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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02화 (20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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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6화

    ‘표현 그대로 대도시네.’

    참으로 다양한 종족이 ‘슈페리언’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살아간다.

    따라서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대도시 슈페리어의 심장은 각 문화권이나 목적성에 특화된 여덟 개 지구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중 이안의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목적지는 비공식적인 아홉 번째 지역, 지하도시라는 곳이니까.’

    통칭 지하도시, 슈페리어의 심장 지하에 뿌리를 내린 무법 지대.

    아버지의 피를 타고난 덕에 추방당하지는 않았으나, 거기서 아무런 발전도 이루어내지 못한 패배자들이 술이나 환각초 따위에 절어 남은 삶을 허비하는 공간이다.

    ‘딱히 가 보고 싶지는 않다만.’

    어쩌겠는가?

    변장 주술의 대가가 있다는데.

    하물며 지배자들의 눈조차 속일 수 있다는 변장 주술이다. 앞으로 쭉 유용하게 쓰일 정보 아니던가?

    ‘이름이 로켄이라고 했던가?’

    지하 도시의 주술사 로켄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주술사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이미 유명했으니까.

    ‘마약왕 로켄.’

    약에 취한 채 여기저기 나뒹구는 이들한테 묻자 망설임 없이 튀어나오는 별명, 그리고 이름이었다.

    ‘이 도시에 유통되는 모든 종류의 환각약초, 통칭 마약초의 관리자.’

    이안은 오직 그를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곳 지하 도시에서 가장 깊숙한 음지, 수로 끝자락까지 코를 막은 채 꾸역꾸역 내려갔다.

    똑! 또독!

    그렇게 떨어지는 고인 물과 구정물을 몇 번이나 맞고 닦았을까?

    [풋내가 진동하는 걸 보니 약쟁이 놈은 아닌 것 같고, 신입인가?]

    마침내 닿은 수로 끝자락.

    거기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슈페리언이 보였다.

    추방자 마을의 촌장만큼이나 늙은 노인네였는데, 이런 구정물에서 무슨 놈의 낚시인지는 모르겠다.

    “……신입?”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많이 봤을 거 아니야? 약에 취해 나뒹구는 패배자 놈들, 네놈도 이제부터 거기 섞여 나뒹굴 생각이냔 뜻이지.]

    말투가 거칠다.

    짙은 밑바닥의 냄새.

    이안이 주위를 둘러보며 답했다.

    “약에는 관심 없습니다. 환각초를 파는 장사치한테도 관심 없고.”

    [그럼 여기까진 왜 기어들어왔느냐? 설마 길이라도 잃어버렸니?]

    “주술사 로켄을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혹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이안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늙은이가 로켄이란 사실을.

    그럼에도 시치미를 뚝 뗐다.

    반응이 궁금했으니까.

    [뭐? 주술사 로켄을 찾아와?]

    “변장 주술에 능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추천받았죠.”

    [추천? 어떤 놈한테?]

    “미첼 그린리버.”

    [아, 그 미친놈?]

    미첼 그린리버라는 이름을 듣기가 무섭게 콧방귀부터 흥 뀐다.

    가서 자기 이름을 말하면 된다더니만, 아예 헛소린 아니었나 보다.

    [살아 있나? 그 미친놈.]

    “저도 모릅니다.”

    [뒈졌나 보군.]

    확신에 찬 목소리.

    로켄이 낚싯대를 거뒀다.

    당연하게도 잡히는 건 없었다.

    [가면 뒤집어쓰고 과업에 도전한다는 미친놈이 여태 살아 있을 리가 없지. 아마 바로 뒈졌을 게야.]

    혀 차는 소리가 지하수로를 쩌렁쩌렁 울렸다. 노인네 목청도 좋다.

    [해서, 네놈은 또 무슨 짓거리를 하고 싶어서 예까지 왔누? 설마 그 미친놈처럼 가면 뒤집어쓰고 과업에 도전하려는 건 아닐 테고.]

    “맞습니다.”

    [……뭐라고?]

    “과업에 도전할 겁니다.”

    [……?]

    “그 미친놈처럼요.”

    […….]

    “때문에 저도 당신의 변장 주술이 필요합니다. 뭐, 지금도 썩 나쁘진 않습니다만, 완벽한 편이 좋겠죠.”

    이안의 그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목적과 요구에 주술사 로켄이 일순간 말문을 잃어버렸다.

    [……보통 또라이가 아니로구먼.]

    겨우 나온 목소리가 욕이다.

    그럼에도 이안은 딱히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또라이’란 욕은 듣기에 따라 욕이 아닐 수도 있거든.

    [뒈지는 방법도 다양하구나 싶긴 하다만, 그걸 또 굳이 내가 말릴 필요는 없겠지. 좋다. 보수만 내놓는다면야 못 해줄 것도 없지.]

    “어떤 보수를 원하십니까?”

    [값나가는 거 있으면 아무거나 내놓아봐. 보고 판단할 테니까.]

    글쎄, 갖고 있는 물건 중 이 세상에서도 값이 나갈 만한 물건이…….

    [그 목걸이.]

    “……?”

    [심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꽤 비싼 값으로 팔아먹을 수 있겠구먼. 그거 내놔. 싫으면 꺼지든가.]

    이안이 목에 착용 중인 목걸이.

    과거 올리버 레이우드의 대련 요청을 수락하며 선물로 받았던 ‘황비의 목걸이’였다.

    “…….”

    오랜 추억이 깃든 물건.

    선뜻 내놓기가 어려웠다.

    “다른 물건으로는 안 됩니까?”

    [안 돼. 그 목걸이가 맘에 든다.]

    확고한 말투.

    이안이 한숨을 푹 쉬었다.

    내어주자. 지금은 추억이 아닌 미래를 위하여 싸우는 중이니까.

    “……여기 있습니다.”

    [잘 생각했다. 내 주술 받는데 그깟 목걸이면 싸게 먹히는 게지.]

    결국 목걸이를 받고 나서야 변장 주술 준비에 나서는 로켄이었다.

    [네놈한테 주술을 걸어준 놈, 누군지 몰라도 실력이 제법 괜찮구먼. 으음, 덕분에 금방 끝나겠어.]

    주술의 형식은 꼬맹이들이 보여줬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꿇어앉은 이안, 그 앞에 놓인 재료, 기괴한 춤사위와 주문.

    다만 차이점을 두 가지 꼽자면 주문의 내용과 재료였다.

    [밑바닥의 혼돈이시여. 천 가지 형체의 주인이시여. 당신의 미천한 종이 간곡히 청하오니, 부디 이자에게 당신의 형상을 내려주소서.]

    먼저 주문의 내용.

    추방자 마을의 주술사 꼬맹이들은 분명 그림자 정령, 장막 너머의 지배자, 기만과 속임수의 주인이라는 존재한테 제사를 올렸다.

    한데 로켄은 밑바닥의 혼돈, 천 가지 형체의 주인이란 존재를 운운하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모시는 신이 다르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모시는 신뿐만이 아니야. 재료도 달라. 이쪽은…… 다 환각초인가?’

    주술에 필요한 재료 역시 달랐다.

    앞에 나열된 재료들을 보아라.

    겉모습부터 범상치가 않다.

    단지 올라오는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니, 이런 향을 24시간 맡고 있다간 제아무리 이안일지언정 약에 취할 것 같았다.

    ‘새삼 더글라스에게 가져다주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하네.’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 더글라스.

    녀석이 다룰 이쪽 세상의 약초는 과연 어떤 결과물을 탄생시킬까?

    ‘이쪽 세계에만 존재하는 자원들을 제공할 방법도 찾아봐야겠군.’

    지금쯤 더글라스와 장인들이 이안의 요청에 따라 어마어마한 무기, 그리고 물자를 개발 중일 터.

    그들에게 슈페리어 차원만의 고유 자원들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분명 엄청난 도움이 되겠지.’

    할 일이 많다.

    태산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눈앞의 목표부터 완벽하게 끝내놓아야겠지.

    [다 됐다.]

    이안의 생각이 끝나갈 때쯤.

    주술사 로켄의 의식도 끝이 났다.

    [미리 말해둔다만, 걸려도 내 잘못 아니다? 변장 주술 믿고 까분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지. 그러니 웬만하면 몸을 사려. 괜히 애꿎은 사람 저주하고 원망하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명심은 개뿔, 볼일 다 끝났으면 이만 꺼져라.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만 잔뜩 써서 짜증 나니까.]

    훠이, 훠이.

    귀찮은 파리 내쫓듯 이안을 보낸 주술사 로켄이 다시금 수로 한구석에 내려놓은 낚싯대를 잡았다.

    “…….”

    더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로켄이었으니, 이안 역시 그런 그에게 고개만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 * *

    [어째 이 미친 것들은 하루가 멀다고 기어 올라오는지, 그래 봐야 불길로 뛰어드는 부나방 꼴이거늘. 쯧쯧……!]

    이안이 떠난 지하수로 끝자락.

    여전히 낚시 중인 주술사 로켄이 혀를 끌끌 찼다. 당연하게도 잡히는 물고기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혼돈의 부관이시여. 인제 그만 보내시면 안 됩니까? 내 수천 년을 살면서 이토록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일은 처음입디다. 처음!]

    들어주는 이 하나 없음에도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주술사 로켄.

    더러운 구정물을 노려보며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로부터 짜증과 분노, 후회 따위가 느껴졌다.

    [어련히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있겠거니 하고 참는 것도 하루 이틀, 아니, 일이천 년이지요!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예?!]

    급기야 옆에 있던 돌멩이를 구정물로 힘껏 던졌다. 더러운 물이 튀어 옷과 몸뚱이에 묻었으나 로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 살며 온갖 더러운 건 다 봤다.

    [이것 좀 보십쇼. 이번에 온 부나방 놈이 놓고 간 목걸이입니다. 이만한 공양물이면 잠깐 와서 저랑 말 몇 마디 나눌 만큼은 되겠죠!]

    주술사 로켄이 변장 주술의 대가로 이안에게 받은 황비의 목걸이를 더러운 구정물로 휙 던졌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커멓고 냄새나기만 했던 구정물이 순식간에 정화되더니, 이내 깨끗해진 물 아래로부터 누군가의 얼굴이 비쳤으니까.

    [오셨군요. 혼돈의 부관이시여.]

    * * *

    올림포스 구역.

    시계탑의 강력한 지배자 세력 중 일부인 올림포스 전당의 근거지.

    심장 내 여덟 구역 중 가장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그곳에 이안이 도착했다. 어째서 왔느냐고? 간단하다. 그의 두 번째 목적지인 ‘올림포스 신전’이 여기에 있거든.

    ‘12과업 중 첫 번째 임무는 올림포스 신전의 조각상에게 받는다.’

    조각상한테 임무를 받는단다.

    중간계 출신인 이안의 상식으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워낙 생소한 일이라서 그럴까?

    여럿의 기억으로도 그 이미지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역시 메모리 이터 주문은 여러모로 불안정하다.

    ‘그나저나 여기는…… 그나마 좀 현실적이군.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덩치도 그렇고, 건축물도 그렇고.’

    이안이 보기에 그나마 현실적인 크기와 정상적인 건축양식이었다.

    슈페리어의 심장에 들어온 이래 가장 익숙한 구역이 아닐까 싶다.

    ‘신전은…… 저쪽인가?’

    수천 개의 백색 기둥.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백색 바닥.

    이안은 마침내 모든 것이 순백으로 이루어진 올림포스 구역의 명물, 올림포스 신전 앞에 당도했다.

    [방문 목적은?]

    그런 이안이 거슬렸을까?

    신전 앞을 지키는 병사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물었다. 그는 헤라클레스와 비슷한 디자인의 가죽 갑옷, 그리고 투구를 쓴 군인이었다.

    “과업을 수행하러 왔습니다.”

    [……뭐? 과업? 네가?]

    병사가 이안을 아래위로 훑었다.

    정말이지 노골적인 눈빛.

    결과는 비웃음이었다.

    [과업을 수행하시겠다? 그 뼈다귀밖에 없는 앙상한 몸뚱이로?]

    “무슨 문제라도?”

    [문제야 너한테 있겠지. 그깟 나약한 몸뚱이로는 개죽음뿐이다.]

    병사는 참으로 많이 봐왔다.

    지배자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여 시계탑의 일원으로 군림하고자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멍청이들을.

    물론 대부분 개죽음을 면치 못했다. 전설적인 존재 헤라클레스 님을 포함한 극소수 영웅들만이 12과업을 완수했다. 하물며 그들조차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잃어야만 했다.

    한데 네깟 놈이?

    몸뚱이에 근육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샌님이?

    아서라, 아서.

    [그러니 괜한 짓거리 할 생각 말고 돌아가서 일자리나 얻는 건 어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늑대의 땅 개척 사업으로 일꾼을 뽑는 것 같던…… 어? 자, 잠깐, 이봐!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데 어딜……!]

    물론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대로 병사 옆을 지나 신전 안쪽으로 향하였으니, 병사도 더는 소리를 치거나 막아설 수 없었다.

    신성한 신전의 내부 아닌가?

    절대엄숙이 필요하리라.

    ‘이 조각상들인 것 같은데.’

    올림포스 신전 안쪽에는 총 열두 개의 사람 형상을 한 조각상이 좌우로 반반씩 나누어져 있었다.

    그중 신전 입구와 가장 가까운 오른쪽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매우 아름다운, 흡사 고향 땅에 남겨놓고 온 아내 하이리가 떠오를 만큼 매혹적인 외형의 조각상.

    ‘매혹의 지배자, 아프로디테.’

    이안이 그 조각상 앞에 세워져 있는 자그마한 그릇을 살펴봤다.

    기억에 따르면 여기다 공양물을 올려야 비로소 과업이 시작될 터.

    ‘목걸이는 이미 썼고…… 공양물로 바칠 만한 다른 물건이…….’

    하나 있다.

    모그리안 영지의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에게 받은 선물.

    ‘모그리안 링.’

    이안이 그 반지를 주저 없이 뺐다.

    한 번만 어렵지, 두 번은 쉬운 일.

    짤그랑!

    그 아티펙트 반지가 공양물을 올려놓는 그릇 위에 떨어지는 순간.

    화아아아아아아아 - !

    매혹의 지배자 아프로디테.

    그 형상을 본 떠 만든 조각상의 눈으로부터 백색 빛이 번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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