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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95화 (19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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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9화

“모두 모이셨군요.”

과거 이안이 머물기도 했던 북부 모그리안 영지의 영주성 회의실.

그곳 탁자에는 이안이 직접 텔레포트 주문으로 한 명 한 명 옮겨온 제국의 중책들, 그리고 이번 계획에 반드시 필요한 인원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급한 일이고, 또 바쁘신 분들이니만큼 본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제국의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

드래곤 일족의 왕 리시스 라덴쥬.

이안 부재 시 상아탑주 권한대행 1순위의 고위마법사 로난 시어러.

제국 내 모든 기사들의 정신적 지주,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

과거 삼국협정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제국군 최고사령관의 직위를 수행 중인 대장군 던컨 미토스.

황족이자 6클래스 대마법사, 치료학파의 수장으로서 탑주 권한대행 2순위에 오른 하이리 페이지.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을 포함한 각 영지의 대영주들과 이안의 장인에 기거 중인 여덟 장인, 추가로 황실연금술사장 더글라스까지.

제국의 수뇌부들이 한 대 모인 자리에서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북부 설산지대에 출몰한 거인의 기억을 읽었고, 그 기억에서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세계.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상아탑주의 발언 아니겠는가? 의구심을 표하기 전에 끝까지 듣는 편이 좋으리라.

“그 세상의 지배자들은 본인들의 터전을 ‘슈페리어’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그 어떤 세상, 어떤 종족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고 믿습니다.”

분석관의 기억으로는 그랬다.

이그드라실이 떠받친 아홉 개의 세계 중 가장 높은 곳에서 유유자적 군림하는 슈페리어 차원.

그곳의 지배자들은 나머지 여덟 차원을 미들어스, 즉 중간계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통칭했다.

“산책을 하는데 개미가 눈에 보인다고 가정해 보죠. 그 개미들이 오고 가는 개미집도 보이고요. 하지만 그게 보인다고 해서 굳이 개미를 몰살시키거나 개미집을 불태우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악취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갑자기 웬 개미 타령일까?

이안의 말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그 개미 중 한 마리가 우리한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발가락을 깨문다거나, 집으로 몰래 들어와서 식료품 따위를 망쳐놓는다거나, 그럼 어떻게 합니까? 개미를 잡죠. 근처에 있는 개미집도 무사하기는 힘들 겁니다.”

“……그러니까 탑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그 슈페리어라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우리를 개미쯤으로 여긴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고위마법사 로난이 물었다.

역시 말귀가 참 빠른 자다.

“짐은 이해가 잘 안 되는군. 도대체 우리가 무슨 피해를 줬지?”

이번에는 황제 하이든이 말했다.

맥을 정확히 짚었다는 증거였다.

“그 개미가 바로 저더군요.”

“……뭐? 상아탑주 자네가?”

“최근 제가 연구했던 마법 이론 몇 가지가 조금 거슬렸나 봅니다.”

분석관의 기억에 따르자면, 슈페리어 차원은 시간이란 개념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분류한다.

그중 크로노스는 슈페리어를 포함한 아홉 차원 전체의 시간을.

카이로스는 각 차원의 독자적인 시간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프란이 남발했고, 내가 처음으로 행했던 회귀는 카이로스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오래전.

라그나르에게 배신을 당한 뒤 사용했던 회귀 마법은 단지 이 세상.

즉 카이로스를 되감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슈페리어와 엮여 사용한 회귀 마법은 다르다.

크로노스를 되감는, 즉 모든 차원의 시간을 역행시키는 회귀 마법.

그 이론에 닿은 것이 화근이었다.

‘기억 중 일부분이 훼손되어 있어서 정확히 어떤 경로로 알아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내가 불러들인 재앙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해결해야겠지.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정확히 어떤 마법을 연구하셨기에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겁니까?”

올리버의 물음에 모두가 이안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으니까.

“시간 마법입니다.”

“시간 마법이라 하시면?”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 저는 그 마법을 연구했고, 이미 한 번 멸망한 미래에서 사용했습니다.”

“……!”

이미 멸망한 세상.

그곳에서 시간을 되돌렸다.

이안의 폭탄선언에 이미 알고 있던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조치는 해뒀습니다. 대영주께서 보신 것처럼 그 거인부터 즉사시킨 뒤, 놈들의 방식으로 시간을 벌어놨죠. 물론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겁니다.”

그 말에 모그리안의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아탑주가 내뱉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증언이기도 했다.

“여러분을 소집한 이유가 그겁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논의, 개미들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박멸당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거기까지 읊조린 이안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모두의 눈앞에 각기 다른 마나 보고서가 나타났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주실 분들께서는 더글라스를 포함한 여덟 장인 분들이십니다.”

이안이 가장 먼저 더글라스와 여덟 장인을 호명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부터 침공에 특화된 전쟁무기와 장비, 도구, 기타 양질의 보급품 등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양산해 주십시오.”

‘방어’가 아닌 ‘침공’.

비슷한 듯 상반된 단어.

이는 뜻하는 바가 매우 컸다.

“평소 장인 여러분께서 우려하셨던 문명의 비정상적인 발전, 이번만큼은 접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장인들은 평소 자신들의 능력이 대륙 문명을 너무 빠르게 발전시키지는 않을까 항상 우려해왔다.

한데 그 걱정을 거두어달란다.

당장은 문명의 발전보다 문명의 존속 여부가 더 큰 문제 아닌가?

“침공이라 하시면, 혹 우리가 역으로 그 슈페리어라는 세상을 쳐들어가기라도 하겠다는 뜻이오?”

마도공학 장인 스람이 물었다.

그의 두 눈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약간의 기대가 서려 있었다.

“경우에 따라야겠죠.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모르는 일이니까요.”

검열되고 삭제된 부분이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분석관의 기억이다.

고작 이것만으로 여러 목숨이 달린 계획을 확정 지을 순 없는 일.

이안이 말했다.

“강한 적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장인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죠. 그러니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연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폐하께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폐하?”

“아, 물론이지. 맡겨만 주시게.”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제 가슴팍을 쿵쿵 두들기며 호언장담했다.

“알겠소. 우리 장인들은 오랜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이 세상, 이 제국의 일원으로 다시 살고자 마음먹은 몸, 응당 제 몫을 해야겠지.”

마도공학 장인 스람을 필두로 나머지 장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역시 결단을 내려준 장인들에게 가벼운 묵례로 화답했다.

“준비가 되는 동안 저는 그 슈페리어란 곳을 은밀하게 염탐해 볼 생각입니다. 최대한 많은 정보와 함께 돌아오는 것이 목표고요.”

염탐.

직접 가 보겠다는 뜻.

그 폭탄선언에 모두가 놀랐다.

특히 가족에 대항하는 황제 하이든과 하이리, 더글라스는 하마터면 의자까지 박차고 일어날 뻔했다.

[염탐이라면 잠입이 기본일 터.]

아까부터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던 드래곤 일족의 수장, 리시스 라덴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몰래 가는 방법을 아는 건가?]

“설산지대에 출몰한 거인의 직책이 분석관입니다. 직책답게 자신이 속한 세상도 꼼꼼히 분석한 뒤 보수해 왔더군요. 성벽이나 저택 지붕을 보수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안이 파악한바, 그 세상에서 분석관의 위치와 임무는 기껏해야 하급 관료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한데도 그토록 강대한 힘을 가졌으니, 중간계의 인간들을 벌레처럼 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으리라.

“아직 보수하지 못한 쥐구멍이 몇 개 남아 있습니다. 썩 자존심 상하기는 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쥐새끼가 맞는데.”

그래도 많이 컸다.

개미에서 쥐새끼로.

장족의 발전이다.

“혹 앞으로는 그 시간 회귀 마법이라는 거,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이오? 그게 가능하면 우리의 앞날이 조금 더 밝아질 것 같소만.”

모두가 묻고 싶었던 말.

대장군 던컨 미토스가 나섰다.

시간을 계속 되돌릴 수 있다는 거, 그건 분명 엄청난 이점일 터.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안이 꽤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다만.

“문제는 어떤 부작용이 따를지 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신중할 필요가 있겠죠.”

거짓말이다.

부작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이안은 재구축 마법을 발동시킴과 동시에 어떤 ‘변화’를 느꼈다.

자신의 육신과 영혼에 찾아온 아주 미세한 변화, 그리고 뒤틀림을.

‘사실대로 말했다간 모두 걱정만 하겠지. 폐하와 가족들은 더더욱.’

이미 엎질러진 물.

혼자 감당하면 그만이다.

“……상아탑주. 아니, 이안.”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다시금 고요가 찾아왔던 회의실.

그 오랜 침묵을 깨는 것은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몫이었다.

“짐은 말이다. 솔직히 다 말리고 싶구나. 염탐도 하지 말고, 시간도 되돌리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황제 하이든의 목소리에서 짙디짙은 비통함과 자책이 느껴졌다.

“허나 짐은 빈말로도 그렇게 말해줄 수가 없구나. 황제로서 백성을 지킬 의무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너의 그 힘이 절실하니까.”

그럼에도 하이든은 이안이 사지로 나서는 것을 말릴 수 없었다.

이안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터.

“그리 말하지 못하는 우리를, 그렇게 말해줄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우리를, 부디 용서해다오.”

황제의 진심 어린 사과에 모두가 무거운 죄책감을, 또한 이안이 맡길 일에 엄청난 사명감을 느꼈다.

“……뭐, 별수 있겠습니까?”

그런 그들의 반응에 이안이 피식 웃어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잘난 게 죄지.”

실없는 농담이 통한 걸까?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

“그럼 지체할 거 없이 바로 움직입시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 * *

“정말…… 정말 이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으신 건가요?”

“미안합니다. 부인께도, 가족들한테도, 그리고…… 요하나한테도.”

북부 설산지대.

모두가 그곳까지 배웅을 나왔다.

기존에 모였던 제국의 수뇌부뿐만 아니라 어머니, 레디오, 드래곤 일족, 페어리퀸 에스펠과 드래고니안 일가 역시 자리를 함께했다.

“이 어미가 꺾을 수 있는 결단이었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부디 몸조심하렴. 이안.”

이안이 걱정으로 가득한 어머니 베네사의 두 손을 꼭 잡아줬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아들 마법사입니다. 상아탑주요. 어디에서 얻어맞고 들어올 아들은 아니죠.”

“그건 그렇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이안님…… 아니, 우리 장남이야 신께서도 어찌하지 못할 만큼 대단한 마법사 아니겠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제는 정식으로 이안의 아버지가 된 레디오가 아내 베네사를 다독여줬다.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우리 형님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잖아요?”

더글라스 역시 한마디 거들었다.

이제 좀 컸다고 대장님 대신 형님이란 호칭을 쓴다. 아니, 좀 컸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컸나?

[내 예전에도 말했다만, 어차피 단명하는 족속이라서 그런지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르는 것 같구나.]

이에 질세라 페어리 퀸 역시 그녀만의 방식으로 이안을 걱정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단명할지언정 네 가족과는 오래 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 맞다.

이안에게는 가족이 있다.

만약 혼자였다면, 분석관의 기억을 읽자마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심연을 들여다봤으니까.

기억 전송이란 쉬운 길을 놔두고 일일이 말로 설명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어.’

지켜야하니까, 자기 자신 말고는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목숨을 거는 거다.

언제나 그렇듯이.

“……요하나.”

이안이 마지막으로 딸아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으로선 그 누구보다 지켜주고 싶은 요하나에게 말했다.

“아빠 금방 다녀올게.”

제 아비만 보면 그렇게 잘 웃던 아기가 오늘따라 슬픈 표정을 짓는다. 아직 감정이란 것에 서투른 갓난아기이거늘, 뭔가 아는 걸까?

“…….”

딸아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

그러나 이제 움직여야 한다.

이안이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분석관의 기억에 따라 ‘쥐구멍’을 열 수 있는 언어의 힘.

‘슈페리어의 언어’를 읊조렸다.

화아아아아아아 - !

그러자 곧 설산지대의 하늘에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내리깔렸다.

별빛 한 점 없는 무광의 하늘.

그 한가운데 새빨간 불꽃이 타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원을 그리며 어디론가 통하는 차원문이 되었다.

“후우우…….”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저 붉은 문을 통과하는 일뿐.

“그럼.”

이안이 모두를 돌아봤다.

더불어 나지막이 읊조렸다.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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