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88화 (188/342)

188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2화

“상아탑 개혁안?”

“예, 폐하.”

“이안, 내가 오늘 내로 봐야 하는 상소문만 오십 개가 넘어. 거기에 굳이 일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어?”

그린리버 제국의 젊은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입을 열었다.

“상아탑 관련 일은 너한테 위임하기로 했잖아. 어차피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일도 아닐 거 아니야?”

“그래도 한번 읽어보심이…….”

“읽어는 볼게. 그러니까 거기 상소문 옆에 두고,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하지. 뭐라 했더라? 재구축?”

“임시로 붙인 이름이긴 하옵니다.”

“으음, 재구축, 재구축이라…….”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가 말한 ‘재구축’ 이론.

하이든은 그 전대미문의 마법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마법이 존재하는데, 부작용이 심해서 폐기를 했었다?”

“예. 그렇습니다.”

“헌데 이번에는 아무런 부작용도 없는 완벽한 주문을 만들어냈다, 즉 언제든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뜻처럼 들리는데, 맞느냐?”

“궁극적으로는 그러하옵니다.”

“허어……!”

완벽에 가까운 회귀 마법.

이안이 명명하기를 재구축.

그 대답에 황제가 탄식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이라니?

너무 갑작스럽다.

“혹 벌써 시간을 되돌린 건……?”

“아뇨, 아직은 이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실제로 써먹을 일 역시 어지간하면 없겠지요. 다만.”

“다만?”

“그냥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뭐?”

“제가 이만큼 더 대단해졌다, 그런 뜻이죠.”

“도통 무슨 말인지…….”

“왜 폐하께서도 예전에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일부러 소인 근처에서 어려운 책을 읽으시는 척…….”

“지, 짐이 언제 그랬다고……!”

“부인께서 전부 얘기해 줬습니다.”

“뭐? 하이리가? 이런 의리 없는 녀석……!”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럴까?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발을 동동 굴렀다.

과거 ‘얼간이 황태자’ 시절 특유의 분위기가 말끔하게 지워진, 그야말로 군왕의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하이든 그린리버였으나, 본디 타고난 심성만큼은 성숙해진 얼굴이 무색할 만큼 여전한 것 같았다.

“크흠흠……! 그래 뭐, 그런 시절도 있었지. 너무 오래되어서 잘 생각은 나지 않는다만, 누구한테나 철없는 시절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너도 마찬가지고.”

“저는 철이 없었던 적이…….”

“하? 어디서 발뺌을 하려는 것이냐? 옛 상아탑의 터를 보고 싶다고, 그게 소원이라고 아주 그냥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던 꼬맹이가 바로 네 녀석이거늘!”

참으로 오래전의 일.

맞다. 분명 그런 적이 있었지.

거기에는 약간의 사정이 있다만.

즐거워하시니 넘어가도록 하자.

“……헌데 그랬던 꼬맹이가 이제는 상아탑주가 되어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까지 창조해 냈다? 이거야 원, 애들 보는 이야기책도 이런 식으로는 쓰지 않겠군.”

“그러게 말이옵니다. 기껏해야 귀족들 골탕 먹일 생각이나 하시던 전하께서 폐하가 되실 줄, 심지어 꽤 그럴듯한 성군으로 칭송까지 받으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여튼 한마디를 안 져요.”

“살면서 져본 적이 없어가지고.”

“참으로 잘나셨소. 상아탑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폐하.”

언제 어디서 만나든 이런 식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두 사람의 입담 승부.

결론은 언제나 미소였다.

지금 이 순간도 그랬다.

“……그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시간 마법이라는 거 연구하느라 요즘 코빼기도 안 보였나 보구먼?”

“소인이 원래 한 가지에 빠져들면…….”

“연구실에 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하지.”

“혹 지시하실 일이라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자주 좀 오라고. 어째 9년을 잠들어 있을 때나 지금이나 얼굴 보기 힘든 건 매한가지야. 어? 아니, 아니지. 오히려 그때는 얼굴은 보기 쉬웠지. 몸소 찾아가면 그만이었으니까.”

만악의 근원이었던 프란 페이지.

그가 무분별한 시간 회귀 마법으로 분열시킨 차원들.

그 모든 차원을 수습하는 데 9년이란 세월을 쏟았다.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저 밖에서 우리 얘기 다 듣고 있을 올리버 경도 그렇고, 아바마마께서도 그렇고, 다들 자네 뭐 하고 사는지 엄청 궁금해하거든? 그러니까 얼굴 자주 비춰. 이거 황명이야.”

“노력해 보겠습니다.”

“좋아.”

오랜만에 돌아와 놓고는 여전히 얼굴 보기가 어렵다니, 참으로 까다로운 녀석이 아닐 수 없으리라.

“아,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우리 프란츠가 보고 싶어 해.”

“소인을 말씀이십니까?”

“에이, 그럴 리가, 당연히 자네 말고 자네 딸이겠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이안 페이지.

그 마법사의 삶에 큰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와 레디오, 더글라스를 제외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점이리라. 예컨대 아내라든지, 혹은 딸이라든지.

“황실의 핏줄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날 때부터 미모가 보통이 아닌 우리 조카, 요하나 말이야.”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는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을 닮은, 특히나 하이리 쪽을 똑 닮은 딸아이까지 얻었으니 그 이름 요하나 페이지, 올해 나이 1세 되시겠다.

“오늘만 해도 그래. 너 혼자 올 게 아니라 같이 왔어야지! 그래야 대를 이은 우정도 쌓고…….”

“안 됩니다. 첫돌 지나기 전까지는.”

“……뭐? 첫돌? 왜지?”

“집 밖은 위험합니다.”

“그러니까 대체 뭐가?”

“시끄럽고, 비위생적이죠. 아이 정서와 건강을 위해서 첫돌까지는 멀리 데리고 나갈 생각 없습니다.”

“이봐, 여기 황궁이야. 무려 황제가 나고 자라는 황궁! 이보다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 어디 있…….”

“여기까지 오는 길이 문제입니다.”

“하……!”

기가 차다 못해 헛웃음이 나온다.

그 위대한 대마법사의 말로가 팔불출이라니.

뭐, 이해는 한다. 하이든도 아들 키우는 입장이니까.

“가만, 그러고 보니 너, 어차피 텔레포트 마법으로 오잖아? 그럼 네가 말한 건 문제가 아닐…….”

“텔레포트 마법이 아기한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바 없습니다. 연구할 생각도 없고요.”

“나랑 다닐 때는 짧은 거리도 막…….”

“그건 폐하시고요.”

“……뭐라?”

“요하나는 요하나입니다.”

“…….”

폐하는 폐하고, 요하나는 요하나다.

칼 같은 분류에 조금 서운할 뻔했다.

“……그래도 내가 폐하다. 황제 말이야. 황제. 그건 알고 있겠지?”

“예, 소신 잘 알고 있나이다.”

“알면 됐다. 난 또 잊어버렸나 해서.”

입술이 삐죽 나온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계속 이 얘기만 하고 있다가는 정말 서운해질 것 같았으니까.

“아무튼 그 시간 마법, 혹시라도 쓰게 되면 미리 말해줘.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시간을 되돌리는데 준비는 무슨.

자각조차 할 수 없을 텐데.

그래도 호응은 해주자.

“그 누구보다 빨리, 가장 먼저 폐하께 아뢰옵도록 하지요.”

“정말이냐?”

“물론이지요. 폐하 아니십니까?”

“크흠, 그래. 내가 네 폐하지.”

서운함도 잠시.

금세 풀려버렸다.

변함없는 모습이다.

“하온데 폐하.”

“음?”

“저 수정구는 무엇입니까?”

이안은 아까부터 궁금했다.

황제의 집무실 한편에 놓여 있는 괴상한 수정구의 정체가 말이다.

“많은 수정구를 봐왔습니다만, 저렇게 생긴 수정구는 처음이라서.”

“아, 이거 말이냐?”

어째서인지 그 물음에 어깨가 하늘로 승천하는 황제 하이든이었다.

“스람의 역작이라고 하더구나.”

마도공학 장인 스람.

그는 하이든의 남다른 재능.

예컨대 ‘붐스틱 다루는 재주’를 확인하고부터 쭉 신제품 붐스틱이 나올 때마다 황궁으로 보내왔다.

“아무리 봐도 붐스틱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그야 붐스틱이 아니니까.”

실로 복잡한 문양의 수정구.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그 복잡한 수정구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잘 봐. 짐이 마법을 보여주마.”

마법사 앞에서, 그것도 대륙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 앞에서 마법 자랑이라니, 조금 우스운 상황이었으나 이안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한 눈빛으로 수정구를 바라봤다.

우우우우웅!

수정구가 공명했다.

동시에 어떤 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굉장히 이질적인 목소리가 수정구로부터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하이든을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정체가 뭘까?

“안나, 다름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이 아저씨 정체가 궁금한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이든의 부탁에 수정구가 푸른빛을 뿜어 이안의 전신을 훑었다.

(주인님의 영원한 의형제이신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 공이십니다.)

그러더니 놀랍게도 이안의 정체를 파악하여 고한다. 앞서 영원한 의형제 부분은 재고할 여지가 있으나, 어찌 되었든 신기한 일이다.

“폐하, 이게 도대체…….”

“안나, 여기 계신 상아탑주께서 네 소개를 듣고 싶은 눈치로구나.”

황제는 이안의 물음에 직접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정체불명의 수정구를 통하여 대답하고자 했다.

(안녕하십니까? 상아탑주님. 저는 인공정령 안나라고 합니다.)

“인공정령…… 안나?”

인공정령 안나.

도무지 생소한 호칭이다.

안나라는 흔한 이름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인공’과 ‘정령’이 함께 붙어있을 수 있는 단어였던가?

(위대한 마도공학자 스람님의 마도공학으로 탄생하였으며, 현재는 하이든 그린리버 주인님의 행정업무 보조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하.

이제야 좀 알겠다.

마도공학 발명품이었구먼?

“이 녀석 덕분에 요즘 일이 아주 수월해졌어. 나보다 기억력도 좋고, 계산도 빠르고, 밤새 일을 시켜도 지치지 않거든. 기계니까.”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흡족한 표정으로 수정구를 쓰다듬었다.

“혹 성능이 의심되느냐? 그런 거라면 대화를 더 나눠보든가. 내 장담하는데 지능 면에서는 이안 너한테도 절대 꿇리지 않을…….”

“……아뇨, 괜찮습니다. 스람 님의 작품이라면 의심할 필요가 없죠.”

말하는 수정구와 토론이라니.

이안에게는 아직 힘든 일이었다.

“그래? 흠, 뭐 그럼 안나 얘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같이 식사나 할까? 짐이랑, 너랑, 올리버랑, 간만에 셋이서 함께 말이야.”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좋은 팥을 구하셨다고, 오랜만에 그걸 해주신다 하셔서요.”

“그거라 하면, 혹시 그 진흙 맛 나는……?”

“예, 그렇습니다. 팥 파이.”

“으으…….”

이안의 모친 베네사 페이지의 특제 팥 파이, 과거 맛보았던 그 맛을 떠올린 하이든이 경악했다.

“혹 폐하께서도 그 맛이 그리우신 건……?”

“어허……! 절대, 절대로 아니다. 나는 도저히……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맛이야. 음식으로서 말이지.”

그리울 리가 있나?

펄쩍 뛴 하이든이 말했다.

아무래도 빨리 돌려보내야겠다.

계속 이러다가 같이 먹게 생겼다.

“모친께서 기다리시겠군. 자고로 부모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만큼 불효가 또 없지. 가 보아라. 얼른.”

“예, 폐하. 하오면 앞으로는 되도록 자주 찾아뵙겠나이다.”

“그래, 말이라도 고맙구나.”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강렬한 빛줄기가 이안의 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인간 마법사 중에서는 오직 이안만이 부릴 수 있는 8클래스의 공간이동마법, 텔레포트 주문이었다.

“흐음, 저 텔레포트라는 건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차라리 예전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때가 더 멋졌던 것 같기도 하고…….”

이안이 종적을 감춘 집무실.

하이든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오래 전, 비행 마법으로 하늘을 종횡무진 누비던 이안 페이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 시절도…… 나쁘지는 않았지.”

피식 웃은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서류 한 뭉치를 펼쳐 들었다.

다시 말하는데, 오늘 내로 읽어야 할 상소문만 오십 개가 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