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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97화 (19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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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화

    [저, 저희 촌장님께서 이 이름을 말씀드리면 될 거라 하셔서…….]

    “계속 얘기해 봐.”

    [……네? 무, 무슨.]

    “나는 너희 모두를 죽일 생각으로 여기에 왔어. 특히 날 본 너희들은 웬만해선 살려두기 힘들지.”

    [……!]

    “그러니 한번 떠들어보라고. 내가 너흴 살려둘 만한 이야기를.”

    물론 이럴 거 없이 전부 죽여 기억을 읽는 게 간편하긴 할 거다.

    어차피 이곳은 적들의 땅,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가 없지 않겠나?

    다만 짧은 순간에 여러 명의 기억을 흡수하는 것은 이안에게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꼬마한테서는 아무런 힘도, 악의도, 공격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앞서 빨아들인 사냥꾼이란 자의 기억이 온전히 자리 잡기 전까지.

    적어도 그때까지는 이 꼬맹이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으리라.

    [그, 그러니까…… 요, 요술사이신 미첼 님께서는 저희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마을을 떠나셔서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저희 마을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신 은인이십니다!]

    요술사.

    마법사를 뜻하겠지.

    이안이 팔짱을 낀 채 읊조렸다.

    “너희들 은인을 왜 나한테 얘기하는 거지? 난 그 미첼 그린리버라는 사람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저희 촌장님께서는 매일 아침마다 점괘를 보셔요. 대부분 빗나가기는 하시는데…… 오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중간계에서 손님이 오실 거라고, 그 손님은 저희랑 다른 피부와 눈동자, 머리카락, 그리고 파란 로브를 입으셨는데, 가서 미첼 그린리버 님의 이름을 말씀드리면 따라오실 거라고…….]

    “신통하네.”

    [……네?]

    “아니야, 아무것도.”

    점괘.

    일종의 예지능력인가?

    확실히 흥미가 생기기는 한다.

    ‘나도 그런 건 불가능하니까.’

    더군다나 미첼 그린리버라니?

    이안이 기억하기로 그는 황족이면서 마법사였고, 아티펙트 제작에 관심이 많아 세상 곳곳을 탐험했던 5클래스의 괴짜 마법사였다.

    ‘우리 세상의 기준으로는 대단한 마법사가 맞다. 다만 그래 봐야 5클래스, 기록되지 않은 성장을 이루었다 한들 마찬가지야. 슈페리어의 분석관이 벌레 죽이듯 죽일 수 있는 수준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런 이가 무슨 수로 이곳 슈페리어 차원까지 넘어왔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 촌장이란 자를 만나봐야겠군.’

    결심을 굳힌 이안.

    그가 꼬마들을 바라봤다.

    겁에 질린 채 벌벌 떨리는 육신.

    그럼에도 이안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걸 봤고, 경험했으며, 전달받았으니까.

    “더 할 말은?”

    [그, 그건…….]

    “없나 보군. 그럼.”

    이안이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두 명의 슈페리어인 꼬맹이들, 카이와 제리가 이안의 눈앞으로 빨려오듯 날아왔다.

    “나는 너희 족속을 믿지 않아.”

    [하, 하지만 전부 말씀드렸……!]

    “알아. 그런 것 같아서 바로 죽이지 않은 거야. 거짓말 같았으면 진즉 저 사냥꾼처럼 만들었겠지.”

    […….]

    이안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사냥꾼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 확인부터 해봐야겠어. 너희들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사냥꾼에게서 취한 기억과 정보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갔다.

    슬슬 두 꼬마의 기억을 빨아들여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터.

    ‘메모리 이터.’

    이안의 마법이 두 꼬마의 머릿속을 헤집은 결과, 녀석들은 모두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좋아. 믿도록 하지.”

    [헉! 허억! 허어억……!]

    생전 처음 느껴보는 불쾌한 느낌에 숨을 몰아쉬는 두 꼬맹이들.

    그러나 이안은 꼬마들이 힘들어하든 말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촌장이란 노인을 만나야겠다. 길은 내가 아니 안내할 필요 없어.”

    * * *

    늑대의 땅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거대한 평야였다.

    면적으로 따진다면 그린리버 제국의 영토에 맞먹을 만큼 커다란 땅이 전부 평야였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슈페리어 차원 자체가 이안의 세상보다 넓은 까닭이리라.

    ‘어찌 보면 우리 세상보다 더 지독한 계급 사회를 이루고 있어.’

    중간계의 마법사들이 마나 하트와 마나 브레인을 타고나는 것처럼, 슈페리어인들도 날 때부터 타고나는 특별한 권능이 존재한다.

    ‘아버지의 피.’

    평의회 지배자들조차 신처럼 떠받드는 존재, 통칭 ‘눈먼 아버지’.

    그는 이곳 슈페리어 차원의 중심부에 높이 솟아올라 있는 시계탑.

    날씨가 좋다면 여기서도 보일 만큼 높다란 탑 꼭대기에 잠들어 있다고 알려진 초월적 존재.

    ‘그 존재의 혈통을 이어받은 슈페리어인만이 동족 취급을 받는다.’

    나머지는 모두 쫓겨난다.

    이후 짐승 취급을 받는다.

    새삼 지성체라는 것들이 무리를 이룬 세상은 다 똑같은 건가 싶다.

    ‘아마 그놈이겠지. 나와 우리 세상이 겪은 모든 문제의 원흉도.’

    이안이 파악한 바.

    놈들은 이안을 ‘감히 중간계의 벌레 주제 절대적인 시간에 닿고자 하는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마침 평의회 놈들이 기거한다는 탑의 명칭이 ‘시계탑’이다.

    이안의 회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라는 개념, 시계탑, 그리고 그 시계탑 꼭대기에 군림하는 존재.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여러모로 ‘시간’이 화두에 오른다.

    ‘역시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조금 더 이 땅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곧 마주할 촌장이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겠지.

    ‘다 왔나.’

    늑대의 땅 구석진 곳.

    겉보기로는 울창한 숲처럼 보이는 그곳에 이안이 우뚝 멈췄다.

    ‘분명 미첼 그린리버가 정착에 도움을 줬다고 했다. 그 말인즉 이 눈속임 결계가 미첼 그린리버의 작품이라는 건데…….’

    이안의 눈에는 보인다.

    이 앞에 어떤 결계가 있는지.

    결계를 걷어내는 순간 추방당한 슈페리어인들의 마을이 보일 터.

    ‘이건 5클래스 수준이 아니잖아?’

    문제는 결계의 수준이다.

    5클래스 마법사라고 알려진 미첼 그린리버가 이런 수준의 결계를?

    ‘불가능하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록이 잘못되었거나, 혹은 그 이후 어마어마한 깨달음이라도 얻지 않은 이상에야 불가능한 결계.

    ‘흥미롭군.’

    물론 그래봐야 이안의 마법 앞에서는 그저 무의미한 결계일 뿐.

    아까 만났던 사냥꾼 같은 놈들의 눈을 피할 목적으로 펼쳐놓았겠지.

    ‘지배자들의 눈에는 우리 세상이나, 추방당한 슈페리어인이나, 똑같은 개미로 보일 테니까.’

    쓴웃음을 삼킨 이안.

    그가 손바닥을 뻗었다.

    쩍, 쩌적, 쩌저적……!

    그러자 숲인 줄 알았던 눈앞에 균열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유리가 깨지듯 와르르 무너졌다.

    “역시.”

    마을이다.

    그것도 규모가 제법 큰 마을.

    푸른 피부와 약간의 외형적 차이를 제외한다면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지성체들의 터전 말이다.

    […….]

    엄연한 침입자의 등장.

    그럼에도 조용하다. 그저 모두가 숨죽인 채 이안을 응시할 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안보다 큰 키, 단단한 덩치.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얼굴까지.

    “당신이 촌장인가?”

    [아이들은 어찌하셨습니까?]

    “죽이진 않았으니 곧 오겠지.”

    [고맙습니다. 그리 해주셔서.]

    촌장이 허리 숙여 고마움을 표하자 다른 슈페리어인들도 그 행위에 동참했다. 과거 미첼 그린리버에게 배웠던 ‘중간계식 인사’였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차 한잔하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지요. 마침 미첼 님께서도 극찬하셨던 저희 세상의 차가…….]

    “아니, 그럴 시간 없어.”

    [……예?]

    “나는 당신들을 믿지 않아. 평의회든 뭐든 이 세상 전체가 내 적이지. 그러니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정보는 대화가 아니라 당신 기억으로 받을 테니까.”

    이안이 촌장에게 다가갔다.

    성큼성큼, 망설임 없는 발걸음.

    다른 이들의 움찔거림에도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할 만큼 나약한 족속들일 뿐.

    [중간계의 손님이시여. 내 말이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오백여 년을 살아온 늙은이입니다. 그만큼 잡다한 경험과 기억들이 많을 터. 이로움보다 해로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그건.”

    촌장의 말을 끊어버린 이안.

    그가 곧장 마법을 발동시켰다.

    “내가 판단하고 감당할 문제.”

    [하, 하지만…….]

    “가만히 있어. 죽기 싫으면.”

    [……!]

    메모리 이터.

    그 마법이 지난 오백 년간 쌓아온 촌장의 삶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으윽……!]

    너무나도 방대한 양의 기억을 흡수당했기 때문일까? 모든 기억을 내어준 촌장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

    한편 이안은 촌장에게서 빨아들인 기억을 아무런 혼란이나 뒤틀림 없이 깔끔하게 안정시켰다.

    필요한 정보 위주로, 쓸모없는 감정과 추억 따위는 철저히 버렸다.

    작금의 이안은 엄연한 염탐꾼, 오직 효율만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내 전문이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갈무리시킨 이안.

    그가 바닥에 주저앉은 촌장에게 오른손을 건네며 읊조렸다.

    “이안 페이지입니다. 무례를 사과할 생각은 없고,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으니 지금이라도 그 차, 내어줄 수 있으면 내어주시겠습니까?”

    참으로 제멋대로다.

    과거 마을의 정착을 도와주셨던 또 다른 중간계의 손님, 미첼 그린리버와는 완전히 상반된 존재.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한데도 촌장은 그 손님, 이안 페이지에 대한 호의를 잃지 않았다.

    촌장 역시, 그리고 이 마을의 추방자들 역시 이안이 필요했으니까.

    “아, 잠시.”

    순순히 촌장을 따라가던 이안이 무언가 떠오른 듯 발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부수고 들어왔던 결계를 다시금 펼쳐놓았다.

    “예전 결계보다 더 안전할 겁니다. 이걸로 셈은 치른 걸로 하죠.”

    그로부터 얼마 후.

    뒤늦게 온 카이와 제리는 결계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려야만 했다.

    예전의 방법으로는 새로운 결계를 통과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 * *

    “당신 기억에 따르면 미첼 그린리버, 그 자는 슈페리어인으로 변장을 했습니다. 시계탑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고자 말이죠.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말렸지만 듣지 않으시더군요. 결국 시계탑으로 향한 그 날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그가 중간계에서 이쪽으로 어떻게 넘어왔는지,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는 당신도 잘 모릅니다. 제대로 얘기해준 적이 없으니까요.”

    [신비로운 분이셨지요. 워낙 모험을 좋아한 탓에 여기까지 닿게 되었다는 말씀만 남기셨습니다.]

    이안이 팔짱을 꼈다.

    촌장의 기억을 모조리 흡수하였음에도 미첼 그린리버, 그 마법사의 정확한 목적과 행보, 여기까지 온 경로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나도 그 시계탑이란 곳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분석관은 하급 관료였다.

    더군다나 여러 기억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검열처리 되어 있었다.

    ‘여기에 와서도 마찬가지야. 사냥꾼은 분석관보다 훨씬 더 말단 조무래기였고, 촌장이나 꼬맹이들 역시 결국은 추방자에 불과하니까.’

    조무래기의 기억만 가지고는 이안이 필요로 하는 ‘본질’을 파악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결국 나도 미첼 그린리버가 그랬던 것처럼 그 내부로 들어가야만 한다. 시계탑이 세워져 있는 곳, 슈페리어인들의 심장으로 말이야.’

    일컫기를 ‘슈페리어의 심장’.

    이곳 세상의 수도와도 같은 곳.

    결심을 굳힌 이안이 물었다.

    “……그 변장이라는 거, 단순한 마법이나 잡기술 따위는 아닌 것 같던데, 혹 저도 가능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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