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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89화 (18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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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화

    “여전하시네.”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는 8클래스마저 뛰어넘은 대마법사다.

    황궁에서 자기 집 안방으로 공간을 뛰어넘는 거, 그한테는 식은 수프 마시기보다 쉬운 일이다.

    한데 어째서인지 그는 자기 집 안방이 아닌 저택 울타리 바깥쪽으로 텔레포트 위치를 지정했다.

    “그래서 다행이고.”

    피식 웃은 이안 페이지.

    그가 저택의 대문 앞에 섰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대문에 걸려 있던 소독 마법이 이안을 감지하며 발동했다.

    마도공학 장인 스람과 이안이 함께 발명한 ‘자동 소독 장치’였다.

    푸슈슈슈슈……!

    방문객의 전신을 쬐는 소독 마법에 이어 백색 가스가 분출했다.

    이는 무려 황실 연금술사장 더글라스 새로 개발한 특제 소독 가스.

    호흡기와 피부를 통하여 몸속 불순물까지 몽땅 정화하는 가스였다.

    휘오오오오오……!

    마지막 차례는 강한 바람이었다.

    머리카락과 옷 따위에 묻은 먼지 한 톨까지 깨끗하게 날려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출입할 수 있는 난공불락의 저택, 그것이 바로 페이지 일가의 보금자리 되시겠다.

    “왔니?”

    가장 먼저 이안을 반겨주는 분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께서 세운 규정상 페이지 일가 저택의 모든 하인은 오후 7시까지만 일을 한다.

    이후부터는 저택 옆에 마련된 별채로 퇴근들을 하시니, 이안이 올 때쯤이면 집안이 참 고요했다.

    “오셨어요?”

    어머니와 함께 하이리 그린리버.

    아니, 하이리 페이지 역시 이안을 반겨줬다. 그들은 부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상호 간 존칭을 썼다.

    “폐하께서는, 무탈하시던가요?”

    하이리가 물었다.

    그녀는 이미 황궁에서 출가한 몸.

    친정의 소식이 무척 궁금하리라.

    “무탈하십니다. 여전하시고요. 요하나를 보고 싶어 하시는데, 첫돌까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안의 단호한 말투에 어머니인 배네사 페이지가 혀를 내둘렀다.

    설마 저 어른스럽고 냉철했던 아들이 팔불출로 변할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잘하셨어요.”

    문제는 공주마마, 아니, 며느리조차 그렇게 변해 버렸다는 점이다.

    “아무리 못해도 첫돌 전까지는 각별히 보살펴 주는 게 맞아요. 아기 때는 면역력이 약하니까요.”

    하이리가 누구던가?

    그 옛날 사교회장의 난다 긴다 하는 귀족가문 여인들을 말 몇 마디로 휘어잡던 공주님 아니신가?

    한데 그랬던 그녀마저 딸이 태어나자마자 팔불출이 되어버렸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동의합니다.”

    부인의 말에 공감한 이안 페이지.

    그가 슬슬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계속 신경이 쓰여 참기 힘든 문제였다.

    “요하나는, 별일 없었습니까?”

    “방금까지 울다가 잠들었어. 어쩜 너 아기였을 때랑 똑같은지, 온종일 운다. 온종일. 우렁차게.”

    하이리 대신 베네사가 대답했다.

    그녀는 한 살짜리 손녀에게서 아들을 봤다, 그것도 까마득히 어린 시절의 이안 페이지를.

    그때 참 쉽지 않았다.

    “건강해서 좋네요.”

    물론 당사자가 아기 시절을 기억할 리 없을 터. 이안의 귀에는 그저 건강하다는 말로만 들렸다.

    “온종일 우는 거 달래느라 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 밤에는 제가 돌보도록 하죠. 두 분 푹 쉬세요.”

    이안이 간단한 염력 마법으로 요하나를 두둥실 띄워 품에 안았다.

    기껏해야 8킬로 남짓의 아기.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요하나, 방으로 가자꾸나.”

    요하나의 나이는 1세.

    정확히 생후 6개월이다.

    아직 혼자만의 방을 가질 나이가 아니라는 거다. 한참 멀었다.

    그럼에도 이안은 요하나의 방을 따로 꾸며뒀다. 저택 내 누구의 방보다 넓고 깨끗한 방이었다.

    달칵!

    방으로 들어온 이안이 요하나부터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한동안 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너무 작단 말이지.’

    생후 6개월 차 갓난아기.

    많이 컸다곤 해도 여전히 작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처음에는 그랬다.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잘못 건드렸다가 부러지면 어째?

    ‘언제 어떻게 폭주할지 모르니까.’

    한데 이제는 다른 의미로 조심스러워졌다.

    딸아이의 몰랑몰랑한 볼을 만지는 것도, 머리와 허리를 잘 받쳐 품에 안는 것도, 살포시 안아 트림을 시키는 것도 모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건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겨 버렸으니까.

    ‘설마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인 마나 하트를 타고났을 줄이야. 아무리 내 핏줄이라지만 너무하잖아?’

    마나 하트, 마나의 생성과 저장을 담당하는 심장 속 조그마한 내핵.

    8클래스마저 뛰어넘은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와 6클래스 고위마법사 하이리 페이지의 딸 요하나 페이지는 그 타고난 핏줄답게 무지막지한 마나 하트를 갖고 있었다.

    ‘마나 생성량과 저장량만 따진다면 이미 태어날 때부터 4클래스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었으니 원.’

    그 이안조차 마나 하트의 발육이 마법적 성장을 따라오지 못해 고전하지 않았던가?

    한데 요하나의 마나 하트는 태어날 때부터 4클래스 수준을 넘어섰다. 이는 실로 무서운 재능이리라.

    ‘내 마법으로 억제가 되어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만약 요하나가 일반 가정집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작은 육신으로는 마나 하트의 폭주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터.

    팔불출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과잉보호하는 까닭도 그래서였다.

    “다행인 줄 알아. 아빠 잘 만나는 것도 엄청난 복이거든.”

    이안이 다소 서글픈 자학과 더불어 딸아이의 심장 속 마나 하트에 새로운 봉인식을 걸어놓았다.

    “끄으응…….”

    약간의 이질감이 거슬렸을까?

    잠들었던 요하나가 눈을 떴다.

    “깼구나?”

    “…….”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

    “이왕 깬 거 아빠랑 놀자.”

    끔뻑, 끔뻑.

    동그란 눈을 끔뻑거리는 요하나.

    상황파악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꺄르르!”

    오케이, 상황파악 완료.

    요하나가 이안을 보며 웃었다.

    잡티 하나 없이 맑은 미소였다.

    “그래,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안이 그런 요하나에게 오늘 하루 안부를 물었다.

    상대가 생후 6개월짜리 아기일지언정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

    초보 아빠 이안 페이지가 세운 본인 나름의 육아철칙이었다.

    “매번 네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하루 종일 운다인데, 이상하지? 아빠하고 있을 때는 웃기만 하잖아.”

    사실이다.

    요하나는 유독 아비 앞에서, 그러니까 이안 앞에서 울지 않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웃고, 옹알이하고, 기분 좋은 소리만 낸다.

    이유가 있는 걸까 싶었지만, 이런저런 확인 결과 ‘아빠를 유독 좋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흡족한 결론이다.

    “아빠가 그렇게 좋아?”

    “끄응…….”

    “오, 지금 대답한 건가?”

    “아이크……!”

    “역시 날 닮아서 빠르군.”

    이안은 그렇게 한동안 딸아이와 둘만의 시간에 오롯이 집중했다.

    시시콜콜해 보일지 몰라도 이안에게는 나름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웠던 날라리 상아탑주로서 밀린 격무에 시달리는 중 아니겠는가?

    이런 힐링도 필요한 법이리라.

    우우우우웅……!

    그 귀중한 시간이 끝날 때쯤.

    이안의 품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상아탑과 직통으로 연결된 비상 통신 수정구가 발동하는 소리였다.

    (탑주님! 들리십니까?!)

    다급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

    한때 이안 대신 상아탑주 대행을 맡았던 로난 시어러의 연락이었다.

    “네, 듣고 있습니다.”

    (조금 전 북부 감시탑에서 비상경고 5단계가 발령되었습니다! 속히 상아탑 회의실로 와주십시오!)

    비상경고 5단계, 이는 곧 최고 수준의 위험이 들이닥쳤다는 뜻.

    참고로 과거 동부 대초원에서 치러졌던 ‘죽지 않는 자들과의 전쟁’이 바로 이 5단계 위험에 속한다.

    “…….”

    잠시 침묵했던 이안.

    그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제가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예? 현장 말씀이십니까?)

    “정말 5단계라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상아탑에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직접 나서는 편이 좋겠죠.”

    비상경고 5단계는 국가적 재난.

    아니, 그 이상의 천재지변이다.

    굳이 상아탑에서 애꿎은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텔레포트 마법으로 직행하는 편이 백번 옳으리라.

    “혹시 모르니 고위마법사 전원 소집 후 대기하십시오. 상황 봐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탑주님 말씀대로 준비해서 대기하겠…….)

    바로 그 순간.

    로난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어째서일까? 이유는 멀지 않았다.

    번쩍!

    갑작스러운 빛.

    백색 섬광이 도시를 덮쳤다.

    황궁, 상아탑, 페이지 일가 저택을 포함한 황성의 하늘 전체를.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쿠구구구구구……!

    요하나의 방에서는 상아탑이 잘 보인다. 덕분에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저 소리, 건축물 따위가 무너지는 굉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상아탑이…….’

    무너진다.

    무너지고 있다.

    상층부가 반파된 채로.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

    그러나 이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요하나!”

    그 무지막지한 소란에 하이리가 냉큼 딸아이의 방으로 달려왔다.

    그녀 역시 6클래스 경지를 이룬 상아탑의 고위마법사 아니던가?

    평범한 사람처럼 혼란에 빠지는 대신 딸아이부터 챙기고자 했다.

    “부인, 가족들을 부탁합니다.”

    실로 긴급한 상황.

    하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묻고 답할 때가 아님을 알았다.

    “그럼.”

    푸른색 마나가 이안을 감쌌다.

    공간을 넘나드는 텔레포트 주문.

    목적지는 상아탑 상공이었다.

    “…….”

    누가, 어디서, 어떻게, 무슨 수로 상아탑의 방어마법진을 뚫었는가?

    조금 전 번쩍했던 백색 빛의 소행인지, 그 빛의 근원지는 어디인지, 정확한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희생자는 또 몇이나 되는지.

    이안은 상아탑의 수장으로서 모든 것을 완벽히 파악하고자 했다.

    ‘저건?’

    그런 이안의 시야에 무너진 북쪽 성벽이, 또한 그 너머로 인간의 형상을 띤 무언가가 들어왔다.

    ‘인간인가?’

    아니, 아니다.

    인간은 결코 아니다.

    그도 그럴 게, 거리가 제법 멀다.

    무너진 성벽 너머로 수 킬로미터는 족히 더 나아가야 닿을 거리.

    그럼에도 실루엣이 그려질 만큼 무지막지한 덩치를 자랑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인간일 리 없잖아?

    ‘……거인?’

    그래, 맞다.

    거인이 어울린다.

    푸른색 피부를 가진 거인.

    태산처럼 커다란 덩치의 거인.

    바로 그러한 존재가 무너진 성벽 너머 북쪽에서 이안 페이지를, 그리고 황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쩌적, 쩍, 쩌저적!

    어디 응시하기만 할까?

    기괴하게 벌어지는 턱과 입.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줄기.

    번쩍!

    이것으로 두 번째였다.

    강렬한 빛줄기가 직선으로 뻗어져 이안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흡사 드래곤 브레스를 연상케 하는,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광선이었다. 오죽하면 이안조차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겠는가?

    주르륵……!

    광선이 스쳐 지나간 왼쪽 뺨으로부터 붉은색 핏물이 흘러내렸다.

    온갖 마법으로 상시 보호 중인 이안의 육신에 상처를 냈다는 뜻.

    ‘내 마법이…… 뚫렸다?’

    장담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마법사와 드래곤이 힘을 모은다 한들 자신의 보호 주문 한 겹조차 꿰뚫지 못할 거라고.

    한데 저 거인은, 저 거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빛줄기는 달랐다.

    ‘상아탑이 무너진 게 우연이 아니었어. 저 거인은 보통이 아니다.’

    상아탑에 걸어놓은 대규모 방어 마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안의 목숨을 책임지는 보호 마법조차 종잇장처럼 꿰뚫어 버렸다.

    놈은 결코 평범한 괴물이 아니다.

    이안 본인에 필적하는,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임이 분명하다.

    ‘정체가 뭐지?’

    놀라운 일.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다. 방금 상아탑이 무너졌고, 이안을 스쳐 간 빛줄기가 상업 지구 일대를 박살 내버렸으니까.

    ‘……생각은 나중에.’

    도시가 더 큰 피해를 당하기 전에 신속히 제압한다. 놈의 정체나 목적 따위는 그 이후에 파악해도 늦지 않는다. 생포하든, 사살 후 기억을 들쑤시든, 방법이야 많다.

    ‘전력을 다한다.’

    이안의 두 눈에서 푸른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심장 속 마나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는 증거였다.

    휘오오오오오……!

    휘몰아치는 바람.

    이안이 한쪽 팔을 펼쳤다.

    ‘빙뇌의 창.’

    뇌전의 기운을 머금은 얼음덩이가 이안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어찌나 거대한지 상아탑 지구 일대가 온통 그림자로 물들었다.

    ‘브류나크.’

    그거 아는가? 이안은 오랜 연구 끝에 마법사 본연의 술식과 언어의 힘을 완벽하게 융합시켰다.

    빙뇌의 창 브류나크는 그 결과물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

    왼손을 머리 위로 올린 이안이 커다란 얼음의 창을 쓰다듬었다.

    파직, 파직, 파지직……!

    이안의 손길에 응답하는 걸까?

    머금고 있던 뇌전과 빙결의 기운을 한껏 내뿜어대는 브류나크였다.

    ‘어디 인사부터 나눠볼까?’

    이안이 두 팔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마나의 힘으로 빚어진 커다란 팔 두 쪽이 튀어나와 브류나크를 움켜잡았다.

    “가자, 인사하러.”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거대함에는 거대함으로.

    브류나크를 앞세운 이안이 엄청난 비행속도로 거인에게 돌격했다.

    콰앙!

    푸른 거인과 작은 거인의 충돌.

    그중 전자에 속하는 거인이 휘둘러진 브류나크를 가까스로 막았다.

    “반가워. 덩어리.”

    이안이 읊조렸다.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다.

    한데 그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중간계의 변수 포착.]

    놈이 말을 한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

    물론 이 세상의 언어는 아니다.

    누구도 그 뜻을 알지 못할 터.

    “……뭐?”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이안 페이지만큼은 달랐다.

    그 마법사는 현존 인류 중 유일무이하게 거인의 말을 이해했다.

    ‘언어의 힘……?’

    본디 용언인 줄 알았던 언어.

    실상은 프란 페이지의 밑천이었으며, 그로 하여금 드래곤 일족에게 전수된 초월적인 힘의 근원.

    한데 그 언어를, 이안과 드래곤만이 일부 구사할 수 있는 그 언어를 푸른 피부의 거인이 내뱉었다.

    [제거를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유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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