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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90화 (19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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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4화

    놈은 이안을 ‘중간계의 변수’라고 불렀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제거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프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는 소멸했다.

    철저하게 확인했다.

    ‘그자하고는 기운부터 달라.’

    그렇다면 드래곤일까?

    천만에, 그들 또한 아니다.

    이안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정체가 뭐지?”

    이안이 다시 한번 물었다.

    조금 전과 달리 대꾸를 원했다.

    콰드드드득……!

    그러나 거인은 이안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브류나크를 완력으로 부러뜨리며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쿠오오오오오!

    힘자랑에 이어서 목청 자랑까지.

    그야말로 비협조의 끝을 달리는 거인의 태도에 이안이 혀를 찼다.

    “말이 좀 통하나 했더니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놈을 제압해야 의문이 풀린다.

    오히려 이 난데없는 싸움을 빨리 끝낼 이유가 더 늘어난 셈이리라.

    “이따위로 나오시겠다?”

    화르륵!

    시꺼먼 불덩이가 이안의 손바닥에서 춤을 추는가 싶더니, 이내 자그마한 구체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겁화의 옥.’

    겁화劫火.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불꽃.

    그런 불꽃이 응축되고 또 응축되기를 수십, 수백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탄생하는 흑색의 옥.

    이안이 그 결단코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을 거인에게 내리꽂았다.

    하지만.

    파스스스스……!

    놀랍게도 불꽃이, 본디 엄청난 폭발과 더불어 거인의 몸뚱이를 잿더미로 만들어야 할 겁화의 옥이 놈의 피부에 닿자마자 사그라졌다.

    쩌적, 쩍, 쩌저적!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금 쩍 벌어진 거인의 입에서 상아탑을 반파시켰던, 그리고 이안의 왼쪽 뺨에 상처를 냈던 빛줄기가 파멸적인 기세로 꿈틀거렸다.

    ‘피하기보다는…….’

    아까와는 달랐다.

    거리가 좁아도 너무 좁다.

    놈의 반격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

    콰과과과과과과과과!

    빛이 이안을 덮쳤다.

    만약 브류나크를 휘둘렀던 마나의 팔이 없었더라면, 그 팔에 초대형 마나 방패를 덧씌워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놈이 내뿜은 광선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리라.

    “…….”

    파손된 마나 방패 너머로 이안의 눈동자가 서릿발처럼 번뜩거렸다.

    “……너.”

    이안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모자라 이안의 마법에 저항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거늘, 더 큰 문제는 놈의 면전까지 와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무슨 짓을…….”

    쑥대밭.

    놈의 등 뒤로 펼쳐진 북쪽 영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인근 마을과 영지를, 쉽게 말해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곳을 철저히 짓밟아 쑥대밭으로 만들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한 거냐?”

    피해를 가늠키 어려운 상황.

    한데도 지금껏 황실과 상아탑이 받아본 소식이라고는 북부 감시탑의 위험경고 5단계가 유일하다.

    그 말인즉 황성으로 소식을 전달할 틈조차 없이 빠르고 철저하며 무자비하게 짓밟혔다는 뜻일 터.

    지나온 영토 전체가 말이다.

    [오류가 발생한 중간계는 원인분석 후 재구성을 원칙으로 한다.]

    “……뭐?”

    [손상을 유발한 변수부터 제거함이 마땅하나, 분석관의 재량에 따라 임의로 순서를 재배열할 수 있다.]

    손상, 중간계, 재구성, 분석관.

    도통 알아듣기 힘든 중얼거림뿐.

    그저 눈치껏 알아듣는 수밖에.

    “그러니까 네 말은, 네놈이 그 분석관이고 여기가 중간계라는 건가? 손상을 야기한 변수가 나고?”

    [변수 이안 페이지, 슈페리어의 언어를 일부 습득 및 구사, 습득 경로 파악 중, 허락받지 못한 권능을 남용하여 중간계의 치명적인 변수로 작용, 추후 슈페리어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 매우 높음.]

    “…….”

    [나는 슈페리어의 분석관으로서 확인된 변수를 제거할 의무와 손상된 중간계를 복구시킬 의무가 있다.]

    거인은 이안을 변수라고 불렀다.

    또한 언어의 힘을 ‘슈페리어의 언어’라 일컬었고, 자신이 속한 세상을 슈페리어라 부르는 것 같았다.

    중간계, 슈페리어, 그리고 변수.

    이안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러나, 저러나.”

    그는 이해력이 좋은 편이다.

    비록 거인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순 없어도 대충은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널 죽여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네. 안 그러면 네놈이 우리 전부를 몰살할 테니까. 맞지?”

    놈은 변수의 제거를 운운하며 이안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어디 그뿐일까? 복구와 재구성이라는 명목 아래 죄 없는 백성들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무얼 뜻하겠는가?

    놈의 목적은 몰살뿐이다.

    그러니 저항할 수밖에.

    [무의미한 저항이다.]

    “그건.”

    꽈득, 꽈득, 콰드드득……!

    이안이 다시 한번 마나를 끌어올렸다. 나아가 작은 숨결 속 수분 한 방울까지 몽땅 얼려 수천, 수만 단위의 얼음 화살을 만들어냈다.

    “해봐야 알겠지.”

    이안의 명령 한마디에 수만 덩이 얼음 화살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캉! 카강! 카강! 캉! 카강!

    몹시 예리한 물체와 그 예리함으로도 꿰뚫지 못할 만큼 단단한 물체가 쉴 새 없이 부딪치는 소리.

    그런 소리가 황성 그린리버디움의 북쪽 영토를 쩌렁쩌렁 울렸다.

    [무의미한…….]

    “다물어.”

    이안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곧장 양쪽 손바닥을 아래로 뻗으며 다음 수를 준비했으니까.

    ‘이그드라실의 속박.’

    마법의 힘으로 잔뜩 비대해진 식물의 뿌리 수만 갈래가 쑥대밭이 된 지면을 뚫고 솟아올랐다.

    그 뿌리는 거인을 포박하고도 남을 만큼 거대하였으며 쉬이 뿌리칠 수 없을 만큼 질겼으니, 움직임부터 제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웬만한 속성 마법은 모조리 저항하는 놈이다. 좀 더 큰 게 필요해.’

    놈은 뇌전, 빙결, 화염으로 나뉘는 세 가지 속성을 모두 저항했다.

    보다 강한 대항마가 필요하리라.

    ‘대자연의 격노.’

    그의 선택은 제3의 속성을 가진 자연계 마법, 대자연의 격노였다.

    이제 곧 거인을 속박한 뿌리가 썩어 문드러지며 그 부패균이 거인의 피부로 빠르게 침습할 터.

    ‘지금……!’

    빈틈 포착.

    이안의 눈동자가 번뜩거렸다.

    더불어 한쪽 팔을 치켜세웠다.

    치명적인 유효타가 필요한 순간.

    때마침 적당한 마법이 떠올랐다.

    “후욱……!”

    답지 않게 거친 호흡.

    그러자 구름 너머 높은 곳으로부터 천둥 번개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디스인티그레이트.’

    디스인티그레이트Disintegrate.

    이안이 최근 작성한 신 마법도감에 이르기를 ‘단일 공격 마법 중 가장 압도적인 관통력’의 주문.

    콰광!

    신께서 노하셨다.

    하여 번개를 내리치셨다.

    지상의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누군가 이 광경을 봤다면 필시 그렇게 여길 만큼 무자비한 번개 줄기가 대자연의 격노로 약해진 거인의 몸뚱이를 정확히 관통했다.

    [……!]

    됐다.

    먹혀들었다.

    거인이 반응을 보인다.

    꿰뚫린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백색 피로 미루어보건대 확실하다.

    [……중간계의 벌레답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안이 품었던 확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으로 변해버렸다.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이며, 비논리적인 행동만을 일삼는구나.]

    강력한 번개에 관통되었던 거인의 육신이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어디 그뿐일까? 이그드라실의 속박과 대자연의 분노 주문으로 부패하기 시작했던 피부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복구되었다.

    [중간계의 변수여. 그대는 이미 그대가 속한 세상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시간선과 세계선,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구석이 없지.]

    시간선과 세계선, 생소한 단어였으나 그 단어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는 대략적으로나마 짐작이 됐다.

    ‘……시간 회귀, 그리고 그 마법으로 분열된 차원을 뜻하는 건가?’

    짐작은 되나, 이해할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시간 회귀와 무분별한 차원의 분열은 대부분 프란 페이지의 소행 아니었던가?

    한데 이제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가만, 설마……?’

    재구축.

    아무런 분열 없이, 온전히 모든 시간을 되돌리는 그 이론 때문에?

    ‘내가 그 이론에 닿아서……?’

    아직 이론에 불과한 마법.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원인은 그뿐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 이 사태를 설명할 길이 없다.

    [받아들여라. 그대가 속한 중간계의 종말과 재구성을, 우주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는 통상적인…….]

    (함포 발사!)

    바로 그때였다.

    음성 증폭 수정구로 하여금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황제의 목소리.

    이안이 그 외침에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살폈다.

    ‘폐하……?’

    그곳에는 제국의 새로운 이동수단이자 전쟁 무기인 비행포격선 군단이, 그리고 그 비행선 군단을 호위하는 드래곤 일족들이 보였다.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드래곤 일족과 함께 지원을 나선 것이다.

    쾅! 콰앙! 콰광! 쾅!

    마도공학 장인 스람의 걸작.

    이후 양산에 성공한 수십 척의 비행포격선이 화력을 퍼부었다.

    [일족이여, 동맹을 엄호하라.]

    제국의 깃발을 휘날리는 비행포격선 군단만이 아니다. 연락을 받자마자 한달음에 날아온 드래곤 일족의 수장, 리시스 라덴쥬가 일족 모두에게 명령하였으니, 곧 드래곤 특유의 브레스가 포격선의 함포와 어우러져 거인을 폭격했다.

    […….]

    갑작스러운 공격에 거인이 한쪽 팔로 제 얼굴을 가렸다. 설마 지원군의 맹공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이런.’

    아니, 아니다.

    지원군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그걸 어찌 아느냐고? 간단하다.

    한쪽 팔로 가려진 거인의 표정을 보라. 무표정을 일관했던 거인의 얼굴에 혐오가 드리우지 않았나?

    [역시 온전한 구석이 없군.]

    예컨대 더러운 벌레를 봤을 때.

    그 벌레가 피부에 들러붙었을 때.

    딱 그럴 때나 지을 법한 표정이다.

    [지체 없이 재구성을 시작한다.]

    단호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

    격렬히 타오르는 안광, 이전보다 더욱 기괴하게 벌어진 턱과 입.

    심상치 않다. 뭔가 다르다.

    ‘위험하다.’

    이안의 본능이 경고했다.

    이번에는 위험하다고.

    큰 게 올 거라고.

    ‘어떻게든 막아야해.’

    거인이 내뿜고자 하는 빛줄기 앞에서 지원군의 등장은 무의미했다.

    이전까지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할 만큼 파괴적인 기운을 과시하고 있었으니, 이대로 가다간 지원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황성 일대마저 쑥대밭이 되어버릴 터.

    ‘막지 못하면 전멸이야.’

    많은 이들의 목숨이 걸렸다.

    특히 저 비행포격선에는 하이든 그린리버가, 그린리버의 황제로서 제국과 이안을 지키겠노라 달려온 의형제가 탑승 중이지 않겠는가?

    ‘선택하자. 이안.’

    한순간의 고민, 그리고 선택.

    이안이 서둘러 마법을 일으켰다.

    ‘기나긴 겨울의 방패.’

    그의 선택은 기나긴 겨울의 방패.

    방어력을 얻는 대신 가수면 상태에 빠지는 얼음 방패 주문의 상위호환이자 대규모 방어 마법이었다.

    다만 얼음 방패의 상위호환답게 부작용도 이안이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상위호환이었는데, 그 부작용은 바로 흡수한 충격량만큼 가수면 상태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충격이 적기를 바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애매한 방어막으로는 불가능하다.

    놈의 광선은 이안이 상아탑과 자기 자신에게 걸어놓은 방어 마법을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뜨렸다.

    그 말인즉 가장 확실한 방어 마법을 펼치는 것만이 아끼는 모든 것들을 지킬 유일한 방법이리라.

    콰득, 콰득, 콰드득……!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엄청난 규모의 초대형 얼음덩이가 이안을, 그리고 섬광이 뻗어 나갈 모든 경로를 틀어막는 순간.

    번쩍!

    백색 빛이 기나긴 겨울의 방패 속에 파묻힌 이안을 집어삼켰다.

    어쩌면 이 세상까지도.

    * * *

    이안이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온통 암흑뿐이었다.

    그런데 이 공간, 낯설지 않다.

    과거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무차원의…… 공간?”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게, 무차원의 공간이라 함은 붉은 용의 다섯 숨결을 마셔야 진입할 수 있는 공간 아닌가?

    한데 어째서 여기에?

    “틀렸어.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야. 그보다 더 깊이 박혀 있는, 예컨대 진정한 내면이라고나 할까?”

    매우 익숙한 목소리.

    그러나 다시 들려선 아니 되는.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음성.

    “……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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