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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91화 (19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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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5화

    프란 페이지.

    이안의 아버지이자, 본신本身이었으며, 모든 문제의 원흉이었던 자.

    결국 본신조차 뛰어넘어버린 이안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물 받은, 본디 여기 있어선 아니 되는 존재.

    “허상인가.”

    그러한바 이안은 눈앞에 나타난 남자와 목소리를 허상으로 여겼다.

    가수면 상태에서 허상과 헛것, 환청 따위를 듣는 일이야 흔하니까.

    “그럼 허상이지. 실제겠니? 제 손으로 죽여 놓고 살아 있길 바래?”

    프란 역시 이안의 생각에 동의했다. 오히려 그걸 생각씩이나 해야 하느냐는 듯 어깨까지 으쓱거렸다.

    “예전에도 말해준 것 같다만, 내 아들치고는 참 멍청하단 말이지.”

    “…….”

    “못생긴 거인을 상대하는 방식도 그렇고, 아끼는 모든 것들을 지키겠답시고 선택한 마법도 그렇고.”

    “…….”

    “아비로서 더 많이 가르쳐 줬어야 했는데, 음, 이거 따지고 보니 내 잘못이구먼. 미안하구나. 아들아.”

    능글능글한 표정, 말투, 목소리.

    오래간만에 봐도 참 비호감의 끝을 달리는구나 싶은 남자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글쎄, 딱히?”

    “그럼 왜 꿈까지 좇아와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지? 정신 사납게.”

    “오, 그건 오해야.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에 있었어. 네 녀석이 마음대로 쳐들어왔을 뿐이지.”

    “또 무슨 헛소리를…….”

    “잊었느냐? 너는 내 아들이면서 사념체다. 비록 날 뛰어넘는 바람에 주객이 전도되긴 했는데…… 어찌 되었든 내가 너고, 네가 나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결국 네 안에는, 아주 깊숙이 자리 잡은 이 내면에는 내 파편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란다.”

    허상 속 프란의 말에 이안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이 남자, 꿈에서까지 교활한 세 치 혀를 놀린다.

    “더는 못 들어주겠군.”

    “그럼 나 그냥 사라질까?”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흠, 네가 바란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근데 말이다. 궁금하지 않아?”

    프란 페이지.

    그 남자가 싱긋 웃었다.

    동시에 흥미로운 주제를 꺼냈다.

    “이안 너, 아까 그 거인이랑 처음 말이 통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떠올렸잖아? 나랑 도마뱀 놈들을.”

    허를 찌르는 프란의 발언.

    그래, 맞다. 거인이 말하는 그 슈페리어의 언어란 거, 분명 용언인 줄 알았던 언어의 힘과 닮았다.

    아니, 정확하게 일치한다.

    “감동이더라. 도마뱀 말고 나부터 떠올려줘서,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피가 제일 진한 법이야. 그치?”

    틈만 나면 능청을 떨어댄다.

    물론 이안은 그의 능청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았다. 저 남자가 내뱉는 말 중 대부분은 헛소리니까.

    단, 이번만큼은 흥미로웠다.

    “본론만 얘기해. 혹시 그 거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는 건가?”

    “아니, 없는데?”

    ……뭐 하자는 걸까?

    이안이 프란을 노려봤다.

    그러자 항복 자세를 취하는 프란.

    그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솔직히 나도 좀 놀랐다니까? 궁금했거든.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터득한 언어, 힘, 이것들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프란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의 힘, 그 초월적인 권능의 뿌리를 알고 싶었다. 실제로 오랫동안 파헤치기도 했다. 물론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지만 말이다.

    “매번 허탕만 치다가 포기했었는데, 아까 그 거인 앞에서 살아나더란 말이지. 옛날에, 구원자랍시고 나대던 시절에 궁금했던 것들이.”

    호기심으로 가득한 프란의 눈빛.

    허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생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결론이 뭐지?”

    “내가 도와주마.”

    “도와? 무엇을?”

    “네가 그 거인을 쓰러뜨리고 기억까지 읽어낼 수 있도록. 그래야 나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거든.”

    “무슨 수로? 당신은 허상일 뿐이잖아? 본체는 내 손으로 죽였고.”

    “내 비록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파편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네 아비고 마법사 선배다. 가르칠 게 많이 남아 있지.”

    가르칠 게 많이 남았다.

    그 말에 이안이 코웃음을 쳤다.

    “당신, 기억 안 나? 나한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던 거, 반격 한 번 제대로 못 했었지. 근데 가르칠 게 남으셨다? 그쪽이, 나한테?”

    이안과 프란의 마지막 전투.

    당시의 양상은 표현 그대로 한쪽이 압도하는 싸움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이안 페이지의 힘은 프란의 모든 것을 압도하고도 남았으니까.

    “역시 내 아들치고 멍청하구나.”

    그럼에도 프란은 당당했다.

    이쯤 되면 시그니처 대사가 되어버린 ‘내 아들치고 멍청하다’를 유감없이 내뱉었다.

    “너한테 패배하고 죽임을 당한 건 전적으로 내 본체 쪽이지. 여기 있는 나하곤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알아듣게 얘기해.”

    “나는 여기서 네 녀석의 경험과 깨달음, 연구, 지식, 그 모든 것들을 아무런 노력 없이 앉아서, 진짜 그냥 가만히 앉아서 습득했거든.”

    “……뭐?”

    “거기에 내 가뜩이나 우수한 지성과 경험까지 더해졌으니…… 이쯤 되면 뭐, 너보다 강할 수밖에.”

    눈앞에 저 프란은 실제가 아니다.

    사념체의 몸으로 본신을 뛰어넘은 이안의 내면에 박힌 파편일 뿐.

    다만 그렇기에 이안이 독자적으로 개척해 나간 모든 것을 빨아들였으니, 이곳 내면세계에서만큼은 본신조차 뛰어넘은 존재가 되었다.

    “왜, 믿기지 않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니까.”

    “그 소리도 오랜만에 듣네.”

    피식 웃은 프란이 손짓했다.

    그러자 주변 풍경이 달라졌다.

    들판,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이안이 프란의 과거를 경험했을 때, 그와 함께 수련하던 장소였다.

    “못 믿겠다면 시험해 보든가.”

    “시험?”

    “너보다 강해졌다는 내 말이 과연 사실인지, 아니면 그냥 허풍인지.”

    심상 세계보다 더 깊숙한 내면에서 치러지는 두 마법사의 2차전.

    길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결정된 승자는 놀랍게도 이안이 아니었다.

    “어때, 이제 좀 믿음이 가?”

    프란 페이지.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면세계에서의 프란은 이안조차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했으니까.

    “표정 작살난 거 보니 대충 이해한 것 같구먼. 자자, 허면 이제 그만 주저앉고 일어나렴. 아들아.”

    프란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잡고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내 가르침은 이제 시작이거든.”

    * * *

    “……아버지.”

    불빛 하나 없는 깊숙한 동굴.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떨림이 서린 여인의 목소리였다.

    “이제 그만 끝을 보려고 해요.”

    그녀는 낡아빠진 음성 저장 수정구에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었다.

    “더는 버틸 자신이 없거든요.”

    단순한 녹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오늘 아침에요. 끝까지 제 걱정만 하시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버지께서 오실 거라고, 예전에도 조금 걸리긴 했지만 끝내 돌아오셨다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버티란 말씀만 반복하다가…… 그렇게 가셨어요.”

    그녀의 호칭을 빌리자면 ‘아버지’라는 자가 그 대상인 것 같았다.

    “우리 엄마, 참 바보 같죠? 벌써 20년씩이나 기다렸는데 말이에요.”

    20년.

    무엇이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20년이나 기다리게끔 만들었을까?

    “돌이켜보면요. 그건 믿음이 아니라 희망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엄마도 그렇고,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더글라스 삼촌, 폐하, 올리버 경, 그밖에 제 곁을 떠난 모든 사람들이 품었던 희망, 이안 페이지라는 이름의 지푸라기요.”

    믿음이 아닌 희망.

    이안 페이지라는 지푸라기.

    그녀가 계속 말문을 이어갔다.

    “아무리 거인한테 저항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기는커녕 사람들만 죽어나가니까,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던 거예요. 얼음 속에 계신 아버지께서 돌아오실 거라고, 돌아오셔서 이 고통, 절망, 괴로움, 다 끝내주실 거라고.”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인간은 의지할 구석을 찾는다.

    그 대상은 가족이나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종교가 될 수도 있다.

    거인의 발아래 온 세상이 짓밟혀 절망에 빠진 생존자들에게도 어딘가 의지할 곳이 필요하였으니, 그들한테 이안은 종교와도 같았다.

    구원자, 구세주, 언젠가부터 그런 명칭으로 불리지 않았던가?

    “저도 한 일곱 살 때까지는 믿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부터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아버지랑 저, 일찍 헤어졌잖아요? 목소리도, 얼굴도, 아무것도 모르죠.”

    얼굴도, 목소리도 알지 못하는.

    무려 20년 전에 헤어진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향한 믿음이 다른 이들만큼 강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어머니한테 마법을 배우고, 거인이 우리를 찾기 위해 만든 괴물들과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고부터는 솔직히…… 기대를 아예 접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아예 잊고 살았죠. 아버지란 존재를.”

    그녀가 지직거리는 음성 저장 수정구에 마나를 보충했다. 아직 할 얘기가 조금 더 남은 까닭이리라.

    “그랬는데…… 정작 유언을 남길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네요. 아버지 말고는 모두 돌아가셨으니까요.”

    혹시 모른다.

    어딘가에 또 생존자가 있을지도.

    하지만 그녀가, 그녀의 유명을 달리한 동료들이 파악한 바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걸 짓밟는 거인과 거인이 만든 괴물들이 활개치는 이 땅에 생존자 따윈 말이다.

    “아버지, 전 이제 싸우러 가요. 가서 제가 아끼던 모든 것들을 앗아간 저 거인한테 한 방 먹여주지 않고서는 도무지…… 도무지 혼자 숨어서 살 자신이 없거든요.”

    이윽고 밝은 갈색 머리칼의 여인이 음성저장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어머니께 물려받은 푸른색 망토를 둘렀고, 마찬가지로 어머니께 물려받은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이제 몇 병 남지 않은 엘릭서와 포션 역시 허리춤에 잔뜩 챙겼다.

    “혹 돌아오신다면, 돌아오셔서 이 수정구에 담긴 유언을 들으셨는데, 그 세상에 제가 없다면…… 이거 하나만 부탁할게요. 우릴 이렇게 만든 거인, 꼭 죽여주세요. 최대한 고통스럽게, 갈기갈기 찢어서.”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한 유언.

    여인의 목소리는 거기까지였다.

    “후우……!”

    깊은 동굴에서 빠져나와 맞이한 세상은 온통 붉은색 천지였다.

    숲이 있던 곳, 산이 있던 곳, 도시가 있던 곳, 마을이 있던 곳, 기타 모든 것들이 불길에 휩싸여 이십여 년째 불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이러니 붉은색으로 물들 수밖에.

    “죽으러…… 가 볼까?”

    넘실거리는 마나의 기운이 푸른색 로브를 걸친 여인, ‘요하나 페이지’의 육신과 함께 사라졌다.

    오직 8클래스 이상의 경지를 이룬 대마법사에게만 허락된 주문.

    텔레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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