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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05화 (20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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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9화

    ‘옛 지배자, 티탄 일족.’

    머나먼 과거, 본디 이 땅은 ‘대지의 지배자’ 가이아가 이끄는 티탄 일족이 지배하던 세상이었다.

    그들은 올림포스 일족, 아르가르드 일족, 기타 여러 일족을 멸족시키거나 복종시킬 만큼 강대했다.

    ‘침략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스스로 일컫기를 ‘혼돈의 종족.’

    정체나 목적은커녕 어디서 나타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침략자들의 권능 앞에 티탄 일족은 무력할 뿐이었으니, 결국 이 세상의 패권은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맞이한다.

    ‘정확히는 지배세력이 바뀌었다.’

    그 엄청난 변화에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는 일찍이 눈먼 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그들의 비현실적인 권능에 굴복한 티탄 일족 중 일부 역시 전향하여 기간테스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았다.

    ‘티탄 일족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아우르는 지칭이 슈페리어고.’

    혼돈,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그리고 전향한 기간테스까지.

    ‘슈페리어’라는 이름 아래 새로이 연합한 그들은 본격적으로 티탄을 청소하기 시작했고, 수세에 몰린 티탄 일족은 자신들의 고향이자 영혼이 머무는 땅, 티탄의 땅으로 피신하여 영원한 단절을 선택했다.

    더는 지배자가 아닌 ‘옛’ 지배자.

    혹은 ‘은둔자들’이란 오명과 함께.

    ‘……정리하자면 이쯤 되겠군.’

    이안은 그간 여러 기억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조금 전 티탄 순찰병의 기억이 상당한 기여를 해줬다.

    ‘이 구멍도 그 순찰병 덕이지.’

    티탄의 땅 내부로 들어온 이안이 서둘러 투명화 주문부터 펼쳤다.

    ‘그레이트 인비저블.’

    비록 헤라클레스에게 간파된 마법이긴 하나, 현재로선 이 이상의 투명화 주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반지의 힘을 믿어볼 수밖에.’

    니벨룽겐의 반지.

    그 반지에 깃든 여러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착용자의 ‘권능 강화’다.

    이안이 가진 권능이라 함은 마법뿐이니, 부디 이 반지가 마법을 권능으로 인식해 주길 바라야겠지.

    ‘그나저나, 여긴 원시 그 자체네.’

    슈페리어의 심장과는 달랐다.

    심장이 거대한 성벽과 다양한 건축물로 이루어진 대도시의 형상이라면, 티탄의 땅은 표현 그대로 대자연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건축물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동굴생활이라도 하는 건가?’

    거대한 나무와 수풀.

    산맥, 바위, 들판, 동굴.

    티탄의 땅은 단지 그뿐이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구름보다 높은 하늘에서 유유자적 부유할 뿐.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패배하여 물러난 은둔자들치고는 정말이지 평화로운, 이안의 말처럼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 풍경이었다.

    ‘각자의 거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저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하다면, 그리고 이 땅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죽지도, 고통받을 일도 없는 신선놀음.’

    참으로 한가로운 삶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자신과 가족들 역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우선 놈부터 찾자.’

    에오스.

    새벽의 옛 지배자.

    그 역시 신선놀음에 빠져 있을 터.

    그러지 않고서야 종족과 이념마저 초월한 불륜을 저지르겠는가?

    ‘위치는 대충 알겠군.’

    티탄족 순찰병의 기억.

    아레스와 아르테미스가 준 정보.

    그 세 가지로 추측건대, 에오스가 기거 중인 동굴은 멀지 않았다.

    ‘수정 동굴.’

    티탄의 땅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수정 동굴, 중간계의 대도시만큼 커다란 크리스털에 뚫려 있는 그 동굴이야말로 반짝이는 것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에오스의 거처였다.

    ‘해제.’

    무사히 수정 동굴에 도착한 이안이 투명화 주문부터 풀었다.

    어차피 아레스의 목걸이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선택.

    무엇보다 에오스 역시 옛 지배자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존재 아닌가? 심지어 이곳은 저들의 힘이 더더욱 강력해지는 티탄의 땅이다.

    이안의 마법쯤이야 어렵지 않게 간파할 터. 괜히 들키는 것보다 미리 모습을 드러내는 쪽이 낫다.

    [난 당연히 아프로디테의 과업을 받고 달려온 불나방인 줄 알았더니만, 날 죽이겠답시고 말이야. 헌데 모습을 드러내? 의도가 뭐지?]

    역시.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에오스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려댔다.

    “큭……!”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안은 울컥 역류해 올라오는 핏물을 꾹 삼키며 알아챌 수 있었다.

    ‘강하다. 헤라클레스보다도.’

    과연 옛 지배자다운 위압감.

    이안이 그 무지막지한 위압감을 어렵사리 견뎌내며 말문을 뱉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뭐? 무슨 헛소리는 하는 게지?]

    “과업을 받고 온 건 맞습니다. 당신을 죽이라더군요. 다만, 아레스 님의 부탁 역시 받았습니다.”

    [……부탁?]

    아레스의 부탁을 받고 왔다는 말에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했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전달해 드릴 것이 있습니다. 에오스 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안으로 들어가 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흐음.]

    찰나의 고민.

    이윽고 모든 위압감이 사라졌다.

    수정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신호였다.

    “그럼…….”

    이안이 앞으로 나아갔다.

    동굴 깊숙이, 더더욱 깊숙이.

    그 끝으로 커다란 공간이 보였다.

    [그만, 거기서 멈춰라.]

    압도적인 넓이와 높이의 공간.

    하나 그보다 더 압도적인 광경은 그 커다란 공간의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 형형색색 보석 더미였다.

    [더 들어왔다가는 네놈의 더러운 발이 내 보물에 닿지 않겠느냐?]

    새벽의 옛 지배자 에오스.

    보물 더미를 의자 삼아 옆으로 갸우뚱 기댄 그녀는 기간테스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티탄, 그중에서도 지배자의 격을 가졌던 존재답게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저 비현실적인 덩치만 빼면 오히려 중간계의 인간과 많이 닮았군.’

    푸른 피부 대신 백옥처럼 하얀 피부, 찰랑거리는 머릿결, 바닷물처럼 깊고 맑은 눈동자, 특유의 덩치만 빼면 나머지 외형은 오히려 슈페리언보다 인간에 더 가까웠다.

    [자, 여기서도 잘 보이니 한 번 내놓아보아라. 아레스가 내게 무얼 전해달라고 하였는지 말이니라.]

    아레스의 선물이 기대되는 걸까?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에오스 앞에서, 이안이 아레스한테서 받아온 목걸이를 꺼내서 보여줬다.

    “바로 이 목걸이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일을 너무 크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말씀도 남기셨고요.”

    이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대충 흘려넘긴 에오스가 목걸이를 받았다. 그러자 곧 이안의 손바닥보다 작았던 것이 에오스의 목에 맞을 만큼 커다래지는 것 아닌가?

    [흐음…….]

    그 목걸이를 손가락에 걸친 채 이리저리 살피고 확인하던 에오스.

    [혼돈의 꼬마 노예야. 정말 이게 아레스가 내놓은 물건 전부니?]

    “……예, 그렇습니다.”

    이내 그녀의 표정이 짜증으로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목걸이를 근처 보석 더미에 휙 던져 버렸다.

    [어이가 없네. 내가 정말 제깟 놈이랑 연애놀음이라도 하는 줄 알았나? 이거 순 미친놈 아니야?]

    그녀의 반응은 다소 반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종족과 이념마저 초월한 불륜이 아닌 것 같았거든.

    [내 분명 시계탑 꼭대기에 앉아 있는 그 더러운 족속들 약점이나 좀 알아내 달라고 했을 텐데…….]

    시계탑 꼭대기의 족속들.

    티탄을 여기까지 내몬 장본인.

    혼돈의 종족을 뜻하는 말 같았다.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척을 하는 건지.]

    보석 더미에 기대어 앉은 에오스.

    실로 매혹적인 자태의 그녀가 답답한 듯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얘, 꼬마 노예야.]

    “말씀하십시오. 에오스 님.”

    [마지막으로 물을게. 저 조잡한 목걸이 말고 다른 거, 정말 없니?]

    “없습니다.”

    [그래?]

    “예.”

    [음, 그렇구나. 허면 내가 널 어찌할지는 대충 알고 있겠지?]

    “듣지 말아야 할 걸 들었으니, 입막음을 하실 필요가 있겠지요.”

    [노예답지 않게 총명하구나. 그럼 더 왈가왈부할 필요 없이…….]

    에오스가 고개를 까닥거린다.

    동시에 손가락을 탁하고 튕겼다.

    [이만 죽으렴.]

    쿵!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이안이 서 있던 자리를 커다란 수정 덩어리가 내리찍는 데까지는.

    [이런, 또 더러운 피가…….]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

    그러나 이안은 죽지 않았다.

    자신을 깔아뭉갠 수정 아래에서 여전히 중얼대고 있었으니, 에오스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너, 얄팍한 술수를 썼구나.]

    일컫기를 ‘퍼핏 플레이’.

    이안이 고안한 분신 마법.

    자신을 벌레 취급하며 방심해 주기만 한다면 충분히 속일 수 있으리라 여겼고, 정확하게 적중했다.

    “방심해 주신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아레스 님께 접근한 목적이 무엇인지를요. 가서 잘 말씀드리죠.”

    [이 벌레만도 못한……!]

    “그럼 이만.”

    피슈슈슈……!

    그로부터 얼마 후.

    한 줌 아지랑이가 되어 사라진 분신의 기억이 티탄의 땅 멀찍이 숨어 있던 이안의 본체로 넘어왔다.

    ‘일단 여기까지는 성공.’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

    ‘플라이.’

    이안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슈페리어의 심장에 향하고자 했다.

    하지만.

    “……!”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시가 급한 이안이 위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게끔 하는 그림자.

    [말하지 않았느냐?]

    쿵!

    그 그림자의 주인이 지면을 쿵 하고 내리찍으며 가볍게 착지했다.

    뿐일까?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려던 이안을 귀찮은 파리 내려치듯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중얼거렸다.

    [얄팍한 술수라고.]

    콰앙!

    순식간에 지면으로 처박힌 이안.

    보호막 주문 덕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진 않았으나, 아무래도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혼돈의 꼬마야. 살아서 돌아갈 줄 알았다면 크나큰 오산이니라.]

    새벽의 옛 지배자 에오스.

    그녀는 놀랍게도 티탄의 땅과 멀찌감치 떨어져 숨어 있었던 이안의 본체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

    눈앞을 가로막은 강대한 존재.

    그 에오스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이안이 옷가지에 묻은 흙먼지부터 툭툭 털어냈다.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사람치고는 담담한 눈치였다.

    [이제 그만 죽음을 받아…….]

    “아프로디테 님.”

    [뭐라……? 네놈이 죽을 때가 되니 헛것이라도 보이는가 본데…….]

    “지금입니다.”

    [……!]

    바로 그 순간.

    티탄의 땅에서 나와 귀찮은 파리를 잡고자 했던 에오스가 ‘섬뜩함’이란 감각을 느꼈다. 단언컨대 이 감각은 지난 수천 년, 아니, 수만 년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서, 설마?]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에오스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에오스와 필적할 만큼 거대한 존재가 구름을 거칠게 걷어내며 살기 넘치는 안광을 뿜어대고 있었으니…….

    [아프로…… 디테……?]

    매혹의 지배자 아프로디테.

    이안에게 에오스 암살이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맡겼던 그녀의 ‘본신’이 거대한 창과 함께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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