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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99화 (19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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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3화

    이안이 숨을 죽였다.

    여차하면 전투 개시다.

    그마저도 힘들면 시간을 되돌려야겠지. 부작용 걱정은 사치다.

    [……잘못 봤나?]

    하지만 그 긴장감도 잠시.

    ‘용감무쌍한’ 헤르쿨레스가 제 푸른색 뺨을 가볍게 긁적거렸다.

    [음……!]

    어디 긁기만 할까?

    고개까지 갸우뚱거린다.

    한동안 서성거리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건 아니었나 보다.

    [바람이라도 불었나 보군.]

    뺨 긁기, 갸우뚱, 서성거림.

    그다음은 바로 혼잣말이었다.

    여간 민망한 게 아닌 모양인지 바람 탓을 한번 해본 헤르쿨레스가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후우.”

    덕분에 이안 역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아직 저 괴물과 부딪치는 것도,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너무 이른 감이 있기는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감각이 좋은 놈이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피해야겠어.’

    감이 좋은 적만큼 무서운 게 없다. 지금으로선 한시라도 빨리 목적을 이뤄 물러나는 게 상책일 터.

    ‘여기 있군.’

    이안이 마침내 태양 빛을 잔뜩 머금은 약초, 주황색 잎사귀가 햇살이 내리쬐는 방향으로 힘껏 펼쳐져 있는 ‘태양풀’을 발견했다.

    ‘다섯 뿌리 정도 챙겨볼까?’

    여분의 재료란 중요한 법.

    연금술사 레디오와 더글라스도 항상 그 여분의 재료를 강조했다.

    ‘우선 한 뿌리…….’

    쾅!

    만약 이안의 본능이 경고하지 않았더라면, 그 경고에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이안은 누군가의 커다란 방망이에 머리가 터져 버렸으리라.

    [역시.]

    이안에게 방망이를 휘두른 자의 정체는 ‘용감무쌍한’ 헤르쿨레스.

    어느새 접근해 온 그가 푸른 보호막 속 이안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바람이 아니었어.]

    만족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그는 자신의 감이 틀리지 않았단 사실에 굉장한 뿌듯함을 느꼈다.

    [암, 그렇고말고. 설마 이 몸께서 인기척과 바람을 착각할 리 없지.]

    어찌나 뿌듯해하는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콧김까지 내뿜는다.

    [보잘것없는 쥐새끼여. 그래도 꽤 나쁘지 않은 눈속임이었다. 하마터면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군.]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 헤르쿨레스가 이번에는 이안을 칭찬해 줬다.

    물론 쥐새끼라는 멸칭과 얕잡아보는 시선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

    순식간에 위치를 간파당한 이안.

    보호막을 펼친 그가 재빨리 거리부터 벌렸다. 놈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을 터.

    [……가만, 헌데 네놈, 그 피부는 뭐지? 설마 분이라도 칠한 건가?]

    헤르쿨레스가 이안의 하얀 피부색을 문제 삼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슈페리어 차원에서는 푸른 피부가 곧 만인의 피부색 아니던가?

    [그게 아니라면…… 잠깐, 그 기괴한 옷차림, 성가신 요술…… 익숙하군. 너, 중간계에서 왔구나?]

    피부, 옷차림, 마법.

    그 세 가지면 충분했다.

    이안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요 며칠 시계탑과 평의회를 시끄럽게 만든 중간계의 변수, 이름이 아마…… 칼리두 와탕카였나?]

    또다시 뺨 한쪽을 긁적거린다.

    대충 넘겨짚을 때의 버릇이었다.

    “이안 페이지다.”

    [아아! 그래그래. 맞다. 이안 페이지! 한 끗 차이로 틀렸구먼!]

    “칼리두 와탕카와 이안 페이지를 헷갈리는 건 지능의 문제 아닌가?”

    [……뭐라고?]

    톡 쏘는 이안의 일갈에 순간 당혹감마저 느낀 듯 말문을 멈춘다.

    설마 중간계의 쥐새끼에게 이런 일침을 당하는 날이 올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리라.

    [으하하하하! 네놈 말이 맞다. 내 본디 머리보다 주먹부터 나가는 성정이긴 하지. 그러니까…….]

    헤르쿨레스의 안광이 일순간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어디 그뿐일까? 섬뜩한 표정이 얼굴에 만연하였으니, 이는 명백한 ‘적의’였다.

    [바로 이렇게!]

    쾅!

    순식간에 좁혀 들어온다.

    그리고 순식간에 박살 낸다.

    올리브 나무 방망이로 하여금.

    이안의 보호막을 너무나 손쉽게.

    “큭……!”

    이는 이안이 부리는 마법도, 올리버 레이우드가 부리는 오러 블레이드 비슷한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저 힘이다. 근력 말이다.

    [잘 들어라. 중간계의 쥐새끼여.]

    오직 힘만으로 이안의 보호막을 유리처럼 깨뜨려 버린 헤르쿨레스.

    그가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내가 널 와퉁고 쿠탕카로 부르면 네놈 이름은 그 순간부터 와퉁고 쿠탕카가 되는 것이다. 이안 페이지인지 뭔지가 아니라!]

    “…….”

    [알겠느냐? 콜로두 투탕카!]

    대체 몇 번을 틀리는 거야?

    아님 일부로 저러는 건가?

    “역시 지능이 문제인가.”

    작게 뇌까리는 콜로두 투탕카.

    ……아니, 이안 페이지였다.

    ‘생각보다 패턴이 단조로운 놈이다.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부딪쳐 봐야겠지.

    시간을 되돌릴지언정 이쪽 세상 강자와의 전투는 곧 귀중한 정보.

    이안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이봐, 헤르쿨레스.”

    [음? 내 이름을 어찌…….]

    “그건 알 거 없고.”

    마나가 곧 마법을 이루어냈다.

    상대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타입.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화력’이다.

    “날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나?”

    [오, 물론 그러지 못할 건 없다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군.]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화르륵!

    거대한 불덩이가 피어올랐다.

    세상 전부를 집어삼킬 듯이 활활 불타오르는 보랏빛 불덩이였다.

    [으하하하! 이거 보기보다 화끈한 쥐새끼로다. 네놈이 여기 있다는 건 중간계로 내려간 분석관을 꺾었단 뜻일 터. 내 말이 맞나?]

    “마음대로 생각해.”

    [아주 마음에 들어.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싸울 맛이 좀 나지.]

    헤르쿨레스가 손에 들고 있던 올리브 나무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 등에 매달린 활과 화살통 따위를 모조리 풀어 내팽개쳤다.

    [문득 옛 생각이 나는군. 예전에도 너 같은 쥐새끼가 한 마리 있었다. 괴상한 차림새, 성가신 요술, 주제를 모르고 까부는 성격까지, 인제 보니 판박이로구먼.]

    괴상한 차림새에 성가신 요술.

    로브와 마법을 뜻하는 말일 터.

    거기다 똑같은 쥐새끼라 함은, 혹시 미첼 그린리버를 말하는 걸까?

    “그 쥐새끼는 어떻게 됐지?”

    [난들 아나?]

    “뭐……?”

    [약속했거든. 나와 겨루어 십 분을 버티면 그냥 보내주겠다고.]

    “…….”

    [비실비실한 게 얼마 못 버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버티더군. 해서 보내줬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든 성격.

    그런 그에게 이안이 제안했다.

    어쩌면 먹힐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조건을 걸고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

    [……뭐라?]

    “똑같은 쥐새끼라면서? 나한테도 그 약속,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

    이안의 뻔뻔한 요구에 헤르쿨레스가 헛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말을 바꿔야겠다. 이놈, 예전의 그 쥐새끼보다 더 맛이 간 놈이리라.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건가?”

    [……?]

    “날 십 분 내로 쓰러뜨릴 자신이.”

    [이놈이 지금 무슨 헛소릴…….]

    “난 자신 있거든. 당신 상대로 버티는 거. 아니, 오히려 이기는 거.”

    [……!]

    10분을 버팀은 물론 이긴단다.

    그런 이안의 도발이 통한 걸까?

    백색으로 돌아왔던 헤르쿨레스의 안광이 다시금 붉게 물들었다.

    [……오냐, 약속하마. 내 반드시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주지. 그뿐인 줄 아느냐? 내 친히 중간계로 내려가 네놈의 소중한 것들을 모조리 짓밟아주겠다.]

    “내가 버티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순순히 보내주마. 물론 못 본 척도 해주지.]

    홧김에 또 약속해 버린 헤르쿨레스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곳에는 이미 앞선 소란으로 몰려든 기간테스 일족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내 동족들 모두가 약속의 증인이 되어줄 터. 허니 마음 놓고 덤벼보아라. 중간계의 존재여.]

    역시 단순한 놈이다. 지금껏 만나본 슈페리언 중 그 누구보다도.

    ‘어쩌면 이놈한테 꽤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위기 속에서 희망을 찾은 이안.

    그가 옅은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그럼, 사양치 않고.”

    팟!

    두 강자의 지축을 뒤흔드는 싸움.

    그 치열한 전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의외의 결말을 내놓았다.

    * * *

    아주 오래전, 헤르쿨레스의 꿈은 올림포스의 지배자가 되는 것.

    또한 궁극적으로는 시계탑 최상층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것이었다.

    거기 군림하는 존재야말로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며 신이었으니까.

    물론 시작은 올림포스 전당의 인정을 받아 그곳 하급 지배자로 시작함이 먼저였다. 헤르쿨레스는 그 꿈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오직 올림포스 전당의 지배자들을 위해 네메아의 골짜기에서 거대한 사자를 죽였고, 레르네 늪에 사는 물뱀 히드라를 잡았다.

    어디 그뿐인가? 지배자들이 애호하는 황금 뿔 사슴, 크레타의 황소, 스탐팔로스의 새, 지옥의 사냥개 케르베로스 등 수없이 많은 영물을 사냥해 공양으로 바쳤다.

    그 결과 헤르쿨레스는 그토록 바라던 올림포스 전당의 지배자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인정을 받았다.

    진정으로 기뻤고, 날듯이 행복했다. 계속 이렇게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계탑 최정상에 군림할 수 있으리라, 그곳에서 아홉 세상 전부를 내려다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헤르쿨레스는 곧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게, 올림포스 전당의 상급 지배자들은 너무나도 강했다.

    아무리 영겁의 세월을 노력한다고 해봐야 결코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군림하는 지배자들.

    이미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이건만, 그리고 충분히 닿을 수 없을 만큼 아득하건만, 시계탑 최정상 혼돈의 전당에 소속된 지배자들은 그야말로 ‘격’이 달랐다.

    열심히 정진하여 중급 지배자가 된 헤르쿨레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올림포스 전당과 아스가르드 전당의 상급 지배자들조차 압도하는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바로 그 격차를 체감한 순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향상심이란 불꽃이 사그라짐을 느꼈을 때부터.

    헤르쿨레스는 마치 길을 잃어버린 느낌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장장 수천 년을 그랬다.

    ‘이게…… 말이 되나?’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바로 지금.

    헤르쿨레스는 지난 수천 년간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었던 마음속 뜨거운 ‘불꽃’을 다시금 느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눈앞에 저 쥐새끼, 이미 10분 넘게 버틴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왼쪽 팔뚝에 상처까지 입힌 저 쥐새끼한테서.

    ‘보잘것없는 중간계의 인류와 나의 차이는 곧 나와 시계탑 최정상 지배자들의 차이와 마찬가지일 터. 헌데 저놈은 내 몸에 상처를 냈다. 그것도 아주 깊은 상처를.’

    자신은 닿지 못했던, 아니, 결코 닿을 수 없으리라 멋대로 넘겨짚고 좌절했던 간격을 놈은 닿았다.

    ‘오래전의 그 쥐새끼와는 다르다. 그때는 나 역시 온 힘을 다하지 않았고, 그놈 또한 말 그대로 버텼을 뿐이다. 하지만 이놈은…….’

    두근!

    생각이 더욱 명확해지는 순간.

    헤르쿨레스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실로 오랫동안 멈추어 있었던, 평범한 슈페리언이었던 시절에나 뛰었던 심장이 격하게 날뛰어댔다.

    ‘이놈이라면, 중간계의 몸으로 분석관을 쓰러뜨렸을뿐더러 나한테까지 닿은 이놈이라면…….’

    잠시 생각에 빠졌던 헤르쿨레스.

    이내 그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십 분을 버텼군. 약속대로 보내주마. 또한 여기서 네놈을 본 것 역시 없었던 일로 해주지.]

    “정말 약속을 지키는 건가?”

    [나는 이 땅에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지키지 못할 말을 내뱉은 적이 없다. 허니 믿어도 좋다.]

    “믿을게. 나도 당신이 약속을 지켜줬으면 좋겠거든.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당신, 못 이길 것 같아서.”

    [지금으로서는?]

    “어, 지금으로서는.”

    […….]

    역시, 역시 이놈은 다르다.

    헤르쿨레스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분노가 아닌 희열이었다.

    [대신 한 가지만 묻겠다.]

    “말해봐. 웬만하면 대답해 주지.”

    [정체가 뭐지?]

    “정체?”

    실로 포괄적인 질문.

    이안이 턱을 매만졌다.

    “으음…….”

    무어라 대답하면 좋을까?

    찰나의 고민, 그리고 대답.

    “일단 칼리두 와탕카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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