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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87화 (2부 1화) (187/342)

187 [ 2부 ]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화

“영주님, 해가 저물 시간입니다.”

“음, 벌써 그렇게 되었나?”

눈 덮인 모그리안 영지의 주인.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이 사냥을 멈췄다.

그는 최소한의 인원만 동원했다가 낭패를 봤던 과거와 달리 제법 많은 병력을 이끌고 있었다.

“연회에 쓸 고깃감은 넉넉하게 잡았으니…… 오늘 사냥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다들 수고가 많았네.”

북부의 전통이 그렇다.

아내가 생일을 맞이한 날.

가장은 일찌감치 사냥에 나선다.

멧돼지든, 사슴이든, 토끼든, 뭐라도 잡아다가 도축하고 요리한다.

이후 식솔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

오늘은 애처가로 유명한 대영주 평생 하나뿐인 아내, 로아나 모그리안의 생일이자 기일이었다.

“매년 그랬듯 올해도 내 직접 주방에 들어갈 예정인데…… 요리 맛이 좀 이상하더라도 참아주게나.”

대영주는 영지의 가장이다.

식솔이란 단위 자체가 남다르다.

물론 혼자서 연회 음식을 전부 요리할 순 없겠으나, 친히 주방에 들어가 진두지휘할 의무는 있다.

“영주님께서 해주시는 음식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생고기를 주셔도 감사히 먹어야죠!”

“아, 소장은 날것을 못 먹어서 생고기는 좀…….”

“어허, 에릭 경! 모처럼 우리 영주님께서 실력 발휘를 해주시겠다는데 정신 상태가 영 불량하구먼?”

사뭇 자유로운 분위기.

대영주가 그들을 진정시켰다.

“걱정 말게. 내 괜찮은 래시피를 익혀뒀으니, 적어도 피가 흥건한 생고기 얻어먹을 일은 없을 게야.”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은 예전처럼 권위적이고 엄격하지 않았다.

제국 역사상 가장 유쾌한 황제의 장인어른 아니겠는가? 영향을 많이 받기도 받았고, 또 조금 내려놓고 사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저기, 영주님.”

“음?”

“허면 오늘도 폐하께서 친히 방문을 해주시는 겁니까?”

병사 한 명이 물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조차 못 할 일.

그럼에도 대영주는 거리낌 없이 병사의 물음에 대답을 내어줬다.

“과중한 나랏일로 공사가 다망하실 터, 올해부터는 장모 기일까지 챙길 필요 없으시다 말씀드렸네.”

황제 폐하께서 오지 않는다는 말에 아쉬워하는 기사와 병사들.

그런 부하들의 안색을 살핀 대영주가 피식 웃으며 첨언했다.

“너무 아쉬워들 하지 말게나. 비록 폐하께서 행차하지는 않으시지만, 매번 챙겨오셨던 황실의 포도주만큼은 넉넉하게 보내주셨네. 이미 오늘 새벽에 잔뜩 도착해서 포도주 저장고에 보관 중이지.”

“오오……!”

“역시, 역시 우리 황제 폐하십니다! 통이 크셔도 너무 크셔요!”

“며칠 전부터 어찌나 기대되던지…… 자려고 누워도 생각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씻을 때도 생각나고, 조금 전에도 생각나고…….”

“오늘 원 없이 맛보게 해줌세.”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그런 시대다.

평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

한 명의 마법사로부터 시작된 평화, 그것은 제국의 방패마저 긴장감을 놓아버릴 만큼 절대적이었다.

“자, 슬슬 영주성으로 복귀…….”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북쪽 설산지대로부터 어떤 괴성이 들려오기 직전까지는 그랬다.

“……방금 그 소리, 뭐지?”

“부, 북쪽에서…… 설산지대 쪽에서 들린 것 같습니다.”

“짐승…… 아, 아니, 괴물 같은 것이 울부짖는 소리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다.

제국의 북부 모그리안 영지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설산지대.

워낙 척박하고 험준하여 사람의 발길이 뚝 끊김은 물론이거니와 짐승에게까지 버림받은 비운의 땅.

북부 설산지대는 그런 곳이다. 눈 덮인 설산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이어야만 한다.

“저, 저건……?”

한데 어째서일까?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곳에.

눈 덮인 산만 보여야 할 그곳에.

거대한 무언가가 보이는 까닭이.

“…….”

그 무언가는 얼핏 보기에 웅크린 사람처럼 보였다.

두 팔, 두 다리, 굵직한 몸통, 머리로 이루어진 직립보행 생물체.

하지만 그 무언가는 자세히 보기에 사람과 여러모로 달랐다.

푸른 피부, 촉수처럼 꿈틀대는 머리카락,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안광, 설산과 맞먹는 키와 덩치까지.

“……거인?”

거인.

설산 봉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인간.

혹은 괴물이든, 신이든, 무엇이든 여기 존재하지 말아야 할 괴생물체가 설산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쿠오오오오오오……!

혹시 아는가?

대영주 무리가 사냥을 나온 모그리안 숲과 북부 설산지대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인간이나 짐승이 목청 터지라 울부짖어봐야 메아리도 닿지 않을 만큼 멀다.

“크윽……!”

“저, 저, 저게 도대체……?”

“도, 도망쳐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런데 저 거인이 토해낸 울부짖음은 달랐다.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와 두려움을 자극하다 못해 후벼 파는 소리.

그런 끔찍한 소리가 눈앞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선명히 들렸다.

쿵……!

어디 울부짖기만 할까?

움직인다. 발걸음을 내딛는다.

쿵……!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그럴 때마다 요동치는 땅덩어리.

걸음의 방향은 남쪽을 가리켰다.

쿵……!

거인의 북진이 점점 더 빨라졌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모그리안 영주성과 인근 마을부터 짓밟힐 터.

“……에릭 경.”

모두가 겁에 질려 넋을 놓아버린 가운데 오직 한 사람, 대영주만이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았다.

지난 세월 많이 무뎌졌으나, 그는 여전히 북부를 지키는 방패였다.

“그대는 지금 즉시 숲을 빠져나가 황실과 상아탑에 이 일을 전달하도록 하시오. 영주성 마구간에서 말을 타고 통신 역참으로 달리는 편이 가장 빠를 것이오.”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이 젊은 기사단장 에릭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그리안의 기사단장 에릭 솔랑케, 대영주께서 내리신 명령을 반드시, 목숨 바쳐 완수하겠나이다.”

그러자 기사단장 에릭 솔랑케 역시 검을 뽑아 들며 맹세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귀족 작위까지 하사받은 평민 출신 기사에게 대영주의 명령은 곧 황명이었다.

“아론 경.”

다음 차례는 노기사 아론 테일러.

그도 검을 뽑아 부름에 응답했다.

“경께서는 지금 즉시 영주성으로 복귀하여 북부 영지민들의 피난을 도모하도록 하시오.”

“하, 하오나 그런 일이라면 저 말고 젊은 친구들을 보내심이…….”

“북부 지리에 밝아야 할뿐더러 순간적인 판단을 요하는 임무요. 영지민들의 신망도 두터워야겠지. 따라서 이 임무는 우리 영지를 위해 오랫동안 봉사한 경의 몫이오.”

“……모그리안의 기사 아론 테일러, 비록 늙은 몸이나 반드시 명을 완수하겠나이다.”

시간이 없다.

그저 따를 수밖에.

아론 테일러가 명을 받았다.

“알렉스 경.”

“하문하십시오. 대영주님.”

“경은 그대의 아버지인 아론 경을 도우시오. 혼자서는 벅찰 터이니.”

“기사 알렉스 테일러, 대영주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아론 테일러의 늦둥이 아들이자 촉망받는 기사 알렉스 테일러.

그에게 아비의 보좌를 맡긴 대영주가 나머지 인원을 살폈다. 셋이 빠졌으니 남은 인원은 총 58명.

기사가 일곱, 정예병이 쉰이다.

“또한 나머지.”

마침내 대영주가 칼을 뽑았다.

가문의 보검, ‘눈사태’였다.

“그대들의 임무는 간단하다. 내 친히 저 거인과 접촉을 시도할 터. 그때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각지대까지 물러나 관찰한 뒤 황실과 상아탑에 보고하도록.”

최후의 순간까지 북부를 수호하는 방패로 남는 것, 대영주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정했다.

“……!”

그런 대영주를 바라보는 기사와 병사들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말이 거인과의 접촉이지, 사실상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 아니겠나?

마음 같아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만류하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영주께서 희생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나 다른 누구도 아닌 대영주였기에, 모그리안 영지의 통수권자가 내린 명령이기에 따라야만 했다.

“내 말에 반응하는지, 반응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언어를 구사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즉 우리 인간들한테 적대적인지, 그런 특징들을 빠짐없이 확인하도록.”

대영주의 명령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아, 그리고, 오늘 사냥 즐거웠네. 요리 대접은 미루도록 하지.”

특별할 거 없는 인사를 끝으로 말에 올라탄 대영주가 박차를 가했다. 방향은 거인이 접근 중인 북쪽이었다.

‘……정말 거대하군.’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피부로 체감되는 덩치.

과연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의문스러울 만큼 공허한 표정.

그런 특징이 눈에 보일 때쯤,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이 십년지기 애마 ‘윈터’를 멈춰 세웠다.

“나는 모그리안 영지의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이다. 지금 그대가 짓밟고 있는 이 땅의 주인이지.”

말에서 내린 대영주가 말했다.

인간의 말을 이해할지는 미지수.

한데도 그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낯선 거인이여. 그대가 적대심을 내비치지 않는 한 우리도 그대를 적대하지 않을 터. 상호 간 적대심이 없음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서 통성명을 나누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그대의 이름이 궁금하군.”

진심을 증명하고자 뽑아 든 검까지 땅에 내려놓는다.

물론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가 아니고서야 저 커다란 괴생물체 앞에서 검을 들고 내려놓음이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만, 그래도 이건 뜻하는 바가 컸다. 적어도 인간 사회의 기준으로는 말이다.

[…….]

그 가상한 용기가 통한 걸까?

푸른 거인이 대영주를 인식했다.

어쩌면 말이 통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나는 모그리안 영지의 대영주 마커스…….”

대영주가 제안을 반복하는 그때.

[?????? ??????????]

거인이 소리를 냈다.

그것은 명백한 목소리였다.

체계를 갖춘 언어처럼 들렸다.

[?????? ????? ????? ?????  ]

뜻을 알 수 없는 중얼거림.

예컨대 저들 고유 언어일 터.

‘무슨 뜻이지? 설마 내 말을 알아들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영주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주목할 부분은 거인이 발걸음을 멈췄다는 점.

또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인다는 점.

‘지성을 가진 존재임은 확실하다.’

확신을 품은 대영주.

이제 남은 건 본격적인 접촉.

그가 신중히 말과 물음을 골랐다.

“아직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다 알아들을 순 없으나, 적어도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그러나 그 신중함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 ????? ???? ???? ]

“……뭐?”

잠시 멈췄던 거인의 발이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 아래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으니까.

“로, 로아나…….”

콰직!

단말마.

아내의 이름.

한 줌 남짓 핏덩이.

바로 그것이 북부를 수호하는 방패의 참혹한 결말이었다.

“여, 여, 영주님……?”

“도, 도망…… 도망쳐야…….”

“다들 정신 차려! 영주님 명령 못 들었어?! 단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해야 한다! 영주님의 숭고한 희생이 절대로 헛되지 않도록……!”

실로 끔찍한 광경.

모두의 정신력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들은 고도의 훈련을 통과한 정예군이다.

서로를 다독이며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의 마지막 명령을 따랐다.

쩌적, 쩍, 쩌저적……!

……아니.

따르고자 했다.

푸른 거인의 턱과 입이 기괴한 형태로 벌어지기 직전까지는.

놈이 뿜어대는 백색 광선에 북부 영토가 통째로 증발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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