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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01화 (20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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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5화

    처음에는 살짝 못 미더웠다.

    제리와 카이, 두 꼬맹이들이 변장 주술의 대가라니, 제아무리 주술사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점지해 주는 천직이라고 한들, 신뢰가 떨어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림자의 정령이시여. 장막 너머의 지배자시여. 당신을 간곡히 숭배하나니, 부디 이자에게 기만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그림자의 정령이시여. 장막 너머의 지배자시여. 당신을 간곡히 숭배하나니, 부디 이자에게 기만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그 주술이란 것의 형식마저도 미덥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두 꼬맹이가 꿇어앉은 이안 앞에 재료를 나열해 놓고 빙글빙글 돌며 괴상한 춤을 추는 게 전부였으니까.

    [기만의 군주시여, 위대한 속임수의 주인이시여. 당신을 간곡히 숭배하나니, 부디 이자에게 그림자 가면을 내려주소서.]

    [기만의 군주시여, 위대한 속임수의 주인이시여. 당신을 간곡히 숭배하나니, 부디 이자에게 그림자 가면을 내려주소서.]

    두 꼬마의 춤사위와 읊어대는 주문이 점점 더 격렬해졌으니, 괜히 저러다 탈진하여 쓰러지지는 않을까 싶을 때쯤 ‘변화’가 찾아왔다.

    ‘……그림자?’

    이안의 그림자가 따로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제 주인의 몸뚱이를 타고 올라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꿈틀, 꿈틀

    어디 집어삼키기만 할까?

    이안을 휘감은 채로 꿈틀거린다.

    이쯤 되면 그림자가 아니라 시꺼먼 점막에 잡아먹혀 버린 것처럼 보여 모양새가 굉장히 징그러웠다.

    “후욱! 후욱! 후욱……!”

    그로부터 얼마 후.

    마침내 모든 의식이 끝났다.

    이안을 삼켰던 징그러운 그림자 역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다.

    “……끝난 건가?”

    [여기, 거울이요.]

    카이와 제리가 미리 준비해 둔 거울을 가리키며 자신 있게 말했다.

    [어때요? 감쪽같죠?]

    [지배자들도 못 알아챌걸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변장 주술은 저희가 더 낫다고.]

    “…….”

    ……과연.

    거울에 비친 이안은 평소의 이안 페이지가 아니었다. 푸르스름한 피부, 빛나는 백색 안광, 결이 굵어져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것처럼 보이는 갈색 머리칼에 이르기까지.

    ‘옷도 조금 변했고.’

    꼬맹이들의 주술은 비단 이안의 외모만 바꿔놓은 것이 아니다.

    입고 있는 로브조차 활동적인 설계의 가죽 갑옷으로 바꿔놓았다.

    언뜻 보기에 헤라클레스가 입고 있던 사자 가죽 갑옷과 비슷했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합격이네.’

    이미 몇 차례 겪어봤던, 그리고 여러 기억 속에 들어 있던 슈페리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외모.

    이만하면 외형적으로는 흠잡을 구석이 없다. 이제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조언대로 말투, 억양, 기타 행동거지 따위만 교정하면 되겠지.

    [어때요? 만족스러우세요?]

    아까부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안의 답변을 강요하는 제리였다.

    뭐, 한마디 해주도록 하자.

    만족스럽기는 하니까.

    “나쁘지 않네. 고생들 했다.”

    그 어떤 보상도 필요 없었다.

    그저 칭찬 한마디면 충분했다.

    두 꼬맹이의 표정이 증거였다.

    [히히!]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심장은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들었거든요.]

    “명심하마.”

    꼬맹이들과 대화를 끝낸 이안이 이번에는 촌장 아르골과 마주했다.

    “이 결계면 당분간 안전할 겁니다. 허니 저 없는 동안 새로 자리 잡을 터전부터 찾아놓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디 몸조심하세요. 무사히 돌아오셔야 저희 마을 역시 새 터전으로 안전하게 옮겨가지 않겠습니까?]

    이안이 무사해야만 한다.

    그래야 마을도 무사할 수 있다.

    촌장의 말에 이안이 피식 웃었다.

    “제 걱정을 해주시는 줄 알았더니만, 듣고 보니 여러분 걱정이었네요. 뭐, 인정은 합니다.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죠.”

    [그, 그런 것은 아니옵고…….]

    “괜찮습니다. 저도 여러분보다는 제 안위가 더 중요하니까요. 비긴 셈 치자고요.”

    이안은 더 이상 추방자 마을의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 그리고 중간계와 똑같이 벌레 취급을 받는 피해자다.

    무려 20년간 숨어 살았던 미래의 요하나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 이들까지 적으로 간주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기억을 봤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인사를 남긴 이안이 추방자 마을에 펼쳐놓은 결계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모든 기억을 밑거름 삼아 슈페리어의 심장으로 나아갈 차례.

    [저, 저기, 잠시만……!]

    한데 누군가 이안을 붙잡았다.

    그 누군가는 추방자 마을의 주민이었으며, 젊은 여인처럼 보였다.

    ‘이 여인은…….’

    촌장의 기억이 여인을 알아봤다.

    그녀는 ‘나타시아’란 이름의 여인으로, 외부인이었던 미첼 그린리버와 매우 가까이 지낸 여인이었다.

    “뭡니까?”

    [그, 그게…….]

    무슨 용건이 있어서 이안을 붙잡은 걸까? 아마 높은 확률로 미첼 그린리버에 관한 이야기일 터.

    이안이 귀를 기울였다.

    [혹 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미첼을 찾으시는 건가요?]

    미첼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느냐?

    나타시아의 물음은 그러했다.

    “그건 아니지만, 제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찾아보긴 할 겁니다.”

    이안 역시 대답을 내놓았다.

    듣기에 따라 긍정적인 대꾸였다.

    “…….”

    그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을까?

    잠시 고민했던 푸른 피부의 여인.

    나타시아가 말문을 이어갔다.

    [손님께서 정말 미첼을 찾으신다면…… 해드릴 이야기가 있어요.]

    “들어보도록 하죠.”

    [사실…… 미첼은 시계탑으로 향한 이후에도 딱 한 번…… 저희 마을 근처에 왔던 적이 있습니다.]

    촌장의 기억에 따르자면, 미첼 그린리버는 시계탑으로 향한 이후 단 한 번도 돌아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말은 달랐다.

    [시계탑의 일원이 되기 위한 과업을 수행 중이라면서…… 늑대의 땅에는 사냥을 하러 왔다고, 여기까지 온 김에 잠깐 들렀다고…….]

    시계탑의 일원이 되기 위한 과업.

    그 표현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지끈거리는 이안이었다. 분석관의 기억 중 의도적으로 손상되었던 부분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으니까.

    ‘지배자가 되기 위한 과업, 올림포스 전당의 12과업 이야기인가?’

    되살아난 기억의 조각이 말해주기를, 과업이란 시계탑의 지배세력 중 ‘올림포스 전당’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열두 가지 임무를 뜻한다.

    ‘관료가 되고자 황실이 주관하는 관직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이들 또한 지배자가 되기 위한 시험이 존재한다. 그게 바로 12과업이고.’

    열두 가지의 위험천만한 임무.

    한데 그걸 미첼이 수행 중이다?

    ‘……정말 시계탑 최정상이 궁금하긴 했나 보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자가 목숨까지 걸 만큼.’

    미첼의 일지 말미에 적혀 있지 않았던가? 이 우주의 최정상까지 올라가 만물을 내려다보고 싶노라고.

    ‘비록 목적은 다르지만, 나로서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볼 가치가 있다.’

    12과업 완수에 성공한 슈페리언은 그 순간부터 최하급 지배자의 ‘격’을 부여받는다. 실로 막강한 힘과 권능을 누리는 일이었으니, 한 번쯤 경험해 볼 가치가 충분하리라.

    ‘……어쩌면 그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괴물을 잡으려면 응당 그 괴물보다 강력한 괴물이 되어야만 한다.

    저들과 똑같은 지배자가 되어 더 강한 상위의 존재로 군림하는 것.

    나아가 그 힘으로 중간계에 위협이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것.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길이긴 하나, 어쩌면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일지도 모르리라.

    “……그래서.”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안.

    그가 나타시아한테 물었다.

    “또 무슨 대화를 나눴죠?”

    [워낙 잠깐 봐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단지…… 변장 주술에 관한 정보를 주고 갔어요.]

    “변장 주술에 관한 정보?”

    [네, 앞으로는 슈페리어의 심장에 들어올 일이 있다면 곧장 지하 도시부터 들러서 ‘로켄’이란 주술사를 찾으라더군요. 그 주술사의 변장 주술은 지배자들조차 속일 수 있을 만큼 정교하다면서…….]

    무려 시계탑의 지배자들조차 속일 수 있을 만큼 정교한 변장 주술.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아마 그 변장술이 미첼 그린리버를 12과업까지 이끌었을 터.

    ‘로켄이라…….’

    그 주술사의 이름을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해 놓은 이안이 말했다.

    “그게 전부입니까?”

    [자기와 만난 건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요. 괜히 여러 사람 입에 올라봐야 좋을 거 없다고…… 그래서 이번에도 고민했는데…… 왠지 손님께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찾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잠시 말하길 멈춘 나타시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마디 덧붙였다.

    [만약 미첼을 찾으신다면…… 그래서 만나게 되신다면…… 제가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세요.]

    촌장의 기억과 따로 만났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반응으로 미루어보건대, 아무래도 두 사람은 연인 관계였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폐하께서도 그렇고, 하이리도 그렇고, 그린리버 가문은 대대로 미남 미녀밖에 없어서 그런가? 다른 세상에 와서도 연애를 하는군.’

    차원마저 초월한 잘생김이라.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까마득한 동포에게서 정체불명의 아니꼬움을 느낀 이안이 대꾸했다.

    “……꼭 전달해 드리죠.”

    * * *

    여러 기억을 따라 슈페리어의 심장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이안은 몇 가지를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텔레포트 주문이 먹히지 않는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파악할 수 없지만, 이쪽 세상 특유의 법칙에 가로막히는 느낌이야.’

    먼저 텔레포트가 불가능하다.

    덕분에 추방자 마을과 슈페리어의 심장을 자유로이 오고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헤라클레스가 조언한 억양과 말투, 행동거지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거.’

    슈페리어의 심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몇몇 슈페리언을 만났다.

    추방자가 아닌, 명백히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슈페리언 말이다.

    그들 상대로 실험해 본 결과, 아무런 의심의 눈초리도 받지 않았다.

    이쯤 되면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을 터.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방향도 대충 정했으니…….’

    이안은 우선 미첼 그린리버의 발자취를 뒤따라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켄’이란 주술사에게 보다 강력한 변장 주술을 받은 뒤, 곧장 올림포스 신전의 조각상 앞에서 과업을 받아야겠지.

    ‘……여기인가.’

    흑요석으로 만든 거대한 성벽.

    아니, 거대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성벽이 좌우로 쭉 뻗어 나가 있었다.

    ‘이미 기억 속에 있어서 무덤덤할 줄 알았는데, 막상 내 눈으로 보니 그렇지도 않군. 어마어마하잖아?’

    이 도시는 적들의 본거지다.

    그럼에도 순수한 감탄이 나왔다.

    [다음.]

    하지만 그 감탄도 잠시일 뿐.

    성문 대신 설치되어 있는 붉은색 포탈과 그 앞을 지키는 두 명의 기간테스 문지기와 마주하는 순간.

    [다음.]

    이안은 현실로 돌아왔다.

    분석관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덩치의 문지기들은 심장으로 입성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한 명씩 앞에 세웠고, 아무런 말도 없이 한참을 살펴보다가, 이내 서로의 창으로 가로막은 포탈을 열어줬다.

    [다음.]

    이안 역시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한 명,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이제 곧 차례가 온다.

    [다음.]

    이안의 바로 앞에 선 슈페리언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한데 그 걸음걸이가 어째 좀 이상하다.

    정확히는 떨린다고 해야 하나?

    […….]

    두 기간테스 문지기가 조그마한 슈페리언을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공허한 눈빛, 읽히지 않는 표정.

    대기하는 시간이 오래 지나면 지날수록 문지기 앞에 선 슈페리언의 몸뚱이가 오들오들 떨려왔다.

    [저, 저기, 어찌 그러…….]

    결국 말문을 꺼내려는 순간.

    쿵!

    문지기가 쥐고 있던 육중한 창대 끝이 슈페리언을 내리찍었다.

    “……!”

    한 줌 핏물이 되어버린 슈페리언.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신에서 어떤 가루가 흩날렸다.

    추방자를 슈페리언으로 변장시켰던 변장 주술의 잔해였다.

    [다음.]

    너무 갑작스럽고 놀라운 일.

    하지만 계속 놀라고 있을 겨를 따윈 이안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다음 차례였으니까.

    “…….”

    이안이 한 줌 핏덩이로 변해버린 추방자의 시신 옆에 가만히 섰다.

    그러고는 문지기를 올려다봤다.

    여차하면 방어막을 펼친 뒤 곧장 시간부터 되돌려야 하는 상황.

    그때였다.

    스윽

    창대가 올라갔다.

    내려치려는 걸까?

    아니, 아닌 것 같다.

    서로 교차시켜 포탈 앞을 가로막았던 창대가 양쪽으로 벌어졌다.

    통과하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휴우.”

    결국 무사히 포탈을 통과한 이안.

    썩 미덥지 못했던 꼬마들의 실력에 뒤늦은 확신을 품은 그가 바야흐로 슈페리언들의 수도, ‘슈페리어의 심장’에 무사히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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