스의 발목과 손목을 휘감았으니, 이는 곧 아프로디테에게 다시는 없을 기회였다.

[자, 잠깐……!]

당혹감으로 사색이 된 에오스.

그런 그녀 앞에 우뚝 멈춰 선 아프로디테가 전쟁의 지배자 아테나에게 빌려온 창, ‘미네르바의 창’을 단단히 고쳐 잡으며 읊조렸다.

[여긴 티탄의 땅이 아니야. 이게 무슨 뜻인지는 나보다 잘 알겠지.]

[뭐, 멈춰! 기다리라고! 아프로디테, 이건 그냥 장난이야. 옛날 생각이 났을 뿐이라니까? 왜 우리가 친구였던 시절에 자주 하던 놀이잖아? 누가 먼저 유혹하는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너와 친구였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어. 너는 항상 나보다 위에 군림하는 티탄이고, 지배자였으니까.]

[아, 아프로디테……?]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때도 우리가 유부남을 건들지는 않았거든?]

[잠깐! 기다려! 날 죽이면……!]

[잘 가. 에오스.]

[아프로디테……!]

[다시는 만나지 말자.]

푸욱!

거기까지였다. 아프로디테의 손속에는 자비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쿠, 쿨럭……!]

창끝이 에오스의 목을 관통했다.

앞서 아프로디테가 언급했듯, 여기는 티탄의 땅이 아니다. 따라서 에오스 역시 되살아날 수 없다.

즉, 완전한 죽음이라는 거다.

[너…… 후회…….]

[내가 후회를 왜 하니? 애당초 너희 티탄은 우리 시계탑의 공적인데. 잘했다고 상을 받으면 받았지, 후회할 일은 절대로 없단다.]

쿵!

마침내 에오스가 쓰러졌다.

죽음을 맞이한 티탄족의 육신은 여타 생물체와 달리 한 줌 먼지가 되어 빠른 속도로 흩날리기 시작했는데, 그 광경을 처음 본 이안의 눈에는 참으로 진귀한 모습이었다.

[수행자여, 이쪽으로 오세요.]

하지만 그 진귀함도 잠시.

아프로디테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이안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부르셨습니까. 아프로디테 님.”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네요. 에오스를 유인해 준 것도 그렇고, 특히 조금 전에 도와준 거,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혔어요.]

“과찬이십니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수행자의 공을 치하하고 싶은데, 지금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네요. 오랜만에 본신으로 움직여서 그런지 피곤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돌아가서 해결할 문제도 남아있고요.]

해결할 문제.

아레스를 뜻할 터.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저야 아프로디테 님께서 직접 나서주신 덕분에 과업의 난이도가 쉬워졌으니까요.”

[그리 말씀해 주니 고맙네요.]

이안을 향하여 싱긋 웃어준 아프로디테의 본신이 이제 거의 다 사라진 에오스의 시신을 바라봤다.

[대신 이 자리에서 줄 수 있는 선물이 하나 있어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물이니 걱정 말고요.]

과업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 자리에서 당장 줄 수 있는 개인적인 선물이라, 대체 무엇일까?

[저기, 에오스가 죽은 자리에 나타난 검은 구슬이 보이나요?]

과연.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이안의 머리통만 한 검은색 구체였는데, 에오스의 시신이 증발하며 남긴 유일한 일부분인 것 같았다.

“네, 보입니다.”

[저 구슬이 에오스가 품고 있던 격이랍니다. 옛 지배자로서 오랜 세월 쌓아온 힘의 정수랄까요?]

“……격?”

‘격’이란 이쪽 세상에서 힘과 권능, 깨달음 따위를 구분하는 단위다. 예컨대 마법사들이 클래스를 나누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우리가 힘을 합쳐 물리친 시계탑의 공적, 옛 지배자 에오스의 격을 수행자인 당신에게 허락하겠습니다. 그만한 자격은 충분하니까요.]

에오스의 격을 허락하겠노라.

수행자, 즉 ‘칼리두 와탕카’란 가명을 쓰고 있는 이안 페이지에게.

[물론 그대의 그릇은 아직 너무나 작고 얕기에 에오스가 남긴 격을 모조리 흡수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일부는 가능하겠지요.]

아프로디테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닥에 뒹굴고 있던 에오스의 ‘격’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라 이안의 면전까지 날아왔다.

[자, 손을 뻗어보세요. 미처 흡수하지 못한 나머지 격은 시계탑의 창고에 보관해 놓겠습니다. 칼리두 와탕카, 그대의 이름으로 말이죠.]

이안이 그녀의 말에 따라 커다란 구슬 쪽으로 오른손을 밀어 넣었다.

“……!”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구슬 속에 담긴 힘, 일컫기를 ‘격’이라는 이름의 기운이 이안의 팔을 타고 스며드는 것 아닌가?

“큭……!”

물론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힘의 크기가 비현실적으로 강대하여 잠깐 빨아들였음에도 충만하다 못해 터져 버릴 지경이었으니까.

“허억! 헉! 허어억……!”

[오늘은 그만하면 충분해요. 아직 기회는 많으니까 쉬도록 하세요.]

거칠게 튕겨 바닥을 짚고 쓰러진 이안에게 아프로디테가 말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올림포스 신전으로 와요. 과업 완수에 관한 공식적인 인정과 보상은 신전에서 치러짐이 마땅하니.]

다소 힘이 빠진 듯 보이는 아프로디테가 커다란 포탈을 열었다.

그것은 슈페리어의 심장으로 통하는 문이었으니, 이안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심장으로 복귀했다.

몹시 고단한 하루였다.

* * *

‘……정말 모르겠군.’

아프로디테에게 선물 받은 ‘격’.

정확히는 옛 지배자가 남긴 격 중 극히 일부분만을 흡수한 이안.

그는 아프로디테가 마련해 준 거처에 머물며 그 격이라는 힘에 관해 끊임없이 탐구하였으나, 끝내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이게 정확히 어떤 힘인지, 어떤 부분에서 강해진 건지,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솔직히 뭐가 달라졌는지도 모르겠어.’

이런 경우는 단언컨대 처음이다.

새로운 보상과 과업을 받기 전에 미리 파악해 두고 싶었건만.

‘알려줄까? 무엇이 변했는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가 아닌, 이안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익숙한 메아리.

‘……프란.’

이안의 내면 깊은 곳에 박혀 도통 사라질 생각이 없는 프란 페이지의 파편, 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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