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7화
거인은 여전히 강한 존재였다.
지난 20년간 세상 구석구석을 남김없이 불태우기 위하여 만들어낸 괴물들의 머릿수도 어마어마했다.
그 괴물들은 인간보다 조금 더 큰 덩치를 가졌고,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세 개 달린 머리에서 제각각 불을 내뿜는 개의 형상이었다.
물론.
스팟!
손짓 한 번이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갈 잔챙이에 불과할 뿐, 이안의 눈은 잔챙이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거인한테 고정되어 있었다.
콰앙!
그리고 그 결과.
이안의 마법이 거인을 강타했다.
단순한 화염구였음에도 타격을 입은 듯 휘청거리는 거인의 육신.
본디 저항하거나 금세 회복되어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던 마법들이 이제는 먹혀들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보다.’
더 쉽다.
그만큼 강해졌다.
이안이 희열을 느꼈다.
성장하는 느낌, 성취감.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다.
[무의미한…….]
“저항처럼 보여? 진심으로?”
[…….]
“네놈 고향, 슈페리어라고 했던가? 그쪽 동네에서는 무의미하단 말이 다른 뜻으로 쓰이나 보군.”
거인의 반응이 그 증거였다.
비아냥거림에도 입을 꾹 다문다.
앞선 몇 차례의 전투를 통하여 거인도 확실하게 깨달았으니까.
중간계의 시간으로 이십 년 만에 다시 나타난 변수, 이안 페이지.
그 벌레는 강해졌다. 어쩌면 슈페리어의 분석관인 자기 자신보다도.
“그럼 네가 말하는 그 무의미한 저항이란 거, 본격적으로 해볼까?”
주춤거리는 거인의 모습에 이안이 읊조렸다. 말투와 표정만 봐서는 굉장히 여유로운 듯 보였으나, 실은 그도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설마 방패 속에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을 줄이야.’
요하나가 성인이 되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20년 이상.
온 세상이 불바다로 변할 만했다.
‘그 기나긴 세월을 저 거인이 마음껏 활개치고 다녔을 테니까.’
요하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아끼는 모든 것들을 잃었다고.
이제 그만 끝내고 싶었다고.
그 말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모두 죽었겠지. 날 기다리다가.’
가족, 친구, 동료.
누구도 남지 않은 세상.
그런 세상에 홀로 남겨진 딸.
이안이 어금니를 뿌득 깨물었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기나긴 가수면 상태에 빠져 프란의 파편과 재회하지 못하였더라면, 지금쯤 감당할 수 없는 상실감에 이성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하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안에게는 모든 문제를 되돌릴 수단이 있었다.
무분별한 차원의 갈라짐 없이, 모든 시간을 되감을 수 있는 마법.
‘재구축.’
이안이 명명하기를 재구축.
본디 이론만 겨우 완성시켜 연구하는 수준이었으나, 이젠 다르다.
‘우선 정보부터 확보한다. 시간은 그 이후에 되돌려도 늦지 않아.’
아직 아는 바가 없다.
예컨대 거인의 정체라든지.
슈페리어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기타 등등 모든 게 미지수일 뿐이었으니, 시간을 되돌리기 이전에 정보부터 확보함이 급선무였다.
‘그래야 시간을 되돌렸을 때 무엇부터 할지, 그리고 무엇을 목적으로 나아갈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
신중함이야말로 마법사의 덕목.
이안이 한결 차분해진 눈으로 거인과 거인의 피조물들을 응시했다.
‘이번에야말로 빠르게 끝낸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순순히 이안의 마법에 모든 기억을 토해낼 만큼 파괴적인 한 방.
‘디스인티그레이트.’
이미 한번 통하지 않았던 마법.
이안이 다시금 그 마법을 꺼냈다.
콰광!
신의 노여움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번개줄기가 다시 한번 거인의 상반신을 꿰뚫고 지나갔다. 물론 저번에도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저 멀쩡하게 회복했을 뿐.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됐다.’
과거 올리버 레이우드와 대련 중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검에는 손맛이 있다고. 그 손맛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검이 치명상으로 들어갔는지, 아니면 얕게 들어갔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이건 치명상이다.’
마법사도 마찬가지다.
마법 특유의 손맛이 있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지금 이 주문은 치명타가 확실하다.
[쿨럭……!]
이안의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입으로 토해내는 핏물을 보라.
전에는 없었던 반응 아닌가?
쿵!
거인의 무릎이 맥없이 무너졌다.
아직 한쪽 무릎만 꿇었을 뿐인데도 지축이 거세게 요동쳤다.
[…….]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당혹감에 빠진 눈초리로 자신이 토해낸 백색 핏물을, 더불어 압도적인 힘과 함께 돌아온 중간계의 변수를 번갈아 살피는 거인이었다.
[……중간계의 변수여.]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처가 꽤 깊은 모양인지 전보다 힘이 없고 느릿느릿한 말투였다.
[나는 분석관으로서 이 세상의 손상 원인과 정도를 분석하고 정의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그대를 중간계의 변수가 아닌 ‘치명적인 오류’로 정의하겠다.]
“무슨 차이지?”
[치명적인 오류는 분석관의 관할이 아니다. 슈페리어 평의회에서 신중히 판단하고 최종 처분할 일, 허니 그대는 무의미한 저항을 그만두고 처분에 따르도록 하라.]
“평의회……?”
다시 말하지만, 이안은 눈치와 이해력이 꽤나 우수한 편에 속한다.
덕분에 지금 거인이 하는 말을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거인보다 강한 존재가 온다.’
자신의 권한을 벗어난 일이니 상부에 보고하고 처분을 요청하겠다.
쉽게 말하자면 그런 뜻 아닌가?
‘그렇다면…….’
이 역시 귀중한 정보.
다만 조심할 필요가 있다.
까딱 잘못했다간 시간을 되돌릴 틈도 없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러니 신중할 수밖에.
‘평의회란 놈들한테 보고를 올리기 전에 먼저 죽여 기억만 취한 뒤 회귀한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야.’
저 거인보다 상위의 존재.
그들이 얼마나 강한 존재일지.
어떤 식으로 세상을 공격할지.
아직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따라서 이안은 불확실함에 목숨을 걸지 않기로 했다. 그런 불확실함은 자신의 눈이 아닌 거인의 기억을 통하여 해소하면 그만이리라.
‘이번 공격으로 끝내자.’
결심을 굳힌 이안.
그가 최후의 마법을 준비했다.
이번에야말로 거인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버릴 요량이었다.
[서두르지 마라. 이미 코드는 성공적으로 전송되었다. 곧 평의회의 답변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뭐?”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구……!
하늘이 깨질 듯 울부짖는다.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이안조차도 이런 현상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쩍, 쩌적, 쩌저저적……!
그리고 그 표현은 곧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묘사로 탈바꿈되었다.
하늘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까.
“저게…… 도대체…….”
그 생소한 광경에 요하나는 물론 이안조차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마치 당장에라도 와장창 깨져 무너질 것처럼 균열이 생긴 하늘.
그런 하늘 아래 한낱 인간으로서 두 발 딛고 서 있을 때의 무력감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무겁고 절망적이었다.
[평의회의 답변이 도착했다.]
거인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금이 간 하늘이 무너지며 무언가 나타났다. 그것은 시뻘건 불길이 휘몰아치는 커다란 포탈이었는데, 더욱이 주목할 점은 그 건너편에서 포탈을 비집고 넘어오는 ‘존재’였다.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 중간계는 슈페리어의 원칙에 따라 재구성이 아닌 완전 소멸을 실시한다.]
그 존재는 언뜻 보기에 거인과 여러모로 흡사했다. 푸른 피부, 근육질의 육신, 백색 안광, 뱀처럼 꿈틀대는 하얀 머리칼과 수염.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사무적인 태도의 거인과는 달리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가졌고, 상반신만 간신히 넘어올 만큼 압도적인 덩치를 가졌으며, 그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삼지창을 앞세우고 있었다.
[이는 분석관의 권한과 책임을 아득히 뛰어넘은 문제, 따라서 우리 평의회는 ‘인도자’를 중간계로 파견하니, 분석관은 인도자를 도와 평의회의 뜻을 완수하도록 하라.]
칭하기를 ‘인도자’.
분명 저 괴물의 이름일 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요하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 시간이 없으니까.”
이안의 판단은 빨랐다.
급히 계획을 수정했다.
“난 지금부터 시간을 되돌릴 생각이야. 되도록 저 거인이 나타나기 전, 모두가 살아 있던 시간대로.”
“시간을…… 되돌려요?”
“마음 같아서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싶지만, 너도 알다시피…….”
“알고 있어요. 재구축.”
“……네가 어떻게?”
“언젠가 폐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아버진 시간을 되돌릴 만큼 위대한 마법사셨다고. 그러니 돌아오시면 모든 걸 해결해 주실 거라고.”
“…….”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
그는 이안이 장난 삼아 툭 던졌던 재구축 이론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안의 말이라면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경청하며 곱씹어보는 황제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저한테 설명해 주실 필요 없어요. 모두를 되살릴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으니까.”
결연한 눈빛, 목소리, 표정.
요하나의 진심이 느껴졌다.
“미안하구나. 요하나. 이렇게 만났는데,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을 텐데, 이야기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괜찮아요. 오히려 기쁜걸요? 방금까지만 해도 죽을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희망이 있잖아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삶이다.
파괴될 대로 파괴당한 삶이다.
이미 망가져 버린 삶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야 무언들 못하겠는가?
“대신 약속 몇 개만 해주세요.”
“말해보렴.”
“이번에는 저, 최소 이번 생보다는 잘 좀 키워주세요. 곁을 너무 오래 비우지도 마시고요. 아셨죠?”
“약속하마.”
“되도록이면 마법사로 키워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래 보여도 8클래스까지 올라왔거든요. 거의 반 독학으로 말이에요. 아버지가 도와주신다면 충분히 그 이상까지도 가능할 거라 보는데, 동의하시죠?”
“약속하마.”
“그리고 어머니…… 우리 엄마한테 조금은 살갑게 대해주세요. 우리 엄마라고 뭐 아버지랑 평생 극존칭하면서 살고 싶은 줄 알아요?”
“……그것도 약속하마.”
“좋아요. 저는 이 세 가지면 충분하니까 이제 그만 염려 놓으시고 시작하세요. 더 늦기 전에요.”
소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상.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그 사실을 피부로 깨달은 요하나 역시 더 이상 아버지를 붙잡지 않았다.
“마나를 빌려줄 수 있겠니?”
“얼마든지요.”
마나는 핑계다.
그저 딸아이의 손을 잡고 싶었다.
요하나도 그 뜻을 모르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우웅!
두 손을 맞잡은 부녀의 마나가 푸른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동시에 모든 시간을 되돌리는 재구축 마법이 이안이 내뱉는 언어의 힘으로서 발동되기 시작했다.
[라, 후스, 에키로.]
[로, 쿠베르가토.]
[젠 - 쉬나가스.]
그 순간.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시간의 역행이 이안과 요하나는 물론 슈페리어의 분석관, 인도자, 뿐만 아니라 전 차원을 집어삼켰다.
[크로노스가…… 역행한다!]
* * *
“이안, 이안?”
“……?”
이안이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황제 하이든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혹 벌써 시간을 되돌린 건 아닌가 묻지 않더냐?”
재구축 이론에 관한 사실을 처음 황제한테 이야기해 줬던 그 날.
바로 그날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